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발성두통 [cluster headache, 群發性頭痛]매우 심한 통증이 밤마다 주기적으로 몇 주 또는 몇 개월에 걸쳐서 나타나는 두통으로 특징적인 것이 눈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다.
여러증상이 동시에 나타나므로 송이두통 또는 떼두통이라고도 한다.
편두통의 일종으로 주로 야간 수면중에 갑자기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통증은 몇 주일에서 여러 달에 걸쳐서 매번 같은 시간과 밤에 일어나고, 2시간 정도 지나면 대부분 사라진다. 이러한 증상이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주기로 발생하기 때문에 한자로 무리 군(群)자를 써서 군발성두통이라고 한다.
봄 또는 가을에 일어나는 1년 또는 2년 주기의 군발성두통이 가장 일반적이다.
편두통보다 더욱 극심한 통증이 나타나며, 두통 증상이 몇 개월에서 몇 년 동안 휴지기를 가질 수도 있다. 주로 중년 남성에게 많이 나타나는데 술이 원인이 되어 발생되는 경우가 많으며, 아무런 이상이 없던 사람에게 갑자기 발생하는 것이 특징이다.
원인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편두통과 마찬가지로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과 혈관의 이완, 부교감신경의 항진과 교감신경의 손상으로 나타나는 자율신경계의 증상 등이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증상은 눈 안쪽을 도려내는 듯한 통증이 따른다. 통증은 관자놀이·위턱·코·아래턱·치아로 확산될 수 있으나 한쪽 눈의 뒤쪽 또는 한쪽 눈 주위에 15~90분 동안 지속되며 몹시 괴로운 것이 특징이다.
동반 증상으로는 통증이 있는 쪽 눈에 눈물이 나며 결막충혈과비충혈과 콧물과 코막힘이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통증이 있는 쪽의 눈꺼풀이 쳐지며 동공이 수축하고 일측성 또는 양측성 발한, 안면 홍조 등도 자주 나타난다.
통증 때문에 잠에서 깨게 되며, 통증이 매우 심해서 누워 있거나 가만히 있지 못하고 여기저기 왔다갔다 하는 것이 특징이다. 증상이 시작된지 약 20분 정도에 극한의 통증이 시작되며, 메스꺼운 증상과 구토는 예외적인 경우에 발생한다.
유치원 시절 때부터 10년 이상 악성 아토피 질환으로 고생하던 환자의 이야기입니다. 한참 성장할 나이에 가려워서 긁느라고 수면도 깊이 취하지 못해 키도 또래보다 한 뼘 정도 작습니다. 저녁내 긁어 속옷에는 핏자국이 있어서 아침마다 엄마는 안쓰럽습니다. 학생이라 공부할 때 책상에 앉아 있으면 '무릎에서 진물이 나고 엉덩이의 진물로 팬티가 피로 물든다" 환자의 어머니께서 말씀하십니다. 에고~ 이런 자녀를 위해 무슨 치료든 안 해보셨겠습니다.
그 환자 아이의 고통도 심했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 어머니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지 않았을까요. 난치병이라 하고 10년간 여기저기 다니며 무수한 치료받았는데 효과를 보지 못해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마음이 뭉드러졌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방광경과 독맥경 상의 약침치료와 더불어 약물치료는 매우 대단하게 이 아이를 치료해 내었습니다. 물론 한두 건의 치료가 아닙니다. 이 아이는 남자 아이이지만 여자 아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이제 "아토피를 아예 잊은 것 같다" 10년 동안 괴롭히던 질환에서 환자는 해방이 되었고 더 이상 아들의 팬티에서 피가 묻어나지 않는 것을 보고 그 환자의 어머니는 얼마나 감사할까요?
아토피 피부염 뿐아니라 다른 자가면역성 만성 피부질환으로 고생하고 계신다면 김성훈 한의원에 속는 샘치고 1달 동안 5~10번만 치료해보세요. 의외의 희망이 보일 겁니다.
아마도 1만 세대도 지나지 못 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유전적으로 균일한 종이다. 평균적으로 어떤 두 사람의 유전체는 그들이 가진 전체 염기의 0.1 퍼센트 정도가 다를 뿐이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나오기 전 혹은 그 대륙의 밖에서 영구히 서식처를 정하기 전, 우리의 선조 인간 종은 아프리카 전역에 고루 퍼져 분포했다. 그들은 동부 아프리카에서 서부, 남부로 이동하면서 지리적으로 격리되었고 집단 밖에서 멀리 떨어진 집단 구성원과 짝짓기할 기회도 멀어졌다.
앞에서 설명한 이유 때문에 이 전적으로 그리고 표현형으로도 점점 달라져 갔다. 새로운 돌연변이가 나타나고 다른 환경이 가하는 자연선택의 압박이 서로 달라졌다. 유전자 부동이 있고 발생 중인 태아나 어린아이들에게 환경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집단 간 유전자의 흐름은 최소한으로 유지되어서 각 집단은 유전적으로 서로 달라진다.
다시 말하면,그들은 서로 다른 대립 유전자를 가지고 유전형의 빈도도 각기 다르다. 지리적 격리는 다른 종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 종에서도 생식적 격리를 초래했다. 그렇지만 인간은 지리적 격리 외에도 종교적, 인종적 또는 사회적 계급간 격리가 있는 매우 예외적인 종이다.
인간집단이 지금 에티오피아 근처, 동아프리카를 떠나 아시아에 정착한 것은 약 5만~10만 년 전이다. 그들은 겨우 몇 천명 정도인 매우 작은 집단이었을 것이며 유전적 다양성도 제한적이었고 그마저도 그들이 떠나온 아프리카 시절과 다를 것이 별로 없었다.
이런 창시자 효과 때문에 이들 비(非)-아프리카 집단은 아프리카 대륙의 집단에 비해 유전적 다양성이 떨어진다. 아프리카를 떠난 인간 집단이 먼저 선택한 길은 서아시아로 향했지만 점차 남부 아시아를 향해 뻗어 나가 오스트레일리아에 도착한 것이 대략 4만 5000년 전이다. 나중에 북서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북동 아시아에서 아메리카대륙으로 대장정이 이어졌다.
아프리카에서 벗어나 지구 전체로 퍼져 나갔지만 빙하기가 끝나가면서 해수면이 높아져 지리적으로 생식적으로 격리가 일어나 점차 유전적으로 서로 구분되는 집단이 생겨났다.
전체로 보면 인간 종의 유전적 변이는 집단 내에 서 일어난 변이다. 즉, 아주 작은 부분만이 집단 간 차이 때문이다. 집단 간의 유전적 차이는 대립 유전자 빈도의 차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간혹 새로운 돌연변이가 한 집단에만 나타나는 “개별적(private) 다형질 발현“이라는 것도 존재한다. 기원 집단에서 새로운 돌연변이가 충분히 널리 퍼져 나가면 새로운 이주자가 이웃 집단에 이를 전달해 줄 수 있다. 게다가 대립 유전자 빈도는 지역에 따라(경도와 위도) 점진적으로 변해가는 양상을 띤다. 지리적 조건에 따라 생식적 격리가 일어날수 있기 때문에 이런 경향은 익히 예상할 수 있다. 지역에 따른 대립 유전자 빈도의 이런 점진적인 변화를 연속 변이(dines)라고 부른다.
인간 종은 집단 내에서 중첩 계층 구조를 지닌 집단으로 구성된다. 대륙 간 분할에 따른 몇 개의 거대 집단은 그보다 훨씬 작은, 유전적으로 독특한 소집단으로 구성된다.
농업 혁명 이후 인간 집단의 규모가 빠르게 커졌지만 산업 혁명기에 이르러 그 정점을 이루었다. 그에 따라 드물고 새로운 돌연변이가 점차 많아졌다. 이런 대립 유전자의 운명은 자연 선택보다는 유전자 부동에 의해 주로 결정된다. 몇 종류의 돌연변이는 질병과도 관련되지만 빈도가 낮기 때문에 이들 돌연변이를 찾는 것이 쉽지는 않다. 최근에는 국가 간 여행이 빈번해지고 과거의 문화장벽이 무너지면서 인종간 결혼을 주도하고 있다. 점점 이렇게 인간 집단 간 유전적 차이가 줄어들고 있다. 자연 선택의 간섭이 없이도 인간 집단의 유전적 구성은 점차 변화해 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것은 자연환경의 압박보다 훨씬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우리들은 늘 새로운 질환에 시달리는가? 왜? 과거에는 나타나지 않았던 질병들이 생겨 나는가? 왜? 과거에는 질병이라고 생각지 않았던 증상을 병이라고 하는가? 왜? 비염, 아토피, 턱관절장애, 안면비대칭, 측만증 굽은등의 자세질환이 나타나는가?
오늘은 이런 질환들에 대해 근접원인이 아닌 진화의학적인 관점에서 궁극원인을 살펴보고자한다.
환경의 변화가 어떤 유전형의 적응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진화생물학의 기본적인 개념이다.
앞서 간간의 건강이나 질병과 관련해서 이러한 측면을 처음으로 지적한 사람 중에는 유전학자인 제임스 닐이 있다. 그가 한말중에 의미있는 말이 있는데 “한때 가지 있는 유전자 흑은 유전자의 조합이 었던 것도 환경 이 변 하면서 취약한 것으로 변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장신과 의사이자 다원 전기 작가인 존 볼비(Bowlby)는 ‘환경에 의한 진화적 적응(Environment of evolutionary adaptedness)”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줄여서 EEA라고도 한다. 자연 선택을 거쳐 우리의 진화적 조상들이 적응한 환경 이라는 의미다. 볼비 자신은 일차로 착근에 등장한 인류의 정신적인 형질에 관심을 보였다. 홍적세에 지구상에 비로소 등장한 호모속, 그리고 우리 종 호모사피엔스가 그들이었다. 우리들의 조상들은 홍적세를 지나오면서 진화한 고도의 인식력과 문화를 번성시킬 수 있었던 힘이 인간 종을 특징짓는 형질이 되었다.
우리 조상이 적응하며 살았던 단일한 환경이란 것은 없다. 인간 진화 역사 전 기간을 재우 다양한 환경에서 가까스로 생존하고 번식해 왔다. 환경은 늘 변화하기 마련이고 제한과 타협이 언제나 작동하기 때문에 환경에 대한 적응은 언제나 완벽한 것이 못 되었다.
EEA는 병도 없고 고난도 없는 에덴의 동산이 결코 아니었다. 진화사 전 기간에 걸쳐 우리 조상들 겪었던 모든 EEA는 인간이 진화시킨 모든 형질의 배경이 되었다.
과거 인간의 진화적 조상이 살아오면서 적응했던 환경과는 판이한 조건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대도시에서 문화적으로 다양하고 사회경제적으로 서로 연결된, 유전적으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 옛날과 다른 음식을 먹고 노출된 병원균과 독소도 달라졌다. 사냥하고 채집하던 우리 조상들의 육체적 활동 방식은 이제 거의 사라지고 없다. 더군다나 지리적인 차이, 그리고 그것이 규정한 문화적인 전통과 삶의 양식이 제 각각인 다양한 환경에서 여전히 인간은 살아가고 있다.
인간은 환경에 길들여져 있다. 이미 적응된 환경은 이제 의미가 없다. 우리들은 스스로 자연환경의 변화에는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멀리 떨어져 있고 어느 정도 극복하였다고 자신하고 있다.
하지만 문화적 환경에서는 그 어느 시대보다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이 시대는 새로운 문화적 환경의 후진종족인 디지털원시인들이 존재하고 있다.
대부분의 의학 수련과정은 질병을 일으키는 즉각적인 기전을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것이 소위 근접원인이다.
이런 관점에서 고혈압의 근접원인은 말초혈관의 저항성의 변화나 신장질환에 의한 레닌-안지오텐신계의 이상이다. 낫 적혈구 빈혈은 헤모글로빈유전자의 돌연변이에 의해서 생긴다. 충수돌기염은 위장관계 게실에 생긴 염증이다. 뇌성마비는 난산 시 출생과정에서 질식에 의해서 생길 수 있다. 우울증 치료에 사용되는 세로토닌 재흡수 차단제나 세균성폐렴에 사용되는 항생제와 막힌 심장관상동맥의 혈류를 개선하기 위한 혈관성형 스텐트수술 그리고 제왕절개술 등 대부분의 의학적 치료법은 질병의 직접적 원인을 이해함으로써 개발된다.
그러나 이 모든 경우에 보다 더 광범위한 차원이 존재한다. 근접원인 설명으로 어떤 증상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밝히고 중재를 위한 논리적 근거를 알게 되지만, 또 다른 차원의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어떤 증상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인지, 어떤 사람은 왜 질병 발생위험도가 높은지,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는 왜 쉬게 적응하지 못하는지, 염증이 생기는 충수돌기가 왜 사람에는 있는 것인지, 우리가 태어난 날이 왜 일생에서 가장 위험한 날인지와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이와 같은 진화적 차원에서의 질문을 통해서 건강과 짐병의 궁극원인을 이해하려고 한다. 인류의 조상은 초식을 했기 때문에 섬유소가 풍부한음식을 소화하기 위해 커다란 맹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더 이상 그렇게 큰 소화기관이 필요하지 않고 충수돌기가 퇴화의 흔적으로 남아 염증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한의사를 비롯한 의료인들이 이처럼 궁극적인 거시원인을 이해하면 자신이 돌보는 환자를 더 잘 이해하게 되고, 틀림없이 그 환자의 치료를 개선할 수 있게 된다. 진화적 시각을 가지고 있으면 많은 경우에 어떤 예방책이 더 유리하고 어떤 치료법이 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는지 그 이유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된다.
송사리 목에 속하는 구피Guppy라는 작은 물고기가 있는데 몸집이 암컷은 약 6cm,수컷은 약 3cm 정도다. 이 물고기 중에는 용감한 녀석이 있는 반면 겁 많은 녀석도 있다.
용감한 녀석과 겁 많은 녀석 중 누가 더 생존에 유리할지를 알아본 실험결과를 보자. 조그마한 자극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구피Guppy와 보통의 자극에는 아주 대범하게 대응하는 구피Guppy를 나누어서 따로 어항에 넣은 다음 각 어항에 구피Guppy를 잡아먹는 배스bass라는 물고기를 넣었다. 그리고 어느 쪽 어항의 구피 Guppy가 더 많이 살아남는지를 알아보았다. 의외로 용감한 구피Guppy가 더 많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겁 많은 구피Guppy가 잡아먹히지 않고 오래도록 살아남은 것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하다. 겁 많은 구피Guppy는 배스의 작은 움직임에도 아주 예민하게 반응하며 이리저리 피해 다녔지만, 겁 없는 구피Guppy는 배스의 작은 움직임에는 반응하지 않고 용감하게 계속 먹이활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용감한 구피Guppy는 배스bass의 사냥감이 되었다.
이 실험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불안이란 감정은 위험을 피하는 데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한다.’ 그것이 오랜 시간 동안 지구라는 행성의 생명체들에게 적용되어온 것이다.
만약 토끼가 아주 용감해서 주위 경계를 게을리 하며 늑대가 나타나는지 살피지 않고 오로지 풀만 뜯는 데 집중했다면 쉽게 늑대의 먹잇감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늑대의 출현을 겁내지 않았다면 살아남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겁 많은 토끼를 볼 수 있는 이유는 겁 없는 토끼는 멸종했고 불안을 끼는 유전자를 가진 토끼가 오래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살아남은 존재는 모두 이유가 있다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우리가 잘 알지 못하고 있는 중요한 비밀을 알려준다.
이제 사람들이 왜 불안해하는지 감이 잡혔을 것이다. 바로 '불안 유전자’가 있는 사람이 생존하기에 훨씬 유리했기 때문이다. 불안을 감지하는 능력이 세상에 적응하고 살아남는 데 꼭 필요하기 때문에 지금도 불안 유전자가 계속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살아남은 사람들은 불안 유전자를 가진, 즉 겁이 많은 사람들의 후손이다.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불안 인자는 열등한 자들에게나 있는 가치 없고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생존력이 강한 자들 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무기라는 점이다. 위험을 느끼고 조심하고 경계하는 불안 유전자 때문에 우리는 생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것, 위험 상황에 대처해서 조심하는 사람을 겁쟁이 라고 하지 는 않는다.
한 가지, 불안과 걱정은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불안 인자는 위험을 감지하고 대비하게 하지만 걱정은 자신감을 약화시킬 뿐이다. 걱정하지 말고, 불안을 느끼면 왜 불안한 지, 불안을 줄이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우주달력의 마지막날 마지막1시간 사이에 인류가 진화함 기록으로 남겨진 역사는 마지막 14초의 이야기
우주달력의 마지막날 마지막 1시간에 인류가 진화함 12월 31일 오후 9시 45분 350만년전-직립보행 4만세대에 걸쳐 방랑생활-12월 31일 오후11시에 일어난일 우주달력 12월31일 11시 59분 3만년전 에야 동굴에 벽화를 1만년전 인류의 생활방식에 혁명 화경을 다스리는 방법을 배움 야생동식물을 길들이고 땅을 경작하고 정착생활을함 자정을 14초 남기고 즉 6천년전에 쓰기가 발명됨 모세 자정7초전 석가모니는 자정6초전 예수는 자정5초전 마호매트는 자정3초전 신대륙발견은 2초전 마지막1초전에야 과학을 통해 자연의 법칙을 밝히기 시작함
여러가지로 사회생활의 제약이 따릅니다. 미래사회의 직장에서는 우수한 유전자를 보고 직원들을 뽑거든요. 유전자검사하나도 우수한지 부적합하지를 판단하는거지요 주인공은 부모님의 사랑관계로 태어났고..
태어나자마자 유전자검사를 해보니
일찍 죽을 확률이 아주 높고
범죄자가 될가망성도 높고..
암튼 안좋은 검사가 나왔어요.
일명 부적합자죠..
이 영화의 주인공은 우주비행사가 꿈이었어요.
그러나 우주비행사가 되려면 유전자검사를 해야 하는데 주인공은 부적합자로
우주비행사가 되는건 꿈도 못꿀일이지요... 그리고 아들이 부적합자로 힘들어하는걸 보신 부모님은
둘째는 다른 사람들처럼 우수한 유전자를 사서
우성유전자를 가진 자식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려서는 수영시합에서 늘 우성유전자를 가진 동생이 부적합자인 형을 이겼지요.
우성유전자를 가진 동생은 부적합자인 형에게
우성유전자인 자기를 이길수없다고 막 얘기하고 했엇지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형은 우주비행사가 되기 위하여
자신의 유전자검사를 조작하는 등 최선을 다합니다.
이 사실을 동생이 알게되면서
다시 둘은 수영시합을하게 됩니다.
형이 바다에서 수영시합을 하자고 제안 했습니다.
부적합자인 형이 이기게되면 우주비행사의 꿈을 이루는데 방해를 말라면서 동생은 형에게 자기는 우성인자라고..
자기를 이길수없을거라고 호언장담을 했죠... 그렇게 시합이 시작되었습니다.. 근데 부적합자인 형이 이기고 동생은 허우적거리게 되고
형의 도움을 받아 해변으로 올라옵니다. 그래서 형이 동생을 구해서 육지로 왔지요 동생은 있을수없는 일이라고..어찌 우성인자인 자기를 이길수가 있냐고.. 그때 형이 이런말을 했지요..
"난 되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아서 널 이기는거야"
이말은 베르나르베르베르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
그레이하운드와 인간의 달리기경주에서도 일맥상통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 이 내용입니다.
그레이하운드와 사람이 장거리 경주를 하면 언제나 개가 먼저 들어온다. 몸무게에 비례해서 생각해 보면 그레이하운드의 근력은 사람 보다 나을게 없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그레이하운드와 사람이 똑같은 속도로 달려야 마땅할것이다. 그러나 매번 이기는 쪽은 그레이하운드이다 그까닭은 무엇일까?..
사람은
달리면서 줄곧 결승선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헤아린다. 그는 도달해야 할 목표를 염두에 두고 달린다. 그에 반해 그레이하운드는
아무생각없이 그냥 달린다.
목표를 가늠하고, 또 목표가 얼마나 남았느냐에 따라
의욕이 부침하는 과정에서 사람은 엄청난 에너지를 낭비한다.
장거리경주에서는 도달해야 하는 목표를 생각하지 말고 오로지 앞으로 나아갈 생각만 해야 한다. 자꾸 나아가면서 그때그때에 맞게 행로를 수정하면 된다. 그렇게 나아가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목표가 도달되고 경우에 따라선 목표의 초과달성도 가능해 진다.
1월1일 빅뱅 3월 15일 우리은하는 110억년전 탄생 8월31일 태양계 생성 45억년전 지구탄생시 달과의 거리는 10배나 가까웠다.-조석간만의 차는 1000배에 달함, 조석마찰 9월21일 35억년전 생명이 태동 생명의 기원은 과학이 풀지 못한 최대의 수수깨끼 11월 9일경 생명은 숨쉬고 움직이고 먹고 환경에 반응하고 있었다. 미생물의 유성생식 12월 17일경 5억4천만년전 에는 바다속에서 생명이 폭발 틱티알릭 12월 마지막주에 진화 숲 공룡 곤충 12월 28일에 최초의 꽃이 피다 12월 30일 오전 6시 24분 소행성충돌 1억년이상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멸망 우주달력의 마지막날 마지막1시간 사이에 인류가 진화함 기록으로 남겨진 역사는 마지막 14초의 이야기-우리들의 이야기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맞아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대통령 후보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경제발전, 국가 안보, 군의 통수권, 강력한 리더쉽, 선거에서 이길 확률이 가장 높은 후보 들을 제치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이라고 답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공감을 대통령의 자질로 끌어올린 여론에 별다른 반응을 보인 정치학자들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듯 공감 확대는 내가 나 자신에 관해 알아낸 것이 진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너에게서 나의 일부를 확인하고 너는 내 안에서 너의 일부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찬궉 번의 이론이다. 공감의 확장은 갈수록 복잡해지는 사회적 교류와 인프라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접착제다. 공감이 없는 사회생활이나 사회적 조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자아도취에 빠진 사람, 반사회적 이상성격자, 자폐적 불구자들로 가득 찬 사회인, 자폐증의 일종으로 공감을 보이지 않는, 공감을 상실한 의사소통적 장애가 만연된 사회를 생각할 수 있는가? 사회는 사교적이어야 하고 사교적이 되려면 공감이 확대되어야 한다. 즉, 당신이 어떤 관계에 있다면 그 관계는 당신의 일부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공감을 만들 수 있는가? 공감이란 가르치거나 훈계한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상대나 집단에 공감적 소통, 공감해 줌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다. 공감의 도구는 역시 언어가 대표적이며, 행동, 특히 억양, 목소리 톤, 언어의 리듬, 몸짓, 태도, 문자, 글, 정서적 반응 등 수없이 많다. 또한 전 세계적 네트워크화, 경제의 상호의존성, 국제화되는 라이프스타일, 다양한 사람과 문화의 접촉 등이 공감인식의 보편화에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공동체와 자신이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인 사회적 존재가 될 수 있는 핵심적 요소들이며 그 범위를 빠르게 세계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교류한다는 것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 다른 사람을 통해, 자신을 위해 있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내면의 주권을 주장할 수 있는 영역은 없다. 인간은 전적으로 항상 주변 속에 있으면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다른 사람의 눈을 보고,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본다.
실제적 경험이라는 개념은 공감의 시대에 튼튼한 뼈대를 제공해준다. 그러므로 나는 참여한다. 그러므로 나는 공감(존재)한다 로 대전환하면서 공감은 인간 역사의 중심에 놓인다. 공감은 언제나 변함없이 그 중심에 있었지만 사회는 이를 한 번도 인식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았다. 우리가 참여의 세계에 살고 있고 몸의 경험이 다른 사람과의 끊임없는 교류의 경험이라면, 공감은 서로의 삶에 깊이 들어갈 수 있는 수단이 된다. 공감은 또한 우리 자신의 공동의 현실을 만드는 수단이다. 따라서 우리는 현실에 뛰어 들어 공감적 교제를 만들어 가야 한다. 인간과 살아있는 모든 존재에게 좀더 깊이 공감할수록 참여의 정도가 강해지고 넓어지며 그럴수록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실의 영역은 더 풍요로워지고 더 보편적이 된다. 얼마나 마음을 열고 참여하느냐에 따라 현실을 이해하는 폭도 달라진다.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기 위해 현실에 참여하여 실제적으로 접근하다 보면 현실에 대한 자각, 진리를 구성하는 요소, 자유와 평등을 정의하는 법을 포함하여 인간의 인식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참이라는 말은 가상과 대비되는 것으로서 일반적으로 현실이라는 말과 통한다. 진리에 도달한다는 말은 실재(리얼리티)에 닿는다는 말과 동의어다. 우리는 종종 사실과 허구를 구분해서 사용하지만 사실은 현실 속에 존재한다. 현실은 공유된 경험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는 객관적이고 자율적인 현상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 공유하는 공통의 이해에 관한 설명이다. 궁극적인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은 거대한 도식 속에서 모든 관계가 잘 들어맞는 방법을 통째로 알려고 한다는 것이고, 보다 더 큰 그림에 우리가 속해 있는 방법과 속해야 하는 이유를 찾는 것이다. 즉 진리는 자율적 사실이 아니라 만물이 서로 관계를 맺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다. 진리란 주관적이거나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너와 내가 공통의 경험적 기반을 함께 만들기 위해 모이는 틈새 영역에 존재하는 이해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취약함과 고통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의 취약함과 고통에 공감할 수 없다. 모든 감정적 요소를 가두어 놓은 상태에선 실제로 자유로울 수 없다. 스스로 영혼을 가두고 본성을 묶어 놓은 상태에선 세상에 참여하여 의미 있는 표현을 할 수 없다. 확장된 공감은 사람들을 진정으로 평등한 위치에 올려놓는 유일한 인간적 표현이다. 다른 사람과 공감할 때 구별은 사라지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의 고군분투를 자신의 것처럼 동일시하는 바로 그런 행동이 평등 의식의 궁극적 표현이다. 한 사람의 존재가 다른 사람과 감정적으로 같은 지평위에 있지 않으면 진정한 공감은 불가능하다. 신분에서 상대방에게 우월하거나 열등하다고 느끼고 그래서 다르고 낯설다고 생각하면, 그들의 기쁨이나 슬픔을 자신의 것처럼 실감하기 어렵다. 상대방에게 동정을 느끼거나 안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사람과 진정으로 공감하려면 그들이 나같다는 느낌과 반응이 있어야 한다. 공감을 하는 순간에는 네 것과 내 것이 없고, 오직 나와 너만 있을 뿐이다. 공감은 같은 영혼이라는 공동 의식이며, 그것은 사회적 신분의 구별을 초월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요즘 같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는 공감을 확대하는 것이 평등을 보장하는 수단이다. 상대방에게 나 자신을 인식하고 내 안에서 상대방을 인식하는 능력이야말로 깊이 있는 민주적 경험이기 때문이다.
공감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존재를 긍정한다는 것이고, 그들의 인생을 예찬한다는 것이다. 공감의 순간은 살면서 누릴 수 있는 경험 가운데 가장 밀도가 높고 높은 생생한 경험이다. 실체화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공감적 행위에서는 신체적 한계를 초월하여 잠깐이나마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주변의 생활에 연결시켜 주는 하나의 비신체적 수준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누구나 살아 있다는 것을 더욱 실감한다. 공감의식이 성숙할수록 삶의 참여도는 더 막역하고 보편적이 되고 경험의 현실감은 더 깊어진다. 공감할 줄 몰라 경험을 제한받는 사람의 인생은 그만큼 충만하지 못하다. 인생을 구가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단단히 묶여 산다는 것이다. 격리된 혼자만의 삶은 그만큼 부족한 삶일 수밖에 없다. 공감은 다른 방식으로 죽음을 초월한다. 삶에서 도망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최대화하려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죽음에 맞서는 투쟁에 공감한다. 타자의 연약함과 취약함을 보고 그들을 지지하고 위로하고 그들에게 다가가 도움의 손길을 뻗는 것은 그들의 살아있는 존재를 긍정하는 것이다. 유대감을 공유할 때 살아 있다는 느낌은 강렬해진다. 공감하며 받아들일 때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성숙한 공감은 살아있고 그래서 죽을 수밖에 없는 유일한 존재만이 겪을 수 있는 현상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이렇게 썼다. "죽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칭송하는 자, 삶을 넓힌다."
공감의식은 존재와 당위의 간극을 극복한다. 공감적 행동은 실체적이고 경외감으로 차 있으며 이성에 호소한다. 실제의 모습과 그래야 하는 모습 사이에 어떤 구분도 없다. 이 둘은 하나이고 같은 것이다. 다른 사람의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나의 모습인 것처럼 여기고, 그들의 노력을 격려하고 지지해줌으로써 내 삶도 진지해지고 충만해지는 것이다. 그때 자아는 넘치고 확장되어 보다 넓고 포괄적인 동정적 참여 사회로 들어가기에 공감은 도덕적 영역을 넓힌다. 오바마는 특히 공감을 자신의 정치철학의 핵심으로 삼고 대외정책으로부터 대법관 임명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정치적 결정을 내릴 때마다 공감을 강조했다. 대화를 하려면 어떤 식이든 자신의 입장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몰두할수록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되고 나의 정체성도 더욱 확실해진다. 그때 대화는 서로의 감정을 교환하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대화를 통해 우리는 관계를 만들고 이런 관계가 우리만의 독특한 개인적 스토리와 정체성을 형성한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이야기는 궁극적으로 삶을 경험하는 방식을 놓고 서로의 느낌을 나누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관계를 맺으며 그 관계는 생존의 핵심이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잉태된다. 태어나면서 관계를 시작하고,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관계 속에서 죽음을 맞는다. 그렇게 인간은 속속들이 사회적 동물이다. 세계는 좁아졌고, 사람들은 사이버공간에서 얼굴을 맞대다시피 살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거리는 의미 없는 개념이 되어가고 있다. 사이버주소가 지리적 주소를 무색하게 만든다. 시간은 거의 동시적으로 압축되고, 멀티태스킹이 표준이 되고, 시간은 그 자체로 최고의 상품이 되었다. 전 세계적 다중들의 인터넷을 통한 유사 사회적 관계는 공감의 공유를 근간으로 한다. 이제 보편적 광장이 된 세계에서 각양각색의 다른 사람들이 만나 공간을 확장할 기회는 더 많아졌다. 인류의 역사를 고찰할 때, 생존의 가치에서 물질적 가치로, 그리고 삶의 질로 가치가 변화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경제적 안정을 위해 지구의 엄청난 양의 에너지와 자원을 착취했고, 그 여파로 지구의 위기에 대한 공감의식이 증대했다. 경제적 형평이 좋아지고 안정감을 얻게 되면 사람들은 같은 인간을 보다 신뢰하고 자연에 대한 관심도 커진다. 불행한 사실이지만 지구적 공감의식이 갑자기 확대되는 현상은 지구 곳곳을 황무지로 만들고 많은 인류를 더욱 가난하게 빠뜨린 결과다. 이러한 물결을 타고 탈 물질주의 가치를 더욱 전파하여 더 늦기 전에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지구 공동체를 보다 지속가능하고 안정적인 미래로 향하도록 미리 손을 써야 한다는 점이다.
디아스포라 소수 집단인 동성애자, 장애자, 소수민족, 피부색, 여성 등 사회적 약자와 디아스포라 소수 집단에 대한 전통적인 차별의 경계가 서서히 물러가고 코스모폴리탄적인 감성이 전명에 등장하고 있으며, 공감 의식이 확대되고 있으며, 이런 공감의 영역은 다른 생물종에까지 넓혀지고 있다. 인간의 편의를 위한 자원의 착취로 인해 발생되는 지구생명체의 멸종위기는 동물보호와 환경보호를 넘어 식물과 곤충 등 지구와 함께해온 모든 생명체에 대한 관심과 공감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살아있는 모든 존재에 대한 공감의 확장은 인류에게 의미 있는 획기적 사건이다. 첨단 사회연결망이론을 연구하는 IT전문가들은 페이스북, 마이 스페이스, 위키디피아와 같은 교육적 네트워크, 리눅스 같은 업무용 네트워크 등 사회적 네트워크는 소위 좁은 세상 이론을 과감히 실현시키고 있다. 좁은 세상 이론은 지구상에는 서로 모르는 두 사람을 겨우 여섯 단계만 떨어져 있을 뿐이라고 가정한다.
행복신드롬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보자. 결과는 소득격차가 작을수록 행복지수는 높아진다는 것이다. 미국의 소득격차는 OECD 30개 국가 중 27위다. 유럽 국가의 평균소득보다 29% 더 많이 버는 미국인들이 행복지수가 낮게 나오는 이유는 미국이 개인적 가치를 중시하는 아메리칸 드림에 기반하고 있는데 유러피언드림은 삶의 가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인들 소득의 상당 부분은 공공서비스를 위한 세금으로 나간다. 이러한 공공서비스는 사회 전체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 미국이 시장모델을 강조하는 데 반해 유럽은 사회적 모델을 강조하기 때문에 빈부 격차는 줄어든다. 결국 세금을 통해 부를 재분배하고 공공서비스에 투입하여 사회 전체에 혜택을 주면 사람들 사이의 신분격차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 이 결과를 보면 부의 지향은 어느 한계에 다다르면 오히려 행복지수는 떨어진다. 부의 격차가 심화되는 사회는 행복지수도 낮을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나 공동체 의식이나 공감 의식을 확장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가진 자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고, 갖지 못한 자의 환경을 개선하여 함께 안락의 문에 도달할 수 있을까? 우리가 공감 의식을 최대화하고 지속 가능한 글로벌 사회를 만들기 위한 재생 가능한 에너지 체계와 에너지 혁명을 상상하는 일이다. 2차 산업혁명이 지나고 우리는 3차 산업혁명으로 접어들었다. 분산 에너지는 3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다. 분산 에너지는 우리의 앞마당에서 찾을 수 있는 에너지다. 햇볕은 온 세상을 두루 비춘다. 바람은 매일 지국 곳곳에서 분다. 우리는 쉬지 않고 쓰레기를 만들어 낸다. 시골에 사는 사람은 농업과 임업 폐기물을 이용할 수 있다. 해안 지역에 사는 사람은 밀물에서 생산되는 에너지가 있다. 이들 에너지를 우리는 분산 에너지라 부른다. 이러한 에너지는 모두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서 어디서나 다양한 규모로 발견된다. IT기술은 세계의 파워그리드의 형태를 바꾸어 놓고 있다. 기업들은 분산자본주의를 위한 시장과 인프라의 기반을 닦기 시작했다. 태양, 바람, 물, 지열, 파도, 바이오메스 등의 재생 가능한 에너지는 3차 산업혁명을 떠받치는 기둥이다. 전 세계 에너지의 40%를 소비하는 빌딩은 앞으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발전소로서의 개념으로 변화할 것이다. 가장 풍부한 에너지는 수소다. 물을 전기분해하여 에너지를 만들더라도 환경에 무해한 수소와 산소로 분해될 뿐이다. 캐나다 금광 회사 골드코프의 리눅스에 기반한 오픈 소스 공유 네트워크의 예를 들면 정보의 공유를 통한 금광 채굴지 공모는 사용자생산이라는 모델을 만들어 냈다. 협업이라는 대표적인 공감의 사례다. 위키디피아도 마찬가지다. 무료 오픈 소스 온라인 백과시전인 위키디피아는 정식 직원이 다섯 명 뿐이지만 그 내용은 280만 개의 항목을 자랑한다. 글을 올리는 사람은 모두 공짜로 내용을 제공한다. 놀라운 사실은 전문가들에 의해 집필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비교해 일반인들이 올리는 정보인 위키디피아의 오류는 브리태니커에 비해 약간만 높을 뿐이다.
이러한 공감개념의 확장은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게임이 빛을 잃고 상호 윈윈 시나리오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간 인류의 경제적 역사는 내 것과 네 것이라는 간단한 공식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인간의 개인적 소유욕은 국가 단위에도 예외는 없었다. 광신에 가까운 사적 재산의 소유에 대한 집착은 내 것과 네 것이라는 경계를 확실히 하고 특권층과 소외 계층 사이에 새로운 사회적 장벽을 만들고, 담을 쌓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제 사유재산의 이론적 근거는 다시 한 번 우리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의식을 바꾸고 있는 새로운 기술의 성과로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인터넷과 사회적관계망이라는 기술로 인간의 중추신경계는 지구의 다른 인간과의 동시 접촉을 가속화하면서 우리를 글로벌 공간과 시간의 동시적 시장으로 이끌고 있다. 사유재산에 대한 애착이 줄어든다는 것은 글로벌 상업의 미래와 집단적 영혼 모두를 위해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새로운 정보와 소통의 기술은 선형적이 아니라 인공 두뇌적이다. 이것을 사용하는 시간동안 시장 교환의 시작과 정지 매커니즘은 당사자가 시간을 매개로 지속적인 상업적 관계를 수립한다는 개념으로 바뀐다. 즉 미국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40%가 소유의 대상에서 임대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즉, 소유에서 서비스로 우리의 생활과 경제와 개인의 정체성이 중심이 된 시대에 전통적인 재산관계의 개념은 극적인 변화를 시사한다. 이제 충만한 인생에서 배제되지 않을 권리, 즉 접속의 권리는 가장 중요한 재산가치가 되고 있다. 새로운 시대의 재산은 개인이 충만한 삶을 꾸려 갈 수 있도록 해 줄 탄탄한 관계에 참여할 권리가 되어야 한다. 이렇듯 3차 산업혁명은 보다 통합적이고, 복합적인 인간 조직에서 개인화를 재촉하는 한편,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생활을 관리하는 위계적 형태는 수직적에서 급속히 수평적으로 평준화되고 있다. 인터넷과 사회적연결망은 문자 그대로 수십억의 사람들이 동시에 실시간으로 접속하고 협력하고 가치를 함께 창출할 수 있는 거대한 글로벌 광장으로 바뀌고 있다. 서열을 하찮게 여기고, 네트워킹 방식으로 사람과 세상과 관계를 맺고, 협력이 체질화되어 있고, 자율과 배척보다는 접속과 포함에 관심이 있고, 인간의 다양성에 감수성이 강한 N세대는 구세대에 비해 역사상 가장 공감적인 세대가 될 확률이 높다. 분산적이고, 협동적이고, 비위계적인 사회가 곧 공감적인 사회이다. 공감적인 사람은 직장 생활의 모든 사회적 효용성에 반드시 필요한 핵심요소다. 공감적인 사람은 고객과 하급자가 원하는 것을 전파하고 충족시키는 능력이 남다르다. 그들은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 듣고, 사람들이 진정으로 관심을 갖는 것을 찾아내고, 상대방의 의도에 정확히 반응한다. 따라서 공감이란 가장 중요한 요소다.
개인의 복지를 강조하던 분위기가 사회의 복지를 강조하는 쪽으로 바뀌는 것의 대표적 현상은 오바마를 미국 대통령으로 뽑은 미국을 보아도 확실히 실감할 수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경제적 국가 부의 총량인 GDP라는 용어대신 지속가능한 경제복지지수(ISEW), 참진보지표(GPI). 사회건강지수(HDI), 경제적 웰빙지수(IEWE) 등이 대표적으로 인용된다. 삶의 질을 중시하는 사회를 만들려면 두 가지 차원에서 협력적 참여가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는 민간 차원의 공동체 참여이고, 또 하나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복지를 증진시킬 수 있도록 개인의 세금을 공적 창의력과 서비스를 추진하는 데 투입하겠다는 의지이다. 시민사회에서 사회적 자본을 부활시키고 공공부문에서 공적자본을 활성화시키는 것은 모든 나라에서 질적인 삶의 꿈을 성취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다. 삶의 질을 강조하는 사회는 지속 가능한 사회를 창조하기 위한 집단적 참여의식과 함께 개인의 경제적 기회를 강조하기 때문에 사회적 모델과 시장 모델을 동시에 추진시킨다. 경쟁보다 협동이 대세를 이루고 접속권이 재산권만큼이나 중요해지고 삶의 질이 개인의 재정적 성공에 대한 갈망만큼이나 두드러지게 생각되는 분산 자본주의 경제가 자리를 잡으면 공감적 감수성도 번성할 여지를 마련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탐욕, 사리사욕, 실익을 인간 경험의 중심에 놓는 인간 본성의 개념과 배타성의 경계, 그리고 위계질서는 더 이상 공감적 감수성을 위축시키지 못할 것이다.
공감의 뿌리는 세계 시민을 만들어내는 수업이다. 또한 공감적 참여는 철저히 협동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공감 본성을 끌어내려는 협동적인 학습 모델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 교육시스템은 철저하게 경쟁을 통해 지식을 습득시키는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새로운 공감시대의 지식은 사람들을 구분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공유하는 경험의 장이어야 한다. 그 학습 모델의 특징은 훈련을 통해 사람들의 두뇌에 전적인 지식을 주입하고 답을 찾아가는 능력의 배양이 아니라 협력하고 비판하며 다수가 토론에 참여하여 답을 추론해내는 과정을 가리킨다. 집단의 모든 구성원들이 서로를 존중해주고 상대방의 관점과 견해에 귀를 기울이고, 기탄없이 비판하고 서로의 지식을 공유하고, 전체 집단 앞에서 자신의 견해를 마음 놓고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부처님 가르침의 원뜻을 올바로 이해하고자 할 때 가장 도움이 되는 학문은 무엇일까. 철학, 종교학, 물리학, 사회학, 심리학 등 많은 학문들이 있지만 가장 유용한 학문은 생물학이다. 그 중에서도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과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원리를 갈파한 찰스 다윈(1809~1882)의 진화생물학이다.
부처님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삶과 고통에 대해서 깊이 통찰한 분이셨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불교 용어로 중생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연구하는 불교학은 중생학이고 생물학이다.
싯다르타 태자는 열두 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 정반왕과 함께 농경제를 참관했다. 태자는 뜨거운 햇볕에 온몸을 드러내고 흙먼지로 뒤범벅이 되어 일하는 깡마른 농부의 모습, 쟁기질 할 때마다 흙덩이 사이로 벌레들이 꿈틀대면 온갖 새들이 날아와 다투며 벌레를 쪼아먹는 모습을 보고서 마치 자신의 가족이나 친척이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고 있는 것처럼 큰 슬픔을 느꼈으며, 모든 생명체에 대한 크나큰 자애(慈愛)와 연민의 마음에서 다음과 같이 외쳤다고 한다.
“아! 아!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크나큰 고통을 받는구나. 그것은 출생과 늙음, 그리고 병듦과 죽음이다. 이와 더불어 갖가지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지만 거기서 벗어나질 못하는구나! 어째서 이런 모든 고통들을 버리려 하지 않는가? 어째서 이런 모든 고통을 넘어선 적멸의 지혜를 추구하지 않는가? 어째서 이런 모든 고통의 원인인 생로병사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가?” <불본행집경>
적자생존·약육강식의 원리
고성제·집성제에 대한 증거
그 후 17년의 세월이 지나 29세가 되었을 때 싯다르타 태자는 출가를 결행한다. 그리고 6년의 수행 끝에 드디어 깨달음을 얻는다. 부처님이 되셨던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태어났지만 먹고 먹히면서 살아가다가 늙고 병들어 죽어야만 하는 모든 생명체의 고통(苦)을 관찰하신 후, 그런 고통의 원인(集)을 발견하셨으며, 그런 고통에서 벗어난 경지(滅)를 체득하셨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道)을 가르치셨다.
이를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란 뜻에서 사성제(四聖諦)라고 부른다. “생명 세계의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괴로움”이라는 고성제, “모든 괴로움의 근본 원인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 속 번뇌에 있다”는 집성제, ‘그런 모든 괴로움이 사라진 경지인 열반’을 의미하는 멸성제, ‘괴로움이 사라진 열반에 이르는 수행방법인 팔정도’인 도성제다.
그런데 찰스 다윈이 갈파한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원리와 목격담은 사성제 가운데 고성제와 집성제에 대한 뚜렷한 증거가 된다. 최상위 포식자인 현대의 인간들은 실감하지 못하는 ‘생명의 진실’이 있다. 모든 생명체는 두 가지 고통에 시달린다.
하나는 ‘굶주림의 고통’이고 다른 하나는 ‘살해의 공포’다. 참새든, 늑대든, 멧돼지든, 물고기든 그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먹을 것을 찾아서 헤매야 한다. ‘굶주림의 고통’이다. 또, 나보다 강한 놈이 항상 나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 내 몸이 그의 먹이가 되기 때문이다. 먹히지 않기 위해서는 약자일수록 사방을 기민하게 살피면서 살아가야 한다. ‘살해의 공포’다. “약한 놈은 고기가 되고, 강한 놈은 먹는다.” 냉혹한 약육강식의 법칙이다.
배고픔의 고통과 살해의 공포. 고성제의 괴로움이다. 먹히지 않기 위한 분노의 투쟁과 허기를 채우기 위한 탐욕. 집성제의 번뇌들이다. 생명의 참모습으로 찰스 다윈이 생생하게 목격한 고(苦)와 집(集)의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