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16대 왕 인조때 선조(14대) 광해군(15대) 때의 임진왜란에 이어 
청나라에 의한 병자호란 당시를 소설화한 김훈의 남한산성

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임금의 몸에 지욕이 닥치는 날에,
신하는 임금을 막아선 채 죽고 
임금은 종묘의 위패를 끌어안고 죽어도,
들에는 백성들이 살아남아서
사직을 회복할 것이라는 말은 크고 높았다.

.......

파일:external/contents.history.go.kr/114_02.jpg


안주(安州)가 무너졌다는 장계는 청병(淸兵)이
안주를 떠난지 사흘만에  도착했다.

적들은 청천강을 건넜을 것이다.
바람이 가는 눈보라에 말발굽이 일으키는
눈먼지를 포개며 적들은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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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송세월하는 나는 봄이면 자전거를 타고 남한산성에서 논다.

봄비에 씻긴 성벽이 물오르는 숲 사이로 뻗어

계곡을 건너고 능선 위로 굽이쳤다.

먼 성벽이 하늘에 닿아서 선명했고,

성안에 봄빛이 자글거렸다. 나는 만날 놀았다.



옛터가 먼 병자년의 겨울을 흔들어 깨워,

나는 세계악에 짓밟히는 내 약소한 조국의 운명 앞에 무참해졌다.

그 갇힌 성안에서는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이

한 덩어리로 엉켜 있었고,

치욕과 자존은 다르지 않았다.

말로써 정의를 다툴 수 없고,

글로써 세상을 읽을 수 없으며,

살아 있는 동안의 몸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을 다 받아내지 못할진대,

땅 위로 뻗은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으리.

신생의 길은 죽음 속으로 뻗어 있었다.

임금은 서문으로 나와서 삼전도에서 투항했다.

길은 땅 위로 뻗어 있으므로

나는 삼전도 임금의 발걸음을 연민하지 않는다.


밖으로 싸우기보다 안에서 싸우기가

더욱 모질어서 글 읽는 자들은 갇힌 성안에서

싸우고 또 싸웠고,

말들이 창궐해서 주린 성에 넘쳤다.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받는 자들의 편이다.

성 아래로 강물이 흘러와 성은

세계에 닿아 있었고 모든 봄은 새로웠다.

슬픔이 나를 옥죄는 동안,

서둘러 작은 이야기를 지어서

내 조국의 성에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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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 [남한산성] 개정신판을 내면서 

작가 김훈의 [하는 말]이다.

자신의 명줄을 남에게 맡기고 있는 약소한 나라인

이 땅에 사는 한 지식인의 씁쓸한 탄식으로 들린다.

우리는 중국보다 일본보다 빨리

반도를 통일시켰으되,

그 통일을 스스로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

외세를 힘입어 이룸으로써 고구려의 영토를 잃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자족했으며,

고려시대를 걸쳐 조선에 이르면서

그 힘을 아예 잃고 스스로 작아졌다.


우리의 명줄을 그들에게 진상 되었다.

우리의 명줄을 쥔 자들은 늘 바뀌었으며,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내가 몸 담고 있는 의료계에서도 사정은 똑 같다.


병든 자들은 그들의 명줄을 의사들에게 건네주고

 

밥 먹듯이 약을 끼니마다 챙겨 먹으면서


생명을 구걸하고 있다.


명줄은 쥐고 있는 자들은 해괴한 방법으로

정상마저 비정상으로 둔갑시켜 그들의 명줄을 옥죈다.


이는 모든 것에 프랙탈처럼 끝없이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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