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가르침의 원뜻을 올바로 이해하고자 할 때 가장 도움이 되는 학문은 무엇일까. 철학, 종교학, 물리학, 사회학, 심리학 등 많은 학문들이 있지만 가장 유용한 학문은 생물학이다. 그 중에서도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과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원리를 갈파한 찰스 다윈(1809~1882)의 진화생물학이다.

부처님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삶과 고통에 대해서 깊이 통찰한 분이셨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불교 용어로 중생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연구하는 불교학은 중생학이고 생물학이다.

싯다르타 태자는 열두 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 정반왕과 함께 농경제를 참관했다. 태자는 뜨거운 햇볕에 온몸을 드러내고 흙먼지로 뒤범벅이 되어 일하는 깡마른 농부의 모습, 쟁기질 할 때마다 흙덩이 사이로 벌레들이 꿈틀대면 온갖 새들이 날아와 다투며 벌레를 쪼아먹는 모습을 보고서 마치 자신의 가족이나 친척이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고 있는 것처럼 큰 슬픔을 느꼈으며, 모든 생명체에 대한 크나큰 자애(慈愛)와 연민의 마음에서 다음과 같이 외쳤다고 한다.

“아! 아!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크나큰 고통을 받는구나. 그것은 출생과 늙음, 그리고 병듦과 죽음이다. 이와 더불어 갖가지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지만 거기서 벗어나질 못하는구나! 어째서 이런 모든 고통들을 버리려 하지 않는가? 어째서 이런 모든 고통을 넘어선 적멸의 지혜를 추구하지 않는가? 어째서 이런 모든 고통의 원인인 생로병사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가?” <불본행집경>

적자생존·약육강식의 원리

고성제·집성제에 대한 증거

그 후 17년의 세월이 지나 29세가 되었을 때 싯다르타 태자는 출가를 결행한다. 그리고 6년의 수행 끝에 드디어 깨달음을 얻는다. 부처님이 되셨던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태어났지만 먹고 먹히면서 살아가다가 늙고 병들어 죽어야만 하는 모든 생명체의 고통(苦)을 관찰하신 후, 그런 고통의 원인(集)을 발견하셨으며, 그런 고통에서 벗어난 경지(滅)를 체득하셨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道)을 가르치셨다.

이를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란 뜻에서 사성제(四聖諦)라고 부른다. “생명 세계의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괴로움”이라는 고성제, “모든 괴로움의 근본 원인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 속 번뇌에 있다”는 집성제, ‘그런 모든 괴로움이 사라진 경지인 열반’을 의미하는 멸성제, ‘괴로움이 사라진 열반에 이르는 수행방법인 팔정도’인 도성제다.

그런데 찰스 다윈이 갈파한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원리와 목격담은 사성제 가운데 고성제와 집성제에 대한 뚜렷한 증거가 된다. 최상위 포식자인 현대의 인간들은 실감하지 못하는 ‘생명의 진실’이 있다. 모든 생명체는 두 가지 고통에 시달린다.

하나는 ‘굶주림의 고통’이고 다른 하나는 ‘살해의 공포’다. 참새든, 늑대든, 멧돼지든, 물고기든 그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먹을 것을 찾아서 헤매야 한다. ‘굶주림의 고통’이다. 또, 나보다 강한 놈이 항상 나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 내 몸이 그의 먹이가 되기 때문이다. 먹히지 않기 위해서는 약자일수록 사방을 기민하게 살피면서 살아가야 한다. ‘살해의 공포’다. “약한 놈은 고기가 되고, 강한 놈은 먹는다.” 냉혹한 약육강식의 법칙이다.

배고픔의 고통과 살해의 공포. 고성제의 괴로움이다. 먹히지 않기 위한 분노의 투쟁과 허기를 채우기 위한 탐욕. 집성제의 번뇌들이다. 생명의 참모습으로 찰스 다윈이 생생하게 목격한 고(苦)와 집(集)의 진리다.

[불교신문 2788호/ 2월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