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구애가 인간 진화의 핵심
이종호의 과학이 만드는 세상-로봇의 반란(17)
▲ 제브라피시(제브라다니오)의 좌뇌와 우뇌에 한 쌍씩 있는 ‘하베눌라’라는 부분의 신경회로가 좌우대칭이 아니라는 것이 발견.뇌신경 회로망이 좌뇌와 우뇌가 다르다는 것이 세계최초로 확인  ⓒ
<좌뇌와 우뇌의 다른 기능>

각종 동물들이 만들어 내는 신호는 세상에 대한 진실만을 전달하지 않는다는 데 그 중요성이 있다. 이것은 발신자들이 거짓말을 다반사로 하므로 다른 동물로부터 오는 신호를 외면하도록 진화되어야 생존에 유리하다고 설명된다. 그 신호들이 자신을 속이기 위한 시도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신호에 대해 항상 부정적인 대응을 하는 것은 아니다. 즉 누가 신호를 보냈느냐에 따라 반응의 척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친척관계에 있는 개체가 “저 포식자를 조심해”라고 할 때는 믿을 수 있는 신호이기 때문에 귀를 기울인다. 또한 하나의 먹이를 놓고 경쟁하는 동물이 보낸 “나는 너를 죽일 수 있어”라고 하는 신호 역시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가는 정말로 죽임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적응도 지표’라고 부른다.
학자들의 두뇌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었는데 로봇학자들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인간의 두뇌에서 좌뇌와 우뇌가 수행하는 기능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좌·우 뇌의 차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이뤄진 것은 1970년대 이후이다.

간질병 환자의 뇌에서 우반구와 좌반구를 연결하는 다리, 이른바 뇌량의 한가운데를 절단한 결과 우반구에서 일어난 발작이 좌반구에는 전달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좌뇌와 우뇌가 별개라는 점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좌뇌는 읽고 쓰고 계산하는 논리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반면 우뇌는 그림이나 음악 등의 감성적 세계를 담당하는 것으로 설명됐다. 이와 같은 연구를 수행한 로저 W. 스페리 교수는 1981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좌뇌와 우뇌의 신경회로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고 있다. 2005년 5월 일본 이화학연구소의 오카모토 히토시 박사와 런던 대학의 스티브 윌슨 박사 등의 공동 연구팀은 물고기 뇌에 대한 연구를 통해 뇌신경 회로망이 좌뇌와 우뇌가 다르다는 것을 세계 최초로 확인하였다.

연구팀이 관찰한 ‘제브라 피시’라는 열대어의 경우 좌뇌와 우뇌에 한 쌍씩 있는 ‘하베눌라’라는 부분의 신경회로가 좌우대칭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지금까진 좌·우 뇌의 차이가 인간 특유의 현상이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좌·우 뇌의 차이는 인간뿐만이 아니라 전체 척추동물에서 폭넓게 보인다고 한다.
근래 주목받고 있는 연구는 남성과 여성의 뇌의 차이에 대한 연구이다. 대체로 남성 뇌의 표면적은 여성보다 10% 정도가 넓고 기능과 작용에서도 차이가 있다. 예컨대 여성의 좌·우 뇌는 남성보다 더 긴밀히 상호작용을 하고, 언어능력을 좌우하는 영역의 작용이 더 활발하다. 반면 남성의 뇌는 이성과 감정의 영역이 여성보다 확실하게 구분돼 있고 기계적 추론과 공간지각 능력 등이 여성보다 뛰어나다고 알려졌다.

‘남성과 여성의 뇌에서 지능을 담당하는 구조가 다르다’는 연구 결과도 최근 주목을 받았다.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 대학의 리처드 하이어 박사는 ‘지능과 관계된 부위가 남성은 뇌의 회색질(gray matter)에 많고 여성은 백색질(white matter)에 많다’고 주장했다. 회색질은 대뇌반구의 바깥쪽 표면을 싸고 있는 곳이고 백색질은 그 안쪽에 있는 부위로, 회색질 가운데 지능과 관련된 부분은 남성이 여성보다 6.5배 많고 백색질에서 지능과 관련된 부분은 여성이 남성보다 10배 많다는 것이다. 또 남녀 간에는 지능을 담당하는 부위의 크기만 다른 것이 아니라 그 분포도 달라 남성은 회색질의 지능 담당 부위가 뇌 전체에 고르게 분산되어 있는 반면 여성은 대뇌의 앞쪽인 전두엽에 국한되어 있다고 밝혀졌다. 이는 인간진화 과정에서 지능과 관련해 두 가지 형태의 뇌가 만들어졌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추정이다.

문제는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면서 어떻게 좌뇌와 우뇌를 분리하여 설계하며 또 여성과 남성의 두뇌를 달리하여 만들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학자들이 인간의 뇌를 연구하면 할수록 점점 미궁에 빠진다고 불평하는 이유이다.

▲ 침팬지와 제인 구달 박사.일반적으로 인간은 5∼7백만 년 전부터 유인원과 갈라졌다고 추정.영국의 제인 구달 박사는 영장류인 침팬지 연구에 몰두하면서 인간과의 연관관계를 밝히고 있다  ⓒ
<언어의 진화>

제프리 밀러는 언어의 진화 즉 언어의 이익에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 옵션 즉 혈연관계, 호혜주의, 성선택이 관여했다고 설명한다. 제프리 밀러의 설명은 명쾌하다. 음식을 나누면 작아지지만 정보는 나누면 커진다. 상대방에게 유용한 사실을 알려주더라도 그것을 앎으로써 생기는 내 이익이 자동으로 줄어들지 않는다. 잠재적으로 이러한 정보공유의 효과 덕분에 언어는 혈연선택과 호혜적 이타주의를 통해 진화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 조상들이 혈연과 친구로만 구성된 작고 반영구적인 집단을 이루고 살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고대 인류들은 150명이 최대 거주 단위로 이 이상으로 인구가 늘어나면 분지되었다고 추정한다.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 능력을 진화시킴으로써 서로 이득을 보았다는 것이다.

밀러는 성선택이 언어 진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언어의 정보전달이라는 관점에서만 본다면 발화자보다 청자에게 더 많은 이익이 돌아간다. 발화자는 이미 전달할 정보의 내용을 알고 있으므로 그것을 남과 공유함으로써 새로이 얻을 것이 없다. 하지만 청자는 발화자의 말을 듣고 정보를 얻는다. 즉 남의 말은 극도로 귀담아듣고 자신의 말은 극도로 자제하는 종(種)이 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이런 특성은 인간의 본성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 학자들의 지적이다. 사람들은 서로 먼저 말하려고 경쟁하며 상대가 자기 말을 듣도록 하기 위해 애를 쓴다. 듣는 척할 때도 사실은 남의 말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으로 다음에 자신이 할 말을 준비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것은 인간의 신체적인 구조에서도 증명된다.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게 이익이라면 인간의 발화기간은 퇴화되고 귀는 동료가 말하는 모든 값진 지식들을 몽땅 흡수하기 위해 진화해야 한다. 그런데 인간의 청각기능은 그다지 발달하지 못한 반면(다른 동물에 비해 매우 뒤떨어진다) 발화기관은 엄청나게 발전했다. 즉 적응의 지표는 듣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는 것이다.

▲ 튜링테스트. 컴퓨터의 선구자 앨런 튜링은 ‘튜링테스트’를 통과할 지능적인 컴퓨터’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
여기에서 제프리 밀러는 인간의 구애가 상당 부분 언어에 의한 구애임에 주목했다. 구애의 모든 단계에서 언어과시가 일어나는데 이때 사용되는 언어는 짝 고르기의 대상이 된다. 십대들은 이성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기 위해 전화를 걸 때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한다. 말을 재치 있게 하지 못하고 더듬거나 엉망인 문법, 잘못된 단어를 선택하는 등 이성에게 치명적인 실수를 범한 사람은 딱지맞기 십상이다.

일단 데이트에 성공한 후에는 더욱 언어에 신경을 쓴다. 사람들은 구애의 매 단계마다 구애를 포기하거나 친밀감을 높여가는 단계로 이행된다. 보통 최소한 몇 시간 정도 대화가 오가면 사소한 신체적 접촉으로 진전되며 몇 회에 걸쳐 대화의 자리를 가졌다면 성관계로 진전된다. 이러한 언어구애가 여성이 남성을 자신의 파트너로 고르게 되는 성선택의 핵심 즉 인간이 진화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요건이라는 것이다.

언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앨런 튜링의 작품으로도 알 수 있다. 1950년 컴퓨터의 선구자 앨런 튜링이 창안한 ‘튜링 테스트’도 어떤 사람의 마음의 능력을 검사할 때 언어구애가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준다. 이것은 질문자가 자기가 상대하고 있는 대상이 진짜 여성인지 아니면 여성을 흉내내는 컴퓨터 프로그램인지를 알아맞히는 게임이다. 튜링은 오직 단말기를 사용해서 질문을 보내고 화면상으로만 대답 받도록 했다.

아직도 다소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튜링은 컴퓨터가 질문자로 하여금 자신을 진짜 여자로 믿게 만든다면 이 컴퓨터는 ‘지능적인 컴퓨터’라고 생각했다. 튜링은 그렇게 하기 위해서 컴퓨터가 실제 다양한 범주의 행동들을 믿을 수 있게 해야 하는데 그가 나열한 행동의 범주들에는 친절, 적절한 어휘 사용, 유머감각, 깜짝 놀라게 만들기, 딸기크림 먹겠다고 고집하기, 사랑에 빠지기, 타인이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기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외적인 반응 형태를 기준으로 지능의 유무를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박승수 교수는 적었다. 문제는 이런 방법 외에 지능을 판별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뚜렷하게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영국의 한 뇌성마비 환자는 자기 의사를 외부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증세가 심하여 가족들은 그가 저능아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장님 한 사람이 환자를 만났는데 그는 환자의 신음 같은 말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장님의 통역으로 그는 삼십 살이 넘어 처음으로 외부 세계와 소통을 할 수 있었다. 이 예를 볼 때 어떤 객체가 지능이 있는가를 확인하는 길은 어떤 형태로든 의사교류를 하고 이를 기반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누가 튜링 테스트에 통과하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 「블레이드 러너」  ⓒ
필립 K. 딕의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을 영화화한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는 미래의 황량하고 암울하기 그지없는 지구를 배경으로, 우주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지구로 침투한 인조인간(리플리컨트)들을 쫓는 전문경찰관(블레이드 러너)이 인조인간들과 벌이는 사투와 인간적인 고뇌를 그렸다.

블레이드 러너는 고도의 감정이입과 반응 테스트(튜링테스트)를 통해 인간과 복제 인간을 구별할 능력을 지닌 경찰이다. 타이렐사는 리플리컨트를 만들어 우주식민지 개척을 위해 사용한다. 그러나 리플리컨트들은 4년밖에 안 되는 자신들의 수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반란을 일으키고 이들 중 4명이 지구로 잠입한다.

그런데 이 영화가 시종 끌고 가는 주요 핵심은 블레이드 러너가 사용하는 반응테스트 즉 튜링테스트이다. 그는 리플리컨트들에게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없다는 것을 이용해서 그들을 색출한다. 문제는 리플리컨트들을 제거하는 전문경찰관 데커드(해리슨 포드)조차 레이첼이라는 리플리컨트와 사랑에 빠진다는 점이다.

레이첼은 완벽한 안드로이드이므로 의학적 관점에서는 인간과 전혀 구분되지 않는다. 그들을 구별해 내는 방법은 고난도의 ‘튜링테스트’인데 레이첼의 경우는 그것도 어렵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어린 시절 기억이 이식되어 있어 자신이 복제인간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진실한 의미에서 기계로 볼 수 있는 컴퓨터와 사랑에 빠지는 경우가 가능한지는 의문이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진짜 심리치료사와 대화하고 있다고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 이것은 인간의 지능은 언어구애를 통해 잘 과시될 수 있으며 효과적인 언어구애는 지능과 상관있다는 뜻이다.

「에이리언」에 등장하는 인조인간의 경우 “아니, 그가 인조인간이라고?”라는 말이 나온다. 이러한 놀라움을 표시하는 주인공의 대사는 그가 이미 튜링 검사를 통과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목적이 무엇이었든 간에 일단 언어의 싹이 진화하기 시작하자 성적인 동기를 품은 우리 조상들은 자신들의 타고난 언어능력을 구애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넓은 의미의 언어구애는 우리가 왜 집단 속에서 관심을 끌고 타당성 있는 것들을 말하려고 경쟁하는가를 잘 설명해 준다. 짝 고르기는 인간의 사회생활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일반적으로 무엇을 말했느냐가 어떻게 말했느냐보다 더 중요하다.

언어의 형식구조는 주로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매개체로서 진화했다. 성격과 마음을 드러냄으로써 섹스 파트너를 유혹하는 것은 생각과 감정이다. 성선택은 언어의 형식이 아니라 내용을 만든다. 일반적으로 생각 없이 말만 많은 사람보다 깊은 생각을 심오하게 표현하는 사람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감동을 주는 승려나 신부 등이 사람을 무의미하게 떠들어대는 수다쟁이보다 더 인정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단 언어구애가 중요해지자 성선택은 우리의 행동을 인도하는 생각과 감정을 더 많이 의식경험(conscious experience)할 수 있는 쪽으로 또한 그러한 경험들을 언어로 보고할 수 있는 쪽으로 인센티브를 늘여갔다고 추정한다. 그 한 예로 남이 모르는 가십도 성선택에서 중요한 구애행위로 인식된다는 설명이다. 익히 알고 있는 친구에 대한 낡은 정보나 전혀 모르는 사람에 대한 새로운 정보는 관심을 끌기 어렵다. 그런데 쌍방이 잘 알고 있는 대상에 대해 늘 새롭고 입증 가능한 정보를 알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가십의 대상은 대화 참여자들이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해야 하므로 청자가 모르는 새 소식을 발화자가 알고 있다면 발화자는 비밀을 알아낼 수 있는 특별한 위치에 있거나 발이 매우 넓거나 아니면 기억력이 좋거나 또는 그런 정보를 캐낼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주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발화자는 높은 사회적 지위나 높은 사회적 지능을 소유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즉 가십은 지위 과시의 수단으로서 작용했다. 다시 말해 성선택과 그 밖의 사회적 선택에 의해 환영받음으로써 진화했을 가능성이 많다는 뜻으로, 고대 인류에 있어서 이런 가십이 충분한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언어 능력이 개발되어 갔다는 것이다.

▲ 인간(우)과 침팬지(좌) 뇌크기 비교도. 사람의 뇌는 침팬지보다 3배 가량 크다. 이 차이는 유전자의 발현이 두 종에서 서로 다르게 일어난 데 기인한다.  ⓒ
<언어유전자 존재>

근래 유전자의 연구는 적용 분야가 어디까지로 확대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다방면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그 중에서 우리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사람에 가장 가까운 침팬지는 훈련을 하더라도 발성 관련 근육을 잘 움직일 수 없어서 극히 제한된 단어만 발음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반면에 사람은 문장을 만들어 유창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데 학자들이 도전했다.

일본·한국·중국 등 6개국 과학자들이 참여한 ‘국제 침팬지 게놈 프로젝트’에서는 사람과 침팬지의 유전자 구조가 무려 98.75%나 같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학자들이 침팬지 염기서열 파악에 공을 들이는 것은 사람의 진화과정을 추리해 낼 단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과 침팬지의 게놈의 수는 30개로 서로 비슷하다. 유전 정보를 갖고 있는 DNA만 보면 서로 다르게 염기 서열은 전체의 1.23%에 해당하는 3천5백만개, 유전자 일부가 삽입되거나 빠진 부분은 5백만개이다. 이 차이는 사람 간 유전적 거리의 10배, 사람과 생쥐 간 거리의 약 1/10에 해당한다.

두 종의 단백질도 서로 비슷했다. 사람과 침팬지는 단백질 1개당 평균 아미노산 2개 정도 차이를 보였고 29퍼센트의 단백질이 완전히 같았다. 게놈 분석에 따르면 사람과 침팬지 염색체의 가장 큰 차이는 남성의 특징을 결정하는 Y염색체이다. Y염색체는 두 종이 갈라진 뒤 1.9퍼센트의 차이를 보였다.

사람과 침팬지의 염색체 수는 각각 23쌍과 24쌍으로 1쌍이 다르다. 두 종의 염색체 숫자가 다른 이유는 사람의 2번 염색체는 두 종의 공통 조상이 가졌던 2개의 염색체가 융합돼 생겼고 침팬지는 2A, 2B 염색체(12, 13번 염색체로 불렸음)로 분리된 채 진화했기 때문이다.

침팬지가 진화과정에서 사람과 다른 유전자를 갖게 된 경우도 알려졌다. ‘레트로바이러스성 요소(retroviral elements)'는 진화 과정에서 숙주 유전자의 일부분으로 결합돼 자손에게 전달되는 바이러스 유전자를 말한다. 침팬지 게놈에는 사람에겐 없는 PtERV1과 PtER2라는 2개의 레트로바이러스성 요소가 있는데 이들 바이러스가 침팬지의 생식세포를 감염시켜 그 유전자가 자손에게 전해진 것이다.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최근 ‘1퍼센트 차이의 수수께끼’ 가 조금씩 풀리고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언어 유전자’라고 김형자 교수는 설명했다. 인간의 뇌는 챔팬지보다 3배 가까이 크다. 그런데 인간은 ‘폭스피2’(FOXP2)라는 언어유전자를 갖고 있다. 이 유전자가 오랜 진화과정에서 돌연변이를 일으켜 사람이 정교한 언어구사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돌연변이가 일어난 시점은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한 시점과 일치한다고 한다.

FOXP2의 돌연변이는 12만∼20만 년 전에 처음 일어났으며, 현재 인간이 가진 형태의 유전자 변형은 진화 과정 후기인 1만∼2만 년 전에 완성돼 빠른 속도로 전파한 것 같다고 설명된다. 물론 과학자들은 FOXP2 유전자 외에도 다른 여러 유전자들이 언어 구사에 관련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람의 언어와 관련된 유전자가 더 많이 밝혀질지 주목된다.

엄밀한 의미에서 생명체와 기계는 기본부터 차이가 있으므로 진화를 통해 개선되고 발전된다고 하더라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는 없다. 로봇이 인간처럼 성선택을 통해서 진화할 수 있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진화 요건을 생각해보면 로봇의 진화도 한 가지 맥락으로 풀어서 이해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인간이 성선택을 통해 어디로 튈지 모를 정도로 고삐 풀린 질주를 했다고 설명된다.

그렇다면 로봇은 어떤 결론을 향해 질주를 하겠느냐는 질문이 나온다. 이것은 로봇을 만드는 사람에게 고민을 안겨준다. 즉 로봇에게 성선택과 유사한 무언가가 부여될 때 인간이 그들을 어떻게 통제하고 명령을 내릴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인간이 로봇에게 인공지능을 도입하면서 인간처럼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부여할 때 그것이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은 있는가? 소위 언어유전자가 인공지능에 의미를 부여해줄 수 있는가? 이에 대한 해답은 아직 나와 있지 않다. 로봇의 개발이 아직 그런 단계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미네이터」, 「슈퍼맨」, 「포트리스」 등 SF영화의 단골 소재로 볼 수 있는, 인간에 대항하여 나오는 로봇의 반란은 궁극적으로 학자들이 이러한 곤혹스러운 사태가 일어날 수 있는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부 과학자들은 로봇의 지능이 보다 발전하기 전에 국제적인 규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만 인간의 로봇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기술 개발을 목표로 부단하게 노력하고 있는 과학자들에게 족쇄를 안겨주는 일이 될지 모르지만 일단 벌어진 일은 돌이킬 수 없다는 주장을 무턱대고 기우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래저래 첨단 로봇의 개발은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계속)
/이종호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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