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는 잠 못드는 사회이다.

낮에도 한밤중에도 새벽에도 늘 깨어있다.

밤과 낮의 경계선은 이미 무너졌다.

이제 밤은 낮이고 낮은 밤이된다.







불면증 더 정확히 말해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장애에 시달리는 사람은

자신의 의식적인 통제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무의식을 신뢰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불안을 느낀다.

오늘날의 인간은 밤과 낮 사이에 휴지기를 가지지 않고

 생각과 활동을 함께 꿈의 영역 속으로 가지고 들어간다.

우리는 낮을 늘리기 때문에 밤이 줄어들게 된다.

이것은 우리가 낮의 의식의 방법을 가지고

영혼의 밤의 측면도 분석하려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의식적으로 극을 바꾸고 뒤집는 중간 휴지기가 없다.

  

  

불면증환자들의 낮의 측면이 강한 모습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은

우선 의식적으로 낮을 마감하는 법을

배워 익혀야 할 것이다.

그래야 밤과 밤의 법칙들에 완전히 순응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무의식의 영역에

신경을 쓰는 것도 배워야 한다.

그래야 어디에서부터 불안이

생겨나는지 알아낼 수 있다.

허망함과 죽음은

불면증 환자에게 중요한 문제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은

원초적 신뢰와 순응할 수 있는 능력 이 없다.

그는 자신을 활동가와 너무나 동일시하며,

자신을 남들에게 내 맡기는 일을 하지 못한다.

 

잠은 오르가즘처럼

잠깐 동안의 죽음인데

강한 자기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은

이것을 위험으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밤의 측면과 화해를 이루는 것이

확실하게 잠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이다.

숫자를 세는 것과 같은 수법들은

기껏해야 지적 활동에서 벗어나는 것에만

효과가 있을 뿐이다.

모든 단조로운 활동들은

왼쪽 뇌반구를 따분 하게 만들며

그것의 주도권을 포기하도록 만든다.

모든 명상기술들은 이러한 법칙들을 이용한다.

어떤 지점에 혹은 호흡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

하나의 만트람(mantrams, 성스러운 주문)을 반복하는 것이나

화두는 모두 왼쪽 뇌반구에서 오른쪽으로,

낮의 측면에서 밤의 측면으로,

적극성에서 수동성으로 전환하게 해준다.

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자연적인 전환이

어려운 사람은 자신이 회피했던 극에 신경을 써야만 한다.

불면증의 증상도

역시 이렇게 해주기를 원한다.

이 증상은 인간에게 밤의 음산함과

씨름하는 시간을 제공한다.

증상은 여기서도 정직하게 만들어준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모든 사람들은

밤을 두려워한다. 당연한 일이다.

    




 

졸음이 너무 많이 오는 것은

정 반대의 문제점들이 있다는 것을 암시 한다.

충분히 잠을 잤는데도 불구하고

잠에서 깨고 일어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낮의 요구사항, 적극성, 성공에 대한

자신의 불안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잠에서 깨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활발해지고, 행동하고 그것에 대한 책임을 떠맡는 것이다.

낮의 의식으로 옮겨가는 것이

힘들게 여겨지는 사람은

꿈의 세계와 유년기의 무의식 속으로 도피하며,

살아가는데 필요한 일들과 책임져야할

사안들을 피하려고 한다.

이러한 경우에 다루어지는 테마는

무의식 속으로의 도피가 된다.

 

잠을 이루는 것이

죽음과 관련되어 있듯이,

잠에서 깨어나는 것은

소규모의 탄생이다.

태어나고 의식하게 되는 것은

밤과 죽음과 마찬가지로

불안을 유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문제점은 일면성에 있다.

해결책은 중용에, 균형에,

양쪽 모두를 포함하는 데 있다.

여기에서 비로소 탄생과 죽음은

하나라는 사실이 명확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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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병들 수 없다.

병들 수 있는 것은 항상 이간 자신뿐이다.

그러나 병든 것은 몸에서 증상이 나타난다.

비극이 상연될 때 무대가 비극적인 것이 아니라

그 연극작품이 비극적인 것이다.

  



  

빛고을 광주에서

여송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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