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육은 학생들의 창의성을 키워주고 있는가 사회 전체가 독특한 시도를 용인하는 분위기 갖추어야 2009년 03월 02일(월)

과학창의 칼럼 과거에 볼 수 없는 것을 새롭게 만들어내거나, 남과 다르게 생각해서 특이한 일을 이루는 것을 창의적인 능력이라고 한다. 하지만 창의성은 단순히 새롭고 다른 생각이 아니라 그 생각을 표현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의 교육은 과연 이러한 창의성을 키워주고 있는 교육인가?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과연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잘못된 교육 풍토와 체제는 무엇인지 되짚어본다.

최근 들어와서 ‘창의(創意)’라는 말이 과학과 교육을 토론하는 마당에 많이 등장하고 있다. 앞으로 교육의 목표는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든가, 우리나라 과학기술이 한 단계 도약하려면 세계적 수준의 창의적 과학자들이 많이 배출되어야 한다든가 하는 말이 자주 들린다.

▲ 오세정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 
물론 ‘창의’를 강조하는 추세는 사회의 발전 단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는 규격화된 상품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했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표준화된 지식과 기술을 보유한 인력 양성이 중요해졌다.

그러기에 교과 과정도 표준화되어 있어 모든 학생들이 비슷한 내용으로 배웠고, 학생 능력의 평가 기준 또한 얼마나 많은 표준화된 지식을 기억하고 있느냐에 맞춰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오면서 펼쳐진 지식기반사회에서 필요한 인재는 과거 산업사회가 필요로 하던 인재와는 다른 모습일 것이다. 즉 지식기반사회를 이끌어갈 인재는 정형화된 지식을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남이 못 보는 면을 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이제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바로 나올 수 있는 지식을 많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러한 지식들을 남과 다르게 해석하고 조합하는 사고 능력이 더욱 중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아마도 이와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포괄적으로 ‘창의적 인재’, ‘창의적 과학자’라고 부르는 것 같다.

그래서 창의적 인재나 창의적 과학자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히 짚어보고, 이러한 인재를 키우려면 어떠한 과정이나 여건 마련이 필요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창의(創意)’란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지금까지 없었던 일을 새로 생각해내는 것”이라고 나온다. 즉 과거에 볼 수 없었던 것을 새롭게 만들어내거나, 남과 다르게 생각해서 특이한 일을 이루는 것을 창의적인 능력이라고 하는 것이다.

대학입시 위주 교육이 창의성 말살

여기서 중요한 핵심은 ‘새롭고’ ‘다르다’는 말일 것이다. 옛날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다르게 생각하고 사물의 새로운 의미를 찾는 자세를 지녀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남과 다른 생각을 한다고 해서 바로 창의적 인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생각을 표현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어야 진정으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창의적 인재로 발전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인재 본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독특한 생각, 과거와 다른 시도를 용인하고 인정해 주는 태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오랫동안의 통념과 다른 아이디어가 쉽게 표출되고 새로운 시도가 만발하여 사회 전체에 창의성이 꽃 피우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사회는 아직도 너무나 경직되어 있고 전통에 얽매어 있어서 타인의 독특한 생각이나 실패한 시도를 용인하는 문화가 덜 발달된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오로지 ‘정답 맞히기’가 유일한 목적인 고등학교에서의 대학입시 위주 교육은 학생들의 창의성을 말살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학과 과학 교육을 보면 이러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취학 전이거나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의 과학에 대한 흥미는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선천적인 흥미는 학교 교육을 받으면서 북돋아지고 계발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파괴되고 말살되는 듯이 보인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생들의 과학적인 상상력과 호기심을 소중하게 키워주기보다 그 싹을 자르고 대신 그 자리에 죽어 있는 책 속의 지식을 주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정답만을 찾는 맹목적인 교육의 탓이다. 무릇 창조적인 탐구란 본인이 가진 의문을 스스로 해소해가는 과정이 중요하고 혹시 그 과정에서 실수하고 틀리더라도 그 과정 자체가 소중한 것인데, 오로지 정답을 이해하고 결과를 외우는 것이 교육의 목적처럼 되어 있으니 창조적인 탐구 능력 개발은 뒷전으로 밀리고 마는 것이다.

과학적 창조성은 네트워크 사고가 핵심

한국의 교육이 학생들의 창의성, 천재성을 계발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면은 이것 말고도 또 있다. 첫째로 너무 일찍 문과와 이과를 구분하여 각 분야의 좁은 교과과정을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일이다.

과학적 창조성은 서로 완전히 다른 영역에서 빌려온 요소들을 조합하는 네트워크 사고가 핵심이다. 따라서 이공계를 전공하는 학생들도 인문 사회적인 지혜에 노출되고, 물리학을 전공하고자 하는 학생도 생명과학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갖추어야 후에 다양하고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학생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교과과정과 대학입시 과목을 선택하면서 폭넓게 배울 기회를 놓치고 있다.

둘째로 객관식, 단답형 위주의 수능 시험으로 인하여 학생들이 깊고 오래 생각하는 습관을 익히지 못하고 있다.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창조성을 연구했던 홍성욱, 이상욱(<뉴턴과 아인슈타인>의 저자) 등은 이들이 뛰어난 업적을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초인적 지능 때문이라기보다 세밀한 관찰력, 탁월한 종합 능력, 그리고 한 가지 문제에 집중해 끈기 있게 연구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라고 결론 내리고 있다. 실제로 과학적으로 중요한 업적을 내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그 문제를 고민하고 노력하는 끈기가 필요한 것이다.

이제는 창의성이 중요함을 말로만 강조하지 말고, 과연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이 우리나라에 태어났을 때 현재의 교육 제도에서도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면, 과감하게 행동에 옮겨야 할 것이다. 국제적으로 창의적인인재를 양성하고 유치하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 마당에 우리에게 결코 시간이 많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세정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

저작권자 2009.03.0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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