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워터맨, 촉각을 잃은 사나이 촉각이란 무엇인가? (상) 2008년 12월 16일(화)

21세기 과학난제 사람들 간의 부대낌이 즐거운 겨울이다. 이런 겨울이면 싱글들은 서로 팔짱 끼거나 손잡고 걷는 연인들을 더욱 시샘하는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렇게 좋은 접촉의 느낌, 즉 촉감이 사라진다면 세상은 어떨까?

▲ 서로의 손과 손이 맞닿았을 때의 따뜻한 느낌. 그 느낌이 사라진다면 어떨까? 시각이나 청각과 촉각 중 어느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눈을 감으면 시각을 잃는 게 어떤 건지 금방 알 수 있다. 귀를 막으면 들리지 않은 세상이 어떤 느낌인지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몸이 느끼는 감각인 촉각이 사라진다는 건 보통 생각조차도 하지 않는 일이다. 시각· 청각과 달리 우리 몸이 느끼는 감각을 사라지게 할 방법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촉각은 엄마와도 같은 감각이다. 항상 우리 곁에서 아무 문제없이 자랄 수 있도록 해주는 엄마를 때론 등한시하는 것처럼 촉각도 우리에겐 그런 감각인 것이다.

정말로 촉각을 잃는다면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실제로 그런 일을 당한 사람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촉각을 대부분 상실한 사례

G.L.과 이안 워터맨이란 두 사람이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사례이다. 이 둘은 우리 몸이 느끼는 감각을 중앙신경체계로 전달해주는 신경세포 대부분을 잃었다. 이로 인해 평생 동안 촉각의 상당 부분을 잃은 채 살아갔다.

워터맨의 경우 목 아래 부분의 감각 대부분을 상실했고, G.L.은 입 아래 부분의 촉각을 잃었다. 하지만 두 환자 모두 온도와 고통에 대한 피부 감각은 남아 있었다. 어쨌건 대부분의 촉각을 상실한 이들에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G.L.의 경우 혀를 포함해 입까지도 감각을 잃었기 때문에 당장 말하기는 물론 먹는 일도 쉽지 않았다. 씹는 데 애를 먹었고 말을 해도 이상한 소리만 났다. 때문에 G.L.은 의도적으로 씹는 방법을 떠올리며 음식을 먹어야 했고 자신의 입과 목이 내는 소리를 통해 말하는 방법을 다시 배워야 했다.

뭐 이 정도냐, 별일 아니네, 하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몸이 촉각을 잃었을 때 일어나는 일에서 이 정도는 시작일 뿐이다.

G.L.과 워터맨 둘 다 촉각 감각을 잃긴 했어도 몸을 움직이는 것과 관련한 신경체계를 상실한 건 아니다. 그러니까 근육과 중앙신경체계 간의 정보를 주고받는 신경에는 손상을 입지 않았다는 얘기이다. 따라서 두 사람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근육을 통제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두 사람 모두 촉각을 잃은 후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미스터 워터맨의 눈물겨운 노력

▲ 19살에 목 아래로 촉각 감각을 대부분 잃은 워터맨. 그는 달걀을 느낄 수 없지만 눈을 이용해 손으로 집을 수 있다. 
19살에 촉각을 잃은 워터맨은 촉각을 잃자마자 걷을 수도 서 있을 수도 없었다. 그나마 팔과 다리를 움직일 수는 있었지만 움직임은 전혀 정교하지 않았다. 자신의 팔다리를 보지 않고서는 팔다리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알 수 없었다. 보고 있지 않으면 자신의 손가락이나 자신의 팔은 통제 불능 상태가 되어 버렸다. 때때로 팔은 자신을 때리기도 했다. 통증 감각이 살아 있으니 아픔은 당연히 느낀다.

잠을 잘 때는 어떨까? 침대에 누워 있어도 자신의 몸과 침대를 전혀 느낄 수 없다. 그저 공중에 붕 떠 있는 것처럼 느낄 뿐이다. 그런데 이 느낌은 그에게 정말 끔찍했다고 한다. 언제나 공중에 붕 떠 있어서 편안함을 전혀 느낄 수 없으니 말이다.

아침에 눈이 떴을 때는 어떨까? 때때로 그는 얼굴 위에 놓여 있는 손을 발견하고선 잠시 동안 그 손이 자신의 손이란 걸 깨닫지 못해 순간적으로 당황하는 일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런 워터맨이 자신의 팔다리를 제어하고 다시 서고 걷는 데는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을까? 눈으로 잃어버린 촉각을 보상하기 위해 그가 기울인 노력은 정말 대단했다. 촉각을 잃은 후 앉는 걸 다시 배우는 데 두 달이 걸렸다.

그리고 1년 반 후에야 다시 설 수 있었다. 몇 달 후 걷기 시작했다. 아주 느린 걸음으로 말이다. 그 후 꾸준히 노력한 덕분에 운전도 하고 일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의 몸의 움직임은 예전처럼 노련하고 정교하진 못하다.

하지만 그나마도 눈을 감으면 할 수 없는 일이 되고 만다. 촉각을 잃은 초기에 갑자기 불이 꺼지면 그는 서 있다가 그 자리에서 금세 바닥으로 쓰러졌다. 보지 않고는 자신의 몸을 통제할 수 없으니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의 생활은 눈으로 하루 종일 온 몸의 움직임을 통제함으로써 유지된다. 그래서 워터맨은 자신의 하루는 마라톤을 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워터맨과 달리 G.L.은 촉각을 잃은 후 워터맨이 피눈물난 노력으로 얻은 몸의 움직임을 다시 얻지 못했다. 하지만 만약 워터맨이 태어날 때부터 촉각을 상실했다면 어땠을까? 그가 눈의 도움을 받아 몸을 움직일 수 있었던 건 촉각을 잃기 전에 이미 해보았던 일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애초부터 촉각이 없었다면 이런 일을 꿈꾸기도 힘들다.

그렇다면 당신이라면 시각이나 청각과 촉각 중에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고 했을 때 어느 것을 선택하겠는가? 아마도 촉각을 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시각보다 100배나 뛰어나

이렇게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촉각은 매우 귀중한 감각이다. 이런 촉각은 매우 예민하기까지 하다.

아주 캄캄한 방에 있다고 해보자. 그리고 그 방의 벽은 매끈한데, 거기에는 이 문장의 마침표만한 크기의 작은 점이 하나 있다고 하자. 손가락으로 더듬어서 이 작은 점을 찾으려면 이 점은 매끈한 벽에서 얼마나 튀어나와 있어야 할까? 1밀리미터 정도면 될까?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그 값은 매우 작다. 마침표만한 점이 매끈한 벽에서 고작 1마이크로미터만 튀어나와도 우리 손가락은 그 점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1마이크로미터는 1밀리미터의 1천분의 1밖에 안 된다.

이 정도가 얼마나 작은 수치인지 느낌이 잘 오지 않는다. 하지만 시각과 비교하면 촉각이 얼마나 예민한지를 느낄 수 있다. 우리 눈은 100마이크로미터보다 작은 것을 볼 수 없다. 그러니까 촉각의 해상도는 시각보다 무려 100배나 뛰어난 셈이다.

▲ 엄마 뱃속에서 가장 먼저 발달하는 감각이 바로 촉각이다. 촉각은 진화상으로도 매우 오래된 감각이다. 
이렇게 민감한 촉각은 진화적으로 아주 오래된 감각이다. 단순한 단세포 생물조차도 촉각을 가지고 있을 정도니 말이다. 단세포 생물에 무언가를 갖다 대면 단세포 생물은 그 물체를 건드려 보거나 밀어내는 반응을 보인다.

뿐만 아니라 촉각은 인간의 일생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는 감각이다. 엄마 뱃속의 태아가 가장 먼저 맛보는 감각이 바로 촉각인 것이다. 태아는 임신 초기에 피부로부터 엄마 뱃속의 따뜻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촉각은 가장 빨리 등장하면서도 가장 나중에 기능이 후퇴하는 감각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동안 과학자들은 시각과 청각에 몰두하느라 촉각에 대해서는 연구를 등한시해왔다. 그러던 게 최근 달라졌다. 뇌과학자들은 최근 촉각에 대해 관심을 높이고 있다. 촉감을 이용해 컴퓨터와 상호작용을 제어하는 햅틱스 기술이 각광을 받으면서다.

최근 과학자들이 촉각에 대해 어떤 연구를 하는지, 이를 통해 어떤 햅틱스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지 그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된다.

박미용 기자 | pmiyong@gmail.com

저작권자 2008.12.1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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