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평상시와 같이 화장실에 가서 양치질을 하다 보니 한쪽 입가로 물이 주르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입술을 오므리려 노력해 봐도 역시 입안에 머금은 물은 흘러내리고, 눈과 입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때서야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황급히 거울 앞으로 다가가서 들여다보니 이미 입이 한쪽으로 쏠려 있어서 아무리 바로잡으려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안면신경마비증에 걸린 환자들이 자신의 증상을 발견하기까지 대부분 밟게 되는 과정이다. 흔히 「찬바람을 쐬어서」생긴다고 알려져 있는 구안와사. 즉 안면신경마비는 정말 찬바람을 잘못 쐰 탓으로 발병하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찬바람만 피하면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다. 그 이유와 일반인들이 안면신경마비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오해를 풀어보자.
한의학에서 사용하는 구안와사라는 용어는 본래 구안괘사(口眼?斜)로 입 구(口), 눈 안(眼), 입 비뚤어질 괘(?), 기울 사(斜)로 풀어진다. 눈과 입이 비뚤어지고 기울어진다는 뜻으로 안면신경마비의 증상을 따온 이름이다. 따라서 안면신경마비와 구안와사, 와사, 와사풍은 모두 같은 병을 일컫는 것이다.
안면신경마비는 한쪽 얼굴에 마비가 와서 입이 비뚤어지고 눈이 잘 감기지 않는 증상으로 눈을 위로 치켜 뜰 때 이마에 주름이 잡히지 않고 눈썹이 쳐진다.
안면신경마비는 인구 10만 명당 20명의 비율로 발생된다. 찬바람을 쏘이면 안면신경마비가 발생한다고 믿는 이들이 많으나 이는 잘못 알려진 건강상식 중 대표적인 예이다.
급만성 중이염, 내이염, 추체염 및 이성 대상포진과 같은 감염성질환과 벨마비, 청신경 및 안면신경 종양, 한랭노출, 당뇨병, 임신, 가족성 소인 등의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발병하는 증상이기 때문이다.
이중 가장 많은 원인은 벨마비로 21~30세에 가장 많이 발생하고, 성별의 차이는 없으나 임산부에 다소 많다. 발생기전으로는 알레르기설, 바이러스설, 염증설, 혈관 경련으로 인한 혈액순환 장애설 등 가설이 분분하지만 정확한 원인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런가 하면 바이러스가 안면신경을 침범한 경우에는 감기 증상이 있었다가 귀 뒷부분이 아파 오면서 귀 뒤와 귓속에 물집이 생기면서(물집이 안 생기는 경우도 많다) 며칠 뒤에 안면 신경마비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엔 헌트증후군이란 진단이 붙게 된다.
안면신경마비를 뇌졸중의 일종으로 생각하고 일단 걱정부터 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럴 필요는 없다.
물론 인체의 모든 근육은 뇌의 지배를 받는다. 얼굴근육도 예외는 아니어서 오른쪽의 얼굴은 왼쪽의 뇌가, 왼쪽의 얼굴은 오른쪽 뇌의 지배를 받는다. 뇌 속에서 얼굴 근육으로 연결되는 신경이 지나는 통로를 중추성 안면신경 통로라 부르며, 뇌에서 갈라져 나와 직접 얼굴 근육에 연결되는 말초성 안면신경 통로를 안면신경이라고 부른다.
안면신경마비는 이처럼 말초성 안면신경통로라고 하는, 뇌에서 갈라져 나온 신경가지 하나의 이상으로만 발생하므로 뇌 자체의 혈류장애로 발생하는 뇌졸중과는 차이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
흔하지는 않지만 중추성 안면신경계의 이상으로 안면마비가 오는 경우가 있긴 있다. 그러나 이는 일반적인 안면신경마비와 증상이 다르다는 걸 알아야 한다. 대표적인 예가 뇌졸중에 의한 마비다. 따라서 단순한 안면신경마비와 뇌졸중에 의한 마비 증상을 감별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원인에 따라 치료가 달라지는 것도 있지만, 뇌졸중은 말초 안면신경마비를 일으키는 질병보다 훨씬 위중한 질병이기 때문이다.
뇌졸중과 감별하는 가장 중요한 차이는 이마 부위 근육의 마비 유무이다. 안면신경마비는 이마의 주름을 잡을 수 없지만, 뇌졸중에 의한 중추성 안면신경마비는 이마에 주름을 잡을 수 있다. 즉, 눈 아래의 안면근육은 마비되어서 입도 돌아가고 침도 흐르고 식사시 불편하지만, 눈 위의 안면근육은 정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안면신경마비와는 달리 눈꺼풀도 거의 정상적으로 감을 수 있으며 눈의 충혈이나 시린 증상도 없다.
또 안면신경마비는 얼굴 외에 팔다리가 마비되거나 감각이 이상해지거나 또는 어지러움 등 다른 증세가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매우 드물어서 이 또한 뇌졸중과의 차이점이 될 수 있다.
안면신경마비는 치료와 더불어 환자가 주의할 사항이 많다. 우선 안면마비 자체에 대해 조금 넉넉한 마음을 갖는 게 필요하다. 대체로 여성의 경우 하루에도 수십 번씩 거울을 보면서 초조하게 마음을 졸이는데 이는 치료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병세를 악화시킨다.
초기에 눈꺼풀이 잘 감기지 않고 눈물이 잘 분비되지 않아서 눈동자에 먼지 등이 묻어 충혈이 되고 아프기 때문에 안대를 하는 게 도움이 된다. 눈물이 나오는 데 문제가 없다면 손을 잘 닦은 다음에 손으로 가볍게 눈을 감기는 것을 몇 번씩 되풀이해 수동적으로나마 망막을 닦아주는 것이 좋고 만일 눈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면 인공눈물을 넣어 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수면을 취할 때도 안대를 하고 자는 것이 바람직하고 운전 등 장시간 눈을 이용한 작업을 피하는 게 바람직하다. 귀 뒤에서 얼굴 쪽으로 자주 톡톡 때려주는 방법도 도움이 된다.
약 80% 정도의 환자에서 특별한 치료 없이도 1-2개월이 지나면 거의 완쾌된다. 약물을 투여하면 더욱 빨리 회복되는데, 주로 부신피질호르몬제가 흔히 사용되며, 최근에는 바이러스 감염이 의심될 때 항바이러스제제를 사용하여 좋은 결과를 얻고 있다. 초기 약물 치료 후 필요에 따라 물리치료 등을 병행하면 완전한 회복이 가능하므로 반드시 조기에 신경과 전문의에게 진찰을 받고 적절한 치료를 받도록 해야 한다.
이기수 / 국민일보 편집국 정책기획부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