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냅스 돌기의 생성<?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xml:namespace prefix = o /><?xml:namespace prefix = o />
새로운 시냅스 돌기가 자라나기 위해서는 먼저 단백질이 합성되어야 합니다.
동물을 대상으로 뇌 속의 단백질 합성을 억제하는 약제를 투여한 후 훈련을 시켜 본 결과, 당시엔 학습이 이루어지지만 며칠 뒤에는 훈련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훈련을 먼저 시키고 즉시 약을 투여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단백질 생성이 안 되면 기억이 장기적으로 안정될 수 없다는 것이죠. 한편 훈련과 약제 투여의 간격을 멀리 띄울수록 기억에 미치는 영향이 점차 약해지는 결과가 나타났는데, 이것은 훈련을 받은 이후 일정 기간 동안 단백질 합성을 통해 기억이 정착되며 그 이후에는 단백질 합성이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님을 증명합니다. 기억이 정착(consolidation)되는 동안, 즉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으로 전환되는 단계에서 새로운 단백질 합성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죠.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인체 세포는 절대로 무작정 단백질을 만들지 않습니다. 만일 60조개에 달하는 인체 세포들이 각자 단백질을 마구 생성하면 어떤 무참한 일이 발생할지 뻔합니다. 그래서 시냅스 돌기를 구성하는 단백질도 마치 회사의 결재 과정처럼 엄격하게 정해진 순서를 밟은 뒤에만 만들어지게 되죠. 캔들은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으로 안정되기 위해 단백질이 생성되는 체계적인 과정을 “유전자와 시냅스의 대화(a dialogue between genes and synapses)”라고 표현했습니다.
다음 내용은 캔들의 최근 저서인 <기억을 찾아서(In Search of Memory)>에 주로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i] 먼저 아래 도표 3-25를 봐주기 바랍니다.
도표 3-25. 새로운 시냅스 돌기 생성을 위한 단백질 합성 과정
용어들이 대단히 어렵습니다만, 하나씩 차근차근 따라가면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로토닌(바다 민달팽이를 포함한 무척추 동물의 경우, 인간의 뇌에서도 분비됨)이나 도파민(인간의 경우)등의 신경전달물질의 자극이 한 번만 가해지면 일단 시냅스 부위 근방에서만 화학적인 변화가 발생하지만, 반복적으로 가해지면 뉴런의 핵에까지 영향이 미치게 되며 이것이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의 가장 핵심적인 차이점이라고 했었습니다. 신경전달물질 자극이 반복적으로 가해질 때 발생하는 생화학적인 변화가 도표 3-25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시냅스 부위에 다수의 자극이 주어지면 cAMP(cyclic adenosine monophospate)라는 2차 메신저가 충분히 농축됩니다. cAMP는 일종의 단백질 효소인 protein kinase A(PKA)를 활성화시켜서 뉴런의 세포핵까지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게 되죠. 그 과정 중 PKA는 MAPK(mitogen-activated protein kinase)라는 효소도 세포핵까지 유입되도록 유도합니다.
이 두 종류의 키나아제(kinase)가 세포핵에 들어가서 만나는 것이 CREB(cAMP response element-binding protein)-1과 CREB-2입니다. CREB-1은 장기기억이 촉진될 수 있도록 유전자를 켜주는 역할을 하고, CREB-2는 유전자 발현(gene expression)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맞버티는 브레이크로서 기능합니다. 인체의 신비로운 현상 중 하나는 언제나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가 조화를 이루면서 협조하도록 되어있다는 점인데 이 두 가지 단백질에도 이런 특징이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시냅스 부위에서 반복적인 자극을 통해 문턱을 넘었어도 다시 CREB-2의 억제력이라는 임계치를 다시 넘어서야지만 기억이 형성되는 것이죠. 캔들은 “CREB의 길항 조절 작용은 오직 중요하고 생명 유지에 보탬이 되는 경험만이 학습될 수 있도록 기억의 저장 문턱을 제공하는 것 같다”[ii]라고 해석합니다. 이 책 앞부분에서도 나왔던 셰라셰프스키의 탁월한 기억력은, CREB-1을 억제하는 CREB-2의 기능이 유전적으로 약화된 결과일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악보, 체스, 시 등을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은 CREB-2의 기능 자체가 선천적으로 다르다는 것이죠. 한편, 초파리를 이용한 실험에서도 CREB-1의 생성을 촉진시키면 초파리의 기억력이 놀랍게 향상되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MAPK는 CREB-2가 활동하지 못하도록 붙잡아 두고, PKA는 CREB-1를 활성화시킵니다. 그 결과 유전자의 ‘스위치’가 켜집니다. 이렇게 되면, 핵 속에 있는 DNA 이중나선사슬에서 필요한 부분이 RNA에 의해 전사(轉寫, transcription)될 수 있습니다. 전사란 DNA에 담긴 유전 정보 중 필요한 것을 복사하는 과정이라고 이해하면 되고, 이것을 유전자 발현(gene expression)이라 합니다. 유전자 코드 정보를 복사한 mRNA는 핵을 빠져 나와서 세포질(cytoplasm)로 내려옵니다. 그리고 mRNA에 담긴 유전자 정보는 리보솜(ribosome)에 의해 해독되어 해당되는 아미노산 배열을 가진 단백질을 만들게 되죠. 이 과정을 ‘번역(translation)’이라고 합니다.
한 개의 뉴런은 일만 개 정도까지 시냅스 연접 부위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유전정보를 복사한 mRNA나 합성된 단백질은 새로운 돌기가 자라나야 할 시냅스로 찾아가는 것일까요? 엉뚱한 시냅스로 단백질이 찾아간다면 엉뚱한 기억이 형성된다는 말이 되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중대한 의미를 갖습니다. 여기에 대한 해답은 인도 출신의 과학자 카우식 시(Kausic Si)가 밝혀냈습니다. 캔들과 공동 연구로 2003년 <셀(Cell)> 저널에 게재한 논문에서 카우식은 시냅스 부위에 상존하는 CPEB(cytoplasmic polyadenylation element-binding protein)라는 단백질이 프리온 단백질과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음을 밝혀냈습니다. 프리온 단백질은 소에게 발생하는 광우병이나 인간의 크로이츠펠트-야코브병을 일으키는 원인 물질로서, 발병하면 뇌가 스폰지 같이 변해서 죽게 됩니다. 프리온 단백질은 열성(recessive) 상태로 존재하다가 우연히, 혹은 활성화된 다른 프리온 단백질의 섭취를 통해서 우성(dominant)으로 바뀌면 자기 영속성을 갖게 됩니다. 열성 상태의 CPEB는 세로토닌이나 도파민의 자극을 통해 우성으로 활성화되고, 해당 시냅스 부위에 계속 남아있습니다. 또 하나의 스위치가 켜진 것이죠.
핵 속에서 유전 정보를 담고 내려오는 mRNA는 비활성 상태이고 목적지는 따로 정해지지 않고 모든 시냅스 부위로 확산되어 내려갑니다. 그러나 비활성 상태인 mRNA는 단백질을 생성하지 못하는 단계일 뿐입니다. 기억이 정착되어야 하는 시냅스 부위의 우성 CPEB는 비활성(dormant) 상태의 mRNA가 핵을 빠져 나와 자신의 시냅스 부위에 도착하면 mRNA를 ‘깨워’주게 되고 그제서야 시냅스 돌기를 만들 수 있는 단백질이 합성됩니다. 캔들은 이것을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왕자님의 키스를 받는 순간에 비유합니다. 단백질과 같은 생물학적 분자 화합물은 수명이 단 몇 시간에서 며칠 정도임에도 기억이 (사실상) 영구적으로 존속할 수 있는 이유도 이 발견을 통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시냅스의 역동적 가소성이 시사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단백질이 합성되기 전까지 수많은 스위치가 켜져야 합니다. 우선 cAMP à PKA à MAPK로 이어지는 효소 연쇄가 켜져야 하고, 핵 속에 있는 CREB-2가 억제되어 CREB-1이 활성화되어야 하고, 해당 시냅스 부위의 열성 CPEB가 우성으로 전환되어야 비활성 상태의 mRNA가 단백질로 합성될 수 있도록 깨어나게 되죠. 둘째, 핵까지 효소 물질을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cAMP가 생성되기 위해서는 임계치를 넘어서는 자극이 아주 강렬하게 또는 반복적으로 가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수많은 스위치를 켤 수가 있게 되는 것이죠. “연습은 완벽을 만든다, 반복은 장기 기억을 위한 필요조건이다”[iii]라고 캔들이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셋째, 세포의 핵 속에 들어있는 유전자는 우리들의 기억이나 모습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외부 환경에 의해 유전자의 표현형(phenotype)이 결정되는 전체 과정은 학습 활동을 통해서 우리의 유전적 표현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줍니다.
‘Nature or Nurture’, 즉 선천적인 유전 형질이 중요한 것이냐 후천적인 환경이 중요한 것이냐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에 따르면 타고난 유전형질도 환경이 맞아야지만 발현이 가능한 것입니다. 주의력을 통해 우리의 한정된 인지 자원을 한 곳으로 모으고, 강력한 동기를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고 연습한다면 우리 뇌 속에서는 상상의 한계를 넘어서는 생화학적 변화가 일어납니다.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는 말처럼 반복적인 자극(세로토닌 혹은 도파민)으로 충분한 cAMP가 축적되면 핵 속에 있는 CREB-2의 억제기능을 꺼버릴 수 있게 되고, CREB-1가 활성화되어 핵의 DNA에서 필요한 정보가 RNA에 의해 복사됩니다. mRNA에 담긴 유전 정보에 기초하여 단백질이 합성되기 위해서는 계속적인 자극으로 시냅스 부위의 CPEB 스위치가 켜져서 잠자고 있는 상태의 mRNA를 깨워줄 ‘키스’를 해야 합니다.
기억하기 바랍니다. CPEB는 프리온 단백질의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번 켜지면 다시는 꺼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한번 뚫린 길은 쉬 닫히지 않게 됩니다. 한번 문리가 트이면 예전과는 다르게 됩니다. 경험에 의거해서 수많은 작가들이 주장했던 내용이 이제는 첨단 과학으로 증명되었습니다.
외국어를 습득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일단 CPEB 스위치가 켜지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면 해당 시냅스 부위는 영구적으로 바뀝니다. 한번 바뀐 화학적 변화는 새롭게 형성된 지식의 시냅스 돌기가 비록 시들어버리더라도, 즉 망각되더라도 언제든 다시 부활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게 됩니다. 다시 자극을 가하면 CPEB가 언제든 부활의 ‘키스’를 해주어 시들었던 시냅스 돌기가 즉시 되살아 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굴의 의지로 배워 놓은 외국어 지식이 결코 망각의 강으로 흘러가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님을 꼭 기억하길 바랍니다. 한번 학습한 것이 망각된 후 다시 학습될 때 처음 배우는 것에 비해 월등하게 빠른 속도로 재생되는 것에 대한 연구도 있습니다. 이것을 ‘savings effect’ 또는 ‘relearning effect’라고도 하는데, 다음 장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이제 이러한 생화학적 기제가 보다 효율적으로 발생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학습 전략이 필요한지 살펴볼 준비가 되었습니다. 전략의 선택은 분자생물학적·생화학적 기억 메커니즘 자체를 다르게 만들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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