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질서의 세계에 살고 있다.
그 질서의 세계는 혼돈으로 둘러싸여있다.
우리는 이미 알려진 영역을 차지하고 있고, 그 영역은 미지의 영역으로 둘러싸여있다.
혼돈과 질서라는 두 세계의 경계에 서 있을 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물질적인 세계가 아니라 혼돈과 질서, 음과 양으로 구성된 의미의 세계에 적응되어 있다.
생명체가 살아가는 환경과 조건이 혼돈과 질서에 의해 끊임없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다른 두 세계의 경계에 서 있으려면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한발은 질서와 안전의 세계에,다른 발은가능성과 성장, 모험의 세계에 디디고서 있어야 한다.
어느날 갑자기 삶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때, 혹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무엇인가에 몰입할 때, 그 순간 바로 혼돈과 질서의 경계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이다.
그때의 느낌은 신경학과 진화론에 근거를 둔 본능적 자아의 반응이고, 가장 깊은 내면의 목소리다.
이런 느낌은 우리가 지금 발 딛고 있는 개인적 ·사회적 · 자연적 공간의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거주할 수 있으면서 생산적인 공간을 확장히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바로 그런 곳에 존재해야 한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문제다.
좋은 음악을 들을 때를 생각해 보라.

좋은 음악은 어서 들어 본듯한 익숙한 음과 처음 들어 보는 생소한 음이 서로 조화롭게 중첩되며 음악 전체의 의미를 우리의 깊은 내면에서 솟아오르게 한다.
삶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일은 혼돈과 질서의 상호 작용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 둘은 삶의 근본적인 구성 요소다.

우리가 어디에서 태어났든 알아보고 이용하고 예측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 반면, 전혀 알지 못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우리가 누구든. 예컨대 아프리카 남서부 칼라하리 사막의 추장이든, 뉴욕 월스트리트 은행가이든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이 있고, 그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이런 이유에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벗어날 수 없는 법칙 속에서 살아가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결국 혼돈과 질서라는 현실의 근본적인 조건은 인간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체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대부분 익숙하고 통제할 수 있는 곳에 살지만, 그 주변은 언제나 생명체를 위협하는 사물과 상황이 둘러싸고 있다.


질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상황은 끊임없이 변하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위협적인 상황이 수시로 닥치기 때문에 안전과 평안만을 추구할 수도 없다.
상황에 따라 바뀌어야만 한다. 혼돈이 때로 감당하기 힘든 변화를 몰고 올 수도 있다.
새로운 상황에 적응도하기 전 한계치를 넘어서는 상황이 닥치면 버티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한 발은 이미 잘 아는,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는 땅을 디디고 다른발은 잘 모르는, 탐험을 통해 일아가야 할 땅을 디디고 있어야 한다.
그러면 삶의 위협 요소들을 안전하게 통제하는 동시에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깨어 있을 만한 곳에 자리를 잡을 수 있다.
그곳은 우리가 완벽히 익혀야 할 새로운 것과 더 나은 자신을 만나게해 줄 새로운 기회가 있는 곳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곳이다.


12가지 인생의 법칙

조던B, 피터슨


골반비대칭이 개선되어 몸짱이 된 청년~


성선택은 자연선택처럼 합목적적으로 ‘설계’ 되었다.
마치 수사슴이 성선택으로 성적 라이벌과의 싸움에 적합하도록 설계된 것처럼,
공작은 유혹하도록 설계되었으며,
남자의 심리 역시 생존을 희생해서라도 한 명 또는 그 이상의 질 좋은 짝을 찾거나 유지하는 확률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설계되었다.


남성다움의 근본 물질인 테스토스테론 자체는 전염병에 걸릴 확률을 높인다.
남자들이 좀 더 경쟁본성을 띠는 것은 성선택의 결과이다.
남자들은 위험하게 살도록 진화되었는데,

그것은 경쟁이나 전투에서의 성공이 더 많은 혹은 더 좋은 성적 정복과 더 많은 자손들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위험하게 사는 여자들은 단지 그들이 이미 얻은 자손들을 위기에 처하게 할 따름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자의 아름다움과 번식능력의 밀접한 관계(아름다운 여자는 정의상 대체로 늙은 여자에 비하여 젊고 건강하며, 따라서 생산능력이 더 높고 앞으로도 더 오랜 기간 출산할 수 있다)는 남자의 심리와 여자의 몸에 동시에 작용한 성선택의 결과이다.


각각의 성은 서로 상대에게 영향을 미친다.
여자들이 모래시계와 비슷한 몸매를 갖는 이유는 남자들이 그 모습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공격적인 성격을 갖는 이유는 여자들이 그런 성격을 선호하기 때문이다.(혹은 여자를 얻기 위한 남자들의 싸움에서 공격적인 남자가 다른 남자에게 승리하도록 여자들이 방치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진화인류학자들은 큰두뇌가 생식의 성공에 기여한 것은 남자가 상대방 남자보다 선수를치고 계략을 더 잘 짤 수 있게 하거나(여자들에게도 역시 다른 여자들보다 선수를 치고 계략을 더 잘 짤수있게 하고) , 처음부터 이성의 환심을 사고 유혹하는 데 이용되었다고 믿는다.

생존과 번식이 서로 상충되는 지점에서는 번식이 우선권을 차지한다. 그 예로 연어는 번식기간에 굶어 죽는다. 문어도 알을 지키면서 굶어 죽는다.




모든 인간이 그렇듯이 어린아이 역시 선하기만 한 존재는 아니다.

그래서 사회와 접촉하지 않고 혼자서는 온전하게 성장하지 못한다.

개들도 무리의 일원이 되려면 사회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아이들은 개보다 훨씬 복잡한 존재다.


적절한교육과 훈련, 사랑을 받지 못하면

잘못될 가능성이 커 진다는뜻이다.

인간의 폭력적 성향을 병든사회 탓으로 돌리는 것은 잘못이다.

그렇다고 사회가 할 일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이다.

악한 행동을 억제하고 선한 행동을 장려하는 데

사회화 과정은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도 올바르게 성장할 수 없다.


아이들의 행동이 이를 증명한다.

아이들은 친구와 어른의 관심을 간절히 바란다.

아이들은 친구와 어른의 관심을 통해

공동체의 중요한 구성원이라는 믿음을 갖는다.

아이들이 제대로 성장하려면 주변 사람들의 관심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관심을 받지 못하면 어린아이는

정신적 · 육체적 학대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런 피해는 무관심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지

 의도적으로 위해를 가하려고 해서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피해의 정도는 그에 못지않다.

게다가 오랜 시간 지속된다는 점에서 더 문제가 된다.


부모의 ‘자상한 무관심’으로 인해 아이가

규칙과 절제를 배우지 못하고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못하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은 바로 어린아이 자신이다.

 어린아이를 돌보는 사람이 아이와의 갈등과 충돌을 피하고자

잘못을 교정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아이가 궁극적으로 피해를 본다.


거리를 다니다 보면 어린 피해자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된다.

그들은 대체로 굼뜨고 산만하며

멍해 보이고 얼굴빛도 어둡다.

그들은 조각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조각되지 않은 돌덩이와 같다.


이런 아이들은 또래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함께 놀기에 좋은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성인도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정작 당사지는 자신이 배척당한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할 무렵 어린이집에서 일한 적이 있다.

관심을 못 받고 자란아이들은

내 옆에 털썩 주저앉거나 드러누웠다.

내가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않고 내 무릎위로 뛰어들었다.

 

이런 행동은 어른에게 관심을 받으려는 욕망의 표현이다.

이이에게 어른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점을 잘 알면서도

이런 일이 반복되면 기분이 상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돌봐야할 다른 애들도 있어서

 마냥 받아줄 수는 없었다.

 제대로 사회화되지 않은 이이와 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부모의 방치로 인해 생기는 의존적 성향은

임시 방편적이고 부적절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존을 받아 주려면 엄청난 시간과 자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응석을 받아주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실제로 내 경험은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흔히 겪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놓이면 비용 편익 비율(cost-benefìt ratio)이

훨씬 낮은 아이, 즉 돌보는 데 큰 수고가 들지 않는 아이에게

관심을 돌릴 가능성이 크다.


조던B. 피터슨

12가지 인생의 법칙



연령별 키키우기 핵심

우리 조상들이 현명하게 쌓아 놓은 벽 뒤에는

두려움과 공포가 도사리고 있다.

그 벽을 허물려면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

우리는 얇은 얼음판 위에서 스케이트를 티는 것과 같다.

그 살얼음판 아래의 차갑고 깊은 물속에

무시무시한 괴물이 숨어 있다는 것도모트는 채.


요즘의 부모는 자녀세대를 어려워하는 것 처럼보인다.

그 이유가 뭘까?

 

사회적 독재의 주동자 취급을 받으면서

규율과 질서와 전통 지키는

수호자 역할은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970~90년대에 청소년이던 그들은

그 시대의 강력한 그림자를 떨쳐내지 못한 채 

어두운 자의 의식 속에서 불편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1970~90년대는 어른 세대를 깍아내리고

모든 권위를 불신하며

미성숙한 방종과 책임지는 자유를 구분하지 못하던 시대였다.


이런 시대의 영향으로

요즘 부모들은 자녀를 망칠지 모른다는 걱정에 사로잡혀

아에 결혼을 안하거나 결혼을 해도 자녀를 갖지 않으며

자녀를 갖더라도 자녀의 감정 변화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도 그 반대의 경우보디는 낫지 않느냐고

반박할 수 있겠지만,

도덕적 잣대의 양극단에는 언제나 재앙이 도사리고 있다.


조던B. 피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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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환경을 생각해 보자.

 우선 작은 것부터 살펴보자.

 당신은 자신에게 주언진 기회를 100퍼센트 활용해 왔는가?

직정에서 전력을 다해 일하고 있는가?

 혹시 분노와 원망에 사로잡혀

맥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형제와는 잘 지내고 있는가?

배우자를 존중하는가?

자식들을 애정으로 대하고 있는가?

건강과 행복을 파괴히는 나쁜 습관은 없는가?

당신 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친구와 가족에게 꼭 해야 할을 하는가?

 주변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하는 일이 있는가?

당신 삶을 깨끗이 정리했는가?


그렇지 않다면 지금부터라도 이렇게 해 보자.

당신이 옳지 않다고 생각 하는 것들,

그것들을 중단하라!

오늘 당장 중단하라!

그 행동이 잘못된 것 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면서

그 행동을 합리화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그런 식의 합리화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혼란을 키우고 실천을 빙해 할뿐이다.


이유를 정확히 몰라도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정도는 알수 있다.

자세히 설병할 수 없고 명확히 표현할 수는 없어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직감할 수 있다.

우리는 복잡하기 이를데 없는 존재여서

누구도 자신을 완벽하게 알수없다.

게다가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지혜를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중단해야 한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면 그냥 중단하라.

그 비겁하고 천박한 행동을 당장 중단하라.

당신을 나약하고 부끄럽게 만드는 것은 입에도 올리지 말라.

당신을 강인하게 만드는 생각만 하고,

 당신에게 힘을 주는 말만하라.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것만 말하라.

 

다른 사람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당신의 판단이 행동의 기준이다.

 세상이 정한 행동 기준을 따라야 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당신이 속한 문화의 전통을 무시하지는 말라.

인생은 짧다.

전통이 오랜 시간에 걸쳐서 발견한 것들을

혼자서 알아낼 만한 시간은 없다.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지혜는 어렵게 얻은 것이다.

전통과 문화속에는 분명히 삶에 유익한 지혜가 있다.

자본주의나 정치권을 탓하지 말라.

당신의 적들을 욕하지 말라.

체제를 손봐야 한다고 말하기 전에

당선의 경험을 먼저 정리하라.

또 겸손한 마음을 가져라.

가정도 평화롭게 꾸려 가지 못하면서

어떻게 함부로 세상을 평가할 수 있겠는가.

당신의 양심과 이성이 시키는 일만 하라.


리고 하루 동안 어떤 변화가 일어니는지 지켜보라.

 몇 주가 지나면 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라.

제대로 실천하면 마음속에서 생각히는 것들을 말할 수 있게 된다.

아내나 남편, 아이들이나 부모님에게

당신이 실제로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을 말하게 될것이다.

또한 당신이 해야 하는데 하지 않은 일이 있다면

그 부분을 바로 잡으려 할 것이다.

머릿속을 거짓으로 채우는 걸 중단하면 머릿속도 정돈되기시작한다.

거짓 행동으로 삶을 왜곡하는 걸 중단하면 

훨씬 더 나은 삶을 경험할 것이다.

그때 쯤에는 조금 더 미묘하고 새로운 당신의 잘못이 드러난다.

그런 것이 있다면 역시 중단하라.

몇 개월 혹은 몇년 동안 꾸준하게 하면

당신의 삶은 점점 단순해질 것이다.

판단력이 향상되서 꼬이고 뒤틀린 과거 문제들도 정리된다.

냉소주의에서 벗어나 더욱 건전한 정신을 갖게 되고,

더욱 당당하게 미래를 열어 갈 것이다.

더는 삶음 쓸데없이 어렵게 만들지 않을것이다.

그래도 인생의 비극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냉소와 기만으로 그 비극이 더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렇게 타락의 길에서 빠져나온 당신은

전보다 훨씬 더 강해져 있을 것이다.

인생의 피할 수 없는 비극에 좀더 의연하게 대처할수 있을것이다.

비극을 그저 비극으로만 머물도록,

그 비극이 불지옥으로 변하지 않도록

자신을 조절하는 법도 알게 될것이다.

당신의 불안과 절망, 원망과 분노가

처음에는 폭발 직전까지 가더라도 결국에는 점점 사라질 것이다.

당신은 여전히 나약한 존재지만,

맑아진 정신은 삶의 좋은 면을 발견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당신은 누구보다

평화와 세상의 모든 선함을 지키는 강력한 힘이 될것이다.

모두 각자의 삶에서 이렇게 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 이상 사악한 곳이 아니다.


그 후에도 지신부터 달라지려고 계속 노력한다면

 인간의 삶에서 비극마저 사라질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선한 삶을 살기로 한다면

세계가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누가 알겠는가.

우리 모두 진실만을 말하고

높은 곳을 목표로 살아간다면

바로 이 타락한 지구에

영원한 천국을 세울 수 있을지누가알겠는가.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하라.

조던B. 피터슨, 12가지 인생의 법칙

법칙6 세상을 탓하기 전에 네 방부터 정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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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한의원 비만클리닉

불평등하고 고통스러운 삶은 아무리 원망해 봤자 바뀌지 않는다.

불필요한 고통과 아픔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는

길을 찾는 게 훨씬 의미있는 삶이다.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인생의 수고로움을 덜고 세상을 좋게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많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 오늘 무엇을 할지 생각해 보라.

귀찮아서 오랫 동안 미뤄둔 서류작업도 좋다.

어질러진 방을 깨끗하게 청소히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가족들에게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는 것도 훌륭한 일이다.

 이 모두가 세상을 조금 더 좋게 만드는 일이다.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일을 가치 체계 가장 높은 곳에 두고

해야 할 일을 해나가면

인생이 점점 충만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런 경험은 신의 은총도, 행복도 아니다.

 이런 경험은 알게 모르게 망가뜨린 삶에 대한 속죄다.

비정상적인 삶에 진 빚을 갚는 것이고,

참혹하던 홀로코스트를 기억하는 것이며,

병들고 타락한 역사를 정화하는 것이다.

또한 언제든 지옥의 잠재적 시민이

될 수 있음을 겸허히 인정하고

기꺼이 낙원을 지키는

천사의 역할을 맡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비유하자면, 편의주의는 모든 해골을 벽장에 감추는 것이다.

지신의 어두운 비밀을 감추는 짓이다.

당신이 카펫에 방금 흘린 피를 덮는 것이고,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하는 짓이다.


쉬운 길만 선택하는 편의주의는

비겁하고 천박하며 잘못된 것이다.

편의주의가 반복되면 사악한 면이 모습을 드러낸다.

편의주의는 당신의 저주를 다른 사람이나

미래의 당신에게 돌리는 것이다.


늘 쉬운 길을 택하려고 히는 당신 하나 때문에

당신의 미래,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사람의 미래가

더욱 암울해진다.

그래서 편의주의는 무조건 나쁘다.

편의주의적인 행동에는 신념도, 용기도,

희생도 필요하지 않다.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수 있는 사실이다.

세상은 이런 행동과 생각이 모여서 만들어진다.


쉬운 길을 선택해서 원하는 것을 갖는 것보다,

 어려운 길을 선택해서 의미 있는 것을 갖는 것이 훨씬 낫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게 뭔지,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게 뭔지 우리는 잘모르기 때문이다.

 의미는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것이다.


높은 목표를 세우고 그것에 맞게 행동하면

의미는 저절로 모습을 드러낸다.

의미를 억지로 만들어 낼 수는 없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속임수일 뿐이다.

의미를 찾았다는 것은 혼돈과 질서의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 있음을 의미한다.


삶의 모든 요소가 최적의 상태에 놓여있을 때 의미가 생겨난다.


의미는 원자부터 세포와 기관,

개인, 사회와 자연 및 우주까지 ‘존재’의 다양한 층위의 기능들이

완벽한 조화를 이룰 때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각 층위의 움직임은

다른 모든 층위의 움직임과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런식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한꺼번에 조화를 이룬다.

 무의 세계를 뚫고 나와 햇살을 향해 열리는

장미꽃 봉오리처럼 의미는 깊은 심연에서 태어나

높은 곳을 항해 나아간다.


의미는 칙칙한 연못 바닥에서 시작해 

맑은 물을 향해 조금씩 올라가다가

결국 수면 위에서 꽃을 피우는 연꽃에 비유 된다.

활짝핀 연꽃의 횡금빛 수술은 완벽한 존재인 부처를 상징한다.

부처는 모든 말과 몸짓을 통해 신의 뜻을 드러내고,

연꽃은 바로 그런 부처가 전하는 삶의 의미를우리에게 일깨운다.


의미는 주변의 모든 것이

하나의 고귀한 목표를 향해 움직일 때 생겨난다.

현재의 삶에 안주하지 않고 하루하루 더 나은 삶을 만들어 가겠다는

의지는 주변의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인간이 경험한 모든 고난과 역사의 모든 끔찍한 투쟁마저도

선하고 강력한 무엇인가를 성취하는데 필요한 동력이 되어 줄것이다.


의미는 혼돈과 질서의 궁극적인 균형이다.

한쪽에는 변화와 가능성으로 충만한 혼돈이 있고,

반대편에는 오염되지 않은 절제된 질서가 있다.

의미는 혼돈으로부터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낸다.

더 순수하고, 더 안정적이 며, 더 생산적인 새로운 균형이 탄생한다.

의미는 한층 풍요로운 삶으로 향하는 길이다.

의미는 사랑과 진실만이 가득한 곳,

사랑과 진실 외에는 바랄 것이 없는 그런 곳으로

우리를 인도할것이다.


쉬운 길이 아니라 의미 있는 길을 선택하라.



이제는 바꿔야 할 때입니다.

의미, 혼돈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줄 해독제


이런 추론끝에 나는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도덕률을 정리할 수 있었다.


높은 목표를 지향하라.

주의하고 집중하라.

고칠 수 있는 것이면 고쳐라.

현재의 지식에 교만하지 말라.

겸손한 마음을 가져라.


전체주의적 자만은 무자비와 억압,

고문과 살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나의 부족함을 정확하게 인지하라.

나의 내면에 감추어진 비겁함과 악의,

원한과 증오를 인정하라.


남을 비판하기 전에,

세상의 잘못을 바로잡겠다고 나서기 전에

잔혹한 심성을 살펴라.

 어쩌면 세상이 잘못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모든 책임이 니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성공하지 못한 탓일 수있다.


목표를 이루지도 못했으면서,

수많은 죄를범했으면서

감히 히늘의 영광을 바라지 말라.

결국 나도 세상이 사악해지는 데 한몫 거든 것이다.


무엇보다, 거짓말하지 말라.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하지 말라.

거짓말은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은

나치와 공산주의의 거짓말 때문 이었다.

 

인생의 필연적인 고통을 감안하면

불필요한 고통과 아픔을 줄이는

모든 행위는선한것이다.

‘불필요한 고통과 아픔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다하겠다’라는 나의 신념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더 나은 삶이라는 목표에 부합하는

모든 생각과 행동을 도덕적 가치 체계의

가장 높은 곳에 놓은 것이다.

융은 그런 도덕적 가치 체계를 만드는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생각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내적으로 모순되더라도 상관없다.

융은 개개인이 도덕적 가치 체계의 최상위에 두는 것은

그가 가장 가치있다고 믿는 것이고,

그것은 곧 그만의 신을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모든 행동의 기준이고,

그가 가장 굳게 믿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은 인격의 반영이다.

정확하게 말해서 상반되는 두 인격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 결과다.

예를 들어 셜록홈스와 모리아티,

배트맨과 조커, 슈퍼맨과 렉스 루터,

찰스 프랜시스 재비어와 마그네토,토르와 로키 중

하나를 선택한 것이다.

아벨과 카인, 그리스도와 사탄 중 하나를 선택한것이다.


 이 땅에 낙원을 세우고 더 나은 삶을 사는 데

 도움을 주는 일이라면 그리스도를 선택한 것이고,

삶을 파괴하고 불필요한 고통을 주는 일이라면

사탄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는 두 면을 다 가지고 있다.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삶의 근본적인 조건이다.

 

편의주의는 맹목적인 충동을 따르는

편협하고 이기적인 선택이다.

편의 주의로 얻는 이익은 오래가지 않는다.

편의주의는 본능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자신을 속이는 행위다.

편의주의는 어떠한 고귀한 것도 고려하지 않는다.

유치하고 무책임하다.

편의주의를 분별력 있게 대체할 때 삶의 의미를 얻는다.


의미는 충동을 통제하고 조절할 때 생겨난다.

의미는 세계의 가능성과 세계의 가치 체계가

상호작용할 때 생겨난다.

 가치 체계가 더 나은 삶이라는 목표를 향할 때

생겨나는 의미는 삶을 지속하는 데 힘이 되어 준다.


의미는 혼돈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 해독제다.

의미로 인해 삶의 모든 순간이 중요해지고,

삶의 모든 순간이 나아질 것이다.


조던B, 피터슨

12가지 인생의 법칙




솔제니친은 20세기에 자행된 끔찍한 사건,

직장과 기족, 신분을 빼앗긴 채 비참하게 살던

수천만 명의 삶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아낸 작품을 썼다.

《수용소 군도》의 한 부분에서 솔제니친은

뉘른베르크 재판(1945년 11월부터 l0개월 동안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제2차세계 대전 전범자들에 대한 재판으로 24 명이 기소돼

사형 12명, 종신형 3명, 징역형 4명, 무죄 3명의 결과가나왔다 옮긴이)

 을 20세기의 가장 중대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몇몇 행위는 본질적으로 너무 끔찍해서

인간의 본성과 충돌한다’라는 그의 결론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맞는 말이다.

‘사악한 행위에 참가한 것은

어떤 변명으로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성을 말살하고, 언간을 기생충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하며,

개개인의 유무죄와 상관없이 무작정 고문하고 학살히는 짓은

변명의 여지 없이 어떤 경우헤도 잘못된 것이다.

고통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한 다는 표현도 잘못된 것이다.


내가 무엇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현실 세계는 고통에 짓눌려 있다.

이 명제는 반박할 여지가 없다.

허무주의자의 회의로도 이 명제는 약화되지 않는다.

전체주의자도 이 명제를 지울 수 없다.

어떤 냉소주의자도 고통에 찌든 현실에서 탈출할수 없다.


고통은 실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 교묘히 고통을

가하는 행위는 잘못된 것이다.

이런 생각의 흐름이 내 믿음의 밑바탕이 되었다.

내 의식의 밑바닥과 내 모든 생각과 행위를 낱낱이 뜯어봤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나치의 수용소 교도관이나

수용군도의 인민위원 혹은 지하교도소에서

어린아이들을 괴롭히는 악당처럼 행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제야 비로소 ‘세상의 죄를 대신 짊어진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인간이면 누구나 악한 행위를 할 수 있다.

인간이면 누구나 선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안다.

선하지 않은 것이 었다면, 선한 것이 있기 마련이다.


최악의 죄가 순전히 고통을 주려는 목적에서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짓이라면,

선은 그외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모든 것이다.

그런 잘못된 행위를 멈추게 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선이다.


조던B. 피터슨

12가지 인생의 법칙



수승화강의 생리적 상황에서 상열하한의 병리적 상태로 변할 때 나타나는 증상들

융은 유럽의 지성이 물질세계를 연구하고 과학 기술 발전에 힘을 쏟게된 이유가

기독교에 대한 실망 때문이라고 가정한다.


기독교가 영적인 구원을 강조하면서

현실의 고통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르네상스가 사작되기 3~4세기 전

이런 풍조가 절정에 달했다.


이 문제를직접 해결해 보려는 생각이

유럽인의 집단 심리에 자리를 집았다.

처음에는 연금술 같은 신비주의 형태로 시작해

 수백 년이 흐르면서 치츰 과학의 형태로 발전 했다.

물질의 성질과 변화 원리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연구한 사람은

건강과 부, 장수의 비밀을 밝히고자 노력한 연금술사들이었다.


뉴턴도 유명한 연금술사 중 한 사람이었다.

이 위대한 몽상가들은 교황청이 저주하는 물질세계에

비밀이 담겨 있을 것이라고 직감했다.

그 비밀을 캐내면 인간이 세속의 고통과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런 상상은 점점 확신으로 바뀌었고,

과학의 발전에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

그와 동시에 종교에서 자유로워진 사상가들이

물질 너머의 세계와 정신, 도덕과 윤리에 대해

철학적으로 사유하기 시작했다.


12가지 인생의 법칙

조던B.피터슨



단지 삶이 힘들고 가혹해서 사악함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참담한 실패를 겪었다고 해서,

혹은 그로 인한 실망과 죄절이 크다고 해서

사람이 항상 사악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희생과 노력이 계속해서 거부당하면

(제대로 된 노력이나 희생이 아니더라도) 상황이 달라진다.

이런 경우에는 뒤틀리고 일그러져 진짜 괴물처럼 변할 가능성이 크다.

의도적으로 사악한 것을 저지르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고통과 아픔을 주기위해 어떤 짓도 마다하지 않는다.

어설픈 노력과 희생, 그런 희생을 거부하는 현실 혹은 절대자,

거부당했다는 분노와 원망, 좌절에 빠져 치밀어 오르는 복수심,

더 어설픈 희생과 반복되는거부 ...... 이런 악순환의 고리가 완성된다.

악순환의 최종 정착지는 지옥이나 다름 없는 곳이다.


영국 철학자 토머스 홉스의 말처럼
“삶은 지저분하고 야만적이다. 그리고 짧다."

 그러나 악한 짓을 저지르는 인간의 속성 때문에

삶이 더욱 황폐해 진다.

야만적인 면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이것이 삶의 본질적인 문제다.

무엇을 어떻게 희생하느냐를 고민하는 이유는

삶의 고통뿐만 아니라 사악함까지 줄이기 위해서다.

사악함은 고의적으로 최악의 고통을 유발한다.




모모의 절친한 친구인 베포는 날마다 해가 뜨려면 아직 먼 이른 새벽에

삐걱대는 낡은 자전거를 타고 시내의 커다란 건물로 출근했다.

그리고 동료들과 같이 그 건물 마당에서 기다렸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나와서 빗 자루와 수레를 나누어 주고, 청소해야 할 거리를 지정해 주었다.

베포는 도시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해가 뜨기 전의 그 시간을 좋아했다.

그는 자기가 맡은 일을 좋아했고, 또 철저하게 했다.

자기가 하는 일이 꼭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천천히, 하지만 쉬지 않고 쓸었다.

한 걸음 떼어 놓을 때 마다 숨 한 번 쉬고, 숨 한 번 쉴 때마다 비질을 한 번 했다.






한 걸음, 한 번 숨 쉬고, 한 번 비질.

한 걸음, 한 번 숨 쉬고, 한 번 비질.


그러다가 기끔 잠시 멈춰 서서 생각에 잠겨 앞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한 걸음, 한 번 숨 쉬고, 한 번 비질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뒤쪽에 깨끗한 거리를 두고, 앞에는 지저분한 거리를 두고 그렇게 청소를 하다 보면

종종 위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은 어렴풋이 기억나는 향기나 꿈속에서 보았던 색깔과 같아서 전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일을 끝내고 모모 옆에 앉아 그런 생각을 들려 주곤 했다.

모모가 특유의 방식으로 열심히 들어 주기 때문에 그럴 때면

베포의 굳었던 혀도 풀려서 적절한 단어를 찾아 내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베포는 이렇게 얘기했다.

“얘, 모모야. 때론 우리 앞에 아주 긴 도로가 있어.

너무 길어 도저히 해 낼 수 없을 것 같아. 이런 생각이 들지"

그러고는 한참 동안 묵묵히 앞만 바라보다가 다시 말했다.

그러면 서두르게 되지.

그리고 점점 더 빨리 서두르는 거야.

허리를 펴고 앞을 보면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것 같지.

그러면 더욱 긴장되고 불안한 거야.

나중에는 숨이 탁탁 막혀서 더 이상 비질을 할 수가 없어.

앞에는 여전히 길이 아득하고 말이야.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야"


그러고는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한꺼번에 도로 전체를 생각해서는 안돼, 얄겠니?


다음에 딛게 될 걸음,

다음에 쉬게 될 호흡,

다음에 하게 될 비질

생각해야 하는 거야.

계속해서 바로 다음 일

생각해야 하는 거야"


그러고는 다시 말을 멈추고 한참 동안 생각을 한 다음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면 일을 하는 게 즐겁지. 그게 중요한 거야. 그러면 일을 잘해 낼 수 있어. 그래야 하는 거야"

그러고는 다시 한 번 오랫동안 잠자코 있다가 다시 말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나가다 보면 어느새 그 긴 길을 다 쓸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도 모르겠고, 숨이 차지 도않아"

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렇게 말을 맺었다.


“그게 중요한거야"




인간이 인간에게 늑대(Homo homini lupus)인 시대의 희망


아파트 계단 옆에 누군가가 이사가면서 책을 내 놓았다.

나는 항상 책을 유심히 살핀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을 그 책들~

그 책들을 나의 눈으로 수습한다.

그 책들중에 장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이 눈에 뛰어 챙겨와 진료실에서 짬짬이 읽었다.

그 책을 통해 나의 생각의 스케일은 단순 나에서 나 다음까지 더 큰 스케일이 있다는 것을 재삼 느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야구치시노부감독의 [우드잡]이라는 영화의  대사가 생각났다.
“쭉뻣은 거대한 삼나무는 할아버지가 심으시고
아버지가 가지치를 하면서 가꾼 나무다.
이 나무를 벌목하여 생계를 이어간다.
그리고 나는 손자를 위해 좋은 묘목을 골라 심고,
아들을 위해 나무에 올라 가지치기를 한다.”
 

[나무를 심은 사람]에서 주인공 부피에는 자신의 체험을 통해

어떤 ‘작은 사람'도 영웅적인 인간의 크기로 드높여질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쳐 준다.
그리고 참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이 세계를 아름답게 바꾸어 놓는 것은 권력이나 부나 인기를 누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남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고 있다.
침묵 속에서 영혼을 담아 도토리를 고르고 서두르지 않고 속도를 숭배하지 않고,
자기를 희생하며 일하는 아름다운 혼을 가진 사람들이며,
굽힘 없이 선하게 살고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우쳐 준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아주 간단하다.
'나무를 심고 가꾸는 한 사람의 끈질긴 노력ᅳ새로운 숲의 탄생ᅳ수자원(水資源)의 회복 ᅳ희망과 행복의 부활’ 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는 이러한 아름다운 과정이 인간이 지닌 추하고 악한, 또 하나의 측면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인간의 이기심과 무절제한 탐욕, 앞날을 조금도 내다보지 못하는 무지, 나무를 마구 베는 자연파괴, 그리고 사람이 사람을 살육하는 두 차례의 전쟁이라는 인간의 어두운 측면이 그것이다.
선과 악이 이처럼 교차하는 가운데 작품의 주인공 엘제아르 부피에는 아주 숭고한 인물로 등장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시대가 자신의 이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시대여서 주인공의 모습은 더욱 빛을 발한다.
“인간이 인간에게 늑대(Homo homini lupus)”인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자기의 이익을 돌보지 않고 남을 위해 자기를 바쳐 일하는 부피에 같은 사람은 더욱더 경이로운 인물로 비친다.


밤실진료실에서


인간의 수명은 어디까지 미래학자 레즈커즈와일은그의 저서 [특이점이 온다] 와 [영원이 사는 법]에서 그리고 유발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 와 최근의 저서[호모 데우스]에서 영생의 시대가 올것이라고 점치고 있다. 은하철도 999에서 메텔의 도움으로 철이가 영원히 사는 몸을 구하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듯이...




인간이 죽는 것은 검은 옷을 입은 저승사자가 명부를 가져와서도, 신이 죽음을 명해서도, 죽음이 우주적 규모의 거대한 계획의 불가결한 일부여서도 아니다.

인간은 어떤 기술적 결함으로 죽는다. 혈액을 펌프질하던 심장이 멈추거나, 대동맥에 지방 찌꺼기가 쌓여 막히거나, 간에 암세포가 번져서거나, 폐에 세균이 증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기술적 문제는 무엇 때문에 일어날까? 다른 기술적 문제들 때문이다. 혈액을 펌프질하던 심장이 멈추는 것은 심장근육에 충분한 산소가 도달하지 않아서이다. 암세포가 번지는 것은 나쁜 신체환경 상황이 유전자 돌연변이로 유전명령을 바꿨기 때문이다. 폐에 세균이 중식하는 것은 내몸의 면역력이 약한 중에 지하철에서 누군가 재채기를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형이상학적이라 할 만한 것은 없다. 모두 기술적 문제이다.

모든 기술적 문제에는 기술적 해법이 있다.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예수의 재림을 기다릴 필요가 없으며 산속에 들어가 도사가 될 필요도 없다. 실험실의 괴짜 몇 명이면 된다. 과거에 죽음이 성직자와 신학자들의 일이었다면 지금은 공학자들이 그 권한을 인수받았다. 우리는 항암치료나 나노로봇으로 암세포를 죽일 수 있다. 폐에서 증식하는 세균들은 항생제로 죽일 수 있다. 심장이 펌프질을 멈추면 약물과 전기충격으로 소생시킬 수 있다. 그래도 효과가 없으면 새 심장을 이식하면 된다. 물론 아직은 모든 기술적 문제들의 해결책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바로 이것 때문에 우리가 암, 세균, 유전학, 나노기술을 연구하는 데 그토록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이다.

과학 연구에 몸담고 있지 않은 보통 사람들도 이제는 죽음을 대개 기술적 문제로 생각한다. 한 여성이 병원에 가서 "선생님, 가 문제죠?” 라고 묻는다. 의사는 ", 독감에 걸린 것 같군요또는 결핵입니다" 또는"암입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죽음에 걸렸습니다"라고 말하는 의사는 없다. 우리 모두는 독감, 결핵, 암이 기술적 문제들이며 언젠가 그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데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굵고 길게 살고 싶다.

굵고 짧게 산다는 말이 있지만 나는 굵고 길게 살고 싶다.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천수를 누리고 싶다.

누구나 그럴 것 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예전과는 전염병이나 사고나 전쟁 등의 외부인자로 인해 생명을 달리하는 사람이 매우 적다. 요즘은 오히려 나쁜 식습관과 생활습관으로 인해 스스로 만든 병인 고혈압 당뇨 암 등의 생활습관병이 그 대부분을 차지한다.





"당신의 몸은 건강합니까?" 이 질문에 진정한 의미로 '' 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난지 병에 안 걸렸다 라는 것만으로는 건강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양의학에서는 미병 (未病)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말 그대로 아직 병에 걸리지는 않은 상태를 말한다. , 건강하다고는 볼 수 없는 병에 걸리기 바로 직전상태다. 그런데 현재 우리는 이러한 미병 상태인 사람이 아 주 많다.

건강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중에도 만성적인 변비나 설사, 불면증이나 어깨 결림 등에 시달리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증상은 미병 상태의 몸이 보내고 있는 SOS 신호라고 할 수 있다. 항상 있는 일이니까 라고 가볍게 생각했다가는 심각한 병으로 진행할 위험성도 있는 것이다.

현재 평균 수명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장수는 인류의 공통된 바람 이므로 기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단순히 평균 수명만을 보고 좋아해서는 안 된다. 이 숫자에는 건강상태'가 반영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건강하게 일상생활을 보내고 있는 백 살 노인도, 병으로 오랫동안 누워 있는 백 살 노인도 똑같이 백 살로 기록될 뿐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같은 백 살이지만 인생의 만족도는 엄청나게 차이가 날 것이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지 않은가? 누워 있는 채로도 좋으니까, 병에 걸려 고생해도 좋으니까 무조건 오래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건강하지 않으면 장수는 의미가 없다.

우리 주변에 있는 노인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그 사람의 건강상태가 자신이 그 나이가 되었을 때의 모습이라고 한다면 당신은 만족할 수 있는가? 안타깝게도 대부분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나이가 들면 아무리 건강한 사람 이라도 몸의 기능이 떨어진다. 그러나 기능이 저하되는 것과 병에 걸리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그러면 현재 고령자의 대부분이 고액의 의료비를 지출하고 있을 정도로 건강하지 못한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건강하게 사는 백 살과 병으로 누워 있는 백 살의 차이는 무엇일까?

둘의 차이는 그들이 그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가? 에 달려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건강한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의 차이는 그 사람의 식사습관과 생활습관에서 비롯된다.

, 식사, 수분 섭취, 기호품, 운동, 수면, , 스트레스와 같은 일상생활의 갖가지 요소들이 그 사람의 건강상태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어떠한 생활습관을 들이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최근 들어 사람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 에 부응하여 건강 관련시장이 거대한 규모로 성장하고 있다. 각종 건강법이 쏟아져 나오고, 이 것만 먹으면 된다. 라는 식의 건강효과를 선전하는 건강보조식품의 판매량도 증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텔레비전이나 잡지에서 몸에 좋다고 소개라도 된다 치면, 다음 날 그 상품이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이것은 사람들 이 무엇이 정말로 몸에 좋은지 또는 건강에 도움이 되는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올바른 지식이 없기 때문에 매스컴이나 광고에 혹해 우왕좌왕하게 되는 것이다.

굵고 길게 살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고치고 1년에 2~4차례 체내에 쌓여있는 독소를 대청소하세요.

저는 일년에 두차례씩 청혈해독 신체정화를 합니다. 



내 몸은 연못입니다.
나는 그 연못에서 사는 물고기죠
.
나라는 물고기가 건강하려면

연못이 깨끗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 연못은 오염될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삽니다
.
그러므로 간헐적으로 연못을 대청소해야합니다.

청혈해독으로 신체정화를 해야합니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이후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규장각 관장,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신 정옥자 교수는

조선시대의 이상적인 선비의 조건을 이렇게 말한다.





첫째, 교묘한 말과 좋은 얼굴색으로 남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는 '교언영색 巧言令色을 하지 않아야 한다.


둘째, 남에게는 후하고 자신에게는 박한 '박기후인薄己厚人

체질화해 청빈하고 검약한 생활을 해야 한다.


셋째, 일을 할 때는 공적인 일을 우선하고 개인적인 일은

뒤로하는 '선공후사先公後私자세로 해야 한다.


넷째, 인간관계에서는 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돕는억강부약抑强扶弱해야 한다.


다섯째, 겉으로는 부드러워 누구에게나 잘 대하고 예의 바르지만

속으로는 강하고 심지 깊은 '외유내강外柔內剛의 모습을 지녀야 한다.


마지막으로 선비의 최종 목표였던 조건으로,

이기심과 욕망을 이겨내고 예로 돌아가서

모든 사람이 공존하고 공생하는 '극기복례克己復禮

끊임없이 실행해야 한다고 했다.


나도 선비가 되고 싶지만

이 내용을 보니 참으로 어려워 보인다.

단지 부러워하고 노력해 볼 뿐이다.


현상에 대한 이해가 현상의 신비를 앗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듯하다.

이해는 모호함, 불확실함, 애매함, 혼동의 제거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사실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무지개의 색들이 생겨나는 원인을 알아도, 무지개의 경이로움은 손상되지 않는다.

앎은 연구 대상이 된 현상의 아름다움을 더 깊이 음미하고 심지어 경외하게 한다.

과학적 이해는 온갖 요소들이 어떻게 결합하여 우리를 둘러싼 경이로운 세계를 형성하는지 알려준다.

아직 검증되지 않았거나 검증될 수 없는 설명은 실질적인 힘을 가질 수 없다. 그런 설명은 그저 아이들이 침대에 누워서 듣는 산타클로스나 요정에 관한 동화와 다를 게 없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깊이 탐구할 의지나 능력이 없는 사람을 달래주고 안심시키기는 하지만 참다운 앎을 안겨주지는 못한다.

앎은 보다 깊은 탐구에서 온다.

 

데이비드 핸드의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에서


사람과 대형 유인원은

암수의 체중 차,

페니스의 길이,

정소의 크기가 크게 다르다.





수컷 기호 원 부분의 크기는

 동종 암컷과 비교한 수컷의

상대적인 체중을 나타낸다.

위의 암컷 기호 원 부분의 크기가

기준이 되는 암컷의 체중이다.

침팬지의 암수 체중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

사람은 남자가 약간 무겁다.

그러나 오랑우탄이나 고릴라의 수컷은

 암컷보다 훨씬 크다.



수컷 기호 화살표 부분의 길이는

상대적인 페니스의 길이를 나타내며,

두 개의 작은 원은 체중에 대한

정소 무게의 상대치를 나타낸다.

사람은 가장 긴 페니스를,

침팬지는 가장 큰 정소를,

오랑우탄과 고릴라는 가장 짧은 페니스와

가장 작은 정소를 각각 가지고 있다.

    


 

여성의 신체에서 유방은 매우 독특하다.

첫 임신 전에도 대형 유인원의 것보다 크다.

암컷 기호의 원 부분은

동종 수컷의 체중과 비교한 상대 체중을 나타낸다.





빛고을광주에서

여송 김성훈



심리학자들과 철학자들은 화를 터뜨리는 대신
냉정함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행위가
얼마나 이로운가에 대해 토론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 (Nicomachean Ethics)》에서
지적한바와 같이, 누구나 화가 날 수 있다.





그러나 적절한 목소리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목적을 위해
분노를 표출하려면
신중함과 판단력
그리고 약간의 덕행이 필요하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뇌는 길들일 수 있다.



조바니 프라체토 조감정의 재발견


"우리 주위의 환경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는데,

리는 항상 그대로 있길 원하지.

이번에도 그랬던 것 같아.

그게 삶이 아닐까?

봐, 인생은 변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잖아.

우리도 그렇게 해야 돼."



사라진 치즈로 인해

절하고 분노하고
불안해하고 있는 있는 헴에게
허가...






스펜서 존슨 [누가 치즈를 옮겼을까?]

한 움큼의 모래가 산사태를 만들지 못하듯이,

한 방울의 물은 소용돌이를 만들기에 중분하지 않다.

창발(創發,emergence)은

개체들의 집단, 다수, 군중,무리를 필요로 한다.

많아지면 달라진다.




티끌 하나가 산사태를 일으키지는 못한다.

그러나 티끌이 모여 언덕을 이루고

산을 이루면 산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온도와 같은 특정 물리적 속성은 집단적 행동에 의존한다.

우주에 떠다니는 분자 하나는 사실상 온도라는 속성을 갖고 있지 않다.

온도는 분자들의 집단이 갖고 있는 집단적 특성이라고 볼 수 있다.

비록 온도는 창발적 속성이지만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으며

신뢰할 수 있고 예측할 수 있는 특성이다.

다시 말해 실제이다.

다수가 소수와 다르게 행동한다는 사실을 과학은 오래 전에 이해했다.

군중은 창발 현상을 위한 복잡성의 필요 수단을 낳는다.

구성원의 수가 늘어나게 되면

둘이나 그 이상의 구성원 사이에서 일어 날 수 있는 상호작용 수의 총합이 지수적으로 늘어난다.

연결의 수준이 높아지고 구성원의 수가 많아지게 되면

군중의 동력이 힘을 얻는다.

많아지면 달라진다.


케빈켈리 [통제불능:자율적]

기계들이여~
스스로 움직여라
스스로 생존하라.
그리고
스스로 터득하라..

산업혁명은 에너지를 전환하고 상품을 생산하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 그 덕분에 인류는 주변 생태환경에 예속된 상태에서 대체로 해방되었다. 인류는 숲을 베어내고, 늪의 물을 빼고, 강을 댐으로 막고, 들판에 물을 대고, 수십만 킬로미터에 달하는 철로를 놓고, 고층 빌딩이 즐비한 거대도시를 건설했다.

세상이 호모 사피엔스의 필요에 맞게 변형되면서, 서식지는 파괴되고 종들은 멸종의 길을 걸었다. 과거 녹색과 푸른색이던 우리의 행성은 콘크리트와 플라스틱으로 만든 쇼핑센터가 되어가는 중이다.

오늘날 지구상에는 70억 명이 넘는 사피엔스가 살고 있다. 이 모든 사람을 한데 모아 거대한 저울 위에 세운다면 그 무게는 약 3억 톤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가축화한 모든 농장 동물 암소, 돼지, , -을 더욱 거대한 저울 위에 세운다면 7억 톤에 달할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현재 살아 있는 대형 야생동물 호저에서 펭귄, 코끼리에서 고래에 이르는-의 무게를 모두 합쳐도 1억 톤에 못 미친다.

어린이 도서나 각종 도해서, TV 화면은 여전히 기린과 늑대와 침팬지로 넘쳐나지만 실제 세상에는 이들이 매우 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다. 세상에 남아 있는 기린은 약 8마 마리에 지나지 않지만, 가축화된 소는 15억 마리에 이른다. 늑대는 20만 마리밖에 남지 않았지 개는 4억 마리다. 침팬지는 25만 마리에 불과하지만, 사람은 70억 명이다.

인류는 정말로 지구를 접수했다.

[사피엔스] 유발하라리

오늘날의 풍요사회에서 건강에 가장 심각한 문제는 비만인데,

그 폐해는 가난한 사람이(이들은 햄버거와 피자를 잔뜩 먹는다)

부자들보다(이들은 유기농 샐러드와 과일 스무디를 먹는다) 훨씬 더 심각하게 입는다.

미국사람들이 해마다 다이어트를 위해 소비하는 돈은

나머지 세상의 배고픈 사람 모두를 먹여 살리고도 남는 액수다.

비만은 소비지상주의의 이중 승리다.

사람들은 너무 많이 먹고 (적게 먹으면 경제가 위축될 테니) 다이어트 제품을 산다.

경제성장에 이중으로 기여하는 것이다.

유발하라리 [사피엔스] P493

 

지은이 :  마이클 S. 가자니가

옮긴이 :  김효은

펴낸곳 :  바다출판사

펴낸날 :  2009년 4월 13일 (초판1쇄)

읽은때 :  2009. 8. 13 ~ 8. 15

 

"이 책은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한 '신경윤리neuroethics'의 쟁점들을 저자의 뇌과학 지식과 인지심리학, 윤리학, 철학적 분석으로 잘 어우러 소개, 분석하고 있다. '신경윤리'라는용어는 윌리엄 사피어가 처음 사용했고, 공식적인 학문 분야로 대두된 것은 2002년 국제 컨퍼런스 'Neuroethics : Mapping the Field'에서이다. '신경윤리'란 뇌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인간, 자아, 자유의지의본성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꽤 넓은 분야들을 망라하는 통합적 학문 분야이다." (251쪽, 옮긴이의 글)

 

"가자니가는 국내 일반 대중들에게는 비교적 덜 알려져 있다. 가자니가는 우리나라에 비교적 알려져 있는 뇌과학자인 로저 스페리와 함께 분할뇌 실험을 이끈 장본인으로, 뇌영상을 통한 마음의 기능을 탐구하는 인지신경과학cognitive neuroscience이라는 제2세대 인지과학 분야를 개척한 인지과학자, 신경과학자이자 심리학자, 신경윤리학자이다." (256쪽, 옮긴이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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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줄긋기 ##

 

* 인간의 뇌는 23주까지는 생명력이 없고 현대 의학기술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이 분명한데도, 이 사실은 논의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 것 같다. 이것이 바로 신경 '논리'가 실패하는 부분이다. 도덕적 논변이 생물학적 내용과 섞이면 열정, 믿음, 그리고 완강하고 비논리적인 견해들이 구분되지 않게 된다. (29쪽)

 

* 태아를 '우리 인간들 중의 하나'로 판단하고 인간의 도덕적, 법적 권리를 허락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생명이 지탱 가능하고 신생아실에서 제공하는 약간의 보조로 생존할 수 있고, 정상적 뇌를 가지는 생각하는 인간으로 발달할 수 있는 시기는 14일보다는 훨씬 뒤인 23주는 되어야 한다. (30쪽)

 

* 줄기세포 연구는 14일이라는 한계선을 고수하는데, 그전에는 생명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배아는 인간 존엄성이란 개념을 만들어 내고, 유지하고, 변경하기 위해 세계를 지탱하고 해석하는 생물학적 구조인 신경체계를 14일까지는 발달시키지 않는다. (37쪽)

 

* 연구를 위해 만들어진 14일된 배아에 인간이 가지는 도덕적 지위를 부여할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배아는 개체라고 할 수 없다. (43쪽)

 

* 노화 연구는 사람들이 죽음을 맞을 때까지 건강한 정신적.신체적 삶을 영위하려는 욕구가 동기가 될 때 가장 바람직하다. 단순히 신체적 삶을 연장하려는 욕구는 바람직한 동기가 아니다. (46쪽)

 

* 시냅스 연결의 변화는 전전두 피질과 해마에서 가장 현저하게 나타난다. 뇌가 노화했다는 전형적인 징후가 생기는 것은 놀라운 일은 아니다. 전전두 피질은 작업 기억--마음에 있는 메모지처럼 사물들의 목록을 유지하는 기능을 하는 것--에 영향을 미치는 뇌 영역이다. 해마는 사건들에 대한 정보를 수합하고 이 정보가 장기 기억에 저장되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뇌 안의 심층 구조이다. 나이가 들면 전전주 피질에서 뉴런들 간의 연결(시냅스)의 수가 감소할 뿐만 아니라, 미엘린myelin(신호를 더 빨리 전달하도록 돕는 뇌세포를 감싸는 지방막)도 두드러지게 파괴된다.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연구는 전전두 피질의 감소와 사물이 발생하는 순서(임시 기억), 그리고 작업 기억(메모장 기억)과 관련된 기억 상실이 직접적으로 연관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50쪽)

 

*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우리가 건강을 최대한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노화 연구의 바람직한 목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52쪽)

 

* 알츠하이머 병은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비정상적 노화이며, 미국인 중에서 100만 명이나 이 병에 걸린다. 85세 이상의 사람들 중 4분의 1은 알츠하이머에 걸리며, 노인들에게 이 병은 일종의 '노년 전염병'이 되어 가고 있다. [...] 알츠하이머 병은 15년까지 지속될 수 있고, 끝내는 생명을 앗아가는 천천히 진행되는 질환이다. 먹고 숨 쉬는 신체를 가지고 있지만, 마음은 자신의 신체를 그 자체로 알아볼 수 없는 상태이다. (53쪽)

 

* 이식된 뇌--말하자면, 심장을 관통한 총알로 전쟁터에서 죽은 젊은이의 뇌--는 바로 그 젊은이이지, 뇌 이식을 통해 의학적으로 치료된 당신은 아니다. 이 단순한 사실은, 당신은 바로 당신의 뇌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화학물들이 조정하는 패턴으로 기능을 수행하면서 수천 개의 피드백 연결이 통제하는 거대한 연결망 안에서 상호 연결되는 뉴런들, 이것이 바로 당신이다. 그리고 진정 당신이 되려면 이런 모든 시스템들이 함께 작동되어야 한다. (58쪽)

 

* 1941년 베를린의 독가스 처리실에서 자비살인이 시행되었고, 7만 명이 넘는 남성과 여성이 살해되었다. "안락사는 또 다른 모습으로 수행되었다. 독일제국 시기 동안 병원이나 정신병원에서 단식 요법이나 약물의 대량 투여로 환자들이 죽었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추정컨대 20만 명의 사람들이 여러 가지 안락사 프로그램으로 죽었다"고 알려진다. (60쪽)

 

* 어떤 특질들이 유전 가능한 요소를 가진다는 것은 유전자가 뇌발달 및 개인의 기질을 관리하는 두뇌 시스템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의 기본 기질은 심리적 상황들이 드러날 때 그들의 감정을 좌우하며, 사건들을 해석하는 경향성을 보여 준다. 이런 식으로, 유전자는 정신적 삶에서 역할을 담당한다. 이것은 유전자가 우리의 모든 움직임, 사고, 그리고 반응을 결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특질들을 물려받는다는 의미일 뿐이다. (75쪽)

 

* 가정환경(형제 간에 공유되는 환경의 부분)은 단순히 작은 역할만 할 뿐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는지를 형성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우리가 공유하지 않는 환경이다. (76쪽)

 

* 중국에서는 현재와 같은 성비가 지속될 경우 20년 내에 결혼 적령기의 여성보다 결혼 적령기의 남성이 1500만 명이나 더 많게 된다고 예측했다. 문제는 성비의 균형이 이렇게 깨지면 더 공격적인 사회가된다는 것이다. 결혼과 가족이라는 사회화 작용 없이 남성이 추위 속에 남겨져 좌절하게 되면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다. 따라서 남아 선호라는 개인적 결정은 결국 사회적인 걱정거리를 만들어 낸다. (79쪽)

 

* 나는 착상전 유전진단이 심각할 정도로 터무니없다고 믿지 않으며, 신생아로부터 질병을 제거할 수 있는 장점이 남용이 일으킬 문제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지도 않는다. 착상전 유전진단은 더 똑똑한 아이를 선택하기 위해 사용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시도하기를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심리학적 발달의 본성과 메커니즘에 대해 아는 바에 따르면 유전자가 완전히 숙명을 결정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유전적으로 구성된 아이가 독자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환경과 상호 작용을 하고 난 후에야 성인의 정신 능력에 도달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특정한 특질을 선택하는 것은 삶의 역사에서 작은 부분일 뿐이다. (84쪽)

 

* 나는 자동적 기량motor skill을 증진시키는 신체 기능 향상제는 부정행위라고 생각하지만, 어디에 차 열쇠를 두었는지를 기억하게 도울 수 있는 정신 기능 향상제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전자의 경우 경쟁자와의 사회적 계약이 깨지지만, 후자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자연인을 응원하면서도 우리 내면의 소리를 조심스럽게 들어야 할 것이다. (103쪽)

 

* 신경과학은 행동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을 보여 주며, 그를 통해 궁극적으로 어떤 행동(범죄나 그 반대)의 원인을 뇌 기능의 차원에서 설명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경과학이 행위자의 무죄를 증명해 주는 것은 아니다. (126쪽)

 

* 개인적 책임이란 공적 개념이다. 개인적 책임이란 집단 안에 있는 것이지 개인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당신이 지구상의 유일한 사람이라면 개인적 책임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책임이란 당신이 타인의 행동에 대해, 그리고 타인이 당신의 행동에 대해 가지는 개념이다. (한 명 이상의) 사람들이 함께 살 때 규칙을 따르게 하고 이 상호 작용으로부터 행동의 자유라는 개념이 발생한다. (126쪽)

 

* 만약 뇌가 어던 생각이 의식적으로 자각되기 전에 뇌가 먼저 작동한다면, 뇌가 마음을 작동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이것이 신경과학에서 결정론을 주장하는 기본 아이디어이다. 이 생각은 1980년대 벤저민 리벳의 작업을 통해 사람들의 주목을 끌게 되었다. 리벳은 자발적으로 손을 움직이는 동안의 뇌 활동을 측정했다. 리벳은 실제로 손을 움직이기 전(500~1000밀리초 전)에 이미 뇌 활동의 신호(준비전위readiness potential)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리벳은 우리가 손을 움직이겠다는 의식적 결정을 내릴 때 550~1000밀리초 사이 어느 시점에 "그 유명한 시간 t'를 결정하도록 했다. (128~129쪽)

 

* 책임의 문제는 (학교 버스를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의 문제처럼) 사회적 선택의 문제이다. 신경과학적 용어로 말하면, 어느 누구도 다른 이보다 책임이 더 있거나 덜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결정론적 체계의 부분으로서 언젠가는 완전히 이해될 것이다. 그래도 사회 규칙 안에서 만들어진 책임이라는 개념은 뇌의 신경 구조 안에는 없다. (140쪽)

 

* 뇌파에 대한 정보를 사용해서 어떤 사람의 생각과 의도에 대한 이야기와 이론을 만들어 낼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다. 뇌파 정보로부터 만들어 낸 이야기는 기껏해야 상황적 증거이거나 소문이고, 법정에서 어떤 이론을 만들어 내는 것은 과학을 오용하는 것이다. 신경과학은 두뇌나 뇌파검사 기록에서 생각들이 어떻게 보여지는지에 대해 논쟁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증거들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모든 생각은 뇌 안에서 만들어지지만 우리는 그런 생각들을 아예 읽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154~155쪽)

 

* 새로운 하이테크놀로지를 사용해서 마음 상태에 대한 이미지를 얻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우리의 가장 깊숙한 자아는 상실되고 시장성 때문에 자아동일성이 외부로 나타나게 된다. (157쪽)

 

* 어떤 사람의 생화학적 환경을 정신적으로 유능하게 만들려고 조작하는 것은 완전한 꿈이다. 정신병 치료약은 장애의 징후만 치료하는 것이지, 그 기초가 되는 구조 자체를 치료하지 않는다. (160쪽)

 

* 뇌 상태가 어떻게 정신 상태와 관련되는가에 대한 현재의 지식은 제한되어 있고, 그래서 뇌 정보를 사용하는 거짓말 탐지기와 약물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는 정신 상태의 가능성은 법정 밖에 있을 필요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왜냐하면 '마음 읽기' 테크놀로지는 사실상 마음을 읽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매락적으로 해석되어야 할 자료들일 뿐이다. 신경과학은 뇌를 읽는 것이지, 마음을 읽는 것은 아니다. 마음은 뇌에 의해 완전히 가능하게 되지만, 전적으로 다른 실체다. (160쪽)

 

* 인간의 뇌는 과거에 대한 잘못된 기억을 확실하게 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우리는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한다. 주어진 순간에, 우리는 기억의 요소들00우리 자신에 대한 관점과 집중도 그리고 그들 사이의 정서적 상태--에 따라 현재 들어온 정보들 중 한 측면에만 주목할 수 있다. 나중에는 다른 측면들에 주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두 번째 회상할 때 첫 번째의 기억과 혼동하면 우리의 뇌는 원래의 상황과 두 번째 회상할 때의 다른 상황들을 조화시키려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두 가건들을 섞어서 기억 혼합물을 만들어 내기 시작하면서 두 이야기들을 갑자기 혼동한다. 정확한 기억이란 이상적인 상황일 뿐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은 슬픈 사실이다. (163쪽) 

 

* 기억에 대한 많은 연구들은 핵심을 이해하는 것과 세세한 것을 보고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이것을 알면 법정에서 증언이 사용되는 방식이 영원히 바뀔 수 있다. 게다가 기억이 어떻게 실제 상황을 왜곡하는지를 이해하게 되면 증언을 획득하는 새로운 기법을 만들어야 한다. (166쪽)

 

* 하버드 대학교의 대니얼 샥터는 기억 망상에 관한 그의 독창적인 연구에서, 기억에 영향을 미치는 생략과 위탁의 기본 오류들이 있다고--그가 기억의 일곱 가지 죄악이라고 부르는--주장했다. 그것들은 소멸transience(시간에 따라 흐려짐), 정신없음absentmindness(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잊어버림), 막힘blocking('혀끝에서 맴도는' 어떤 것), 오귀속misattribution(강간당한 여성이 텔레비전에서 본 얼굴을 강간범에게 잘못 귀속시킬 때처럼), 암시성suggestibility(매체를 포함한 다른 이들의 기억을 왜곡), 편견bias(우리의 편견이 어떻게 기억에 영향을 미치는지), 지속성persistence(원치 않는 기억을 계속적으로 회상하는 것)이다. (169쪽)

 

* 우리의 뇌는 극단적인 효율성에 적응한다. 이 때문에 뇌는 유입되는 정보를 우리가 현재 세계에 대해 갖고 있는 믿음에 잘 맞게끔 왜곡한다. 고정관념 편견은 들어오는 정보를 특정한 저장 범주에 맞추려고 할 때 발생한다. 범주들은 종종 특정한 느낌이나 믿음과 연관되며, 이 연관으로부터 고정관념이 형성된다. 고정관념 이론은 1954년 <<편견의 본성>>이라는 책에서 고든 앨퍼트가 처음 제시하였고, 심리학 분야에서 널리 받아들여져 왔다. (180쪽)

 

* 우리의 좌뇌가 자신의 자기 이미지나 지식 혹은 개념틀과 잘 맞지 않는 정보를 만나면, 좌반구 해석자는 그 정보들을 이해하고 매개하기 위해 하나의 믿음을 만들어 낸다. 이 해석자는 패턴과 질서 그리고 인과관계를 추구한다. 해석자가 만들어 낸 믿음들 중 우리가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종교적 믿음이라는 문화 현상이다. (200쪽)

 

* 거쉬윈드 자신은 마음의 작용을 더 많이 이해하기 위해선 측두엽 간질을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측두엽 간질에서 보이는 인격의 변화는 행동을 이끄는 감정적 힘의 물리적 기반인 신경 체계를 판독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일 수 있다" (209쪽)

 

* '마음을 읽는'--즉 행동을 설명하거나 예측하기 위해 타인에게 정신적, 감정적 상태를 부여하는--방법에 대한 대표적인 두 이론이 있다. 첫 번째 이론은 모의 이론simulation theory(ST)인데,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의 입장에 놓고 그 사람의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할지를 헤아려 보는 것이다. [...] 모의 이론과 경쟁하는 이론은 중복되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론-이론theory-theory(약자로는 TT)이다. 이론-이론은 "마음에 대한 통속 이론 안에 인간 행동을 이해하는 데 사용하는 정신적 용어와 개념들을 넣어 설명력과 예측력을 얻는다고 주장한다. (224쪽)

 

* 이런 모든 논변들을 고려해 본 결과, 모의 이론이 맞다고 믿는다. 신경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거울 뉴런이 모의 이론을 지지할 수 있다. 거울 뉴런은 '행위 이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여겨진다. 인간의 거울 뉴런에 대한 단일 세포 연구는 윤리적 문제 때문에 불가능하지만 신경생리학과 뇌영상의 실험들은 거울 뉴런이 행위 모방뿐만 아니라 행위 이해를 돕는 기능을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226~227쪽)

 

* 우리는 견고한 진리들로 만들어지는 보편 윤리가 아니라, 맥락적이고, 감정에 영향을 주고, 생존을 돕게끔 고안된 구체적인 상황들로부터 만들어지는 보편 윤리를 찾아야 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 모두가 동의할 수 있고 의존해서 살아갈 그런 절대적 진리에 도달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도덕이란 것이 맥락적이고 사회적이며 신경 매커니즘에 기반해 있다는 것을 알면, 윤리적 문제들을 다루는 방식을 결정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신경윤리에 있어서 필수적인 사항은 다음이다. 우리가 뇌의 신경 구조를 바탕으로 사물에 반응한다는 사실을 이용해서, 주어진 특정 맥락에서 가장 좋거나 논리적인 해결책을 제공하는 직관적 본능을 논의하는 것이다. (229쪽)

성격의 탄생 Personality : What Makes You the Way You Are
지은이 : 대니얼 네틀 Daniel Nettle
옮긴이 : 김상우
펴낸곳 : 와이즈북

* 경희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다.

지극히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서 책을 읽었다. 특별한 이유라기보다 요즘 ‘결정’을 내리는 데 문제가 있어서 내 성격에 뭐라도 있나 싶어서 찾아봤다. 이게 솔직한 이유이다. 그냥 요즘 계속 선택에 선택을 거듭하고 그 기간이 점점 가까워져 오는 데에도 그걸 미루고 있어서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결정을 내려야할 게 두 가지가 있는데, 이유도 확실하게 있다. 하나는 뒤가 없어서 다른 하나는 두 가지 모두 장점을 취하고 싶어서 그렇다. 까닭을 다 알고 있는 데에도 망설이는 게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는데, 일단 이 두 문제가 앞으로 일을 판가름할 거라고 내 나름대로 생각을 해서 그렇다. 나름 나한테는 중대한 문제라는 거다. 남들한테는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여하튼 책을 찾아봤는데, 결정에 도움을 주지는 않아도 내 성격이 왜 그런가 정도에는 답을 주었다. 이렇게 계속 망설이는 것도 내가 가진 성격의 특성 중의 하나라는 것도 알았다.

책의 앞페이지에는 독자들이 자신의 성격을 알기 위해서 제공되는 성격진단표가 있는데, 10문항밖에 없지만 신빙성이 있는 테스트라고 한다. 심리학자들은 사람의 성격을 5부문으로 나눈다. 그것들은 각각 ‘외향성’, ‘신경성’, ‘친화성’, ‘성실성’, ‘개방성’이며 이것들은 모두 혜택(장점)과 비용(단점)이 존재한다.

5대 성격특성 요약

5대 성격특성 요약(-238쪽)


나는 외향성은 중간, 신경성은 중상, 성실성은 높았고 친화성은 모든 성별에 비해서 낮은 편에 속하였고 개방성은 중상으로 나왔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외향성이나 신경성, 성실성 등의 단어와 책에서 규정하는 성격들은 그 의미가 약간 다르다. 외향성“자극과 동기에 대한 반응성이 크”“긍정적인 감성시스템의 반응성”이 큰 것을 말한다. 신경성“부정적인 감정시스템의 반응성(반응 정도)을 나타”내며 이 시스템의 반응성이 크면 신경성이 높은 편에 속한다고 말한다. 성실성“통제 메커니즘”이 강한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것이며 친화성은 친사회성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친화성 수치가 높다는 것은 타인의 마음상태에 관심을 갖는 경향이 강하고, 이를 행동에 옮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 개방성“의미영역과 의미처리 네트워크 간의 광범위한 상호작용─개방성이 낮은 사람의 마음 속에서는 서로 분리되어 있는─ 즉 광범위한 연상”을 말한다.

이를 내 성격진단표 결과에 맞추어 성격을 묘사하자면, 일단 나는 중간의 외향성을 가지고 있고 일상에서 비롯되는 어려움에 비교적 더 큰 영향을 받는 편이며 부정적인 감정을 내 자신에게 돌리는 경향이 있다. 불안한 환경보다 안정된 상태를 더 선호하며 그러한 환경에서 더 잘 순응하는 편이며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이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성질을 가졌다. 그렇지만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한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징을 가져서 그런지 사회가 말하는 고정관념에 얽매여있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극단적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앞에서 말하였던 결정을 쉽사리 내리지 못하는 것은 신경성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저자는 신경성이 다소 높은 사람들은 “성인이 될 때까지도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목표가 여러 번 변했다”(-148쪽)고 말하는데, 나 역시 그런 과정 속에 있는 것 같다. “제대로 살아왔는지, 또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지 끊임없이 걱정하며 궁금”(-147쪽)해하는 것도 신경성 수치가 높은 사람들의 특징이라 말하고 있다. 지금 이렇게 부유하고 있으나 신경성이 주는 혜택, 즉 “부정적인 감정을 동기 삼아 더 노력해서 높은 성취를 이루는 것이 바로 신경성의 ‘동기 이점motivational advantages’”(-155쪽)이 있다고 하니 위로가 된다.

물론 이러한 것들이 모두 절대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성격을 5개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하더라도 그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으며 성격은 맥애덤스가 주장했던 것처럼 5대 성격특성 수치, 개인별로 독특한 행동 패턴characteristic behavior patterns, 개인적인 라이프스토리personal life story에 따라서 모두 다르기 때문에 사람들의 성격은 다르다. 즉 성격특성 수치가 같게 나왔다고 해서 같은 성격을 지닌 것도 또 어떻게 행동할 것이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사람들이 성격을 알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자신의 성격에 문제가 있다고 성격을 바꾸라는 말이 아니다. 그럴수도 없다. 필요한 것은 자신의 성격이 가진 의미와 장단점을 이해하고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현명한 선택을 하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많은 것 중 하나가 자신에 대한 자각이다.”(-282쪽)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자각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나를 알기 위한 도구 중의 하나로 성격을 진단한 것이다. 백퍼센트 맞을 수는 없겠으나 비교적 객관적인 지표를 가지고 나를 바라볼 수 있는 결과 중의 하나를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좋았다. 선택은 나의 몫. 하지만 여전히 어렵겠죠.



혜아룜이 쓰다.

<뇌 과학 기본 내용에 충실한 책>

신경심리학 입문-stirling

-앨런 홉슨

브레인 스토리-수전 그린필드

뇌와 기억의 수수께기-다이스게

알고 싶었던 뇌의 비밀-정신 세계사

두뇌의 신비 자궁에서 무덤까지-강성종

마음을 움직이는 뇌 뇌를 움직이는 마음-해나무

인간 뇌 해부도 입문-학지사

십대들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스트로치

뇌 기억력을 키우다-이케가야 유지

교양으로 읽는 뇌 과학-이케가야 유지

뇌로부터 마음을 읽는다-오키고스케

생리심리학의 기초-시그마플러스

춤추는 뇌-김종성

뇌의 설계도-마사오

-톰슨

감각과 지각-시그마 플러스

꿈꾸는 뇌의 비밀-안드레아룩

우리 아이 머리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리즈 엘리엇

 

<뇌 과학으로 사고의 폭을 넓혀주는 책>

뇌와 내부세계-솜즈/턴불

부자가 되는 뇌의 비밀-유상우

당신의 뇌를 점검하라-에이멘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은 왜 빨리 흐르는가-드라이스마

뇌를 통해 본 아동의 정서-김유미

의학 신경 해부학-이원택/박경아

사랑을 위한 과학-토마스 루이스

뇌와 기억 그리고 신념의 형성-시그마 플러스

나는 그림으로 생각한-템플 그랜딘

역동적 기억-schank

생각의 벽-요로 다케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올리버 색스/살림터

뇌의 나 나의 뇌-레스탁

마음이 태어난 곳-케리머크스

지능의 발견-해바라기

망각-솅크

마이드 해킹-탐 스태포드

화성의 인류학자-올리버 색스

마음 맹-Baron-Cohen

 

<통합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뇌 과학책>

놀라운 가설-크릭

뇌 과학과 철학-페트리샤 처치랜드

마음의 역사-미슨

유뇌론-요로 다케시

의식의 기원-쥴리안 제임스

데카르트의 오류-다마지오

신은 왜 우리를 떠나지 않나요-앤드류 뉴버그

인식의 나무-마투라나/바렐라

신경과학과 마음의 세계-에델먼

지상최대의 쇼-도킨스

동물이 보는 세계, 인간이 보는 세계-도시다카

뇌가 나의 마음을 만든다-라마찬드란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올리버 색스

공감의 심리학-요아힘 바우어

의식과 자유-이정원/동녁

의식의 탐구-코흐

뇌는 하늘보다 넓다-에델먼

스피노자의 뇌-다마지오

몸의 철학-G.레이코프, M.존슨

성격의 탄생-다니얼 네트

마음 챙김-엘렌랑그

착각하는 뇌-이케가야 유지

창의성-와이스 버그

두뇌 실험실-라마찬드란

인문학에게 뇌 과학을 말하다-크리스 프리스

의식의 재발견-후베르트

뇌의 마음-월터 프리먼

뇌와 가상-모이 겐이치로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대니얼 길버트

성격의 탄생-다니엘 네튼

1만년의 폭발-그레고리코크

스틱-칩 히스.댄 하스

기적을 부르는 뇌-노만 도이지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루리야

지워진 기억을 쫓는 남자-루리야

노래하는 네안데르탈인-미슨

생각하는 외, 생각하는 기계-홉킨스

 



근대이후의 학문들은 제각기 독립된 분과로 자리 잡으면서 학문적 지식의 깊이를 더해갔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이러한 세분화와 전문화의 양상은 오히려 각 학문분야의 적극적 교류와 협력, 경계 허물기를 요구하는 형태로 나아가고 있으며, 이러한 융합의 필요성은 인문학의 위기나 과학기술계 내부에서 직면한 난점들을 타계하기 위한 돌파구로써 각광받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통섭이나 학제간연구의 흐름들도 이러한 변화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인문학과 자연과학, 그리고 각 분과 학문 내에서도 경계와 영역이 철저히 분리되어 있는 국내 학계의 현실에서 이러한 변화의 모색은 더욱 절실하게 와 닿는다.


‘새로운 인문학자들’

  이 책 역시 이러한 흐름의 한 단편을 보여준다. 인터넷사이트 엣지(www.edge.org)를 운영하는 존 브록만과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은 인간 본성, 인간의 뇌와 마음, 우주에 대한 새로운 접근 등의 주제를 수많은 과학 이론과 인문학적 상상력을 가지고 풀어낸다. 생물학, 물리학, 정보통신공학의 발전은 인간에게 자연과학과 인문학이라는 분류체계가 무의미해지는 질문을 던진다. 과학 극단의 영역에서 필자들이 직면한 질문은 인간, 우주, 기술에 대한 다분히 철학적인 화두이다. 이들은 인문학자가 아닌 과학자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연구가 밝혀낸 사실을 바탕으로 인문학자들과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위의 질문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내놓는다.


  책은 크게 3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호모사피엔스’로 인간과 동물의 차이와 공통점, 인간의 본성, 문화의 기원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2장은 ‘기계 인간’으로 기술과 인간의 관계, 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인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3장은 ‘진화하는 우주론’으로 현대 천문학과 물리학의 연구결과들이 보여주는 세계상이 어떠한지를 설명한다. 각 챕터를 구성하는 소주제들은 다양한 분야의 최전선에서 연구하고 있는 연구자와 엮은이의 대담을 에세이의 형태로 바꾸어 엮은 것인데, 각 소주제마다 책 1, 2권으로도 설명이 모자랄 내용을 소개하다보니 깊이 있게 논의를 전개하기 보다는 현재 자신의 연구가 다루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우리에게 새로운 지점을 보여주는 것은 무엇인지 정도로 간략하게 설명하는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연구자 소개와 함께 관련저작들을 소개하고 있어 좀 더 알아볼 수 있는 여지는 마련해 놓고 있다.


  각기 다른 분야의 여러 연구자들의 글을 모아놓은 것인 만큼 논의의 깊이와 수준이 제각각이고, 일치된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라, 하나의 맥락을 잡을 수는 없겠지만, 과학의 극점에서 연구자들은 세상과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책의 내용이 급진적이고, 기존의 학문에서 인간이나 세상에 대해 가지고 있던 관념과 배치되는 내용도 있어 인문학이나 예술을 공부하는 사람에겐 어느 정도 불편한 부분도 있을 것이고, 반박의 여지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분명한 토대를 바탕으로 한 논의이기 때문에 무시하고 지나칠 수만도 없다는 사실이다. 에필로그에는 책의 내용에 대한 여러  다른 배경을 가진 학자 혹은 일반인들의 적극적 동의나 신랄한 비판의 반응을 모아 실었는데, 이를 통해 불편함, 혹은 공감에 대한 단서를 좀 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박창우(홍익대학교 예술학과 석사과정)

목차
감사의 글
서문과학적 사고로 무장한 새로운 인문주의자들 _ 존 브록만

제1부 호모 사피엔스
01 왜 유럽과 아시아가 세계를 지배했는가? _ 제레드 다이아몬드
02 인간의 본성에 대한 생물학적 이해 _ 스티븐 핑커
03 인간의 본성이 권리를 얻다 _ 헬레나 크로닌
04 우리는 선천적인 사이보그다 _ 앤디 클라크
05 동물의 마음 _ 마크 하우저
06 요리의 진화 : 인간은 여전히 길들임의 노정에 있다 _ 리처드 랭검
07 연산에 의한 지각 _ 대니얼 데닛
08 독일산 셰퍼드의 귀는 어떤 모습인가? _ 스티븐 코슬린

제2부 기계 인간
09 소프트웨어는 문화의 용매다 _ 조던 폴락
10 두 번째 파도 : 선언문 _ 데이비드 겔런터
11 생명체 같은 시스템 만들기 _ 로드니 브룩스
12 마음 만들기 _ 한스 모라벡
13 양자 연산 _ 데이비드 도이치
14 무엇이 마음을 대신할 것인가? _ 마빈 민스키
15 특이점 이후 인간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_ 레이 커즈윌
16 사이버네틱 디스토피아―절반의 선언문 _ 제이런 러니어

제3부 진화하는 우주들
17 최후의 컴퓨터는 얼마나 빠르고, 작고, 강력한가? _ 세스 로이드
18 우주론의 황금시대 _ 앨런 구스
19 우주는 팽창과 수축을 영원히 반복한다 _ 폴 슈타인하르트
20 우리는 브레인 속에 있는가? _ 리자 랜들
21 고리양자중력 _ 리 스몰린
22 모든 것의 이론 : 종합과 전망 _ 마틴 리스

에필로그 이 책에 대한 반응들
니콜라스 험프리 ㅣ 제이런 러니어 ㅣ 조지프 르두 ㅣ 존 호건 ㅣ 티모시 테일러 ㅣ 카를로 로벨리
스티븐 존슨 ㅣ 리 스몰리 ㅣ 더글러스 러시코프 ㅣ 파이에트 허트 ㅣ 마크 D. 하우저 ㅣ 미아히 칙센트미하이
데니스 더턴 ㅣ 대니얼 데닛 ㅣ 하워드 라인골드 ㅣ 크리스 앤더슨

참고문헌
찾아보기
한/영 인명 대조표
나의 의지, 나의 사상, 나의 열정 문장속의 책(Old)

2009/01/16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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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는 자신의 전임자들이 인간에게 투사해놓았던 모든 관념적인 것을 가혹할 정도로 매몰차게 지워 없앴고,  동시에 부정적인 감정들을 전면에 부각시켰다.  그러나 사르트르의 이러한 철학적인 태도는 전쟁의 경험에서 파생된 것이었고,  오로지 이러한 관점에서 그 의미를 파악함에 옳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태와 공허함에 대한 사르트르의 저항정신도 이에 못지않게 강력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나치 사회주의자에 대한 저항 그리고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구축하고자 하는 시도로 나타났다.    "인간의 실체는 그가 행동으로 옮겨놓은 것에서 찾아야 한다."    또는   "현실은 오로지 행위 속에 있을 뿐" 이라는 철학적인 요청은 그의 철학 이곳저곳에서 셀 수 없을 정도로 자주 등장하였다.  허무함이라는 관념적 몽상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사르트르의 비판은 무자비한 것이었다.  이들은 자기 자신과 책임의식으로부터 도피를 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행위는 결국 자기기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바로 이와 같은 문제점에서 야심만만한 과제를 새롭게 찾아내었다.  [존재와 무]에 이어 발표된 저서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에서 그는 철학자를 계몽주의자로 정의하고,  그들의 새로운 임무는 인간들이 자유를 향유하고 이를 통하여 자기 스스로를 인간으로 실현해내도록 촉구하는 데에 있음을 밝혀놓았다.    지금까지 이 세계에 이미 내던져진 존재라는 의미에서 인간의 피투성(被投性)이 실존적인 필연성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인간이 자기 자신의 열린 미래를 위하여 자기 스스로를 만들어나가는 기투성(企投性)을 하나의 가능성으로 주목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의 기투이다.  이러한 기투가 전제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은 없다.  따라서 인간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 입안해놓은 것과 동격이 되는 것이다."  사르트르에 의하면 인간의 의지는 이러한 기투성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결과에 불과하며,  인간이 미래에 대한 구상을 세우면 인간의 의지는 거기에 맞추어서 부수적으로 따라붙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의지라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의식적인 결단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리는 결단은 결국 자기 자신의 미래에 대한 기투로부터 파생된다."  는 주장은 나의 여자친구 로잘리를 사로잡았을 뿐만이 아니라,  전후의 지성인들의 삶에서도 일종의 좌표가 되었다.  그러나 사르트르의 기투는 매우 개별적인 개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일종의 유행풍조가 되어 엇비슷한 모습으로 거리에 등장하였다.  검은색 계통의 옷을 입고 음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실존주의자들의 하루는 지하실의 재즈 카페와 대학교,  영화관과 커피숍 사이를 전전하며 지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르트르의 삶은 1980년에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흥미진진한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는 20세기 프랑스의 지성인들을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으며 그 자신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던 도덕적인 심급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에 대한 사르트르의 주장이 과연 현실성이 있는지,  이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한 사람의 개인이 내적 외적인 압박에서 완전히 벗어나 마치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어내듯이 자기 스스로를 완벽하게 기투해낼 수 있을까?  자기 스스로의 미래에 대한 '기획'을 자신의 의지에 앞서서 만들어낸다는 사르트르의 주장이 옳다면 인간은 모든 사회적인 압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그야말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완전한 지배자가 될 것이다.  자신의 충동,  관습, 열망, 도덕관념, 어린시절부터 몸에 밴 습관들을 자유자재로 제어할 수 있고,  외적 또는 내적인 상황을 판단하고 이를 변화시키는 데에는 단지 용기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 된다.  사르트르의 철학에서 '자기실현' 이라는 의미는 따라서 우리의 영혼을 구성하는 재고로 관리될 수 있는 대상이 된다.   팔다 남은 물건을 진열대에서 깨끗이 걷어내고 보다 흥미로운 물건들로 채워넣으면 해결되는 식이다.  예를 들면 내가 받았던 소민적인 교육이 혹시 걸림돌이 된다면?  그렇다면 이를 벗어던져 버리고 예술가 또는 플레이보이로서 내일을 생각하지 말고 매 순간 긴장이 넘치는 삶을 선택하면 된다.  이미 칸트도 자기 스스로의 문제에 대해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결단을 내리는 엄청난 힘을 인간의 의지가 행사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자유의지에 따르는 행동은 동시에 모두 선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 점에 있어서 사르트르의 태도는 칸트와 유사하였다.  사르트르는 칸트의 '도덕 법칙'을 전혀 신뢰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유는 자기결단의 산물이고 자기결단은 선한 것이라는 칸트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의지가 지닌 자유에 관한 문제는 그 자체를 별도의 사안으로 다루어야 할 만큼 복잡하다.  이미 앞서서 살펴본 것처럼 오늘날 대부분의 뇌 연구자들은 이 문제에 있어서 사르트르와는 전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자유스러운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자신이 타고난 성향,  자신이 겪은 경험 그리고 자신이 받은 교육의 산물이라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이 무엇인지 말해주는 것은 명확하게 전면에 드러나 있는 의식이 아니라,  어둠에 숨겨져 있는 무의식이라는 것이 두 번째 이유이다.   예를  들어보면 내가 수많은 외부적인 강요들로부터 벗어났다고 해도 내가 마음속 깊이 간직한 소망, 목표 그리고 동경들까지 벗어던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달리 말해서 내가 나의 욕망을 마음대로 제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나의 욕망이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뇌 연구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바로 이런 이유에서 내가 나를 '새롭게 창안해내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사르트르의 자유 철학이 아직도 매력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뇌 연구가들의 위와 같은 견해는 나에게 결코 반가운 소식은 아니었다.  오스트리아의 소설가 로베르트 무질의 소설 [특성 없는 남자]의 첫머리는 '현실 감각'이외에도 '가능성 감각'이라는 것도 깊이 생각하도록 만들었는데,  수많은 대안을 찾아낼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 것은 사실상 나의 유년 시절부터 지속되어 온 열망이었다.  그러나 실현시킬 수 있는 자유의지라는 것이 사실상 없다고 한다면 가능성 감각이란 것도 결국 말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내가 겪은 경험,  내가 받은 교육,  내가 쌓은 학식을 통해서 내가 이미 사회적인 부자유를 겪을 운명에 처해 있다고 한다면,  나는 결국 나의 행위를 통해서 사회적인 프로그램을 부지불식간에 반복하고,  그 과정에서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규범을 충족시키고 그리고 사회에서 나에게 부여해준 각본을 성공적으로 따르고 있는 셈이 되는 것이다.    내가 나의 의지,  나의 사상,  나의 열정의 산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알고 보니,  이데올로기와 각종 문화적인 표본이 반영된 결과물에 지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다른 말로 바꾸어보면 나에게는 나의 의지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고,  나의 독자적 상상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것들의 명의만 살짝 바꾸어서 마치 나의 것이나 되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뇌 연구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나의 의지 또는 나의 사상이라는 것은 별다른 것이 아니었다.  브레멘의 뇌 연구자 게르하르트 로트에 의하면 내가 행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유의지는 사실상 내가 목표로 하고 있는 자유의지에 불과하다.    우리의 의식이 우리 스스로를 터무니 없이 과대평가하는 것이 그 반증이다.  우리의 이마 뒤에 있는 전두렵 피질이 자신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이루어낸 독자적인 업적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을 따져보아도 그 역할은 그저 보조자에 지나지 않았다.   "행동을 제어하는 대뇌변연계를 전문가라고 한다면 우리의 이성이라는 것은 이를 보조해주는 스태프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행동을 '촉발시키는'  근원적인 결정권자는 간뇌에 위치한다.   간뇌는 복잡한 사고나 가치평가의 능력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경험과 각종 정서를 관장하는 전문가이자 동시에 감정의 제국을 핵심적으로 조율해주는 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정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것' 인지 여부를 판단하여 최종적인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대뇌 변연계이다. 

 

 

 

무의식의 어두운 힘이 여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굳이 부인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무의식으로부터 무엇이 파생되는가에 있다.  게르하르트 로트의 입장에서 보면 자유는 위에서도 서술한 것처럼 완전한 환상이다.  그러나 내가 나의 행동 동기를 완벽하게 꿰뚫어보는 경우는 자유의지가 사실상 개입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해서 내가 나 자신을 제대로 통찰하고 제어할 수 있다면,  나는 그만큼 무의식의 영향에서 벗어나 있고 동시에 나에게 일정한 자유의지가 제대로 행사되고 있다는 의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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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율적으로 자기 자신을 통제하기 때문에 어느 면에서는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개인적인 삶의 역사에 포위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곧 우리의 경험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자신의 경험이라는 틀 속에 갇힌 존재이지만 동시에 그 틀 안에서의 변화는 충분히 가능하고,  따라서 스스로의 자유를 지나치게 크게 또는 작게 설정해 놓을 필요는 없다.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이 자기 발전을 위한 확실한 첫걸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르트르가 설정해 놓은 내면적인 자유를 최대한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과도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될 것이다.  실존주의적 인간은 계획의 주체가 아니라 실존주의 철학에서 요구하는 의지에 자기 자신을 무차별적으로 맞추어 나가야 하는 객체가 되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윤리적 요청과 마찬가지로 실존주의의 요청은 무차별적이고 지나치게 과도한 면이 있는 것이다.

 

 

 

이성과 감정은 매우 강한 상호의존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미리 예측한 그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고,  이는 좋은 뜻을 지닌 수많은 사상들이 현실화되지 못하고 사장되는 이유가 된다.    알코올 중독자가 술을 끊겠다는 결심을 내놓고,  직장인이 상사에게 직언을 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하지만,  막상 때가 되면 유야무야가 되어버리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이다.  현실화되지 못하고 꿈에 머물고 만 소망들이 어디 한둘일까?   이러한 일은 한 개인에게는 분명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지만,  그러나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반드시 나쁜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인간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의 개인적인 모든 소망을 스스로 실현하겠다고 나서는 세상은 분명 파라다이스는 아닐 것이다.  또한 외적인 강요들도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점도 역시 염두에 두어야만 할 것이다.  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의 복원력과 안정성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가족의 속박,  고향에 대한 애증,  소중한 회상으로부터 벗어나서 얻은 자유는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으로 가는 길을 보장해주지는 못하는 것이다.

 

 

 

심리적인 특성이 행동을 규정하는가,  아니면 그 반대로 행동이 심리적인 특성을 규정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양자택일이 아니다.  행동과 뇌의 상태는 서로서로 활기차게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행동과 존재,  존재와 행동이 끊임없이 연속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두 비 두 비 두(Do be do be do)!     존재와 삶의 끊임없는 이중주의 내용이 얼마나 풍부한가는 사람에 따라서 상이하고,  또 그 사람의 삶의 형편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내가 나 자신의 꿈을 현실화할 수 있는지 그 여부는 내가 물질적인 자유,  즉 경제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에 달려 있기도 하다. 

 

 

 

-[나는 누구인가?]  p.428~435

의식의 재발견

 

의식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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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마르틴 후베르트 지음
역자
원석영 옮김
출판사
프로네시스 | 2007.04.27
형태
페이지수 328 기타정보
ISBN 10-8901065614
이용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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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뇌 과학 이야기. 이 책은 뇌 연구자들이 수백 년 동안 연구한 뇌와 마음의 관계에서부터 의식과의 관계, 전통적인 인간상의 변화와 미래 인간상에 관한 내용을 담아 설명한다. 또한 뇌 연구의 현재 상황을 비판하면서 신경과학이 지향하는 인간상에 대한 내용을 다양한 인터뷰와 사례를 통해 흥미롭게 풀어낸다.

《의식의 재발견》은 새로운 인간상의 출현과 감정의 힘,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 정체성 놀이와 개인과 타자, 자유와 양심 등의 내용으로 구성했다.

목차

들어가면| 이 책의 독자들을 기다리는 세포하늘

1장 여러 인간상
새로운 인간상의 출현
전통적인 인간상: 정신은 본성을 형성한다|정신=뇌, 환원주의적 인간상|
제3의 인간상|결론: 뇌를 통해 인간을 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2장 감정의 힘
뇌는 얼마나 합리적인가?
감정 복합|우리 안에 있는 동물|감정은 어떻게 신체에서 나오는가?|
감정 시스템|합리적 감독관|오성에 저항하는 감정|모순적 조화?|
감정과 문화|결론: 감정 합리적인 존재, 인간

3장 의식과 무의식
뇌는 어느 정도의 의식을 원하는가?
어디에나 있는 무의식|의식이라는 극장에서|의식에 대한 설명, 꿈|
무의식의 영역에서|억압된 것과 억제된 것|
프로이트 식 꿈이론의 신경과학적 부활|결론: 열린 경계,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

4장 정체성 놀이
뇌는 어떤 나를 원하는가?
역설적인 나|나-해석자에 대한 탐색|신체, 뇌 그리고 자아|
나, 다른 사람 그리고 뇌의 평온|기억으로서의 동일성|
결론: 나라는 것, 구성의 실재성

5장 개인과 타자
뇌는 얼마나 사회적인가?
분열된 인간|미러셀의 작은 방에서|상호 주관적 태도와 시뮬레이션|
반영의 한계|관점전환|결론: 나와 타자, 단일성과 차이

6장 자유와 양심
누가 책임을 지는가?
자유의지를 가진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뉴런의 속박|손과 손가락 실험|
어떻게 인간 자율성을 구제할까?|환상의 실재성|양심의 자유|
결론: 현실주의적 자율성, 실천으로서의 자유의지

7장 뇌 혹은 영혼
세포하늘 여행의 결론

참고문헌
옮긴이의 말|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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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정보

상세이미지

▶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는 갈대인가? 신경세포의 지시에 따르는 로봇인가?

미국의 신경생리학자인 벤저민 리벳은 자유의지에 관한 유명한 실험을 했다. 그는 “당신의 손가락을 움직이고 움직인 시간을 명심하라”는 주문을 피실험자들에게 내렸다. 피실험자들의 뇌에는 뇌의 전기값을 기록하는 감지기가 부착되어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 결정을 내린 다음 손가락이나 손을 움직이고 동시에 언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시계를 보고 알아냈다. 그러면 실험 진행자는 그들이 알려준 시간과 뇌 전기 측정값을 비교했다. 그 결과 피실험자들이 결정을 내리기 1000분의 350초 전에 그들의 뇌에 어떤 신호가 떴다. 뇌는 피실험자들이 결정하기 전에 이미 손가락이나 손의 움직임을 준비했던 것이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뇌의 도구에 불과하다.
―본문 243~245쪽

천문학자들은 16세기에 등장한 새로운 도구인 망원경의 렌즈를 별이 총총히 빛나는 하늘로 향했다. 그때까지 우주의 중심은 지구이며 하늘은 한낱 지구를 도는 바퀴로 상상했으나 이제는 지구란 태양 주위를 도는 작은 점에 불과함을 알게 되었다. 그로부터 400년이 지나 인간은 자신의 사유기관을 들여다보는 기계를 만들어냈다. 천억 개의 신경세포로 이루어지고 신경세포 사이사이에 무수히 가지를 친 수백조 개의 신경이 연결된 세포하늘(뇌)을 손상시키지 않고도 고스란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수천 년간 지속되어온 인간에 대한 견고한 생각(인간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한다)에 결정적인 일격을 날렸으며, 뇌 연구자들은 의기양양하게 선언했다. “인간은 한 조각 자연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언명은 “나의 뇌의 신경세포가 발화한다, 고로 ‘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뇌 연구자인 볼프 싱어에 따르면 이러한 추세는 마침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나 다윈의 진화론보다 더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 전통적인 인간상에 맞서는 신경세포의 인간상

철학자들은 수천 년간 홀로 생각하고 결단하며 행동에 나서는 견고한 존재로서의 인간을 이야기해왔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갖고 있어서 자신의 물질적 조건들을 반성적으로 사유할 수 있고 해석할 수 있다. 물론 감정적인 충동 역시 인간에게 영향을 주긴 하지만 인간은 이성과 합리성이라는 능력으로 이를 적절히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신과 마음을 물질과 육체보다 우위에 두는 이러한 이원론은 20세기 들어 사유기관인 뇌를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뇌의 정보처리 과정을 파악함에 따라 심각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에 따르면 우리는 세계를 지각할 때 그 실재를 객관적으로 모사하는 게 아니라 뇌에서 실재의 정보들을 구성한다. 예를 들어 벽 앞에 놓인 꽃병에 대한 지각은 시각 시스템을 구성하는 뉴런들이 꽃의 색, 형태, 배경을 암호화하여 이러한 신호를 상호 교환하고 결합하여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율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이란 객관적인 실체가 아니라 뇌가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 저명한 신경철학자인 미국의 폴 처치랜드는 극단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나는 괴롭다,는 뉴런 a와 b가 발환한다로, 나는 인간에 대해 숙고하고 있다,는 유런 x,y,z가 발화하고 있다,로 번역할 수 있다.” 이러한 견해는 리탈린이나 프로작 등 신경전달물질을 투여하여 신체와 감정을 조절할 수 있게 됨으로써 더욱더 강화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환원주의적 인간상의 치명적인 약점이 곧 드러났다. 뇌 연구자들은 뇌의 특정한 영역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각종 데이터들의 분석은 세련된 통계치에 맞추어 조정된다. 무엇보다 인간 감정의 복잡 미묘한 체험들을 묘사할 때 신경세포의 작용은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대체 무슨 수로 신경세포의 기계적 과정이 우리가 느끼는 황혼의 장려함, 바이올린 현의 미묘한 울림, 사랑에 빠진 순간의 불가해한 심적 상황을 해명할 수 있겠는가?


▶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

전통적인 인간상은 더 이상 성립할 수 없으며, 이를 대체할 두 가지 인간상이 제시되었다. 하나는 인공물과 외과수술, 화학물질을 통해 임의로 조작될 수 있는 신경기계라는 물질주의적 관념이고, 또 하나는 정신과 마음이 뇌와 신체, 사회적 과정 간의 상호작용 속에서 자신을 발전시키는 존재로서의 인간상이다. 인간은 단순히 뉴런의 조종을 받는 로봇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 환경과 관계를 맺는 뇌의 도움을 받아 자신을 발전시키도록 고무하는 존재인 것이다.
정신과 물질, 마음과 신체는 특정한 상황에서 서로 경쟁하고 투쟁하지만 복잡하게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항상 균형을 이룬다. 감정이 먼저 생겨나 강

력한 힘을 발휘하긴 하지만 의식과 합리적인 사고가 이를 제어하며 주어진 상황을 넘어서 전체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게 한다. 다음 실험을 보자.

미국 심리학자 조슈아 그린은 영화의 소재로 쓰였을 법한 실험을 실시했다. 전시에 당신의 아이와 다른 사람들이 함께 지하실에 숨어 있다. 밖에서는 약탈하는 적군이 거리를 배회한다. 이때 당신의 아이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이제 두 가지 가능성만 존재한다. 당신 손으로 아이를 죽여서라도 조용하게 만들거나 적군들이 당신을 발견하여 당신과 아이와 지하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죽이거나이다. 이 상황에서 피실험자들은 그들의 아이에 대한 감정적인 애착을 극복하도록 도덕적으로 강제되었다. 그들이 갈등하며 숙고하고 있는 동안 무엇보다 합리적이고 인지적인 과제를 관장하는 뇌 영역들이 활동했다. 예를 들어 배외측 전전두피질, 즉 안쪽 두정엽 또는 전방 대상피질이 활동했다. 합리적인 해결책과 감정적인 본능이 갈등하자 외측 전전두피질은 통제 메커니즘을 작동시켜 합리적인 숙고가 감정적인 본능의 영향에 맞서게 하는 것이다.


신경과학이 제기하는 새로운 인간상은 뇌를 폐쇄적인 기계로 파악하지 말고 열려 있는 물질 시스템으로 파악할 것을 촉구한다. 인간은 뇌와 의식, 정신과 물질이 상호작용하여 발전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인간상의 기초인 자연과 정신의 도식적인 분리는 폐기되며, 인간을 신경기계로 파악하는 극단적인 환원론 역시 용납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정신은 반성과 의사소통을 통해 신경토대에 영향을 미치고 감정을 제어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의식, 나, 자유의지를 실체로 파악하는 전통적 인간관과 그러한 관념을 임의로 구성될 수 있는 허구적 구성물로 파악하는 포스트모던적 인간관을 모두 넘어설 수 있다.


▶ 이 책은… “인간을 시대에 걸맞게 이해하려는 노력”

이 책은 뇌 연구의 현 상황을 가장 중요한 국면들과 관련하여 누구나 알 수 있도록 비판적이고 흥미롭게 요약하고 가능한 결과들을 설명하려 한다. 인간을 시대에 걸맞게 이해하고자 한다면 최신 과학의 성과들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인간상은 무엇인가, 이것에 도전하는 신경과학의 인간상이란 무엇인가, 둘 다를 지양하는 또다른 인간상은 무엇인가,라는 흥미로운 주제를 뇌과학과 신경과학, 정신분석, 사회학 이론들을 동원해 문제를 제기하고 가능한 답을 내리고 있다. 폭넓은 인터뷰, 다양한 실례를 들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며, 질문-성찰-결론이라는 구성을 취해 제기된 문제를 하나하나 정리할 수 있도록 했다. 뇌과학은 인간이 결국 경험과 환경에 열려 있는 네트워크-영혼임을 밝히고 있다. 인간에 대한 신경생리학적 연구가 진전됨에 따라 ‘인간이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 역시 격렬한 논쟁에 휩싸일 수밖에 없으며 어쩌면 다음 세기에는 토마스 메칭어의 말처럼 “오늘날 태양이 지구 둘레를 돈다고 진지하게 믿는 사람들은 웃음거리가 되듯이, 우리가 영혼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진지하게 믿거나 인간을 ‘육체와 영혼의 통합체’라는 개념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웃음거리가 되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마빈 민스키 (Marvin Minsky)

 

20 세기를 움직인 사상가들 : Guy Sorman 지음, 강위석 옮김, 한국경제신문, 1991, Page 199~207

 

2 세대 후면 컴퓨터는 사람보다 더 지능적이 된다

기계는 기분이 나빠 있다

기계는 이데올로기의 희생물이다

과학자들은 다 어디로 갔나

두뇌기계

 

"인간은 생각하는 기계이다"

인공지능분야가 생겨난 때는 1956 년 다트머스 (Dartmouth) 회의부터라고 말해지는데, 이 회의에서 민스키와 매카시 (John McCarthy) 가 기계에 의한 사고의 기초를 제시했다.

그는 1927 년 뉴욕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에서 물리학, 유전학, 사회학, 수학, 음악, 신경학 등을 배웠다.

이때 행동주의 심리학자인 스키너 (B. F. Skinner) 의 강의가 마음을 사로잡아, 이후 30 년 동안을 오로지 지능연구에만 몰두하였다. 또한 그는 지능의 메커니즘을 기계에 적용함으로써 마침내 지능형 컴퓨터를 개발했다. 1958 년 그는 MIT 대학에서 인공지능 연구소를 창설해 어린이의 정신구조의 연구를 하기도 했다.

최근의 저서 「정신의 사회 (1988)」에서는 뇌가 기억, 지각, 감각이라는 여러 요소에 의해 서로 연락하여 발전하는 하나의 사회처럼 조직되어 있다는 생각을 피력했다.

주요 저서로 「로봇 (Robot, 1985)」등이 있다.

「커넥션 (Connection)」은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컴퓨터이다. 그러나 겉보기에는 그렇지도 않다. 한 모서리의 길이가 2 미터씩인 육면체이다. 검은 플라스틱 상자 뒤에 1,000 개쯤 되는 전등이 당신을 향해 깜빡이고 있다. 그러나 이 깜박이들은 이 기계를 다소 덜 추상적으로 보이도록 하는 장식에 지나지 않는다. 민스키 (Marvin Minsky) 는 설명한다. 사실 이것들이 없어도 「커넥션」은 아무 탈이 없다. 이 기계의 내부는 그것의 외부보다는 훨씬 더 황당스럽다. 민스키는 그 검은 상자를 열고 그 속이 실은 비었다고 말할 수 있음을 내게 보여 주었다. 그 속에 있는 64,000 개의 마이크로 프로세서는 거의 공간을 차지하지 않고 있다. 「커넥션」은 보스턴의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MIT) 내에 있는 민스키의 연구실에 주소를 두고 있다. 이 기계는 그것의 흐릿한 스크린 앞에서 밤을 새우는 지친 눈을 한 연구원들, 즉 민스키의 제자들의 작품이다. 이 남녀 연구원들은 아직도 30 대를 넘지 못했다. 민스키의 이야기는 이런 나이까지는 아직도 천재성이 막히지 않는다고 한다. 민스키는 온 세계로부터 컴퓨터 혁명의 아버지요, 인공지능 (artificial intelligence) 의 창시자로 여겨지고 있다. 그 이후 인공지능은 미국에서는 AI 라는 약자로 불리어지고 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만일 어떤 작업을 사람이 했을 때 그 처리가 지능적이라고 불릴 만하다면, 같은 작업을 기계가 했다면 바로 그때부터 그 기계는 지능적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2 세대 후면 컴퓨터는 사람보다 더 지능적이 된다

민스키는 「커넥션」이 자신의 감정을 지니고 있음을 확언했다. 대단히 강력하지만 그것은 과소 가동되고 있다. 아직도 이 기계에 걸맞는 프로그램이 제대로 개발되어 있지 않으나 이 기계는 미국 신문을 모두 읽고 그것을 메모리 안에 저장한다. 민스키는 그의 기계 이야기를 마치 사람에 관한 이야기처럼 한다. 거기에는 조금도 해학적인 뜻이 숨겨져 있지 않다. 그는 이 기계의 지능을 진정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인공적이기는 하지만 사람의 지능에 비교될 만하다는 것이다.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만일 어떤 사람이 「커넥션」만한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천재로 불릴 것이라고 한다. 만일 우리가 선험적으로 (a priori) 「커넥션」은 인간보다 덜 지능적이라고 여긴다면, 그건 우리가 기계를 과소평가하고 기계가 할 수 있는 일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일 것이다. 민스키는 기계의 물리적 능력은 아직도 매우 빈약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기계는 아직도 그다지 시력이 좋지 않으며 사람을 알아보는 데는 큰 어려움을 겪는다. 그리고 어린이들에 대해서는 그 말을 알아듣는 데도 문제가 있다. 기계는 말을 할 수 있지만 그다지 잘하는 것은 아니다. 기계는 1 만 단어 정도를 이해할 수 있는데 다만 발음을 정확하게 들려주어야 하고 두운법 따위는 없어야 한다. 그러나 또 한 가지 고려해야 할 것은 이들 지능기계는 아직 나이가 15 살밖에 안되었지만 인간은 수백만년간의 진화의 산물이란 점이다.

민스키는 기계가 결국에 가서는 단어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한 세대 또는 어쩌면 두 세대 정도가 걸릴 것이라고 보고 있다. 지능기계가 이 기계보다 지능이 낮은 인간에 의해서 사용되는 날이 올 것이다. 컴퓨터에 문외한인 나 같은 사람도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기계와 말을 하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도록 시키게 될 것이다. 기계는 스스로 프로그램을 짜게 될 것이다. 다만 간단한 예를 몇 가지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거기에는 전문적 언어도 필요없고 엔지니어의 도움 같은 것도 필요없을 것이다.

기계는 기분이 나빠 있다

지능기계의 물리적 감각적 능력은 아직 매우 낮다. 그러나 이들의 지적 능력은 그렇지 않다. 몇 가지 부문에서는 인간을 능가한다. 전통적 체스경기를 예로 든다면 6 수를 내다보고 계산하는 오토맷 (automat) 을 이겨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민스키의 설명에 따르면 이론상으로는 경기의 모든 생각할 수 있는 수를 둘 수 있는 오토맷을 조립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가능한 경우의 수는 거의 무한 대에 가깝기 때문에 광속으로 움직이는 기계라 할지라도 이 모든 가능성을 다 쓰는데는 50 억년이 걸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야심적인 로봇을 만드는 것은 삼가해야 할 일이다.

기계는 열정을 가질 수 있다고 민스키는 나에게 확언한다. 기계도 알거지가 되는 수도 있고 엔지니어도 왠지 모를 이유 때문에 전혀 알지 못할 자료를 내놓기도 한다. 이것을 기술적인 오기능이라고 보아야 할 것인지, 사람에게나 있는 발작증이라고 보아야 할지는 모를 일이다. 지금은 과학자도 일반 사람 이상으로는 아무것도 짐작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기계는 기계를 위하여 마련된 프로그램에 따라서만 움직인다는 관념도 불식되어야 한다. 이것처럼 잘못된 생각도 없다. 지능기계는 기계 자신이 자기의 프로그램을 작성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 그렇게 되면 엔지니어로부터 독립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대체로 복잡한 기계에 대하여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기계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납득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그렇다면 기계도 자신의 의지를 가질 수 있다는 말인가. 민스키는 의심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는 커브릭 (Stanley Kubrick) 의 영화 「2001 년 우주의 오디세이 (2001 Space Odyssey)」에서 나오는 것과 같이 자기 주인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로봇을 설계하는 것을 그만 두지는 않는다. AI 를 악한 것으로 보이게 만든 사람은 민스키가 아니라 크브릭이었다. 지금으로 보아서는 기계가 선하거나 악한지를 알아낼 수는 없다. 그러니 장래에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고 있다.

기계는 이데올로기의 희생물이다

기계에게 지능이 진정으로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렇게 보일 뿐인가. 민스키의 대답은 진화론적이다. 기계는 아직도 초기단계에 있다. 기계가 현재 달성한 복잡도는 곤충의 그것에 비교할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기계는 계속 발달할 것이다. 지금은 겉보기로만 지능적인 듯한 기계가 장차는 진정으로 그렇게 될 것이다. 많이 걸려도 한두 세대만 지나면 기계가 인간의 두뇌와 비슷한 작업을 하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민스키는 느끼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기계 하나가 인간의 뇌에 견줄 만한 것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뜻하지 않는다. 단일 기계로서는 인간의 두뇌에 필적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마도 기계를 여러 개를 함께 결합시키면 인간의 두뇌와 유사한 기능을 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과정은 반드시 똑같다고는 볼 수 없을지라도 인간의 진화와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기계의 경우는 다른 역사적 과정을 밟게 되는데, 그것은 100 만년씩이나 소요되는 것이 아니라 겨우 몇십년에 불과할 것이다. 지금부터 100 년 후에 지능기계가 어떤 것이 될지 누가 알고 있겠는가.

이러한 진화가 가져올 명백한 결과의 하나는 사람에게 남아있을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 과정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인간은 그렇게 되면 다른 일거리를 찾아내야 된다. 민스키가 상기시키는 바에 따르면 인간은 200 년전만 해도 95 % 의 시간을 먹을 것을 얻는데 보냈다. 오늘날에는 5 % 도 채 못된다. 기계가 만들어준 이런 공백 시간을 메우기 위해 텔레비전이 출현한 것은 아닐까. 평균적인 미국인은 하루에 5 시간을 TV 스크린 앞에서 보낸다. 민스키의 관찰에 따르면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는 이 시간 수에 2 를 곱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시간이 남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는 해결된다. 우리가 중세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전쟁이 여가를 메워주는 방법은 못된다.

만일 정치가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완벽한 지능기계를 향한 진화는 불가피하다. 민스키에게는 이 미래학적 비전이 희망도 주지만 그만큼 공포도 준다. 그는 여론이나 종교가 컴퓨터 연구에 반대하고 나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유전공학의 경우에는 이런 반대가 이미 팽배하여 있다. 그렇게 되면 기계는 신비주의와 이데올로기의 봉기에 의하여 파괴당하게 될 것이다.

과학자들은 다 어디로 갔나

민스키는 과학자의 점진적 감소가 정치만큼이나 기계의 성장에 대해서는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민스키는 MIT 학생의 절반은 중국ㆍ일본ㆍ한국 등지에서 온 아시아계라는 점을 지적한다. 나는 그의 연구실에서 이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머지 절반은 거의 전부 유대계입니다. 그렇지만 유대계는 이 이상 더는 없을 것입니다.』그의 말이 진정으로 의미하는 것은 중부유럽적 환경과 미국의 만남에서 탄생한 사상가 세대 ㅡ 민스키 자신도 그 가운데 하나이거니와 ㅡ 는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유대계가 다른 인종보다 더 지능이 높다는 얘기가 아니라 유대계는 학문과 연구를 장려하고 우주적 차원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추구하기 좋아하는 문화속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유대계는 기성사회가 던지고 있는 질문에 부름을 받고 있으나 『이 점은 일본계 학자들에게는 불행하게도 그렇지 아니하다.』

나는 이 기회를 잡아 민스키에게 프랑스의 연구가들을 어떻게 보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가 보기로는 프랑스 학계는 인공지능 방면에는 그리 뛰어나지 않다고 한다. 그 이유는 프랑스에서는 수학자의 힘이 너무 세고 그들은 미리 증명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모험을 걸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평균적인 미국인들은 연구에는 흥미가 없다. 대학교수들은 학생들에게 문화는 어떤 것이든 동일하며 어떤 문화라도 수긍이 간다고 가르치고 있으며 학생들은 이렇게 되자 공부를 중단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민스키는 자기의 기계를 인간보다 더 낫게 취급하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그에게는 기계가 사람보다 크게 나은 점이 적어도 한 가지는 있다. 기계는 기계 이상으로 잘난 체하지 않는다. 역으로 인간이란 스스로를 알지 못하는 기계이다.

두뇌기계

자기 인생에서 30 년간을 지능기계 연구에 바친 다음, 민스키는 지능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만일에 기계가 이른바 인간의 지능이라 할 만한 것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면 인간의 두뇌가 기계와 다름 없음이 입증될 것입니다. 인간의 두뇌는 복잡한 기계이고 기나긴 진화과정을 거친 것이지요.』인간의 두뇌는 불완전한 부품이 결합된 것에 불과하다. 이들 부품은 각각의 정해진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들 부품은 일정한 장소에 배치가 가능하며 파괴될 수도 있고 자극을 받기도 한다. 각 부품 ㅡ 민스키는 작용요소 (agent) 라고 부른다 ㅡ 은 사고력이 필요없는 단편적인 기계작용만 수행한다. 그러나 모든 부품이 합쳐지게 되면 마치 하나의 사회처럼 기능하게 된다. 우리가 정신 (mind) 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러한 결합 내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관계들의 총칭이다.

민스키의 이러한 발견이 지능기계를 만드는 기초가 된다. 어떻게 해서 이것이 가능해지는가. 단편적 활동의 분석을 통해서이다. 주사위 (cube) 를 가지고 노는 어린이의 활동 같은 것 말이다. 이것은 마치 뉴턴과 갈릴레오가 단편적 현상을 관찰해서 일반적 법칙을 발견해 낸 것과 같다. 지능의 작용방법은 하나의 기본단위를 집중 분석함으로써 이해될 수 있다. 정신은 개별적 선택의 총화이다. 결국 인간의 두뇌는 언어와 사상을 생각하는 기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부 신경생물학자 (neuro-biologist) 와는 달리 민스키는 정신을 기초적 화학 및 물리학적 원리로 축약시키지는 않는다. 앞으로 당분간은 두뇌의 작용요소들간의 복잡한 상호관계는 파악되지 못한 채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도구가 출현하여 인간의 두뇌를 들여다 볼 수 있게 되고 사고의 순환을 관찰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우리가 관습상 지능이라고 부르는 전류와 화학물질의 결합인 사고란 것을 말이다.

실제로는 지능이라고 불릴 만한 측정가능한 단편적 사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능이란 것은 소속되는 문화에 따라 광범한 정도의 차이를 두고 일어나는 매우 다양한 기능의 총화이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민스키는 지능에 관한 모든 현존 이론을 붕괴시켜 버리고 만다. 그의 생각으로는 정신이 작동하는 데는 신의 섬광이 필요없다는 것이다. 두뇌기계로 충분한 것이다. 물질과 마음을 가르는 이분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마음을 만드는 것은 물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질에서 정신이 생겨나는 법칙은 아직은 발견되지 못했다.

민스키는 그 어느 누구도 자기가 기계와 비교되는 것을 용인하지는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시대에 뒤떨어진 물질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언어는 고풍스런 기발함을 만들어내는 요술을 피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이제서야 겨우 기계시대의 여명에 들어섰다. 그리고 기계시대의 장래가 어떤 것이 될런지는 상상해내지 못하고 있다. 만일 어떤 외계인이 몇십억년전에 첫 양서류를 보았더라면, 이 양서류가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 전혀 단서를 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민스키는 덧붙여 말하기를 자기가 인간을 생각하는 기계라고 말한다고 해서 자기가 환원주의자 (reductionist ; 생명현상은 물리학적ㆍ화학적으로 설명된다고 주장하는 사람) 는 아니라고 한다. 다만 장차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과학자는 지금 철학자에게 양보하고 있다. 그의 철학은 아마도 엔지니어의 철학인 듯하다. 아메리카의 꿈의 절정은 기계에 의하여 길들여진 자연이다. 거기에다 고뇌의 빛깔이 약간 스며있는 것, 이것도 매우 미국적이다. 보스턴의 기술광장 (Technology Square) 에 아침 햇살이 비치면 민스키와 그의 제자들은 전등을 끈다. 그리고 그들의 키보드 (keyboard) 를 떠나서 낡은 자전거에 올라탄다. 다시 황혼이 커튼을 물들일 때까지 그들은 잠시 눈을 붙인다. 민스키의 집은 그의 MIT 연구실과는 좋은 대조를 이룰 만큼 지저분하다. 낡은 책, 기념품, 여행을 갔을 때 사온 작은 장식품, 플라스틱제 놀이기구, 헝겊인형, 헌 신문, 여러 가지 형태와 크기가 다양한 악기들, 이런 것들이 형언할 수 없는 모양으로 구색을 갖추고 있다. 이 잡동사니속에 서있는 것은 컴퓨터가 아닌 그랜드 피아노다. 민스키는 블루진과 낡은 스웨터를 입고 있는데 하루에 몇 시간씩이나 연주도 하고 작곡도 한다. 푸가 (fuga) 를 작곡하는데 이 과학자는 진정한 열정을 쏟는다. 푸가는 그를 그의 지능기계보다 한 걸음 앞서게 한다. 지능기계는 바흐 (Bach) 와 모차르트 (Mozart) 를 구별하지 못하니까…. 그러나 앞으로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자유의지 그 환상의 진화

저자 프란츠 M. 부케티츠  역자 원석영  원저자 Wuketits, Franz M.  
출판사 열음사   발간일 2009.03.02
책소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 자유의지! 자유의지에 대한 진화생물학자의 놀랍고 발칙한 태클 『자유의지...

 ‘자유의지’에 대한 논의의 실효성은 인간 삶에 대한 믿음의 근원을 휘저어 그것의 유무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가치체계를 수립하여야 하는 것과 같은 혼돈의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에 있다. 과연 인간은 자유롭게 자신의 의지를 행사하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해서는 일말의 회의(懷疑)조차 갖지 않았으며, 오히려 어떠한 외부의 조건이나 억압으로부터도 양보할 수 없는 인간 최후의 가치이자 존엄성에 대한 방호막이라 여겼던 나에게는 황당하기조차 한 것이었다 할 수 있다.


내가 어떤 사고나 행동을 하는 것이 내가 의식적으로 의도한 결정의 결과가 아닐 수 있다는 의혹은 ‘나’라는 존재에 대한 궁극적이고 본원적인 불신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내가 오늘 그녀(그)와 데이트 약속을 하기위해 전화번호를 누르는 것이 나의 주체적인 의지의 발현이 아니라는 말인가? 바로 이 저술은‘아니다!’라고, 단지 자신을 보호하여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환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마치 자신의 의지에 의해 스스로의 행동을 결정한다는 환상이 진화에 의해 선택된 인간 종(種)의 형질일 뿐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인간을 정신과 육체로 분리하는 이원론적 오류, 인간의 뇌에 정신과 영혼이라는 별개의 장치가 육신과는 분리되어 따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식 발상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는 함정이 있다는 것으로 근본주의적 종교관을 지닌 사람들 이외에는 오늘의 우리들은 모두 동의하는 지식이다. 결국 인간의 정신이란 것은 뇌의 화학적, 물리적 반응의 결과와 분리된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다. 일례로 만일“우리가 심장, 간, 소변을 의식적으로 조종해야 한다면 우리는 몇 분 안에 죽고 말 것이다.”라는 지적처럼 우리의 기관들이 자율적으로, 즉 우리가 의식 및 의지라고 부르는 것과 독립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인간이란 종은 아마 오래전에 자연선택에서 배제되었을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이러한 환상을 진화의 과정에서 키워나갔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단지 뇌의  반응 결과에 불과한 것을 자기의지의 결과로 인식하는 것처럼, 인간이 도저히 통찰 할 수 없는‘설명의 곤경’에서 출현한 신(神)과 종교라든가, 인간에게 미리 허락된 수명이 한정된 것이라면‘이 세계’가 아니라‘저 세계’에서 계속 살수 있다는 환상은 인간 생존에 있어 전적으로 유용한 것과 같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 저술의 핵심 논지는 인격체로서의 인간과 그의 인격을 어떻게 정의할 것이냐의 여부는 “뇌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우리의 자의식, 욕망, 기대, 기쁨, 두려움, 공포, 꿈은 결국 진화에서 인류를 오늘날의 인류이게끔 만들어준 기관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현대의 신경생물학적 지식의 배경에서 정신현상은 뇌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바로 뇌의 표현 혹은 뇌의 발현에 불과하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자유의지의 이념은 우리 뇌가 만든 것이며,‘자유의지’가 독립적 실재라고 가정할 만한 어떤 불가피한 근거도 없다는 것이다. 사실 이 저술의 주장을 전개해나가기 위해 인용되고 등장하는 철학과 과학을 종횡 누비며 증거하는 이야기들은 지적 재미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책에 붉은색 밑줄을 긋다보면 전체가 붉은색으로 변할 정도가 되어버리니 말이다. 재미있는 인간 사고의 모순 례를 하나 소개하면, “‘나’의 다리가 아프다”라거나 “‘나는’ 두통이 있다”라고 우리는 말한다. 이는 생각하는 나와 다리 또는 두통을 느끼는 두뇌가 분리되어 존재한다는 표현이다. 어떻게 나와 다리가 다를 수 있을까? 즉 “다른 모든 기관이 복종하는 사고와 느낌과 의지의 중심지인 상위의 ‘나’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이원론적 사고의 예인데, 인간은 이처럼 자신을 기만하는 거짓 프로세스를 진화시켜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식이란 뇌의 특정한 물리적, 화학적, 생리학적 과정에 완전히 속박되어 있다는 것인데, 여기에 책임이란 도덕적 의무의 논리를 들이댈 수 있는가하는 중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만일 살인자가 단지 뇌의 속박에 의해 다르게 행동할 수 없었음 주장하고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면 오늘 대다수의 인류사회가 수호하는 형법은 물론 사회의 기간시스템을 유지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

일례로“소녀를 강간하고 죽인 살인자가 자신은 어떤 자유의지도 갖고 있지 않았고, 자신의 행동은 유전자와 뉴런과 호르몬에 의해 결정된 것일 뿐”이라 항변한다. 그럼 살해당한 소녀의 아버지는 살인자를 똑 같은 이유로 살해 할 수밖에 없었다고 강변할 것이고 이는 살인의 연속으로 이어질 것이다. 소위 ‘피의 복수’가 계속 될 것인데, 우린 무슨 근거로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자유의지 없음을 그것은 단지 진화적 유익론에 의한 환상이라고 주장하면서 어떻게 이를 해결할 것인가? 우리의 도덕관과 법제도를 지탱하는 논리가 설 수 있는 토대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이를 뒤집으면 인간은 다른 사람에 죽임을 당하지 않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살인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지만 그들로부터 살해당하지를 원치도 않는다. 그래서“우리는 제재를 통해 그 자신이 요구하지 않을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인간사회에서 공동생활을 하는데 필수불가결한 도덕을 발전시켜왔다는 것이다. 이러함에도 역시 인간이 야기하고자 하지 않았던 일에 대한 처벌은 여전히 인간의 무기력을 완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결국 인간의 뇌는 여전히 원시적 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자유의지라는 실용적인 환상의 그늘이 해소되지 않았음을 반증하기도 한다.


그러함에도 자유의지는 단순히 우리가 삶을 꾸려나가는 데 도움을 주는 가설에 불과하지만, 온갖 종류의 트릭을 적용해 의미없는 우주에서 우리 존재의 무의미성을 잊게끔 해준 것에 대해 행복하다고 말해도 좋을 듯싶다는 저자의 자유와 존엄성의 저편을 그리는 긍정의 희망을 지니기도 한다. 이 저작은 사람의 이해와 관계에서 빚어지는 현상들, 사회제도와 도덕적 규범, 나아가 정치와 문화의 현상들을 만들어내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다각적인 모습을 성찰케 해주고, 보다 겸허하게 우리, 아니 나의 존재에 대해 사유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미래의 인간사회와 제도의 방향을 새로이 궁구(窮究)케 하는 계기와 기반을 제공하기도 하며, 진화론의 계통발생사적 인간 본성에 대한 지적 탐구도 가능케 하는 진화론적 과학철학의 진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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