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상한가’ 한의대 |
한의대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수능성적 0.1∼0.3%에 해당하는 최우수 인재들이 한의대로 몰리고 있다. 지방 한의대 커트라인이 서울대 공대보다 높은 게 현실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2003년 전국 17개 과학고 졸업생 가운데 치·의대, 한의대에 입학한 이들은 147명으로 14.7%나 됐다. ‘다음’ 카페에는 한의대 지원을 위한 카페가 수도 없이 개설돼 있다. 이공계 기피와 맞물려 사회적 우려를 낳고 있는 ‘인기 상한가’ 한의대의 내부를 직접 들여다봤다. 한의대에 어떤 특별한 것이 있기에 그럴까.
전국 11개 한의대에는 오씨와 같은 만학도들이 수두룩하다. 불경기가 심화되면서 너도나도 노후가 보장된 전문직을 찾아나서는 세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바로 한의대다. 흔히 ‘나사’(나이든 사람)라고 불리는 이들은 한의대생 전체의 3분의 1 내지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대기업 간부 출신부터 의사, 약사, 기자,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원, 억대 연봉의 학원강사 등 전직(前職)도 화려하다. 원광대 한의대 학생회장 유지웅(23ㆍ본과 2년)씨는 “현역들은 놀기도 하는 반면 늦깎이들은 공부를 무척 열심히 한다”며 “해당 전공과목 수업시간이 되면 교수들이 당황할 정도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시험 전 전공자가 동기들을 불러모아 최종 정리 수업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들어오기 때문에 졸업 후 개원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 유씨의 귀띔이다. 과목수 엄청 많아… 한문 실력 좋아야 때문에 대학에서는 늦깎이들이 늘어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동의대 한의대 박동일 학장은 “50명 모집에 9명만 현역이고 41명이 모두 재수 이상”이라며 “이들은 목표가 오직 개업이기 때문에 연구도 중시하는 학교로서는 제한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대전대 한의대 윤창렬 학장은 “올해 졸업생 중 10여명만 남고 나머지는 다 개원의로 나가거나 군대에 갔기 때문에 조교나 병원 수련의 확보에 애로가 많다”고 말했다. 동의대도 한방병원 수련의 12명을 다 채우지 못하고 타대학 출신까지 합쳐서 9명만 받았다. 한의대의 교과과정은 일반 대학과는 완전히 다르다. 인문대의 경우 ‘철학개론’ ‘한국사’ 등 대부분이 3학점짜리인데 비해 한의대에서는 ‘본초학’ 2학점, ‘간계내과’ 1학점 식으로 대부분 1학점 단위로 쪼개다보니 과목 수가 엄청나게 많다. 이 때문에 경희대 학생들은 스스로를 자조적으로 ‘경희고’라고 부른다고 한다. 우석대 한의대 학생회장 손모아(22ㆍ본과 2년)씨는 “‘동의보감 스터디’ ‘사암침법 스터디’ 등 학술동아리가 많다. 선후배가 함께 원서를 읽고 토론하는 식이다. 보통 1∼2개 정도의 공부동아리 활동을 한다. 양이 워낙 방대해서 혼자 공부하기 벅차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손씨는 한의대생들이 다른 과와 점수차가 심한 데다 대부분 학과 단위의 동아리에서 공부하다보니 학교 전체에서는 왕따를 당하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해부학 등 ‘양방’도 배워 학문 자체가 서양식의 논리적인 체계가 아니라 ‘귀에 걸면 귀고리’ 식으로 두루뭉실하다보니 이런 비과학적인 측면에 혼란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유지웅씨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가장 혼란스러웠다”며 “그 전에 인식했던 자연과학은 앞뒤가 딱딱 맞아떨어졌는데, 동양철학을 바탕으로 한 한의학은 뜬구름 잡기 같기도 하고 ‘기’나 ‘경락’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굉장히 중요한 개념으로 여겨졌다”고 말했다. 한의대에서도 물론 양방 과목을 배운다. 대개 본과인 한의학과(4년 과정)에서 해부학, 조직학, 발생학 등의 과목을 배운다. 의대 수준은 안 되지만 본과 수업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한다. 의대의 커리큘럼은 의사가 되는 데 부족함이 없으나 한의대는 커리큘럼만으로는 부족해 학생들이 외부에서 또 배워야 하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경희대 한의대 학생회장 임금(24·본과 2년)씨는 “학교수업 외에도 방과후에는 유명 한의사를 찾아가 개인적으로 침이나 원전 등을 배운다. 한의대생들이면 대개 학교 밖에서도 선배나 유명 한의사를 찾아가 배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방학이 되면 한 달씩 ‘동의보감 스터디’에 동아리별로 참석하거나 학교게시판을 통해 모인 일행과 함께 합숙스터디 MT를 떠나기도 한다. “외국으로 나가라” 권유도
“옛날같이 한의사만 되면 안정적인 수입을 누리던 시대는 지나갔다. 지금부터 졸업하는 이들은 엄청나게 노력하고, 또 경쟁해야 한다. 교수들도 ‘외국으로 나가라’며 권하고 있다.” 동의대 한의대 학생회장 서정복씨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2000년 이후 국내 한의학계는 이미 포화상태라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그럼에도 매년 750여명의 한의대생들이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세계 시장으로 진출해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지만, 한의사로 향하는 행렬은 여전히 붐빈다. 지난해 서울대 공대 자퇴생 88명 중 52명이 의대, 한의대에 편입했다. 경희대를 포함한 11개 한의대 입학 성적은 전국 상위 0.1∼0.3% 이내에 드는 최고 수준이다. 한문경시대회 입상자나 토익ㆍ토플 성적 우수자, 외국인 전형, 농어촌 전형 등이 정원 내로 선발되기도 한다. 정원의 10% 이내에서 뽑는 편입의 경쟁률도 덩달아 높아졌다. 세명대는 매년 60대 1, 동신대는 40대 1의 경쟁률을 보인다. 경희대도 6명 모집에 평균 250∼300명이 지원한다. 때문에 대구한의대와 대전대 한의대는 의대, 치대 졸업자에 한해서 편입 자격을 주는 등 일반편입을 제한하고 있다. 동의대는 아예 편입제도 자체가 없다. 동의대 한의대 박동일 학장은 “정확하게 점수로 자르기도 어렵고 여러 군데서 청탁이 들어온다”며 “잡음이 생길까봐 아예 없애는 것으로 방침을 정했다”고 밝혔다. 지역사회에 막대한 영향력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한의대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희대 김남일 학과장은 “국가 장래를 위해 최우수 인재가 이공계를 포함한 다양한 영역에 고르게 가야 하는데 한의대에만 몰리는 것은 문제다. 하지만 우리가 나서서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밝혔다. 동신대 한의대 이남구 학장도 “이 지역에서는 전남대 의대가 가장 유명했는데 그쪽보다 인기가 더 높다”며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쉬운 길을 택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순수학문은 외면하고 전부 이쪽으로 몰리는 것은 큰 문제”라고 말했다.
가장 대표적인 대학이 바로 대구한의대와 세명대다. 이곳은 한의대를 중심으로 인근에 바이오산업 관련 단지가 조성되고 있을 정도다. 대구한의대 강석봉 학장은 “대구ㆍ경북지역을 향후 4000여억원 규모의 한방바이오산업 단지로 만들기 위해 학교와 지자체 간의 공동기획단을 만들고 삼성경제연구소와 제휴해 인프라를 구축 중”이라고 밝혔다. 이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한방 약품, 한방 화장품, 한방 식품 등을 개발하고 생산할 거대한 한방 바이오밸리가 조성되는 것이다. 대구한의대는 2003년 5월 이전 경산대였던 교명도 바꾸고, 학부도 한방식품과학부, 한방생명자원학과, 한방스포츠의학과 등 한방 관련학과를 특성화했다. 강석봉 학장은 “교명을 바꾸기 전에는 신입생 정원에 300∼400명이 미달됐는데, 이번 입시에는 정원에 가까울 정도로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한방바이오·한방재활 등으로 특화 세명대 또한 한국 최대의 약초 생산ㆍ유통지 중 하나인 충북 제천에 위치해 있는 장점을 활용했다. 김호현 학과장은 “충청북도 및 제천시와 협력하여 산업자원부에서 지원하는 전통의약품 연구개발지원센터를 제천에 유치해 설립 중이다”라고 밝혔다. 대전대는 임상적으로 암에 대해 독보적인 연구를 하고 있다. 윤창렬 학장은 “우리 한방병원 전체 암환자의 치료 성적이 양방병원보다 우수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며 “5개 단과대 중 한의대가 단연 독보적인데, 한의대가 전체 대학 발전의 견인차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우석대의 경우 한방재활 분야를 특화했으며, 전북도에서는 완주군 안에 한방재활 전문병원을 세우기 위해 부지 5000평을 제공했다. 이상룡 학장은 “기존 한방병원은 중풍환자가 70∼80%인 데 반해, 우리는 마약환자나 발달장애아동(자폐, 뇌성마비 등)을 침술이나 한약으로 치료하는 한방재활 쪽으로 특화한 ‘한방재활연구센터’를 세웠다”며 “이 분야가 사업화에 성공하면 동남아 등에서 많은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경희대는 양ㆍ한방 협진의 원조다. 김남일 학과장은 “동서의학대학원, 동서의학연구소, 동서협진센터 등을 중심으로 동서의학의 협진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원광대는 한의대 중 가장 많은 6곳(익산, 전주, 군산, 광주, 군포, 순천)에 한방병원을 두고 있어 지역 사회 보건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원광대는 또 경희대와 함께 1999년부터 교육부의 BK21 한의학 특화사업 분야에 선정됨으로써 한의학 전문대학원이 설치돼 있다. 오원홍 학장은 “난치병이나 피부질환, 간경화 등의 치료제 개발을 위한 연구와 함께 한의학 문헌을 DB화해서 온라인상에서 활용할 수 있게끔 한의 정보 전산화 작업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외에 경원대는 양ㆍ한방 협진, 동국대는 최초로 미 LA에 로얄한의대 설립, 동신대는 노인성 질환, 동의대는 해양자원을 활용한 신한약재 개발, 상지대는 풍부한 한약재를 기초로 한 한방연구단지 조성 등에 주력하고 있다. ‘한의학의 세계화’ 과제로 남아 한의대의 입지가 강화되면서 매스컴에서는 스타 한의사가 탄생하기도 한다. 경희대 한의대의 경우, 5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만큼 졸업생 수만도 6500여명에 이른다. 대표적 인물로는 노무현 대통령의 한방 주치의를 맡고 있는 신현대 경희대 한의대 교수가 꼽힌다. ‘사암침법’(조선 광해군 때 사암도인이 창안한 것으로 전설로만 남았던 침술로, 마음이 일어날 때 경락의 움직임에 따라 몸도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의 대가로 교육방송(EBS)의 특강으로 유명해진 김홍경씨도 경희대 한의대 출신이다. 개그맨 못지않은 입담으로 한의학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 눈길을 끈 이경제씨도 경희대 출신이다. 한의학에 춤을 접목한 댄스 다이어트를 보급해 ‘춤추는 한의사’라는 별명을 얻은 여 한의사 최승씨도 경희대 출신. 이제마 선생이 창시한 사상의학의 대표적 권위자로 꼽히는 최형주씨도 경희대 한의대 전신인 동양의학대학을 졸업했다. 미스코리아 출신 한의사라는 특이한 이력을 지닌 김소형씨는 우석대 한의대를 졸업했다. 원광대 한의대 출신으로 가장 유명한 인물은 42세에 진학했던 도올 김용옥씨다. 민선 초대 부산 기장군수를 역임한 오규석씨도 1988년 동국대 한의대에 입학, 1994년 졸업한 뒤 기장군에서 한의원을 개업하기도 했다. 하지만 진정 한의대가 국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수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의학의 세계화’다. 동의대 한의대 박동일 학장은 “미국에서는 침에 대한 연구가 20년 전부터 다 되어 있는 등 한의학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잘못하면 미국과 중국의 한의학이 국내로 역수입될 위험도 있다”고 말했다. 동국대 한의대 신흥묵 학장도 “미국에는 대체의학분야에서 한방의학 분야를 1조1400억달러(1200조원, 2001년 기준) 지원했는데, 우리는 전통의학인 한의학보다 서양의학에 지원을 더 많이 한다. 우리의 경쟁력 있는 사업을 미국이나 중국에 빼앗기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아직 국립대 중 한 군데도 한의대가 없다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제 한의학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국제 경쟁력을 갖춘 한방 치료기술과 한방신약을 갖추고 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라며 “올해를 해외 시장 진출 원년으로 보고 각종 장치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방산업단지 설치나 한약의 품질인증제도, 한방치료기술 개발사업 제품화 연구 등을 구체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이색 늦깎이 한의대생들
경북대 의대를 졸업한 후 경북대 의대ㆍ계명대 의대 해부학교실에서 21년 간 교수로 재직한 후 대구한의대로 편입한 장성익(57) 교수. 장 교수는 금년 2월 졸업한 후 대구한의대 해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장 교수는 “암에 관한 유전자를 연구했는데, 그 가운데 유전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을 발견했다. 그것을 한의학으로 설명할 수 없을까 하고 지원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의학보다 훨씬 더 외워야 하는 시험이 많은 데다 식물이름과 한문 등을 외우는 것이 힘들어 50번씩이나 리포트를 새로 제출하기도 했다”며 “몇백 장짜리 리포트 하나 쓰려면 일주일을 꼬박 바쳐야했다”고 했다. 명색이 교수 출신이었지만 D학점도 받았다고 고백했다. 장 교수는 “의학과 한의학이 겹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을 따로 가르치니 학생들에게 다소 혼선이 생긴다”며 “또 최근 10년 사이에 의학이 무척 발달했으나 1990년 이후 의학적인 지식은 한의학쪽에서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의대 교수들과 한의대 교수들이 함께 심포지엄을 개최하는 방식이 많이 이뤄지면 좋을 텐데, 이 부분이 아쉽다고 했다. 우석대 김성봉(44ㆍ본과 3년)씨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광주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1년 한의대에 편입한 케이스다. 김씨는 “10년 동안 류머티즘을 앓았는데, 그동안 병원 치료약의 부작용 때문에 강의 도중 쓰러지기도 했고, 위출혈로 인해 계단에서 굴러떨어지기도 했다”며 “한약을 먹고 병이 나으면서 양방의학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입학 계기를 밝혔다. 그는 “논리적으로 따지는 학문을 25년 동안 하다가 외우는 것이 많은 학문을 하려니까 처음에는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며 “보통 21학점을 듣는데 1ㆍ2학점짜리가 많아 체력적으로 버티기 힘들 정도”라고 했다. 그는 주위에서 “돈 벌려고 한의대 간 것 아니냐”고 비판하면 “돈 벌려면 장사를 하지 뭐 하러 고생스럽게 한의대에 오느냐”며 면박을 준다고 했다. 김씨는 “한의학을 하면서 인체의 신비나 자연현상에 대해 폭넓게 이해하는 안목이 생겼다”며 무척 만족해했다.
영원한 ‘철밥통’은 없다 한 해 750명씩 10년 간 배출되면 ‘배곯는’ 한의사 나올 것
지난 2월 S대 경영대를 졸업한 고등학교 후배가 찾아와 진로상담을 부탁했다. 서울대 의대와 경희대 한의대에 모두 붙었는데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고민이라는 것이었다. 내 자신이 언론사를 그만두고 다시 공부해 한의사가 된 입장이어서 이런 고민을 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과학고ㆍ외국어고의 우수 학생, 명문대 공대 석사, 의학전문대학원 입시준비를 위해 직장을 그만둔 사람들도 많다. 작년 말 의ㆍ치ㆍ한의대 입시설명회에선 그 열풍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학원 측의 예상인원 1000명을 크게 넘어서 3000여명이 몰렸다. 설명회 시작 3시간 전에 준비한 자료는 동났고 제주ㆍ부산 등지에서 뒤늦게 도착한 사람들이 발걸음을 돌리기도 했다. 이 설명회의 첫번째 강사였던 나는 설명회장의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들었다. ‘의ㆍ치ㆍ한의대 지원의 허와 실’이란 제목으로 강의를 하면서 좋은 점보다는 어두운 전망에 대해 강조했기 때문. 학생ㆍ학부모들은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이제 어느 직업도 ‘철밥통’일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사법고시에 합격해도 취직하기 힘들어졌다. 마찬가지로 의대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받을 의사면허도 ‘배 부르고 등 따뜻함’의 보증서가 될 수는 없다. 2004학년도 의대 정원이 2588명. 이들이 졸업해 개원할 14년(군대 포함) 후에는 3만5000명 이상 의사가 늘어난다. 지금도 개원가에선 문을 닫는 병의원이 속출하는데 과연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의사들 중에는 자녀를 의대엔 보내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다. 한의사들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먹고 살기 힘든 한의사들이 인터넷에 ‘빈의협’이란 모임을 만들었더니 한 달도 안돼서 엄청난 수가 모였다고 한다. 개업 한의사의 상황은 어렵기만 하고 중의사들이 진출할 가능성도 높다. 1만4000여명의 한의사들이 있는 현재도 어려운데 한 해 750여명씩 10년 동안 배출되면 어떨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가 한의대에 입학했을 때 만난 70대 노 한의사가 들려준 말이 생각난다. “한의사는 뛰어난 머리가 필요치는 않다. 꾸준함과 성실성이 제일 필요한 덕목이다.” 근면 성실한 학생들은 의사나 한의사가 되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주변에서 영재급이라고 평가를 받거나 진취적인 학생들은 다시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이들이 이공계로 진학해 신기술 하나만 개발해도 10만명 이상을 먹여 살릴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충분한 부를 축적할 수 있음도 물론이다. 진로 상담을 했던 후배는 서울대 의대로 진학했다. 내가 그 후배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은 진심이었다. “너도 상투를 잡았다. 굶어 죽는 의사는 없을지 몰라도 배곯는 의사는 많아질 거다.” 김창기 주간조선 차장대우(ckkim) 서일호(ihseo)ㆍ박란희(rhpark@chosun.co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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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상한가’ 한의대
2006. 1. 9. 1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