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의 뇌에선 무슨 일이 일어날까

엄마와의 정서적 유대관계를 통해 여러 감정을 겪으며 발달…애착을 경험하지 못하면 사회성 떨어지고 스트레스 조절 안돼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한동안 아이는 젖을 달라고 입을 벌리고 울부짖었다. 하지만 모든 근육이 수면 상태에 접어들어 눈꺼풀이 완전히 내려앉은 엄마는 젖병을 물리는 것조차 시도하지 못했다. 아기는 배고픔이나 아픔, 졸림 등에 따른 감정적인 반응을 해도 번번이 소통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엄마와의 관계에서 편안한 정서 상태를 경험하지 못한 아이는 갈수록 외부의 자극에 대해서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애착을 갈망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아이와 엄마가 안정된 애착 관계를 형성할 수 없었다는 데 있었다. 아이는 첫돌을 맞을 무렵부터 시골의 할머니 품에서 생존에 필수적인 애착을 경험했을 뿐이다.


△ 감정표현이 서툰 아이는 사회성에 관련된 호르몬을 적게 배출한다. 엄마에게 안정된 애착을 느끼는 아이는 감정표현을 적극적으로 한다.

애착 없으면 옥시토신 수치도 낮아

이처럼 유아기에 안정된 애착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인간의 감정에 관련된 뇌의 기능에 대한 연구는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다. 근래에 뇌과학의 성과에 힘입어 신비로운 정신 영역이 서서히 장막을 걷어내고 있지만, 아이들의 감정과 기억에 관한 연구는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무엇보다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이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는 탓이다. 예컨대 혈액을 확보하기 어려워 호르몬 연구도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성인이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유아기의 경험에 근거하거나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서 메커니즘을 이해하려고 한다.

그동안 신경생물학 연구자들은 유아기의 정서적 반응에 따라 뇌가 영구적으로 변할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구체적인 증거는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다가 미국 워싱턴대 아동감정연구소 세스 폴락 소장팀이 치유되지 않은 상처의 분자적 증거를 밝혀내 학계의 관심을 모았다. 아동보호 시설에서 유아기를 보낸 아동들의 오줌에서 사회적 관계에 관련된 호르몬의 수치를 확인한 것이다. 이 실험은 생모에게서 자란 어린이를 대조군으로 삼아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생모와 낯선 여자의 도움을 30분 동안 받았을 때 나타나는 호르몬의 변화를 측정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 살아 있는 뇌를 스캔하는 장치로 아이들의 감정에 따른 뇌의 변화를 추적하게 됐다. 한 종합병원에서 자기공명영상(MRI)으로 뇌를 촬영하고 있다.

일반적인 예측은 실험 결과에 그대로 나타났다. 생모가 양육한 아이들은 옥시토신 양이 부모와 접촉 뒤에 증가했지만 낯선 여자로부터는 전혀 영향이 없었다. 이와 달리 입양아들은 두 상황에서 옥시토신 수준의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고 바소프레신도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옥시토신은 성행동이나 사회성에 관여하면서 인간에 대한 신뢰감을 형성하는 데 쓰이고, 바소프레신은 사회적 행동에 개입한다. 유아기에 애착이 작용하는 대인관계를 경험하지 못한 탓에 사회적 감정에 관련된 호르몬이 적게 생성되는 셈이다. 만일 옥시토신 수치가 크게 낮으면 아예 사회적 상호작용을 피할 수도 있다.

대체로 애착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수줍어하는 경향이 많다. 부모들이 감정 표현이 서툰 아이들을 ‘내성적인 성격’으로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수줍음이 두뇌에서 다양한 감각 경험의 조각들을 모아 배치하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감정에 관련된 정보들이 결속되어 연결되지 못하면서 감정적인 행동에 중요한 구실을 하는 편도가 제대로 기능을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유아기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한 기억은 뇌의 깊은 곳에서 형성돼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뇌의 발달에도 영향을 끼쳐 성인기에 왼쪽 해마회의 크기가 보통 사람들보다 12%가량 작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필요 이상의 시냅스들이 얽히고 꼬인다?

인간의 뇌는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외부 상황에 영향을 받는다. 미국 미네소타대 아동발달연구소의 아동심리학자 찰스 넬슨은 신생아의 뇌전도를 기록한 사진을 통해 기억이 태어날 때부터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갓난아이가 엄마와 낯선 사람의 목소리를 구분하는 것은 태아 때의 경험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물론 자궁 속의 경험은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시작되는 감각의 십자포화에 견주면 미미한 수준이다. 갓난아기는 흥분과 놀람·기쁨·화·슬픔 등의 감정을 키우는 과정에서 뇌세포가 서로 결합되도록 한다. 다양한 감정 경험을 하면서 뇌가 유연해지고 자신만의 삶을 꾸려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인간의 감각적인 경험은 시냅스를 통한 신경세포들의 상호작용으로 뇌에 새겨진다. 컴퓨터의 성능이 중앙처리장치의 전자회로가 설정한 범위를 벗어날 수 없듯이, 인간의 사고도 뇌 속의 신경세포와 시냅스에 의해 회로의 작동 방식을 따르게 되는 셈이다. 시냅스는 출생 전에 급격히 증가해 출생과 동시에 성인 수준에 이른다. 그 뒤 2살 무렵에 성인의 두 배에 이르렀다가 서서히 줄어든다. 문제는 다양한 감각 혹은 감정적인 경험이 안정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필요 이상의 시냅스들이 얽히고 꼬이면서 신경세포의 소통에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이다.

이때 주로 엄마와의 관계에서 이뤄지는 외부 자극의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아이가 애착을 갈구할 때 뇌의 특정 부위가 활동을 시작한다. 이탈리아 로마의 신경과학연구소는 실험을 통해 아기가 애착을 느낄 때 뇌 속의 마리화나인 내성 카나비노이드 수용체가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생후 8일 된 정상적인 생쥐와 수용체를 제거한 생쥐를 어미에서 떼어낸 뒤 ‘깨끗한 사육장’과 ‘엄마 냄새가 나는 사육장’에 넣었다. 예상대로 정상 쥐는 깨끗한 우리에서는 울부짖었지만 엄마 냄새가 나는 우리에서는 소리를 거의 지르지 않았다. 그런데 유전적으로 수용기를 제거한 쥐는 어디에서도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처럼 정서 발달 과정에서 감정을 제대로 경험하지 않으면 뇌에서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수용체가 활성화되지 않는다. 애착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가 무감각해지거나 만성 흥분 상태에 빠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아이들은 “똑바로 쳐다보라”는 호통에 시달리기도 한다. 감정 정보 처리에 중요한 구실을 하는 편도체 부위가 더디게 활성화되는 까닭에 상대방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고 얼굴을 돌려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얼굴을 마주 보는 것에 대한 정서적 부담을 느끼는 것이다. 놀랍게도 얼굴을 돌려 이야기를 할 때 인지적 처리 활동 수준이 높아져 현명한 대답을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10대 시절 문제 생기면 평생 오작동

최근 살아 있는 뇌를 정밀하게 들여다보는 양전자단층촬영(PET) 같은 장치들이 잇따라 개발돼 감정과 뇌 발달 사이의 연관성을 밝히려는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서적인 반응에 취약한 아이들의 뇌에서는 감정의 인지에 관련된 대뇌 변연계에서 물질대사가 활발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극단적인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의 뇌 변화를 일반화할 수는 없을지라도 적절한 정서적 유대관계를 맺지 못하면 뇌에서 감정을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게 틀림없다. 만일 시냅스의 재배치가 이뤄지는 10대 시절에 감정 처리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평생 분자의 교란에서 비롯되는 뇌의 오작동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참고 자료: <브레인 스토리>(수전 그린필드 지음, 지호 펴냄), <시냅스와 자아>(조지프 르두 지음, 소소 펴냄), <십대들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바버라 스트로치 지음, 해나무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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