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럽게 두 발로 선 인간

뉴스일자: 2008-01-10


‘깃 털 없는 두 발로 걷는 동물’ 고대의 한 철학자가 인간을 정의한 말이다. 물론 이 정의는 틀렸다. 하지만 인간은 새들을 빼 놓고는 두 발로 걷는 유일한 동물임에 분명하다. 원숭이를 비롯해 일부 동물들도 가끔 두 발로 걷기는 하지만 정상적인 이동 방식으로 완전하게 곧게 서서 걷는 동물은 인간 뿐이다.

인간은 왜 곧게 서서 걷는 것일까? 언제부터 인간은 곧게 서서 걷기 시작했을까? 만물의 영장이라고 불리는 인간만이 유독 곧게 서서 걷는다는 것을 생각할 때 곧게 서서 걷는 것과 지능 사이에 어떤 연관관계가 있을 듯하다. 그 사이에는 어떤 관련성이 있을까? 사실, 두 발로 서서 걷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그 자세가 불완전해 보인다. 이것은 분명 두 발로 서는 것의 단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두 발로 곧게 선 데는 무언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두 발로 곧게 서는 데는 어떤 장점들이 있는가?

어렵고 불완전한 두 발 직립 자세
두 발로 곧게 서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자세이다. 아기들을 보면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인간은 두 발로 곧게 서서 걷는 자세를 완전히 익히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보통 아기들은 돌을 전후로 해서 혼자 일어서고 걸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걸음걸이를 보면 매우 불완전하다. 2~3돌이 지나도 자연스러운 걸음걸이에는 아직 미치지 못한다. 그 때문에 어린 아이들은 잘도 넘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차례 자세를 취하고 있을 때도 그 자세는 마네킹이나 조각상과는 다르다. 마네킹이나 조각상은 중심축이 고정되어 있지만, 우리 몸의 중심축은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한 우리 몸은 완전히 부동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조금씩 움직이고 있으며 그에 따라 끊임없이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다. 그러므로 두 발로 곧게 서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몸의 중심을 이동시키며 중심을 잡아야 한다. 이 때문에 어린 아기들이 걷는 방법을 배우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이며, 또한 인간이 자신보다 뛰어난 계산 능력을 지닌 컴퓨터를 만들었으면서도 두 발로 제대로 걷는 로봇을 실용화시키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두 발로 곧게 서는 것은 안정성이 크게 떨어지는 자세이다. 네 발로 서 있는 동물들을 밀어서 쓰러뜨리기는 어렵지만 인간은 쉽게 밀려 넘어간다. 중심이 높고 안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두 발로 선 인간은 네 발로 기는 다른 짐승들보다 민첩하거나 빠르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두 발로 곧게 선 자세가 이렇게 불완전한데, 인간은 왜 두 발로 선 것일까?
인간이 두 발로 일어선 이유
급격한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 인류의 먼 조상이 두 발로 곧게 서게 된 것이 이유라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지금부터 약 800만년 전에 인간과 원숭이가 갈라지기 이전, 그들의 공통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동물이 동아프리카 전역에 살고 있었고, 이곳은 광대한 열대의 삼림으로 덮여 있었다.

그런데 이 무렵에 대규모의 지각변동으로 인해서 아프리카 대륙의 동쪽 해안을 남북으로 가르는 틈이 생겼다. 이른바 아프리카 지구대라고 하는 것이다. 이 틈으로 말미암아 그전까지 모두 삼림으로 덮여 있던 동아프리카의 환경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아프리카 지구대를 경계로 내륙은 삼림지대가 계속되었지만 연안 지역은 사바나 지대가 생겼으며, 아프리카 지구대 지역은 드넓은 건조 지대가 되었다. 이 때문에 인간과 원숭이의 공통 조상들에게 이 지역은 건널 수 없는 장벽이 되었다.


이 때 사바나 지역에 남겨진 이 동물들에게는 삼림이 없어지고 점차 건조해지는 거친 환경에 적응하느냐 아니면 죽느냐 두 가지 길 밖에 없었다. 울창한 숲과 높은 나무로 보호를 받았던 인류의 아주 먼 조상들은 사방이 탁 트인 평지에서 많은 위험을 감수하면서 살아야 했다. 이 때문에 이들은 네 발로 기는 것보다는 일어서는 쪽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똑바로 일어섬으로써 평원의 원숭이들은 주위를 둘러보고 위험을 감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의 아주 먼 조상인 이 원숭이들은 숲 밖으로 쫓겨나면서부터 일어서게 된 것은 아니다. 숲 속에 살 때도 이들은 일어설 줄 알았다. 현재 존재하는 원숭이들 가운데 이들과 유사한 것으로 생각되는 피그미 원숭이를 살펴보면, 가끔 나무에서 내려와서는 두 발로 걷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아마 인간과 원숭이의 먼 조상들도 그러했을 것으로 과학자들은 추측한다.

직립이 인간을 만들었다
한 때 과학자들은 획기적으로 발달된 뇌로 인해서 인류가 곧게 서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주장했다. 19세기 최고의 발생학자인 에른스트 폰 배르는 “직립 자세는 보다 높은 자원으로 발달된 뇌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과 다른 동물들 사이의 모든 차이는 뇌의 구성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사실들은 이와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지 못했다. 인류의 두뇌가 급속도로 커지기 시작한 것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이후부터였다. 반면에 아직은 작은 뇌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들도 지금의 인류와 마찬가지로 완전한 직립 자세를 갖추었다.

두 발로 곧게 선 것이 뇌의 획기적인 진화에 앞선다는 말이다. 또한 뇌의 발달이라는 것도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갑자기 커지기 시작했을 리는 없다. 뇌의 크기가 증대될 수 있도록 자극이 된 어떤 환경의 변화가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그 이유를 곧바로 서게 된 인간 환경의 변화에서 찾았다. 인류는 두 발로 곧게 선 자세를 갖춤으로써 손을 자유롭게 만들었다. 자유로워진 손은 연장과 무기를 만드는 등 여러 가지 조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지능의 진화는 자유로워진 손이 수행하는 갖가지 조작에 대한 반응이었다고 과학자들은 설명한다.
이런 대답을 처음으로 이끌어낸 인물은 19세기 독일의 박물학자 로렌츠 오켄이었다. 그는 “인간의 특징은 직립 보행 자세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손이 자유로워짐으로써 그 밖의 모든 기능이 수행될 수 있게 되었다. 신체의 자유가 허용됨과 더불어 정신의 자유 역시 허용되기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인류 진화의 초기 단계에서는 뇌의 진화보다는 그 자세에 더 급속한 변화가 있었다. 완전한 직립의 자세를 취함으로써 손이 완전히 해방됨으로써 비로소 인류의 뇌는 본격적인 진화의 과정에 들어섰다. 물론 이 과정에서 직립의 자세와 뇌의 발달은 상호작용과 상호강화의 현상을 보여주었다. 어쨌든, 인류는 직립의 자세를 확립함으로써 비로소 오늘날과 같은 발달된 두뇌를 갖게 되었다.

위대한 걸음이 가져다 준 고통
두 발로 곧게 선 덕에 인류는 요통이라는 숙명적인 질병에 시달리게 되었다. 우리 몸의 구조를 보면, 대개 중심이 허리 뒤쪽에 있고 척추에 대부분의 하중이 걸린다. 인간의 척추는 S자 모양으로 휘어 있는데, 이는 몸의 하중을 효과적으로 흡수하기 위한 것이다. 만일 우리 몸의 척추가 일자로 똑바르다면, 체중의 반 이상을 골반과 등뼈가 융합되는 곳인 천추 바로 위에 있는 척추의 단면에 집중될 것이다.

또한 척추와 척추 사이에 2.5제곱 센티미터 면적의 추간판이라는 일종의 쿠션이 있어서 몸의 하중을 흡수한다. 추간판은 강한 압력을 받으면 점차 압축 변형되면서 최대 300kg까지 하중을 견뎌낼 수 있다. 그 이상의 하중이 걸리면 파열되고 만다. 300kg이라고 하면 꽤 무거운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허리에서 500cm 아래에 있는 40kg짜리 짐을 들어올리는 경우에 추간판에는 440kg의 하중이 걸린다. 더욱이 이것은 자신의 상반신과 머리의 무게를 제외한 것이다. 실제로 40kg 이상의 짐을 들어올릴 수 있는 것은 복강의 압력과 근육의 힘에 의해서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조금 무거운 물건을 들다가도 허리의 통증을 느끼는 것은 복강의 압력이 떨어지고 근육이 약화되었기 때문에 거의 모든 하중이 척추에 걸리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요통 이외에도 여러 가지 질병들이 곧게 선 자세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위하수증 또는 위와 연결된 식도로 위산이 역류하여 생기는 병인 헤르니아 등은 인간이 곧게 섬으로써 내장의 무게가 전부 수직 방향으로 쏠렸기 때문이다. 빈혈이나 만성두통 역시 네 발로 기는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곧게 서 있기 때문에 뇌가 심장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어서 혈류가 뇌로 효과적으로 흐르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걸리면 굉장히 고통스럽고 거의 완치가 불가능하다는 치질은 내장이 항문 위쪽으로 있기 때문에 내장으로부터 전달되는 압력을 항문이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이들도 있다.

사실, 인류의 몸은 완성품이 아니다. 등뼈가 한쪽으로 쏠려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만일 등뼈가 몸통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있고 내장 기관들이 등뼈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발달되어 있다면 인간의 몸은 하중을 좀더 효과적으로 흡수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류의 머나먼 조상이 수중에서 육상으로 올라오고 지느러미가 손과 발이 되고 몸을 들어 올려 등과 배이 구별이 생기면서 척추는 우리 몸의 중심축에서 벗어나도록 결정되어 버렸다. 만일 인류의 머나먼 조상이 지렁이처럼 몸의 단면이 둥근 생물이었다면 척추는 지금과 다른 구조를 띠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는 너무 일찍 일어 선 것일까? 척추의 구조가 좀더 강화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을까? 아마 그랬더라면 광활한 평원의 거친 환경에 적응하여 지능을 발달시킴으로써 지구의 주인으로 자처하고 있는 위대한 원숭이는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매우 불안정하고 많은 노력과 고통을 수반하는 자세지만 두 발로 똑바로 서게 됨으로 해서 인간은 한낱 원숭이에 머무르지 않고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다.

“인간의 특징은 직립 보행 자세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손이 자유로워짐으로써 그 밖의 모든 기능이 수행될 수 있게 되었다. 신체의 자유가 허용됨과 더불어 정신의 자유 역시 허용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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