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본질을 밝혀낸 과학자 하리하라의 영화와 과학 이야기 (31) 2009년 02월 25일(수)

하리하라의 영화 카페 감방에 폭력 사건이 일어나 잔인하게 구타당한 수감자가 시애틀 그레이스 병원으로 실려오자 병원 내 의료진들은 모두 긴장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PDR, 즉 Prisoner Death Raw, 즉 사형수였기 때문이다.

레지던트 메레디스는 이 사형수를 치료하면서 그를 과연 살려내야 하는지 의문을 느끼게 된다. 살려내더라도 그는 1주일 후면 사형당할 처지였기 때문이었다. 살기 위해 치료를 받지만, 치료를 받는 것이 결국 예정된 죽음으로 향해 가는 길인 사형수의 처지에 연민을 느끼는 메레디스.

자신에게 연민을 느끼는 메레디스의 심리 상태를 알아챈 사형수는 자신이 젊은 여성들을 죽인 연쇄살인자이며, 잔인하게 학대 당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가지고 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어차피 죽을 예정이니 자신을 살리려는 시도를 더 이상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데...

- 그레이 아나토미, 시즌 5의 한 에피소드 중에서


▲ 그레이 아나토미 시즌 5 중의 한 장면 

죽어가는 사형수를 다룬 이야기는 몇 회에 걸쳐 방송되었고, 그때마다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 주었습니다. 이 에피소드에서는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여러 개 있어서 앞으로 몇 번 더 이야기할 예정입니다. 먼저 그 중에서 드라마 상에서는 스치듯 지나가지만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었던 이야기를 언급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형수가 메레디스에게 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학대 받는 아이였고, 학대를 피해 싱크대 밑의 좁은 공간에 숨어 지내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좁고 어두운 공간에 숨어서 두려움을 견디기 위해 싱크대 안에 놓인 세제 박스들의 라벨들에 집중하면서 글을 익히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말이죠.

그 대사가 드라마 상에 등장한 이유는 한때 그저 작은 어린아이였던 그가 잔인한 살인자로 자라 지금 사형수가 된 데에는 어린 시절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어린 시절의 사랑이 사람을 이토록 비뚤어지게 만들 수 있는 것일까요?

사실 이런 종류의 일반화는 매우 위험합니다. 위의 경우는 매우 극단적인 경우이지만, 학대 받는 아이들이 자라서 남들을 또 해친다는 류의 이야기는 흔히 듣습니다. 하지만 이를 함부로 적용하다가는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학대 받고 자란 아이도 남들에게 사랑을 줄 수 있고,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도 남들을 해치는 악한으로 자랄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 사형수의 불행한 어린 시절이 반드시 그의 현재의 모습을 설명해 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가 저지른 죄의 무게가 이로 인해 가벼워진다고도 생각하지 않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린아이에게 있어 그를 사랑해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이 험한 세상에서 아이들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버팀목이 된다는 것입니다.

누가 이 아이들을 죽음에 몰아넣었는가?

1945년, 오스트리아 의사 레네 스피츠(Rene Spitz)는 수용시설 두 곳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연구는 겨우 넉 달간 지속되었을 뿐이지만, 이 연구에서 발견된 사실은 매우 놀라웠습니다.

스피츠가 연구한 수용시설 중 하나는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모아서 돌보는 기아보호소였고, 다른 하나는 여성 죄수들의 아기들을 위한 교도소 내 탁아소였습니다. 스피츠는 이 두 곳의 시설을 비교하였고, 각각의 시설에서 아기들이 얼마나 잘 자라나는지를 살펴보았지요.

일단 객관적인 조건은 기아보호소 쪽이 월등히 좋았습니다. 기아보호소는 매우 위생적이고 깨끗했으며, 먹을 것도 충분히 공급되었거든요. 하지만 물리적 시설에 비해서 아이들을 돌보는 보모가 부족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보모의 손길을 충분히 받지 못했습니다.

또한 당시의 ‘최신’ 사회적 지견은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려면 아이를 ‘격리’시키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아이를 깨끗하게 소독된 담요 위에 혼자 놓아두는 것은 아이의 건강을 지키면서도 독립심을 발달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이렇게 노력했는데도, 기아보호소에 입소하는 아이들 중 20~30%는 입소 첫 해를 넘기지 못하고 죽어갔습니다. 이는 청결과 영양만이 아이를 키우는 모든 것은 아니라는 의심을 갖게 하기 충분했지요.

기아보호소에 비한다면 감옥 내 탁아소 시설은 형편없을 지경이었다고 해요. 많은 아이들이 한데 엉켜 뒹굴었고, 아이들 방은 늘 어질러져 엉망진창이었지요. 하지만 이곳의 아이들은 아무도 죽지 않았습니다.

스피츠가 관찰한 넉 달 동안에만 기아보호소의 아이들은 88명 중 23명이 사망했지만, 감옥 내 탁아소의 아이들 중에 죽은 아이들은 없었습니다. 스피츠는 이 차이에 주목했습니다. 결국 스피츠는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이고 깨끗한 환경을 제공하더라도, 엄마의 손길을 받지 못한 아기들, 즉 사랑스러운 쓰다듬을 받지 못한 아기들은 점점 생기를 잃고 죽어간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아기의 생존에 있어서 ‘사랑’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죠. 사랑 받지 못하는 아기들은 작은 일에도 어이없이 죽어갔고, 죽지 않고 살아남았더라도 모든 면에 있어서 무기력하고 타인과는 애착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무심한 사람으로 자라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이 아이들은 감정적인 면에서 서툴 뿐 아니라, 지능 지수 역시 사랑 받고 자란 아이들보다 뒤떨어지는 경우가 흔하게 나타났습니다. 사랑이란 아이를 생존케 하는 힘인 동시에, 아이를 훌륭한 어른으로 키우는 가장 기본적인 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지요.

사랑의 본질에 대하여

이처럼 20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철저한 위생과 충분한 영양공급, 그리고 아이의 응석을 받아주지 않는 엄격한 훈육이 아이 양육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양육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가르쳐 준 사람이 있었지요. 바로 ‘사랑을 발견한 학자’로 유명한 해리 할로 박사가 주인공입니다.

할로 박사는 인간과 가장 비슷한 영장류, 즉 붉은털 원숭이를 이용해 인간에게 있어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었답니다.

처음에 위스콘신대학에서 영장류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던 할로 박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실험에 이용하는 원숭이들의 건강과 안전이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할로 박사 연구팀들은 당시 알려진 대로 새끼가 태어나자마자 어미에게서 떼어내어, 완전히 살균 소독된 우리 안에 홀로 지내게 했습니다.

다른 원숭이들과 어울려 지내다가 전염병이 옮거나 싸움으로 인해 상처를 입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지요. 연구원들조차도 이 원숭이들을 함부로 만지거나 안아주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에, 사실상 원숭이들은 완벽하게 보호된 환경에서 자라났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완벽하게 보호를 해줬는데도 불구하고 원숭이들 중 일부는 여전히 죽어갔고, 살아서 어른으로 자란 원숭이들도 다른 원숭이들과는 뭔가 달랐거든요. 이렇게 자라난 원숭이들은 성장한 후에 무리로 돌려보내 주더라도 다른 원숭이들과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폭력적이거나 무관심한 모습만을 나타내었고, 짝짓기 계절에 돌아와도 이성에게 관심조차 보이지 않다가 결국은 평생 외톨이로 지내는 경우가 많이 관찰되었습니다.

할로 박사는 이제 의심을 품기 시작합니다. 도대체 이 원숭이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혹시 잘 먹고 보호해주는 것 말고도 새끼 원숭이가 자라나는 데 필요한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 말이죠.

할로 박사는 자신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 한 가지 실험을 고안해냈습니다. 바로 ‘대리모 인형’을 통한 새끼 원숭이의 반응 정도를 보는 실험이었지요. 그는 갓 태어난 붉은털 원숭이 새끼를 어미에게서 떼어내어 우리에 넣고, 두 개의 대리모 인형을 넣어주었습니다.

하나는 우유가 가득 든 젖병이 매달려 있어 배고픔을 달래줄 수 있지만 철사로 만들어져 딱딱하고 차가운 인형이었고, 두 번째는 헝겊과 솜으로 만들어져 푹신했지만 젖도 나오지 않고 모양도 진짜 엄마랑은 별로 닮지 않은 인형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학자들이 주장한 대로라면, 새끼 원숭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배고픔을 달래는 일이기 때문에, 새끼 원숭이는 우유를 주는 철사 인형을 더 좋아할 테지요. 하지만 두 개의 인형을 만난 아기 원숭이들의 반응은 약속이나 한 듯 모두 똑같았습니다.

이들은 배가 고플 때만 잠깐 철사 인형에게 다가가 우유를 빨아 마시고는 나머지 시간 모두를 헝겊 인형의 품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아기 원숭이는 배부름보다는 안락하고 따뜻한 느낌을 좋아했고, 심지어는 입으로는 젖꼭지를 빨면서도 몸은 헝겊 인형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도 자주 보여주었지요.

▲ 사랑의 중요성을 실험으로 증명했던 심리학자 해리 할로. 새끼 원숭이는 자신에게 먹을 것을 주는 ‘철사 어미’보다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지만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헝겊 어미’에게 더 집착했다. 

어린 원숭이에게 먹을 것만 제공하는 경우 원숭이는 항상 불안해하고 외로워하다가 결국 심리적 장애가 생기거나 때로는 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헝겊 인형이 보조적으로 주어진 경우에는 그런 일이 적게 일어났지요.

새끼 원숭이들이 보드라운 헝겊을 껴안는 것에 집착한다는 사실을 관찰한 할로 박사는 헝겊인형이 부분적으로나마 엄마의 역할을 대신해주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엄마의 어떤 부분이 아기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일까요?

엄마가 아기에게 줄 수 있는 본질적인 것은 무엇일까요? 할로 박사는 이 본질을 찾아낸다면 이를 응용해 아기를 정상으로 키울 수 있는 ‘생명이 없는’ 엄마를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모성’이라는 신비로움을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찾아낸 것이죠. 할로 박사는 과학자답게 엄마가 아닌 존재가 엄마가 될 수 있는 최소의 요건들 중 두 가지 물질적인 요소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 것은 바로 온기와 움직임이었습니다.

첫 번째 물리적 요소인 온기가 새끼 원숭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실험하기 위해, 할로 박사팀은 두 가지 헝겊 인형을 준비했습니다. 하나는 보통의 헝겊인형이었고, 다른 하나는 체내에 열선이 장치되어 따뜻한 헝겊인형이었습니다.

그런데 실험 결과, 새끼 원숭이들은 따뜻한 헝겊 인형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보통의 헝겊인형에게도 달라붙었지요. 이는 새끼 원숭이들이 온기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였지요.

이번에 할로 박사팀은 새끼 원숭이에게 고정된 헝겊인형과 그네처럼 흔들리는 헝겊인형을 주었습니다. 새끼 원숭이는 마치 흔들림 속에서 안정감을 찾듯 움직이는 인형에게 꼭 달라붙어 있기를 좋아했고, 이렇게 흔들리는 인형에게 매달려 자라난 새끼 원숭이들은 이후에도 좀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들에게는 갇혀 자란 원숭이들에게 흔히 보여지는 자해 현상이나 외톨이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고정된 헝겊인형에 의해 키워진 원숭이는 죽지는 않지만, 거의 대부분 이런 특징을 보입니다), 거의 정상적인 행동 패턴을 보여주었습니다. 단지 흔들리는 인형일 뿐이었는데도, 그 결과는 놀라울 정도로 확실했지요.

이로 인해 알게 된 사실은 부모가 아기를 안고 부드럽게 얼러주는 것이 뇌의 정상적인 발달을 유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움직임은 아기의 신경계를 자극하는 작용을 합니다. 부모에게 안겨 돌아다니고 움직여질 때마다 아기의 미숙하지만 민감한 신경계는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지를 배우고, 떨어질 것 같으면 엄마에게 매달리거나 두 팔을 휘둘러 균형을 잡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행동들 하나하나가 자극이 되어 신경세포의 연결과 발달을 가속화시키게 되는 것이죠. 또한 엄마에게 안겨진 아기는 다음 순간 엄마가 어떻게 행동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항상 ‘예측’을 하고 변화에 ‘적응’하는 일을 하루 종일 되풀이하게 됩니다. 이런 변화와 자극, 예측과 적응의 줄다리기는 아기의 뇌를 무럭무럭 자라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이 시기 아기의 뇌와 신경계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극을 꼭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러한 자극 없이 홀로 남겨진 아기들은 자기 몸에서라도 자극을 만들어내고자 합니다. 할로 박사는 격리되어 자라난 원숭이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의미 없는 동작의 반복이나 자해 현상은 주변에서 자신을 자극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스스로의 몸을 가지고 자극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처절한 자구책이었음을 그제야 깨닫게 되었답니다.

아기에게 사랑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한 결과, 할로 박사팀은 드디어 하나의 결론을 내놓았습니다. 아기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얼러서 달래주는 존재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죠. 그리고 이때의 사랑은 하나의 관계가 아니라 여러 관계를 통해 이룩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랑은 정상적인 발달 과정 속에서 건전한 고리를 엮어 나가는데,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발달 단계 초기의 애착 관계 형성입니다. 이 애착 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면 첫 단추를 잘못 꿴 옷처럼 이후의 관계는 어긋나 버리는 경우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아기의 초기 애착 관계 형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대상, 아기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엄마인 경우가 많습니다. 20세기 초 학자들이 우려한 것과는 달리, 사랑이 담긴 애정 표현을 많이 받은 아이들일수록 초기 애착 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었고, 이 경우 아기는 자신에 대한 존중감을 가지고 더 넓은 세상으로 뛰어드는 적극성을 보이며, 타인과 성공적인 상호 관계를 맺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감 있는 어른으로 자라난다는 사실이 훗날 밝혀지게 됩니다.

사랑은 사람을 사랍답게 만든다

해리 할로의 연구는 과학적인 접근을 통해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려주었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라고 평가됩니다. 우리는 이제 부모가 아기를 안아주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고, 인간관계는 시간을 충분히 들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며, 서로를 돌보는 것이 좋은 인생을 만들어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아주 당연하게 여기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 모두 그가 처음 물꼬를 터 준 덕분이지요.

할로 이후에도 다양한 학자들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사랑의 본질에 대해 연구를 계속한 결과, 사랑은 진화적으로 뇌의 발달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특히나 번연계는 사랑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부위인데, 번연계는 주로 포유동물 이상의 고등동물에게서 발견되는 뇌의 구조라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이를 토대로 하면 사랑이란 번연계가 발달한 고등동물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고, 그 중에서도 뇌가 가장 발달한 ‘인간’은 지구상 어떤 생명체보다도 더 많은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 행운의 종이라는 결론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인간을 파헤쳐 보니 그 밑바탕에는 사랑이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왜 사랑을 필요로 하는지, 사랑이 부족할 때 왜 우리가 제대로 살아가기 힘든지를 설명해줍니다.

일상적인 애착 관계는 별로 중요하지 않게 느껴지지만, 이 작지만 지속적인 반응이야말로 우리가 하루하루를 견뎌내게 하고 우리를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해주는 근본이 되는 것이었죠.

사랑을 배우는 것은 바로 삶을 배우는 것이고, 처음부터 사랑을 배우지 못하는 경우 삶을 제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앞서 말한 사형수의 그 한마디 속에 작가는 바로 이런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 | hari@hanmail.net

저작권자 2009.02.2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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