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자세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기본적으로 자세는 정신의 거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의 자세에 관해 말할 때,

그 말만으로는 몸의 자세를 말하는지 아니면

마음의 자세를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이 말의 이중적인 의미는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왜냐하면 외적인 자세는

내면의 자세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외면에는 다만 내면이 반영 될 뿐이다.

그래서 예를 들어 올곧은 인간이라고 말하지만,

이때 올곧다는 이 말이 인류 역사에 의미를 지닌

신체적 행위를 서술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동물은 똑바로 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올곧을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은 까마득한 태고 적에

이 위대한 단계를 거쳤기 때문에

똑바로 설 수 있었고,

 자신의 시선을 하늘로 향할 수 있었고,

신을 바라볼 기회도 얻었다.

그러나 스로를 신이라고 여기는 불손함도 저질렀다.

똑바로 서는 것의 위험성과 가능성은

신체의 영역에서도 나타난다.

동물들의 경우 잘 보호되어 있는 연약한 부위는

똑바로 서는 인간에게는 무방비 상태다.

하지만 이 무방비 상태는

개방성과 수용성을 가져다준다.








우리를 똑바로 서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척추다.

척추는 인간을 똑바로 서고 움직이기 쉽게 해주며,

버티는 힘과 유연성을 준다.

척추는 이중 S자 모양을 가지고 있는데,

완충기의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단단한 척추골과 부드러운 추간판의 양극성을 통해

척추는 유연하게 움직이고 구부릴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외적인 자세와 내적인 자세는 일치하며,

이러한 유추관계는 수많은 관용구 속에 표현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내적인 자세를 억지로 만들기 위해

외적인 자세에 강압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똑바로 서!"

좀 똑바로 앉지 못하겠니?” 라고 소리친다.

약간 더 지나면 군대는 차렷!”자세를 요구한다.


 한 인간의 내면적인 성향과 일치하지 않는 자세를 보면,

우리는 곧장 그것이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또한, 자연스런 자세에서

우리는 그 사람의 본성을 알아보게 된다.

사람이 병에 걸려 불가피하게 어떤 자세를 취하게 되면,

이 자세는 우리에게 인식되지 않은 내면의 자세를 보여주며,

그 사람이 무엇을 받아들이지 않는지를 알려준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살펴볼 때,

그가 자신의 마음을 외적인 자세와 일치 시키는지,

아니면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자세를

억지로 취하고 있는지 해야만 한다.

전자의 경우 그의 외적인 자세는

자신의 의식된 정체성을 반영한다.

후자의 경우 병색이 짙은 그의 자세에서

그가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

그림자의 영역이 겉으로 드러나다.







그러므로

매우 직선적이고 올곧은 사람,

머리를 치켜들고 세상을 활보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의 근접하기 어려운 인상,

자긍심, 고상함, 정직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은 또한 자신을

이 모든 특성들과 동일시할 것이 아주 확실하다.

그는 그런 특성들을 숨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척추가 대나무처럼 뻣뻣해지는

병에 있어서는 사정이 다르다.

이 병은 인식되지 못한 완강함을

몸을 통해 드러낸다.

이 병에서는 척추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의 전체로 굳어지며,

등은 뻣뻣해지고 머리 숙여진다.

왜냐하면 척추가 S자 형태로 휘어져 있던 것이

펴지거나 반대로 바뀌기 때문이다.

이런 환자는 자신이 실제로는

얼마나 지독하고 완고하고 끈질긴지

아주 구체적으로 분명히 알게 된다.

구부정한 품이나 거북등에서 나타나는

일련의 문제들도 이와 아주 유사하다.

거북등에서는 인식되지 못한 굴종과
자신감의 결여가 겉으로 드러난다
.




부담없이 톡주세요~

진료 중에 짬짬이 답변 드리는 거라
대화가 자주 끊어지게 됩니다.
가능하시면

증상과 상태를 자세히 적어주시면

잘 읽어보고

제가 질문할 것이 있으면 질문 드리고

답변 드리겠습니다 ^^.


빛고을 광주에서
여송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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