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이란 마법을 생각해 볼 때

 

세상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다. 요즘 젊은 세대를 보아도 그렇다. 몇 주 전 일가족 4명을 숨지게 한 한 중학생의 방화사건이 ‘아, 이럴 수가’ 하는 탄식이 나오게 하더니, 슈퍼스타K2의 ‘허각 신화’가 그 어두웠던 마음에 빛을 던져준다.

 

 젊은 세대를 키운다는 것은 가정, 학교, 사회 모두의 공이 들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중에도 가정은 특별한 곳이다. 그 어느 곳보다 이해와 소통이 이루어져야 할 곳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해 보인다. 몰이해, 과잉보호와 과소관심 속에 있다. 자식이 성공하려면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 합쳐져야 한다는 시중의 우스갯소리조차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학교 또한 마찬가지다. 주입식 교육과 사지선다형 문제지로 이루어진 교육 현장 속에서 아이들이 꿈과 상상력의 둥지를 틀 곳은 없어 보인다. 그들이 마음을 붙이는 곳은 인터넷이다. 그곳에는 재미가 있고, 정보가 있고, 친구가 있다. 그러나 그 재미란 폭력과 선정이 있는 재미일 수 있고, 그 정보는 파편화되고 균형을 상실한 정보일 수 있고, 그 친구는 우정과 배려가 없는 ‘가짜 친구(fake friend)’일 수 있다.

 

 세상이란 어느 한편의 힘이 승하면 그 다른 편의 힘을 키워야 하는 법이다. 우리 현실처럼 부에의 집착과 경쟁의 힘이 강하면 도덕과 배려의 힘을 키워야 하고, 디지털의 힘이 강하면 아날로그의 힘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균형이 잡히고 조화로운 사회가 되는 것이다. 무엇으로 그 힘을 키울 것인가? 그 대답 중의 하나가 인문학이다. 소위 문사철(文史哲) 교육이다. 인간 존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문학, 시간과 공간을 넘어 삶의 지혜를 가르쳐주는 역사, 모호한 현실을 구체화시켜 주는 개념 분석과 논리의 철학, 그렇기에 문사철에는 상상력과 포용력과 판단력이 있다. 인문학은 그래서 우리 삶의 품격을 결정하는 것이다.

 

 인문학은 또한 우리의 미래 경쟁력과도 직결돼 있다. 21세기는 하드웨어가 아닌 콘텐트의 시대다. 그렇기에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콘텐트를 채울 스토리와 상상력이다. 그것을 길러주는 것이 문사철이다. 조선왕조실록 하나가 얼마나 많은 콘텐트를 만들어내었는가. 우리 미래는 또한 다양한 생각과 문화를 융합시켜야 하는 컨버전스 시대다. 제품과 서비스가 융합되고, 사람의 능력과 능력이 결합해야 하는 시대다. 이 시대는 서로 다름을 끌어안는 포용력이 경쟁력의 원천이다. 사람 사이의 여백과 관계를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인문학이다. 미래는 또한 와해적 혁신의 시대다. 혁신이 큰 불확실한 환경에서는 무엇보다 고도의 판단력이 요구된다. 어느 직업보다 판단을 많이 해야 하는 월가의 유능한 CEO와 분석가를 어느 대학보다 많이 길러낸 곳이 미국의 세인트존스 대학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대학은 고전 100권을 읽게 만들 정도로 인문교육이 강한 대학이었다. 경제적 가치를 직접 창출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그 가치 창출의 샘을 마르지 않게 하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지금 우리의 교육 현장에서 질식 상태에 있다. 국·영·수 중심의 입시에 밀려 관심을 갖기 어렵게 되었고, 교양과목은 외부 강사에게 맡기기 일쑤고, 전공 학과는 학생들의 기피로 통폐합 대상이 되고 있다. ‘인문학의 위기’는 전공자들의 ‘연구의 위기’에 머물지 않고 우리 사회 전반의 ‘교육의 위기’로 연결되고 있다. 우리의 미래 세대들이 인문학적 소양을 갖지 못할 때, 그것은 이 사회가 가져야 할 정신의 빈곤 문제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의 결핍으로 연결된다.

 

 인문학 교육을 살려내는 것은 돈보다 관심이 문제다. 선진경제를 지향하는 한국이라면 이제는 인문학을 사회의 공공재로 인식할 때가 되었다. 급격히 쇠퇴하는 인문학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 인문학을 현대와 접목하는 연구자들의 노력도 필요하다. 프랑스 CNRS 같은 인문학 종합연구기관을 육성하는 것도 검토해 볼 일이다. 양질의 교육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은 더욱 시급한 일이다. 대학들이 인문학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입시과목도 재검토가 필요하다. 지역별로 인문학 거점대학들을 육성해 그 지역의 중심 역할을 맡기는 것도 한 방법으로 생각해 볼 일이다. 이념에 편향되지 않는 균형 잡힌 교육 콘텐트, 참여와 공유를 가능케 하는 2.0시대에 맞는 콘텐트의 개발도 선결돼야 할 과제다.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은 말했다. ‘세상을 바꾸는 데 마법은 필요 없다. 우리는 이미 이보다 더 나은 상상력이라는 힘을 가졌다’고. 젊은 세대들에 감추어진 그 상상력을 깨워줄 마법의 그 힘,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인문학 교육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이홍규 KAIST 경영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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