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송세월하는 나는 봄이면 자전거를 타고 남한산성에서 논다.
봄비에 씻긴 성벽이 물오르는 숲 사이로 뻗어
계곡을 건너고 능선 위로 굽이쳤다.
먼 성벽이 하늘에 닿아서 선명했고,
성안에 봄빛이 자글거렸다. 나는 만날 놀았다.
옛터가 먼 병자년의 겨울을 흔들어 깨워,
나는 세계악에 짓밟히는 내 약소한 조국의 운명 앞에 무참해졌다.
그 갇힌 성안에서는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이
한 덩어리로 엉켜 있었고,
치욕과 자존은 다르지 않았다.
말로써 정의를 다툴 수 없고,
글로써 세상을 읽을 수 없으며,
살아 있는 동안의 몸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을 다 받아내지 못할진대,
땅
위로 뻗은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으리.
신생의 길은 죽음 속으로 뻗어 있었다.
임금은 서문으로 나와서 삼전도에서 투항했다.
길은 땅 위로 뻗어 있으므로
나는 삼전도 임금의 발걸음을 연민하지 않는다.
밖으로 싸우기보다 안에서 싸우기가
더욱 모질어서 글 읽는 자들은 갇힌 성안에서
싸우고 또 싸웠고,
말들이 창궐해서 주린 성에 넘쳤다.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받는 자들의 편이다.
성 아래로 강물이 흘러와 성은
세계에 닿아 있었고 모든 봄은 새로웠다.
슬픔이 나를 옥죄는 동안,
서둘러 작은 이야기를 지어서
내 조국의 성에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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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 [남한산성] 개정신판을 내면서
작가 김훈의 [하는 말]이다.
자신의 명줄을 남에게 맡기고 있는 약소한 나라인
이 땅에 사는 한 지식인의 씁쓸한 탄식으로 들린다.
우리는 중국보다 일본보다 빨리
반도를 통일시켰으되,
그 통일을 스스로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
외세를 힘입어 이룸으로써 고구려의 영토를 잃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자족했으며,
고려시대를 걸쳐 조선에 이르면서
그 힘을 아예 잃고 스스로 작아졌다.
우리의 명줄을 그들에게 진상 되었다.
우리의 명줄을 쥔 자들은 늘 바뀌었으며,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내가 몸 담고 있는 의료계에서도 사정은 똑 같다.
병든 자들은 그들의 명줄을 의사들에게 건네주고
밥 먹듯이 약을 끼니마다 챙겨 먹으면서
생명을 구걸하고 있다.
명줄은 쥐고 있는 자들은 해괴한 방법으로
정상마저 비정상으로 둔갑시켜 그들의 명줄을 옥죈다.
이는 모든 것에 프랙탈처럼 끝없이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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