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벗는 뇌의 비밀

 

‘최후의 미개척지’라는 뇌과학(Brain Science)은 지금 가장 활기 넘치는 연구분야의 하나다. 인간의 끝없는 탐구욕은 신비에 싸였던 뇌의 비밀을 속속 밝혀내고 있다.

최근의 뇌 연구 성과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글리아(glia) 세포의 중요성을 밝혀낸 것이다. 그동안 뇌 연구는 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신경세포, 즉 뉴런의 연구에 집중해왔다. 전기신호를 전달하는 특화된 기능을 가진 뉴런이 ‘뇌의 주인’으로 대접받았다. 반면 뉴런과 뉴런을 연결하는 시냅스(synapse) 등을 구성하는 글리아 세포는 신경세포들이 얽힌 회로망을 구성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존재지만 소홀히 다뤄져 왔다. 뉴런과 같은 전기적 흥분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뉴런의 작용을 돕지만 정보 전달을 담당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간주됐다.

그런데 최근 연구에 따르면 글리아 세포는 전기적이 아닌 화학적 흥분을 일으키는 세포임이 밝혀졌다. 더욱이 최근에는 뇌 속에 퍼져 있는 글리아 세포의 일종인 ‘성상교세포(星狀膠細胞)’의 네트워크가 뉴런의 네트워크와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음이 알려져 글리아 세포는 뉴런과 나란히 뇌의 주역으로 도약하고 있다. 뉴런과는 또다른 정보전달 체계가 뇌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밝혀진 신경전달물질 100가지 넘어

뇌 속 호르몬의 정체도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인류가 오랫동안 탐구해온 인간의 마음이 곧 뇌 속 호르몬의 작용에 다름아닐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뇌 과학자에 따르면 사람이 평화로움을 느낄 때 반대로 화를 내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각기 다른 호르몬이 뇌 속에서 나온다. 평화는 ‘세로토닌’이라는 호르몬과, 분노는 ‘노르아드레날린’이란 호르몬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또 사랑을 하거나 쾌락을 느낄 때는 ‘도파민’이라는 중독성이 강한 물질이 나오는 것이 밝혀졌다.

시냅스를 매개로 뉴런끼리 연결된 신경회로망에서 전기신호는 시냅스에서 화학신호로 전환됐다가 다시 전기신호로 바뀌는데 각종 호르몬은 이 과정에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이면서 동시에 뇌의 작용에 관여하고 있다. 이런 신경전달물질은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도 100가지가 넘는다. 이러한 물질의 발견은 인간의 마음이 뇌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것으로 각종 정신질환의 치료에도 새 장을 열고 있다.

 

▲ 뉴런과 뉴런을 연결하는 시냅스.


좌·우 뇌의 차이에 대한 연구도 심화되고 있다. 좌·우 뇌의 차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이뤄진 것은 1970년대 이후로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간질병 환자의 뇌에서 우반구와 좌반구를 연결하는 다리, 이른바 뇌량의 한가운데를 절단한 결과 우반구에서 일어난 발작이 좌반구에는 전달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좌뇌와 우뇌가 별개라는 점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좌뇌는 읽고 쓰고 계산하는 논리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반면 우뇌는 그림이나 음악 등의 감성적 세계를 담당하는 것으로 설명됐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이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에 대해 뚜렷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좌뇌와 우뇌의 신경회로가 다를 수도 있다는 점이 부각되고 있다. 지난 5월 일본 이화학연구소 뇌과학종합연구센터의 오카모토 히토시 박사, 아이자와 히데노리 박사와 런던 대학의 스티브 윌슨 박사 등의 공동 연구팀은 물고기 뇌에 대한 연구를 통해 뇌 신경 회로망이 좌뇌와 우뇌가 다르다는 것을 세계 최초로 확인하였다. 연구팀이 관찰한 제브라 피시라는 열대어의 경우 좌뇌와 우뇌에 한 쌍씩 있는 ‘하베눌라’라는 부분의 신경회로가 좌우대칭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지금까진 좌·우 뇌의 차이가 인간 특유의 현상이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좌·우 뇌의 차이는 인간뿐만이 아니라 전체 척추동물에서 폭넓게 보인다고 한다.

죄·우뇌 신경회로 서로 달라

남성과 여성의 뇌의 차이에 대한 연구도 계속 진전하고 있다. 대체로 남성 뇌의 표면적은 여성보다 10% 정도가 넓고 기능과 작용에서도 차이가 있다. 예컨대 여성의 좌·우 뇌는 남성보다 더 긴밀히 상호작용을 하고, 언어능력을 좌우하는 영역의 작용이 더 활발하다. 반면 남성의 뇌는 이성과 감정의 영역이 여성보다 확실하게 구분돼 있고 기계적 추론과 공간지각 능력 등이 여성보다 뛰어나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 3월 “생물학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두뇌 크기와 그 작용 등은 차이가 있지만 환경과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최근 뇌 과학 연구를 인용해 보도했다.

‘남성과 여성의 뇌에서 지능을 담당하는 구조가 다르다’는 연구 결과도 최근 주목을 받았다.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 대학의 리처드 하이어 박사는 지난 1월 신경학전문지 ‘뉴로이미지’에 발표한 연구보고서에서 “지능과 관계된 부위는 남성은 뇌의 회색질(gray matter)에 많고 여성은 백색질(white matter)에 많다”고 주장했다. 회색질은 대뇌반구의 바깥쪽 표면을 싸고 있는 곳이고 백색질은 그 안쪽에 있는 부위로, 회색질 가운데 지능과 관련된 부분은 남성이 여성보다 6.5배 많고 백색질에서 지능과 관련된 부분은 여성이 남성보다 10배 많다는 것이다.

또 남녀간에는 지능을 담당하는 부위의 크기만 다른 것이 아니라 그 분포도 달라 남성은 회색질의 지능 담당 부위가 뇌 전체에 고르게 분산되어 있는 반면 여성은 대뇌의 앞쪽인 전두엽에 국한되어 있다고 밝혔다. 이는 인간진화 과정에서 지능과 관련해 두 가지 형태의 뇌가 만들어졌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 뉴런과 뉴런을 연결하는 시냅스.

 

인류의 뇌에 대한 탐구는 뇌를 복제하려는 ‘야심(野心)’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최근 세계적인 컴퓨터 회사인 IBM은 스위스 로잔공대(EPFL) 두뇌정신연구소와 함께 세계 최초로 정밀한 컴퓨터 뇌 모델 개발에 착수했다. ‘블루 브레인(Blue Brain) 프로젝트’로 불리는 이 연구는 영장류의 출현과 함께 발달해온 대뇌 신피질과 닮은 컴퓨터 모델을 만드는 것. 신피질은 인간 뇌의 90% 가량을 차지하는 부분으로 언어, 기억, 분석, 판단 등 뇌의 가장 복잡한 기능을 담당한다.

2050년 인간의 의식 다운로드

이 프로젝트 연구책임자인 헨리 마크램 로잔공대 교수는 “IBM의 수퍼컴퓨터 블루진을 이용해 2~3년 안에 3차원 신피질 모델을 완성하는 것이 1차 과제”라고 밝혔다. 이를 기초로 감정을 담당하는 구피질, 원초적 본능을 담당하는 뇌간 등 뇌의 다른 부분으로 모델링 작업을 확대해 10년 안에 인간 두뇌 전체에 대한 컴퓨터 뇌 모델을 완성하겠다는 것이다. 두뇌의 작동 과정을 완벽히 재현해 컴퓨터로 모의실험을 함으로써 두뇌의 신경회로 이상으로 발생하는 각종 정신 질환의 원인을 규명하며 치료법 개발에 도움을 주겠다는 게 연구의 목표다.

인간의 뇌에 도전하는 컴퓨터 기술의 발달로 21세기 중반에 가면 심지어 인간의 의식을 컴퓨터로 다운받을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5월 이언 피어슨 브리티시텔레콤 (BT) 미래학 팀장은 영국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2050년이면 인간의 의식을 수퍼컴퓨터로 다운받아 저장할 수 있으며 2075~2080년까지는 이 기술이 널리 보급돼 누구나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육체의 죽음을 넘어서는 영혼불멸의 시대가 과학의 발달로 도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뇌를 복제하고 뇌의 기능을 대체하려는 이 같은 노력이 아직은 뚜렷한 한계를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간의 뇌를 비슷하게 흉내낼 수는 있지만 뇌와 똑같은 것을 만들기는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인간의 뇌는 아직도 과학적으로 규명되지 않은 신비한 부분이 너무 많다.

예컨대 기억작용의 경우 뇌에서 이뤄지는 것이 명확하지만 어떤 세포와 시냅스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메커니즘은 아직 비밀에 싸여 있다. 기억이 어떤 세포에 어떻게 저장되는지를 규명할 수 있다면 기억이 손상되는 질병인 치매의 치료도 가능해진다.

기억의 메커니즘에서 또 규명돼야 할 것은 어떻게 인간의 기억이 지워지느냐는 부분이다. 인간의 뇌가 모든 기억을 저장하고 있다면 뇌 기능 자체가 큰 혼란에 빠질 수 있지만 뇌는 한번 기억한 것을 적극적으로 잊게 하는 메커니즘이 분명 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아직까지 알려져 있지 않다. 또한 시각정보, 운동정보가 뇌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인지되느냐는 것도 아직 연구의 초보 단계에 와 있을 따름이다.

인간의 뇌가 뛰어난 것은 유전적 제약을 뛰어넘어 자율적으로 기능하고 학습하면서 발전한다는 것이다. 컴퓨터는 학습이 불가능하지만 뇌는 학습이 가능하다. 여기서 불가사의한 것은 뇌세포도 간이나 심장세포처럼 원래 1개의 수정란이고 완전히 같은 유전자의 세트밖에 갖고 있지 않은데 왜 뇌세포만이 유전적 제약을 넘는 ‘독특함’을 획득한 것일까 하는 점이다. 이것 역시 앞으로 연구되어야 할 부분이다.

사실 인간의 뇌는 과학의 도전을 거부할 만큼 복잡하고 미묘한 세계다. 우리 뇌 속에는 약 1000억개의 뉴런이 있다. 이것은 은하계에 있는 별의 수와 맞먹는 규모다. 하나의 뉴런은 이웃해 있는 수천 개의 다른 뉴런과 연결돼 있다.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감을 잡을 수 없는 장대한 세계, 생명이 다할 때까지 움직이고 팽창하는 또 다른 우주가 바로 우리의 뇌다.

인류가 개가를 올린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30억개의 염기쌍으로 이루어진 DNA를 조사하여 어디에 어떤 유전자가 있는지를 밝히는 이른바 ‘지도 만들기’였다. 다음은 뇌다. 1000억개가 넘는 뉴런이 만들어 내는 매우 복잡한 시스템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뇌 지도를 만드는 일이 우선이다. 뇌의 어떤 부위가 어떤 기능을 할까. 완벽한 뇌 지도를 그리기 위한 인류의 탐구는 계속되고 있다.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bluesky-pub@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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