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훈의 '病(병)에게'는

그가 만년에 병고(病苦)에 시달리다가

죽기 며칠 전(1968.1)에 쓴 시다고 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병을 ‘다정한 벗’으로
의인화하여 말을 건네는 식으로 씌어진

대화체의 시로 죽음을 觀照(관조)하는

담담한 심정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그는 병을 의인화시켜 ‘자네’라고 부른다.

‘자네’는 친숙한 손아랫사람이나 친구를 부르는 말이다.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대상을 이렇게 부름으로써,

병이란 대상에 대해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여유 있고 관조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삶 속에서 고된 일손을 겨우 놓고 쉴 만하면

찾아오는 병은 삶의 뗄 수 없는 일부이며

바쁜 일상에 휴식을 권하며 나를 뒤돌아보게 하는 친구이다.
병이 가르쳐 주는 것은 생에 대한 외경,

두려움 섞인 존경의 마음이면서 동시에,

그토록 애쓰며 고달프게 살아 온 삶에 대한 허무이다.

젊은 날 화자는 겁 없게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생은 마냥 아름답기만 했다.

조지훈의 병에게 에서 화자가 늙어 갈수록

친구(병)의 모습도 늙어 간다.

오랜 병마에 시달리는 동안 친숙해진 병 앞에서

죽음을 각오하지만 막상 여유 있는 태도를 보이자

병은 또 다시 떠나간다.
이렇게 삶과 죽음이 별개가 아닌 하나임을

 항시 깨닫게 해 주는 병을 친숙하게 바라봄으로써

그는 생에 대한 달관적 모습을 보여 준다.

필자도 늘 강조하는 내용이지만 삶과 죽음,

일과 놀이, 남과 북의 양극적 사고는 불행의 시작임을 ... 






病(병)에게
                                                                                조 지 훈
어딜 가서 까맣게 소식을 끊고 지내다가도
내가 오래 시달리던 일손을 떼고 마악 안도의 숨을 돌리려고 할 때면
그때 자네는 어김없이 나를 찾아오네.
자네는 언제나 우울한 방문객
어두운 음계(音階)를 밟으며 불길한 그림자를 이끌고 오지만
자네는 나의 오랜 친구이기에 나는 자네를
잊어버리고 있었던 그 동안을 뉘우치게 되네.
자네는 나에게 휴식을 권하고 생(生)의 외경(畏敬)을 가르치네.
그러나 자네가 내 귀에 속삭이는 것은 마냥 허무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자네의
그 나직하고 무거운 음성을 듣는 것이 더없이 흐뭇하네.
내 뜨거운 이마를 짚어 주는 자네의 손은 내 손보다 뜨겁네.
자네 여윈 이마의 주름살은 내 이마보다도 눈물겨웁네.
나는 자네에게서 젊은 날의 초췌한 내 모습을 보고
좀더 성실하게, 성실하게 하던
그 날의 메아리를 듣는 것일세.
생에의 집착과 미련은 없어도 이 생은 그지없이 아름답고
지옥의 형벌이야 있다손 치더라도
죽는 것 그다지 두렵지 않노라면
자네는 몹시 화를 내었지.
자네는 나의 정다운 벗, 그리고 내가 공경하는 친구
자네는 무슨 일을 해도 나는 노하지 않네.
그렇지만 자네는 좀 이상한 성밀세.
언짢은 표정이나 서운한 말, 뜻이 서로 맞지 않을 때는
자네는 몇 날 몇 달을 쉬지 않고 나를 설복(說服)하려 들다가도
내가 가슴을 헤치고 자네에게 경도(傾倒)하면
그때 사 자네는 나를 뿌리치고 떠나가네.
잘 가게 이 친구
생각 내키거든 언제든지 찾아 주게나.
차를 끓여 마시며 우린 다시 인생을 얘기해 보세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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