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명지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곱슬머리 김정운교수의 책을 헌책방에서 집어 들었다.

 

술술 읽힌다.

역시 글쟁이 말쟁이다.

내가 진료실에서 하는 뉘앙스와 비슷한 글이 있어 올려본다.

그리고 중학교 국어책엔가 있었던 조용히 음미하며 읽어보면 지난날의 선택했던 일들에 대한 아리한 기억을 불러 일으켰던 프루스트의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가 있어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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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매 순간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다.

한번 결정을 하게 되면,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해 어떠한 방식으로든 후회하게 되어있다.

만약 내가 그때, 그렇게 하지 않고 저렇게 했더라면.’

후회한다는 것은 내가 주체적인 삶을 살았다는 뜻이다. 내가 행한 일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면 후회란 있을 수 없다. 내 삶의 주인으로서의 권리와 책임은 후회라는 부작용을 낳게 되어 있다.

프루스트의가지 않은 길이란 시는 끝없이 후회하며 사는 인간의 모습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 구절이 그렇다.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후회는 나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심리적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며 결정적인 기능을 한다. 외부로부터 병균이 우리 몸에 침입 했을 때 몸의 면역세포가 분주히 활동하여 몸의 건강을 지켜내는 것처럼, 후회는 정신적인 병이 들지 않도록 우리 마음을 지켜내는 심리적 면역체계로 기능한다. 그래서 인간은 후회를 할 수밖에 없고 또 해야만 한다. 문제는 어떤 후회를 하느냐는 것이다.

 

후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진다. 자신이 '행한 행동에 대한 후회’, 그리고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

'행한 행동에 대한후회어떤 일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다. 대개는 아무 생각 없이 섣부르게 뛰어든 행동에 대해 후회한다.

반면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어떤 일을 했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다. 했어야 했는데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것이다.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이 흔히 하는 후회다.

그러나 두 후회가 미치는 심리학적 결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사후가정사고 Counterfactual Thinking에 관한 세계적 권위자인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의 닐 로즈 Neal Roese 교수는 IF의 심리학이라는 책에서 이 두 가지 종류의 후회에 관해 자8히 설명하고 있다. 로즈 교수에 따르면 행한 행동에 대한 후회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의 결정적 차이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행한 행동에 대하 후회'최근에 일어난 일과 관련되어 있는 반면,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오래전에 일어난 일과 관련되어 있다.

뒤집어 말하면,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는 오래가는 반면, '행한 행동에 대한 후회는 바로 끝난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A라는 사람은 교사 임용고사에 지원했다 떨어졌다. 반면 B라는 사람은 교사 임용고시의 높은 경쟁률에 지레 겁먹고 지원조차 하지 않았다. 이후 두 사람의 후회의 양상과 내용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된다.

AB 모두 임용고시가 끝난 후 후회한다. 그러나 A는 얼마 후, 자신은 교사체질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새로 취직한 직장에서 일하는 것이 교사가 되는 것보다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지 침을 튀어 가며 이야기한다.

반면 B는 몇 년이 지나도록, 아니 평생토록 후회 하게 된다. ‘그때, 그 임용고시를 봤어야 했는데.’ 하면서.

'행한 행동에 대한 후회의 경우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에 비해 심리적 면역체계가 훨씬 빠르고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하지 않은 행동에 비해 '행한 행동쪽은 훨씬 더 쉽게 합리화 된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행동에 훨씬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되어 있다. 하지 않은 행동에 비해 '행한 행동에 대해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가진 이야기다. 만약 어떤 행동을 했는데, 그 결과가 신통치 않게 나 왔다면 심리적 면역체계는 그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데 집중하게 된다. 결국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갔더라도 별일이 아니라고 합리화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반면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해서는 심리적 면역체계가 그리 쉽게 작동하지 못한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심리적으로 주의집중이 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주 오랫동안 나를 괴롭힌다.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가 정신건강에 훨씬 더 해롭다는 이야기다.

 

살아있는 이상, 우리는 반드시 후회를 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어차피 후회를 해야만 하는 것이라면 가능한 한 짧게 하는 게 좋다. 그래야 심리적인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짧게 후회하려면 '행동해야 한다. 확 저질러버리는 편이 고민하며 주저하다가 포기하는 것보다 심리적으로 훨씬 건강하다. 후회가 오래가지 않기 때문이다. 시작도 하지 않고 포기한 일은 반드시 오래, 아주 집요하게 나를 괴롭히게 되어 있다.

 

그래서 어른들은 결혼을 망설이는 이들에게 한 결 같이 이렇게 이야기했던 것이다.

하고 후회하는 편이, 안 하고 후 회하는 것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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