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미세먼지가 게이고 청명한 가을날

 

 

제주 여행 중에 김영갑갤러리를 다녀왔다.

 

 

보다 5 먼저인 1957 태어나 10여년 전인 2005 48세라는 푸르른 시절에

루게릭병으로 생을 마감한 사진작가가 그이다.

 

 

그의 갤러리는 남제주군의 성산읍의   폐교인  삽다리초등학교다.

그는 제주의 중산간지역의 오름들을 사진에 담아왔다.

그가 사진으로 수습한 오름들은 그의 무덤이 되었다.

3000년을 지나온 이집의 피라미드처럼,..

1000년을 지나온 신라의 고분들처럼....

이제 그도 그 자신이 하나의 오름이되어 그 오름속에 잠들고있다.

그의 유골이 뿌려진 그의 갤러리 두모악은  그가 마음으로 담았던  그 오름이 되어 있었다.

그는 그의 오름에 오르는 나를 따뜻하고 평화롭게 맞아주었다.

내가 태어나기전 어머니의 자궁속처럼 나를 치유해주었다. .

 


그의 유작인 수필집[ 섬에 내가 있었네]에서 가슴에 닿는 부분이 있어 적어본다.

 

마음의 풍경

사진작가 김영갑

 

들판에는 마음을 사로잡는 풍경이 있습니다.

마음이 불편할 때마다 찾아가 세상을 탓하고

자신을 탓합니다.

어린아이처럼 투정도 부려봅니다.

 

하지만 들판은 한결같이 반갑게 맞아줄 뿐입니다.

그리고 새들을 초대해 노래 부르게 합니다.

풀벌레를 초대해 반주를 하게 합니다.

구름과 안개를 초대해 강렬한 빛을 부드럽게 만들어 줍니다.

해와 달을 초대해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줍니다.

눈과 비를 초대해 춤판을 벌이게 합니다.

새로운 희망을 보여줍니다.

 

마음이 평온할 때면 나는 들판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지냅니다.

마음이 불편해져야 들판을 생각합니다.

그대로 들판은 즐거운 축제의 무대를 어김없이 펼쳐줍니다.

들판이 펼쳐놓는 축제의 무대를 즐기다 보면 다시 기운이 납니다.

 

그런 들판으로부터 받기만 나는 번도

되돌려주지 않았습니다.

들판은 그런 나를 나무라지 않습니다.

대신 언제나 나에게 세상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나의 모습은 들판으로 나오기 전까지와는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들판을 만나고 오는 날에는 잠자리가 편안합니다.

풀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나무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바람이 지나가는 길목, 나무들은 온갖 시련을 홀로 견디며

무성하게 자랍니다.

, , 노루가 주는 시련은 그래도 괜찮습니다.

홍수가 나면 뿌리째 뽑혀 나갑니다.

가뭄이 계속되면 잎들이 말라버립니다.

하지만 풀과 나무들은 하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가뭄이 들면 홍수를, 혹서기에는 혹한기를 떠올리며 참아냅니다.

때가 되면 태풍이 옵니다.

태풍은 몸을 상처투성이로 만들어놓고 떠납니다.

이제는 사람들도 한몫을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풀과 나무들은 삶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뽑혀나간 뿌리로 땅을 짚고 줄기와 가지를 키워 올립니다.

부러진 줄기와 가지를 추슬러 새순이 움트게 합니다.

 

끊임없는 비극과 고통 속에서도 풀과 나무들은

비명 한번 내지르지 않고 불평 한번 없이

절대로 도망치는 법도 없이 묵묵히 삶을 준비합니다.

다가오는 비극과 고통이 그들을 강한 존재로 만들어줍니다.

 

나에게도 비극과 고통이 닥쳐올 때가 있습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는 것입니다.

이때 들판은 나에게 가르쳐줍니다.

어떻게 하면 시련을 성장의 다른 기회로 만들 있는지를...

그래서 나는 들판의 친구로 삽니다.

들판을 친구 삼아 나의 비극과 고통을 넘어섭니다.

아픔은 한동안 머물다 떠납니다.

행복과 즐거움보다는 불행과 슬픔이 나를 성숙하게 만듭니다.

나의 친구, 들판은 나로 하여금 새로운 존재가 되도록 해줍니다.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아주 고요한 몸짓으로

그렇지만 몸으로...

 

 

그의 손 때가 묻은 책들은 그를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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