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 즉 자신에 대한 자각은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다.

프랑스의 평론가 오귀스트 베일리는 제임스 조이스에 대해서 쓰면서 의식이 마음과 맺는 관계를 교향곡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마음의 일생은 교향곡과 같다. 화음을 갈래갈래 찢어서 그 구성요소 를 한 줄로 늘어놓거나 한 평면에 늘어놓는 것은 아무리 잘해 보아야 임의적인 방법일 수밖에 없고 때로는 큰 실수가 될 수도 있다. 그런 방법 은 우리 정신을 구성하는 요소의 복잡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에게 상대적으로 중요한 것. 우리의 삶과 행동에 상 대적으로 더 중요한 것, 또 여러 생각의 흐름 중에서 상대적으로 더 중 요한 것들은 한 시점에서 여러 개의 구성요소들중 어느 것에 더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서 결성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할 때 한 평면 상에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평면에 걸쳐서 생각 을 한다. 어떤 시점에서 우리가 한 생각만을 따라가고 있다고 단정짓는 것은 잘못이다. 한 시점에서도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있고, 이런 생각 들이 서로 맞물려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고차적인 평면에 형성되는 생각에 대해 더 잘 의식할 수 있다. 또는 그런 생각들에 대해서만 더욱 완벽하게 의식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또한 하위 수준에서 일 어나는 생각의 흐름도 분명치는 않지만 어렴풋이나마 의식할 수 있다. 우리는 일련의 영상이나 심상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고, 영상이나 심상 이 하나의 시리즈를 이루고 있음을 인정한다. 한편 우리는 의식의 보다 불명확한 평면에 나타나는 여러 시리즈의 영상이나 심상도 항상 의식하 고 있다."
데카르트에게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생각이 가장 강력한 것이었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그 사고와 견줄 만한 다른 모든 요소들은 정신세계의 모기와 같은 것이어서 잡 아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그가 자신의 의식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던 정신적 풍경화(mental landscape)에 집중할 수 있다고 믿었다. 데카르트는 인간이 깨어 있는 동안 한순간도 그침 없이 의식을 만들어 내는 복잡한 구성요소들, 어떻게 보면 혼란이랄 수 있는 것들을 완전히 무시 했다.* (그는 꿈도 무시했다.꿈 속에서는 대부분 여러 개의 다른 테마나 하위 테마가 때론 아주 교묘하게 연관되어 한 시점에서 여러 개가 상상화 속에서 펼쳐진다.)
그러나 데카르트가 한 가지 사실에서만큼은 옳았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것은 바로 우리 의식이 항상 어떤 조건에서도 하나의 개체로 경 험된다는 것이다.

강박장애인을 예로 들어 보자. 만일 그가 이사회에 가 야 할 이유를 수십 개 생각해내서 가지 말아야 할 이유 수십 개와 균형 을 이루게 한다고 하더라도. 즉 그가 이사회에 가야 할 이유와 가지 말 아야 할 이유를 모두 마음 속에 생각하고 있더라도 그는 자신을 한사람 으로 경험한다. 강박장애인도 고통받는 개체이긴 하지만 여전히 자신을 개체로 경험한다는 것이다. 환청을 듣는 정신분열증 환자든. 피에 젖어 눈을 부릅뜬 얼굴 환상으로 고통받는 PCP(마약의 일종으로 펜사이클리 딘의 약자) 중독자든 자기 혼자서(하나의 개체로서) 그런 무서운 일을 겪고 있다고 지각한다.
이런 단일하게 통합된 의식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 다. 그러나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통합된 어떤 것이 없는 세계, 아 무 의미도 없는 세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에드는 24세의 청년으로 이전에 소유했던 자전거를 모두 기억하고 생생하게 기술할수 있다. 매주 토요일 아침. 그는 자기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여행 목적지는 지도에서 선택한 어느 도시의 어느 가게이다. 목적지는 한 번에 한 곳뿐이 다. 그는 방문할 도시나 가게를 알파벳 순으로 정해 놓았고 한 주에 한 가게만 찾는다. 방문해야 할 도시 목록 에서 다음번에 방문하기로 예정한 도시로 가기 위해 몇 시간을 자전거 로 달려간다. 그리고 그 도시에서 처음 방문할 A가게가 다음에 방문할 B가게보다 먼 곳에 있다고 해보자. 그러면 에드는 더 가까운 B가게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B가게는 다음주에 다시 와야 한다. 그럼 에드는 이렇게 애써서 찾아간 가게에서 무엇을 하는가? 그는 단지 목적지를 잠시 바라보다가 지도에서 그 위치를 확인하고는 다시 집으로 향하는 먼 길을 떠난다.
여러 면에서 에드는 정상이다. 그의 문제는 정신지체가 아니고 '자폐증' 이다. 그에게 부족 한 것은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 내의 장소나 사람 들에게서 보통의 의미와 목적을 찾는 능력인 것이다. 자신의 삶에 질서 를 부여하기 위해 에드는 목록을 작성한다. 그 목록들이 에드가 다른 방 법으로는 구성할 수 없는 어떤 틀을 그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자폐증 때 문에 에드는 자신에 관하여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을 지니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의 마음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미를 부여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데는 부적절하 다. 에드의 아버지는 말한다.
"그는 살아가면서 날마다 어떤 동질성을 찾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는 무엇을 질문해 온 적이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사회적 행동을 하라 고 강요하지 않았다면 그는 아무런 사회적 행동을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에드는 그냥 자기 방에 앉아서 자기가 갖고 있는 지도를 보고 자기 라디오를 들을 뿐입니다. 에드의 행동에 나타나지 않는 세 가지 일 이 있는데, 첫째 어떤 것을 요구하는 것. 둘째 다른 사람과 무엇을 공유 하 는 것. 셋째 자신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샌디에이고에 있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신경과학자 에릭 쿠셴이 에드를 안 지는 여러 해가 되었다. 그는 자폐증이 보이는 결손이 정보를 종합하는 능력이 부족해 생긴다고 주장한다.
"자폐아들은 사회적 상호작용이나 일상의 상호작용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가능한 한 철저하게 기록합니다. 자폐아들은 서로 연결되 지 않은 여러 정보 조각을 모은 다음. 이런 사실들을 종합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새로운 창조물로 역어내기보다는 정보를 조각조각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다가 자신들의 신경계에서 어떤 단추가 눌러지면 그 단추에 적절한 정보의 조각 또는 적절한 규칙에 따라 반응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규칙이나 정보는 처음에 갖고 있던 것들로. 전혀 변화를 거 치지 않은 깃입니다. 정보와 정보가 조합되는 법도 없습니다. 어떤 정보를 자기 세계 안에서 자신만의 경험을 표상하는 독특한 기호나 생각으 로 바꾸는 능력 혹은 종합하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 자폐아들의 특징입니다."
자폐증은 오 늘날에는 뇌 손상으로 인한 것이라고 인정된다. 에드는 지능이 충분히 높으며 학습능력과 호기심도 있다. 그리고 자신이 소유 했던 자전거에 관심을 가지듯 어떤 대상에 강한 흥미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자폐증 때문에 에드의 마음에는 중요한 요소가 하나 빠져 있다. 즉. 에드는 학습한 정보를 상징이나 생각으로 변형하여 자신의 마음을 구성하거나 만들어내는 능력이 없다. 쿠셴은 이렇게 말한다.
"정상인에게는 삶이 소설처럼 펼쳐집니다. 그래서 그 소설 같은 개인 의 이야기에는 시작이 있으며. 인물들이 나오는 일련의 사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폐아 들에게는 이야기가 없는 셈입니다. 그 대신에 사 실, 규칙. 목록의 나열이 있을 뿐입니다. 마치 십자말 풀이와 같습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사실, 규칙, 목록은 십자말 풀이의 겹치는 부분처럼 연관이 있을 때도 있지만 아무 관계가 없을 때도 있습니다. 자폐아들에 게는 사실들 사이의 본질적인 상호작용은 없는 것입니다. 사실들이 그냥 존재할 뿐입니다. 즉 사실들이 개인의 이야기로 구성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통합과 종합이 문제가 되는 듯 '보이 지는' 않는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대체로 조리 있게 설명할 수 있으며, 그냥 존재할 뿐입니다. 즉 사실들이 개인의 이야기로 구성될 수가 없다는 자신의 운명은 대부분 자신이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통합체로서 자신을 경험한다. 철학자 존 설은 이렇게 의식의 중요성을 말한다 .
"의식은 마음의 본질적인 면입니다. 마음에 대한 이론은 모두 그 탐구 의 중점을 의식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의식을 주요 연구대상으로 삼지 않는 한 그 이론은 핵심을 간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과학자들은 의식을 연구하기를 꺼렸다. 이 의식을 그 연구 대상으로 선호하지 않은 이유는 의식이 '과학적'인 것이 아니고 신비주의나 종교와 관련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존 설은 다음 과 같이 말한다.
"마음이 신비로운 것, 신화적인 것이라는 생각은 소화작용이 신비롭고 신화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뇌가 마음에 대해 하는 일은 바로 위가 소화를 위해서 하는 일과 같습니다. 이제는 의식과 같은 정신적인 것도 물리적 세계에 있는 다른 것들처럼, 즉 물리적 세계의 일부로 취급해야 합니다. 저는 마음이 독립된 운동장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이란 그런게 아니라 사고, 감정, 경험처럼 마음에서 일어나는 정신현상이라고 부르는 일들의 나열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 이 란 과정을 지칭하는 말이지 어떤 대상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은 탈신비화되어야 합니다. 전통적으로 인간은 마음을 무시무시한 것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전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마음은 생물로서의 우리 삶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생물로서 살아가는 데는 마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손가락을 잃고도 살 수 있고 눈이 없더라도 살아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의식이 없다면 그걸로 끝입니다. "
마음이 일부를 차지하는 '생물로서의 인간 삶'은 아주 구체적이다.

두개골이 잘 보호하고 있는 약 1.4킬로그램 가량의 신경조직인 뇌가 바 로 마음의 물리적 구현이다. 뇌가 특정 부분 손상되면 마음이 변질된다. 이런 특정 영역의 손상에 대한 연구는 마음을 탐구하거나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분리뇌' 수술을 받은 환자들을 연구하면 이런 관점에서 특히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정상적으로는 뇌의 오른쪽 반구와 왼쪽 반구가 뇌량이 라는 구조에 의해 사슬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 뇌량은 굵은 신경섬유 의 다발로서 두 반구 간의 상호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한다.(라 페로니의 환자가 다친 곳이 여기다.) 간질 발작 가운데 한쪽 반구에서 시작된 전 기 신호의 방출이 뇌량을 통해서 다른 쪽 반구로 전해져, 양쪽 뇌가 모 두 발작을 일으키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발작이 생명을 위협할 정도 거나 다른 치료가 아무 효과가 없을 때는 뇌량을 외과 수술로 절단함으 로써 전기 신호가 전해지는 경로를 차단해 버릴 수 있다. 그 수술을 받 고 나면 발작이 일어나더라도 약으로 통제할 수 있고. 환자는 비교적 정 상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뇌량 절단 수술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뇌량을 절단하면 두 반구 사이에 정보를 교환할 수 없게 된다. 이 것은 괴상한(한편으로는 흥미로운) 상황을 연출하게 해서 마음의 중요 한 과정을 이해하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다트머스 대학의 신경과학자인 마이클 가자니가 박사는 분리뇌 수술 을 받은 간질병 환자 조를 대상으로 실험했다. 가자니가는 조 앞에 놓인 스크린에 '걷다' 라는 단어를 시야의 왼쪽에만 제시했다. 왼쪽 시야는 뇌의 오른쪽 반구에만 투사되므로 조의 왼쪽 반구는 '걷다' 라는 단어가 전달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왼쪽 뇌는 대개 언어와 관련 있다. 그러므로 조의 경우 언어를 처리하는 왼쪽 뇌는 '걷다'라는 단어를 못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조는 그 단어를 보고 몇 초 지난 후에 의자에서 일어나서 걸어갔다.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보니 "콜라 마시러 가요"라고 대 답했다.
가자니가가 이 환자에게서 시도한 것은 분리뇌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좌반구와 단절되고. 본래 언어능력이 없는 우반구에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 우반구에 주어진 정보 때문에 피험자는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의식 바깥에 있는 행동을 하게 된다. 즉, 조는 '걷다' 라는 단어 에 비언어적으로는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무엇을 하느냐고 물어 보면 조는 왜 걸어갔는지 까닭도 모른 채. 자신이 하는 일에 뭔가 그럴듯한 이유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 실험에서는 사고가 언어와 상관없이도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사고라는 것은 보여준 단어를 제대로 읽고 그림으로 나타 내는 것을 말한다. 단어로 된 지시를 읽고 지시대로 그림을 그리는 사고 가 피험자가 말로 보고한 것과는 전혀 관계없이. 심지어는 보고한 것과 반대로 일어났다. 피험자는 자신이 아무것도 못 보았다고 말하면서도 자동차를 그려 냈다.
이런 실험 결과들은 흥미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그것은 바로 뇌 전체 가 앞에서와 같은 이중 장부 체계에 따라 기능하느냐는 것이다. 말하자 면 독자들이 이 글을 읽고 있는 동안에도. 또한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 는 동안에도 뇌에는 두 개의 체계가 따로 작동하고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우리는 알 수 없다. 또 이 문제를 놓고 통제된 실험을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정상인에게 '횡연합신경 절제수술*(신경섬유 다발을 자르는 수술)을 할 수 는 없기 때 문이다. 그러나 이런 분리뇌 현상에 대한 실험 결과들이 사실이라면. 또 그런 결과들이 보편성이 있다면 적어도 소크라테스 때부터 목표해 왔던 자기자신에 대한 이해( "너 자신을 알라")가 언어만을 통해서는 불충분 해진다. 왜냐 하면 우리 행동은 여러가지로 설명할 수 있으며 그 중 어느 것이 '진짜' 인지 확실히 알 수 없는데도 좌반구는 하나만을 선택해서 우리의 행동을 설명하는 근거로 삼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나온 자료들은 인간의 정신활동이 여러 개의 서로 독립적 인 뇌 체계의 활동들이 재구성된 결과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라고 말 하는 가자니가는 또한 이런 결과들의 통합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말 한다.
"이런 모든 정보를 하나의 이론으로 통합하는 어떤 최종적인 단계 또 는 체계가 좌반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이 모든 독립적인 요 소들을 일관성 있게 설명하려면 좌반구에 있는 어떤 체계가 일종의 이 론을 생성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론이 곧 우리 자신과 외부세 계에 대해서 개인이 가지는 이론이 되는 것입니다."
1세기 전에 ≪심리학의 원리≫에서 윌리엄 제임스는 의식을 이해하는 열쇠는 '자기참조' 에 있다고 말했다.
"인간이 보편적으로 의식하는 사실은 '느낌이 있다' 내지는 '사고가 있다' 가 아니라 '나는 느낀다' 또는 '나는 생각한다' 이다."
곧, 경험, 사고, 행동을 의식하려면 사고와 느낌에 대한 심적 표상과 경험자로서 자신에 대한 심적 표상이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심적 표상간의 연결이 기억으로 나타난다. 이런 연결이 제대로 안 된 놀라운 예가 클라이브의 경우이다. 그는 바이러스성 뇌염을 앓았다. 말 그대로 뇌에 염종이 생긴 것인데. 클라이브의 경우에는 양쪽 측두엽 과 왼쪽 전두엽의 많은 부분에 바이러스가 침투했다. 양쪽 측두엽에는 학습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해마라는 부위가 있다. 그의 해마는 양쪽이 다 파괴되었다. 뇌염을 앓기 전에 클라이브는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음 악을 전공한 학자였고. 오르간의 대가이며. 저명한 합창단장이었다. 그 러나 지금은 가로. 세로 각각 3~4미터 되는 병실에 앉아서 솔리테어라 는 카드 게임을 혼자 끊임없이 하거나 노트에 무언가 계속 적으면서 시 간을 보내고 있다.
 
가자니가는 이러한 실험 결과들이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동안에도 여러가지 복잡한 활동들이 뇌에서 계속 일어난다는 사실에 대한 믿을 만한 증거라고 주장한다. 가자니가는 이렇게 말한다.
"조와 같은 사례는 의식을 들여다보는 창문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또 ' 한 이런 경우는 무의식적 과정들이 우리가 의식하고 자기자신이라고 느 끼는 자아에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 다. 조 같은 환자들은 많습니다. 이런 예들은 서로 반(半)독립적인 행위 자들(agents), 또는 반독립적인 처리 과정들이 통합되어 마음이 이루어 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반독립적 처리과정들은 우리 의식 바깔 에서도 수많은 활동들이 일어나게끔 합니다."
가자니가는 뇌에 하나의 자아만이 존재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정상적인 뇌는 여러 개의 모듈로 구성되어 있고 이런 모듈들은 각각 운동, 정서 변화, 자극에 대해 반응할 수 있습니다."
가자니가는 이런 모듈 중의 하나를 '해설자' 라고 부른다. 해설자라는 모듈은 서로 독립된 뇌의 모듈들이 생성해낸 여러가지 행동들을 조직화 한다. 그럼으로써 한 인간은 통합된 자아를 주관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한 인간이 자신이 통합된 실체라고 객관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곧 '여러 정신체계의 연합'이 아닌 '하나의 마음'을 가진 인간이라는 자각이다. 이런 해설자가 없다면 그 사람 의 행동은 분열되고 그의 성격은 여러 자 아들로 분리되어 각기 다른 목적을 추구하고 말 것이다.
가자니가는 앞에서 설명했던 것과는 또 다른 실험도 했는데. 이 실험 에서는 '자동차' 라는 단어를 조의 우반구만 볼 수 있도록 비쳐 주었다. 그리고는 "왼손으로 스크린에 비친 단어에 해당하는 것을 그리십시오" 라고 지시했다. 왼손은 엄격하게 우반구가 통제한다. 그러므로 가자니 가가 피험자에게 요구하는 과제는 우반구만이 지각하는 깃에 기초한 활 동이다. 한편 조의 좌반구, 즉 언어를 처리하는 반구는 아무것도 본 것 이 없다. 그래서 조는 "뭘 그리라는 것이죠? 아무것도 보지 못했어요" 라고 항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자니가가 "그래도 한번 해보세요. 왼손으로 뭔가 그리려고 해보세요"라고 다시 한번 요구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조는 가만히 왼 손으로 연필을 들고 자동차를 정확히 그려내는 것이다. 그러나 더욱더 재미있는 것은 조가 그 그림에 대해 보이는 반음이다. 그는 "왜 제가 그 걸 그렸는지 모르겠군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클라이브가 노트에 적는 내용은 늘 똑같다. "이제서야 몇 년 만에 처 음으로 완전 히 깨어 있다." 그리고 그는 그 내용을 다시 볼 때마다 " 누 가 이걸 썼는지 난 모르겠다. 나는 아니다"라고 자신이 노트에 무언가 적었다는 사실을 부인한다. 노트의 글씨체가 그의 것이 아니냐고 지적 하면 그는 화를 낸다. 그의 아내 데보라는 남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제 클라이브의 세계에는 한순간 한순간만이 존재합니다. 현재의 경험을 비교할 과거에 대한 기억도 없고 바라볼 미래도 없습니다. 그의 세계는 눈 깜 짝하는 순간뿐입니다. 그는 눈앞에 놓인 것은 볼 수 있지만 그 정보가 뇌에 도달하자 마자 사라지고 맙니다. 아무것도 클라이브의 뇌에 표상으로 남을 수가 없습니다. 즉, 아무것도 기록되지 않는 것입니 다. 그의 다른 능력에는 이상이 없으므로 모든 것이 아주 정상적으로 입 력은 됩니다. 그의 지능은 사실상 온전하고. 그의 지각은 저나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정상입니다. 그러나 그가 지각한 다음 눈을 돌리기만 하면 그가 지각한 것은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그의 의식은 순간에서 순 간으로의 의식일 뿐입니다. 시간의 진공상태라고 할 수 있겠죠. 순간 순 긴마다 이전의 모든 것에 대해서는 진공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그는 매 순간 자신이 새로 깨어난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는 항상 깬 지 2분밖 에 안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인드>(The Mind)라는 텔레비전 시리즈를 찍을 때 보았던 클라이 브에 대한 가슴 아픈 실례가 있다. 데보라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클라이 브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얼굴에 행복한 웃음을 활쫙 띠고 아내를 맞 았다. 그는 마치 아내를 몇 년 만에 보는 듯했다. 그러나 사실은 몇 분 전에도 아내는 그의 곁에 있었다. 그 사실을 클라이브는 기억하지 못하 는 것이다. 그렇게 똑똑했던 사람이, 그렇게 많은 것을 이루어낸 사람이 이런 지경에 빠진 것이다. 데보라는 말한다.
"여기 이 사람은 망령이 난 것도 아니고, 건망증이 심한 것도 아니고, 얼간이도 아닙니다. 그는 정신이 맑고 지능도 높은 사람입니다. 단지 자 신의 삶에 대한 지식을 도둑맞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처지 에 대해서 매우 자존심 상해하고 커다란 좌절감을 느낍니다. 그에게 뭔 가 말해 주면 바로 이전의 문장을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무엇이 잘못되 었는지 말해 주어도 그는 그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 속 자신이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서섹스 대학의 앨런 파킨 박사는 클라이브가 처한 비극적인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 한다.
"그는 정상인들과는 너무나도 다릅니다. 우리가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은 스스로를 시간적인 연속선 상에서 지각하는 능력을 포함하고 있는 데, 클라이브는 마음의 일부를 심하게 손상당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 앉아서 어떻게 여기에 왔는지, 여기를 떠나면 무엇을 할 것인지 등등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클라이브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없 습니다. 그래서 그는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는 심정일 깃입니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클라이브의 의식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며 아내도 알아본다. 그러나 그의 의 식은 순간 순간에 제한된다. 그가 의식하고 있는 그 짧은 순간의 전후에 는 두려운 심연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뇌염으로 인한 무서운 뇌 손상이 클라이브의 중요한 한 부분은 온전히 남겨 두었다. 이것은 그 를 잘 알고 사랑하는 아내 데보라에게는 아주 고마운 일이다. 데보라의 맡을 들어 보자.
"클라이브라는 존재와 클라이브라는 인간, 그의 영혼은 이전처럼 온 전합니다. 그가 그렇게도 길망하고 고뇌하고 화가 나 있고, 그렇게도 날 사랑한다는 사실은 현실적인 인간의 열성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는 다른 어떤 것들보다도 마음의 한복판에서 나오는 가식없는 인간의 열정 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클라이브는 현재에서만 살 수밖에 없는 저주를 받았다. 그러나 다른 보통사람들은 마음을 통해서 현재가 제한하는 깃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마음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모습이 어떨 것인가 비추어 보고, 과거를 되 돌아볼 수 있다. 우리는 기억을 갖고 있다. 다른 사람의 감정과 행동에 감정이입을 할 수 있고 동일시할 수 있다. 우리는 창작과 예술활동을 할 수 있다. 마음은 우리에게 의미와 방향 그리고 시간에 따른 발전 가능성 을 제시해 준다. 마음은 뇌의 실제적 기능들을 총지휘하며 의식과 무의 식을 통합한다. 마음은 수백억 개 뉴런의 놀라운 상호작용이며. 그 이상 이 다.
이 책에서는 마음을 탐색할 것이며, 그러기 위해 한세기 동안이나 마 음을 연구해 온 연구자들의 길을 되밟게 될 것이다. 오늘날 그 길은 신 경과학과 심리학에서 나온 새로운 발견, 때로는 경이로운 발견들이 환 하게 밝혀 주고 있다. 마음의 본질과 정의에 대한 물음은 역사적으로 철 학자들을 매혹시켰고, 어리둥절하게 만들어 왔다. 이 장에서는 마음이 무엇인지 일기 위해 그 몇 가지 측면들을 생각해 보았고. 다음 장들에서 는 마음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지식들을 다룰 것이다. 마음에 대한 지식 을 탐색하는 출발점으로서 논리적으로 적당한 곳은 인간의 발달에서 마 음이 처음으로 나타나는 시점일 것이다. 따라서 다음 장에서는 인간의 발달을 살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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