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도 사랑할 수 있을까 엄마에게 유일한 존재가 되길 원하는〈A.I.〉속 로봇 2009년 04월 02일(목)

과학미디어로 읽는 미래 로봇을 인간과 흡사하게 혹은 거의 똑같이 만들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밀랍인형처럼 생김새는 물론이고 머리칼, 눈동자 색상까지 사람과 거의 같게 만들려고 한다. 인간과 로봇이 겉모습으로는 구분되지 않을 정도다.

피부조직도 유기생물 세포처럼 만들어 붙인다. 피부조직 아래에 섭씨 36.5도 온기를 불어 넣는다. 만져보면 정말 살아 있는 사람을 만지는 듯한 촉감을 준다. 누군가 앞에 서 있으면 눈동자가 상대방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촉촉하게 습한 눈은 적절한 주기로 깜빡이며 눈빛으로 대화를 시도한다.

▲ 어린아이 로봇 데이빗은 인간으로부터 사랑 받기 위해 개발됐다 

사람처럼 말을 한다. 상황에 맞게 응수한다. 들은 말을 기억하고 그에 따라 적절한 다음 상황도 예상한다. 농담도 건네고 거짓말도 한다. 듣는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말은 삼간다.

상냥하게 사람의 행동을 살핀다. 매너 있게 행동하고 위험한 상황이 예상되면 사람을 보호한다. 이제까지 함께해온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인간’답다. 로봇인 줄 알고 있어도 사람보다 더 정이 간다.

인간이 만든 수많은 창조물 중 가장 인간의 모습에 가깝게 만든 것은 마네킹, 인형 등이다. 이들은 인간이 인간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 착각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안정감과 만족감을 준다.

동물을 형상화한 인형은 만화적인 캐릭터가 더 인기를 끌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을 형상화한 인형은 보다 인간과 가깝게 만들어야 인기를 끈다. 사람의 모습에서 멀어질수록 바라보는 사람은 불안해지고 껄끄러운 느낌을 받는다. 인간의 모습을 한 대상이 인간다울 때 사람은 자신과 동일한 존재감을 느낀다. 편안한 위안을 받는다.

인간과 똑같아야 최대 기능 발휘

인간은 왜 로봇을 인간의 모양새를 본떠 만들려 할까. 움직이지 않는 마네킹이나 인형과 달리 로봇은 말과 행동을 통해 인간의 모습을 흉내낼 수 있다. 그런 로봇을 인간의 모습과 똑같이 만든다면, 이와 함께 생활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함께 하고 있다는 착각을 느끼게 된다.

로봇의 기능이 인간에게 위안을 주는 거라면, 인간과 가장 가깝게 생기고 인간처럼 활동하는 로봇이 최대의 기능을 발휘할 것이다. 위안은 ‘사람’으로부터 받기 때문이다.

영화 〈A.I.〉는 휴머노이드(humanoid) 로봇의 기능을 색다른 차원에서 찾는다.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거나, 전투와 같은 위험한 일에 나서는 등의 전통적인 역할을 벗어난 것이다.

단지 인간에게 ‘다른 인간’의 역할을 대신함으로써 사회적 관계를 형성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람이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위안을 제공하는 것이다. 자녀를 잃거나 사랑 받지 못하는 등 인간 간의 관계에서 감성적 만족감을 성취할 수 없었던 사람에게 사랑이나 우정 등을 준다.

자식과 함께하는 모성애, 이성과의 다정한 애정, 친구로서의 우정 등 인간 간 관계에서만 충족될 수 있다고 생각한 ‘서비스’를 로봇이 담당한다. 이를 위해 로봇은 인간의 모습에 가장 가까워야 그 역할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다. 인간에게서 느끼는 감성을 로봇에게서 받으려면 로봇을 말 그대로 ‘인간’처럼 만들어야 한다. 일종의 착시현상을 통해 감성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다.

〈A.I.〉는 인간과 가장 유사한 인공지능이 개발됐다고 가정한다. 어린아이 로봇 ‘데이빗’은 인간으로부터 사랑을 주고받기 위해 개발됐다. 설정과 함께 엄마를 인지하고, 엄마로부터 말과 행동을 학습한다. 모성애를 주고받기 위해 만들어진 만큼 한 번 엄마로 인식하면 끝까지 맹목적으로 사랑한다.

엄마(유저)에게 옷을 입혀 달라거나, 잠들 수 없지만 자는 척하며 책을 읽어달라고 한다. 숨바꼭질을 배워 옷장에 숨기도 하고, 화장실에 들어가 있는 엄마를 찾아내기도 한다.

▲ 데이빗은 엄마가 좋아하는 커피가 무엇인지 기억해 타오기도 한다 

엄마가 좋아하는 커피가 무엇인지 기억해 타오기도 하고, 식사예절도 배워서 흉내낸다. 집을 비우면 조용히 집을 지키고 남는 시간을 인형(다른 로봇)과 논다.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고 끊임없이 사랑 받고자 노력한다.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데이빗은 숙명적으로 인간(“real”)이 아닌 기계(“mecha”)다. 인간인 엄마는 기계인 데이빗과 인간을 구분한다. 데이빗에게 정이 들어 잠시 인간으로 착각하지만 결국 기계라는 것을 인정한다. 인간인 자신의 아들과 데이빗의 관계에 문제가 발생하자 데이빗을 유기한다. 기계와 함께한 추억은 많지만 결국 자신의 몸으로 낳은 인간을 위해 기계를 버린다.

기계가 준 위안은 유사 위안일 뿐

인간처럼 생겼지만 결국 기계라는 것인 데이빗의 운명이다. 위안은 기계로부터 받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부터 받기 때문이다. 아무리 인간과 닮은 기계라고 해도 기계가 인간이 될 수는 없다. 그 기계가 준 위안은 유사 위안일 뿐이다.

〈A.I.〉는 기계로부터 위안을 받은 인간이 기계의 효용가치가 떨어졌을 때 무참히 내동댕이치는 모습을 묘사한다. 버려진 것을 알아차린 인공지능은 다시 버려지지 않기 위해 인간이 되고자 한다. 사랑을 준 존재인 엄마에게 계속 사랑을 받고자 인간이 되겠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이 모두 소멸한 후에도 죽지 않는 생명력을 가진 기계만 남게 된다. 데이빗은 엄마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만 기억하고 지구의 새로운 존재로 남게 된다. 지구의 생명체가 인간에서 기계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사랑을 기억한 기계가 인간을 추억하는 역전이 벌어진다.

인간과의 ‘사랑’을 나누기 위해 만들어진 로봇(인공지능)은 소멸하지 않는 사랑 때문에 혼란을 느낀다. 데이빗에게 엄마에 대한 사랑은 무조건 하는 것이고, 거기에는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에 있어 엄마에 대한 사랑은 사춘기를 겪으면서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해 다른 방식으로 전환된다. 그러나 사춘기를 겪을 수 없는 기계는 사랑을 줄이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은 공포스럽다.

언제나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은 피곤하다. 사랑을 언제나 주려는 사람은 스토커와 비슷하다. 인간 간의 관계를 유사하게 실현하려는 인공지능이라면, 인간처럼 적절하게 사랑이 줄어드는 방법도 프로그램 돼야 한다.

인간의 감성적인 만족을 위한 로봇이라면 암세포처럼 사랑이 커져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그러하듯 적절한 선에서 싸우기도 하고 토라지기도 하고 사랑이 식기도 해야 한다.

인공지능에 따라 로봇이 스스로를 수리하도록 만드는 프로그램은 불로장생의 존재를 만든다. 다른 로봇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무한복제를 통해 기하급수적으로 로봇의 개체 수를 폭증시킨다.

▲ 인간인 자신의 아들을 위해 엄마는 결국 데이빗을 유기한다 

스스로를 끌(off) 수 없는 프로그램은 과잉 생산에 개의치 않고 지구의 모든 리소스를 소진시켜버린다. 마찬가지다. 로봇에게 사랑의 감정을 프로그램 하면 그 사랑 때문에 인간의 사랑은 소진된다.

한편,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프로그램은 상당히 많은 변수들을 고려해야 한다. 사람이 로봇을 통해 사랑을 느끼기 위해서는 정해지지 않은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사랑은 상대적인 것이고 상황에 따라 사랑을 위한 행위도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 변수는 상대가 되는 인간이다. 흔한 말로 사람의 마음이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위안을 주는 로봇은 언제나 사람의 반응을 살피고 있어야 한다.

학습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생물의 영역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주고받기 위해서는 그가 무슨 행동을 하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정도를 파악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숨겨져 있는 사람의 마음 속에 어떤 의도가 들어있는지, 말하지 않았지만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그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이전까지 프로그램 되어 있지 않는 일까지 계획해야 한다.

의도와 달리 사랑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행동을 했을 때는 물러서야 한다. 마음이 상해 있는 사람에게 원인을 물어야 할지, 내버려 둬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이런 결정은 학습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직관적이고 본능적으로 알아채는 생물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도 사랑을 잘 못한다. 모든 것을 잘 하는 사람도 사랑 하나만큼은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은 사랑을 하면서 언제나 실수하고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수십 번 만나고 헤어지고, 새로운 사람을 찾아 나선다. 헤어지면 후회하고, 후회할 걸 알면서 다시 만난다.

데이빗은 엄마에게 특별한 존재, 유일한 개체가 되길 원한다. 특별한 존재는 인간의 고유한 속성이다. 데이빗은 인간이 되는 법을 알기 위해 피노키오처럼 간절히 기도한다. 인간이 되면 엄마가 다시 자신을 사랑해 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사랑으로 위안을 주는 인공지능’이 있다면 그 로봇은 기계가 아니라 이미 사람이다. 사랑은 논리체계를 따르는 인공지능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다. 자신을 사랑하면서 생기는 주관이 사랑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논리체계에 넣을 재간이 없다.

A.I. Artificial Intelligence | Ian Watson & Brian Aldiss | Steven Spielberg | 144분 | 2001

박상주 객원기자 | utopiapeople@naver.com

저작권자 2009.04.0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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