2026. 6. 18. 22:12ㆍ주인장은 누구?

오랫동안 이 로고를 그냥 '병원 마크'로만 보아온 분들이 많을 겁니다. 사실 이 작은 동그라미 안에는, 진료실 문을 열 때마다 다시 떠올리는 다짐이 색과 형태로 새겨져 있습니다.
우측에서 타오르듯 자리한 붉은 십자가는 한의학에서 화(火)와 심장의 기운, 곧 양(陽)의 활력을 뜻합니다. 맥이 흔들리는 환자 앞에서 머뭇거릴 수 없는 절박함, 다급한 순간에는 곧장 응답해야 한다는 의료인의 본능적 사명이 이 붉은 십자가 한 줄에 담겨 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십자가가 의료를 상징해온 이유와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 곁을 채우는 짙은 녹색은 목(木)과 간(肝)의 기운, 씨앗이 뿌리를 내리듯 천천히 일하는 음(陰)의 속도입니다. 중심에서 서로를 향해 휘어진 두 장의 잎은 이 녹색 기운이 가장 또렷하게 모인 자리입니다. 한 뿌리에서 나와 서로의 방향으로 굽어 자라는 모양은 태극(太極)의 형상을 닮아 있는데, 이는 음과 양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끌어안으며 영원히 순환하는 조화, 그리고 그 안에서 끊임없이 분출되는 생명의 힘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끊김 없이 감싸는 둥근 원은 기혈이 막힘없이 도는 순환을 형상화한 것이자, 동시에 진료실 문턱을 넘는 모든 분을 — 오늘의 증상만이 아니라 그가 살아온 시간과 살아갈 시간까지 — 통째로 받아 안겠다는 품입니다. 모서리가 없으니, 누구도 그 밖으로 밀려나지 않습니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 말하는 것처럼, 진료실 문턱을 넘는 한 사람은 오늘의 증상 하나만 들고 오는 것이 아니라 그가 걸어온 과거와 지금의 현재, 앞으로 마주할 미래까지를 함께 데리고 옵니다. 그 한 사람의 일생 전체와, 말로 다 풀어내지 못한 마음의 갈피까지 더듬어 보듬겠다는 마음이 이 원 안에 들어 있습니다.
한의학에서는 화 기운이 위로 치솟고 수 기운이 가라앉기만 할 때 몸이 무너진다고 봅니다. 이 로고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측에서 타오르던 붉은 기운이 중심의 푸른 잎과 그를 감싸는 원을 지나며 점차 가라앉아 안정된 녹빛 평형 속으로 녹아드는 흐름이 읽힙니다. 수승화강(水昇火降) — 치우친 것을 바르게 되돌리는 오래된 원리를 굳이 글로 설명하지 않아도, 이 작은 동그라미는 이미 그렇게 형상화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리고 이 흐름은 1994년 갑술년 가을, 진료실 문을 열기 전날 밤 청년 한의사가 고린도전서 13장 앞에서 다짐했던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화려한 의술이나 명성보다 먼저 새겨야 했던 것은, 사랑 없이는 아무리 정교한 기술도 소리만 요란한 도구에 그친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30년이 지난 오늘도 진료실 문을 열기 전 같은 마음으로 — 환자가 가지고 온 한 사람의 일생 전체를 가볍게 여기지 않겠다는 그 다짐 — 으로 돌아갑니다. 로고 속 원이 십자가를 끝없이 품어 안듯, 원장님의 아침도 그렇게 매번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이 작은 동그라미 하나는, 사실 30년의 아침마다 되풀이된 기도와 다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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