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장군을 주제로 한 작가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에

이어 정찬주작가의 [이순신의 7년]이라는 

7권짜리 반가운 책이 나왔다.


같은 시대 일본의 도쿠가와이에야스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 대망은 36권이나 되지만 

우리민족의 영웅인 이순신을 그린 소설은

겨우 7권짜리라니 초라하기 그지없지만

그래도7권으로 이순신의 7년을 기록한 책이니

반가운 마음에 두근거림을 달래며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아래의 글은 자기의 죽음을 예감하면서

임진왜란 직전에 의승청의 수승 성운과

이순신이 승설차를 마시며 나눈 대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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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심(下心)이 좋은 말 같은디 다시

한 번 이야기혀줄 수 읎겄슈?

마음을 내려놓는다고 말씸드습니다만

정확허게 야그허자 믄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뜻이지라우.”

감정을 워치케 내려놓을 수 있다는 건지유.”

이순신도 자신의 감정이 불처럼 급하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 이었다.

어느 날은 분노가 치밀어 언행이 격해졌고,

또 어떤 때는 사소한 일에 낙심하여 눈물

흘리며 잠 못 들 때가 많았던 것이다.

"수사 나리, 원래 나란 읎는 것입니다요.

다만 감정에 휘둘리는 '거짓 나[假我]’

있을 뿐입니다요. 감정과 생각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것을 어찌 참 나[眞我]’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요?”

뭣이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참 나라는거유?”

“‘참 나는 허공과 같습니다요.

허공과 같아서 감정과 생각에 걸리는

일이 읎습니다요. 허공이지만 아무 것도 읎는

것이 아닙니다요. 공하지만 묘하게 있는

진공묘유가 본래의 나입니다요.도를 닦는다는

것은 바로 이 도리를 깨닫는다는 것입니다요.


이순신은 알 듯 모를 듯한 성운의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었다.

절집에서 우두커니 앉아서 수련허는 선이란 뭣이유?”

목숨을 던지는 수련이옵니다요.

오늘이 마지막인 듯 살기 위해서 허는 것입니다요.

그렁께 선은 중덜만 허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던지듯 사는 사람이면 다

선을 하는 사람입니다요.”

장수가 싸우다 죽는 것도 선이란 말이유?”

그렇습니다요. 장수가 목숨을 던져놓고

싸우다 죽는 것도 선이요, 선비가

자나 깨나 글을 읽다 죽는 것도 선이요,

배고픈 풍각쟁이가 밥 한 술 얻어먹으려고

노래 부르다죽는 것도 선이요,

기생이 사랑허는 사람 앞에서 춤추다

죽는 것도 선이요, 좌수영에 불려 온 중들이

정성들여 성을 쌓다 죽는 일도 선입니다요.”

수승께서는 워째서 죽는다는 말만 허는 거유?”

삶과 죽음은 하나입니다요.

목숨을 던져놓고 사는 사람은 죽음이 곧 삶이니

죽어도 후회허는 일이 읎습니다요.

여한이 없으니께 그렇습니다요.”


이순신은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항상 패처럼 마음에 걸어둔 생각 하나가

새삼 가슴을 적셨다. 장수란 싸우다 이기고

 죽는 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바로 의승청의 수승 성운이 하는

이야기와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의미심장한 대화이다..






다음은 작가 청찬주가 소설을 쓰게된 계기를

 [작가의 말]로 쓴글이다. 난중일기나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으면서 늘 한구석에 개운치 않았던

의문들이 풀려가는 내용이었다.

남도의 백성들이 어떻게 이순신을 도와

호남을 지켜내고 결국 이 나라를 지켜냈는가

그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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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화순만 해도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하자 호남도 우리나라 땅이요,

영남도 우리나라 땅이다.

[湖南我國之地, 嶺右我國之地也]’라며

진주성으로 달려가 순절한 최경회

의병장의혼백이 있고, 재 하나만 넘어가면

이순신 장군이 열선루 누각에 올라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사옵니다라고

임전무퇴의 장계를 쓴 보성이 있다.

뿐만 아니다. 구례에서 곡성, 순천, 낙안,

보성, 장흥, 강진, 완도, 진도, 해남으로 이어지는

남도의 육로와 해로는 건곤일척의 명량 대첩을

 앞둔 조선 수군에게 재기의 생명선이었다.

궤멸 직전의 조선 수군을 기사회생케 한

데에는 이순신 장군과 남도 백성들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이순신은 지인에게

 호남이 없다면 국가가 없소이다

[若無湖南 是無國家]’라고 단언했다.


이순신의 이 한마디는 임진왜란 역사를

관통하는 화살처럼 가장 적확하고 명쾌한

평가일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쉽고 안타까운 사실이 하나 있다.

남도 백성들의 역할이 정당하게 대접받고

 있지 않다는 현실이다. 의병장들은 물론이고,

관군과 의병장들에게 목숨을 맡겼던

민초들의 절절한 사연도 역사 뒤편에 묻히어진 느낌이다.

목탁 대신 칼을 들었던 화엄사, 흥국사 승려들로

구성된 의승 수군義僧水軍의 호국 의식이나,

대부분 남도 출신인 이순신 휘하 장수들의

피 끓는 충정에 대한 이야기도 인색할 뿐이다.



작가 정찬주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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