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사람 계속 좋아하는 이유

진화심리학으로 본 신결혼 풍속도

2009년 10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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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 직장인 시절에는 돈을 많이 벌어다주는 배우자를 얻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경제적으로 안정된 배우자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지만 꼭 경제력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기업 홍보 업무를 5년째 하고 있는 박주연 씨는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면서 최근 결혼관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연봉이 높고 안정된 직장을 가진 남성도 미래 배우자감으로 좋지만, 거기에 다정다감하고 여러 가지 집안 문제도 편하게 상의할 수 있는 마음씨도 충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옆자리에 앉아 있는 올해 8년차 남성 직장인 이현숙 씨는 거기서 한 발짝 더 나간다. “한국 사회에서 남성이 벌면 얼마나 벌겠어요. 저도 벌고 있고 그보다는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교감을 가진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주변에서 이 같은 생각을 하는 골드미스와 결혼 적령기 여성들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면서 탄탄한 경제력을 확보한 직장 여성들 가운데는 이처럼 배우자를 선택하는 기준을 다양화한 경우가 점차 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통하던 결혼 공식은 정말 깨진 것일까.

현대 직장 남녀 이성관 바뀌었나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이론이 유전자가 세대를 거치면서 자신의 복제본을 더 잘 전파하는 유전자를 찾아내는 과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동물이던 식물이던 짝짓기란 단어는 암수가 상호 합의하에 서로를 동시에 선택하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자연계에서 암컷은 신중하게 선택하는 입장인 반면 수컷들끼리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동물 세계에서 자식을 더 잘 돌보는 성(性)은 자식을 돌보지 않는 성의 입장에서 귀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경우에는 일방적인 선택보다 남녀간 상호선택이 일어난다. 이는 결혼상대 같은 배우자를 선택하는 상황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보통 남성은 여성 배우자를 선택할 때 배우자의 가치 가운데 나이나 신체적 매력에 유난히 관심을 둔다. 신체 요인들은 어떤 여성이 얼마나 자식을 잘 낳을 수 있는지 직간접적으로 알려주기 때문이다. 반면 여성은 남성의 외모보다는 경제적 능력이나 지위, 그리고 신뢰감을 더 따진다.

남녀가 함께 자식을 기르도록 진화한 인간 사회에서 가족을 충실하게 돌보는 남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실제 인간의 짝짓기 과정에서 여성은 훨씬 까다롭게 남성 배우자의 이모저모를 살핀다. 결혼은 자신에게 최상의 가치를 가진 이성을 선택하는 과정인 것이다.

먼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이 같은 짝짓기 기준은 현대인의 결혼관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미혼남녀가 배우자를 선택할 때 남성은 주로 여성의 외모와 성격, 직업(경제력) 순으로, 여성은 상대의 직업과 성격, 가정환경을 순서로 배우자를 골랐다. 배우자 직업도 남성은 보육과 가사를 안정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교사나 공무원을 일반 사무직 여성보다 선호한다고 답했다. 남성은 여성을 출산과 육아를 담당하는 자원(資源)으로 생각하고, 여성은 보호 능력의 척도인 경제력과 지위를 중요시하는 것과 맞아 떨어진다.

돈만 버는 남자는 자연선택으로 퇴출?

하지만 최근 미혼남녀가 배우자로 꼽는 기준은 조금 달라진 것 같다. 이상적인 남성 배우자상이 몇 해 전까지 그저 많은 돈을 벌고 가정을 지키는 남성이었다면, 이제는 다정다감하고 가정생활에 충실한 남성으로 변하고 있다. 여성 배우자상도 현모양처에서 자신의 일을 갖고, 직장인의 고충을 잘 이해해줄 것 같은 사무직 여성으로 바뀌고 있다. 배우자 여성의 직업도 교사, 공무원보다는 대기업 직장여성을 선호한다는 남성들도 생겨났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의 변화가 종전의 배우자 선택 이론에서 크게 벗어나는 걸까. 결코 그렇지 않다. 다만 최상의 배우자를 선택하는 기준이 사회 경제적 환경이 바뀌면서 정교해지고 복잡해진 것뿐이다.

여성의 경우를 한 번 살펴보자.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면서, 상당수 여성들은 경제력을 비롯해 사회적 지위를 누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누리기 위해 결혼을 선택하기 보다는 삶의 질을 더 고민한다. 엇비슷한 경제력과 지위를 갖춘 배우자들 가운데 그에 맞는 차별화한 가치를 찾으려고 한다. 예전에는 가족을 돌보는 경제적 능력에 주로 주목했다면, 그보다 한걸음 더 나아간 가치, 유머감각이나 인간적 면모를 기준으로 삼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남성의 경제력과 지위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라 변화한 여성의 지위에 맞는 새로운 기준들이 추가됐다는 것을 뜻한다. 이제는 졸부형 남성은 ‘자연선택’을 통해 추방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성들 역시 여전히 신체적 매력을 배우자를 선택할 때 중요하게 고려한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남성이 누렸던 경제 사회적 지위가 흔들리고 가정에서 위치마저 위태로워지면서 배우자 선택 기준도 따라서 바뀌고 있다. 이상적인 배우자 기준에 여성의 경제력이나 이해심 등을 포함시키게 된 것이다.

이 같은 배우자관은 여성에게 출산과 육아, 가사, 직장생활에서 모두 성공을 추구하는 ‘알파걸’ 신드롬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전통적 짝짓기 기준이 흔들리면서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도 분명하다. 게다가 경제적 소수자에 속한 여성들은 사랑과 결혼 사이에서 저울질을 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20대 여성 대졸자의 취집형 조혼(早婚)이 늘고 있는 것도 어느 정도 이런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남녀 동질감이 최고의 키워드

하지만 국경과 나이, 계층을 초월한 사랑이라는 감정은 이와 같은 냉철한 동물적인 판단에서 나온 것만은 아니다. 진화심리학자들은 만에 하나 사랑이란 감정이 인류에게 손해를 끼쳤다면 자연선택에 의해 일찌감치 제거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사랑은 오히려 인간 진화의 정교한 산물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 백년해로할 동반자로 삼는 이성은 어떤 사람일까. 최근 남녀간 사랑과 배우자 선택의 다룬 10년간 연구의 공통적인 키워드는 바로 동질감이다. 상당수 남녀간 짝짓기, 사랑에 관한 심리학적 연구는 첫 인상이나 단기간의 반응에 집중돼 있다. 반면 동질감은 진화심리학적으로, 또 유전학적으로 튼튼한 근거 위에 서있다.

심리학자들은 같은 타입의 이성을 계속해서 만나고 싶어 하는 이유를 자신이 좋아했던 사람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옥시토신이 활성화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영국 세인트앤드류대 인지심리학자인 데이비드 페렛 교수팀은 재미있는 실험 하나를 진행했다. 연구팀은 200여명의 남녀 실험 참가자에게 자신의 얼굴을 반대 성(性)으로 만든 사진을 다른 이성 사진과 섞어 보여준 뒤 그 중 호감이 가는 사진을 선택하게 했다. 그 결과 상당수의 참가자들은 자신을 닮은 반대 성의 사진을 골랐던 것. 또 대부분의 남성들이 자신의 어머니를, 여성은 자기 아버지를 닮은 배우자를 선호한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

심지어는 체취에서도 동질감을 찾는 경향은 강하다. 미국 시카고대 마사 맥클린톡, 캐롤 오버 박사 연구팀은 여성은 아버지와 유사한 냄새를 가진 남성을 선호한다는 연구 결과를 유전학 전문 학술지인 ¡Ç네이처 지네틱스¡Ç에 발표하기도 했다.

부부는 살면서 닮는다’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대다수 사람들이 자신의 배우자를 고르는 과정에서 이미 자신을 닮은 이성을 찾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자신이나 부모를 닮은 배우자를 찾는 것은 유전학적으로는 미스터리로 남는다. 유전적으로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는 것은 후손들에게 좋지 않은 열성유전자를 물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를 닮은, 자신과 유전자가 비슷한 배우자를 선택할 경우 특정 환경에 잘 적응한 유전자를 보존하기에 더 적합하다는 연구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명확한 비밀은 풀리지 않았다.

사랑이라는 풀리지 않는 뇌의 작용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데다 역사상 어느 때보다 사회 현상에 영향을 받는 배우자 선택의 메커니즘은 당사자조차 궁금한 알쏭달쏭한 영역이다.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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