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란 무엇인가/대니얼 골먼 엮음·김선희 옮김/332쪽·1만2800원·씨앗을 뿌리는 사람

마음이 몸을 치유할 수 있을까? 명상은 의학적 맥락에서 어떤 기능을 할까? 두뇌와 면역계, 그리고 감정은 서로 어떻게 연결돼 있을까?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내 마음은 단지 뇌의 소산일까? ‘몸의 지혜’는 윤리학에 생물학적 단서를 마련해 줄 수 있을까?

1991년 여름, ‘마음과 생명의 과학’이라고 불리는 분야에 몸담고 있는 서구의 저명한 학자들이 인도 다람살라의 달라이 라마 접견실에서 머리를 맞댔다. 철학 심리학 생리학 인지과학 신경과학 행동의학 전문가들은 핵심적인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달라이 라마와 열띤 토론을 벌였다.

영적인 수행과 첨단과학, 고대의 지혜와 현대적 탐구 간에 유례없는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이 책은 그 내용을 정리했다.

감성지수(EQ)의 창시자인 심리학자 대니얼 골먼은 달라이 라마가 마음의 정교한 현상학인 불교에 대한 이해와 통찰, 그리고 시종일관 명민한 과학적 사고를 통해 현대 과학의 경계를 확장시키는 깊이와 넓이를 보여 주었다고 평가한다. “성하(달라이 라마)는 두뇌 기능에 의존하지 않는 미묘한 수준의 의식이 있을 수 있다고 암시했는데, 이는 서구 과학이 아직 알지 못하는 분야였습니다.”

서양의 의사와 생물학자, 심리학자들은 신비스럽고 모호하게만 여겨졌던 동양의 전통적인 수행법에 대해 마음을 열어 가고 있다. 2000여 년 동안 불가에서 체득해 온 ‘마음의 치유력’, 심신(心身)의 상호관계에 대해 눈을 떠가고 있는 것.

미국 듀크대 메디컬센터에서 노인 4000명을 대상으로 6년간 조사한 결과는 놀랍다. 한 달에 한 번 이상 기도나 명상을 한 노인들은 그러지 않은 노인들에 비해 사망 확률이 50%나 낮았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는 동맥경화증 환자를 관찰한 결과 하루 한두 차례씩 명상을 한 환자들은 동맥 속의 혈전이 뚜렷하게 줄어들었다고 보고했다.

명상은 사람의 면역력을 강화시키는 것일까? 신경정신학계의 세계적인 석학 프란시스코 바렐라는 최근 ‘제2의 두뇌’라고 하는 면역계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며 인류의 오랜 전통에서 ‘몸의 지혜’로 불리는 현상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에겐 거의 대등한 두 개의 자아가 있는데, 면역계는 어떤 의미에서 감춰져 있는 또 다른 ‘나’입니다. 몸은 언어적으로 구성된 의식적인 자아의 개입 없이도 그 자신을 위해 스스로를 통제하는 지혜를 갖고 있습니다.”

골먼은 여기서 나아가 이 같은 ‘몸의 지혜’, 건강을 위한 생물학적 요청이 윤리적 지침으로 활용될 수 있는지 묻는다. 면역계가 몸 자체의 마음이라면 건강을 이롭게 하는 면역 활동이야말로 몸의 윤리강령, ‘몸의 법’을 시사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

그러나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뇌를 넘어선 마음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불교가 서구 과학과 첨예하게 갈라서는 부분이다.

달라이 라마는 사후 체험과 명상을 예로 들며 의식의 어떤 미묘한 요소는 두뇌 활동이나 몸에 한정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만물에 존재하는 ‘불성(佛性)’은 몸이나 두뇌에 기반을 두지 않는다는 것. “서구 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현상들이 과학의 변경 너머에 존재합니다!”

그러나 바렐라는 이렇게 탄식한다.

“전생(前生)의 기억은 티베트 불교를 떠받드는 바탕입니다. 하지만 서구에서는 그런 사람을 정신병원으로 보내지요. 신비적 관점에서 매우 고양되고 각성된 사람들조차 의학적으로는 정신분열증 내지 광기로 치부합니다. 한쪽에서 믿음의 증거인 것이 다른 쪽에선 질병의 징후인 거죠….”

원제 ‘Healing Emotions’(1997년).
이기우 동아일보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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