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영혼·요리…‘인간의 조건’은?
  • 찰스 파스테르나크 지음/말글빛냄/1만8500원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찰스 파스테르나크 지음/말글빛냄/1만8500원.

    “인간 본질에 관한 가장 심오한 수수께끼 중 하나는, 우리가 우리 몸 자체로서 존재한다기보다는 몸속에 거주하는 의식적 자아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뇌 속에는 내적 자아가 있을 공간이 없다. 뇌에 어떤 중심 공간이 있어서 자아가 자리를 잡고 인상을 받아들이거나 그곳에서 팔다리나 입으로 지시를 보내는 것은 아니다. 뇌는 그런 구조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뇌는 중앙제어장치가 없는 지극히 병렬적인 시스템이며, 동시에 작동하는 복합 시스템이다….”

    ‘인간은 누구인가’란 질문에 답한 영국 브리스톨 서잉글랜드대학 초청강사 수전 블랙모어의 정의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달리 도구를 사용해 기술과 과학을 발전시켰고, 언어를 사용하고 예술과 종교를 만드는 등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요인을 ‘모방’이라고 보는 블랙모어는 “우리의 먼 조상이 다른 생물체의 소리와 움직임을 흉내 내기 시작한 때가 인류 진화의 전환점”이라고 주장한다. 이 모방 능력 덕분에

    평범한 유인원이 커다란 뇌와 언어, 음악 및 미술에 대한 흥미, 복잡한 문화를 축적해갈 수 있는 인류로 진화했다는 설명이다.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는 인류학, 생물학, 생화학, 언어학, 철학, 뇌과학, 신경과학, 의학, 종교, 기술과학 등 10개 분야 15인의 석학이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한 다양한 고찰 결과를 담고 있다. 책에 게재된 12편의 논문은 2006년 3월 옥스퍼드대학 국제생물의학센터가 영국왕립과학연구소와 함께 개최한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글에 기초를 두고 있다.

    ‘과연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누구도 명확하게 대답할 수는 없다. 또 ‘인간만의 특징은 무엇인가’란 물음에도 의견이 분분하다. 인간처럼 사회성 있는 동물도 많고, 언어를 표현하는 동물도 있으며, 요리를 해먹는 동물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 모든 요소들이 합쳐져 이루어진 존재이지만 과학적으로 정확히 증명된 것은 없다. 그러기에 오늘도 많은 인문학자와 생물학자, 과학자들은 인간의 기원과 특징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게재된 다양한 글들 속에는 인간의 고유성에 기여하는 많은 속성들이 제시되어 있다. 이러한 속성들은 인간과 동물의 비교에 관한 흥미로운 질문들을 불러일으킨다. 인간에게만 유머가 있을까, 우리를 놀리는 것처럼 보이는 앵무새는 재미있어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후회의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은 인간만의 특성인가, 상상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존재는 인간뿐인가? 이 책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차근차근 답함으로써 인간이 인간답게 되는 조건을 일깨워주고 나아가 인간 자체를 되돌아보게 한다.

    몇몇 눈에 띄는 견해를 소개한다.마우리치오 젠틸루치 이탈리아 파르마대학 신경과학과 교수와 마이클 코벌리스 뉴질랜드 오클랜드대학 인지신경과학연구소 연구원은 ‘언어’를 인간의 특성 요인으로 해설했다. ‘언어가 처음에 어떻게 발생되었는가’ 하는 의문을 시작으로 언어를 구성하는 기호들과 그 기호들이 나타내는 사물과 행위·속성을 분석한 두 사람은 뇌의 구조와 손동작에서 인간의 언어가 파생되었다는 주장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데이비드 흄 미국 캘리포니아 패서디나 비전미디어프로덕션 회장은 ‘육체와 영혼’의 관점에서 인간을 설명했다. 그는 “인간의 뇌는, 전적으로 인간만이 지니고 있는 특징과 동물에게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본능의 차이를 설명해주지 못한다”며 “따라서 비물질적인 무언가가 인간의 뇌와 결합하여 인간의 정신을 만들어낸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논지를 편다. 즉 영혼에 포인트를 두고 인간이 무엇인가를 살폈다.

    ‘직립보행’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요인으로 본 사람도 있다. 스티븐 오펜하이머 영국 옥스퍼드그린대학 교수는 “직립보행의 결과 인류의 먼 조상은 유인원에서 현생인류로 진화할 수 있었다”며 직립보행의 원인으론 아주 먼 과거 시대의 ‘기후의 변화’를 들었다. 극심한 기후 변화로, 생존하기 위해 직립보행이 불가피했다는 이론이다.

    찰스 파스테르나크 옥스퍼드 국제생물의학센터 소장은 ‘호기심’과 ‘탐구’가 오늘날의 인간을 만들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탐구가 모든 생물의 기본적인 요소이지만 인간에게는 다른 어떤 생물보다 더 열정적으로 탐구하는 네 가지 특성이 있음을 증명했다. 그것은 ▲직립보행 ▲유연한 엄지손가락 ▲말하기를 위한 성대 ▲증가된 뇌이다. 탐구로 인해 직립보행을 할 수 있었고 도구를 만들 수 있었으며 언어와 문화가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이색적인 대답도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 비교동물학박물관 인류학과 석좌교수 리처드 랭엄은 인간의 고유한 속성으로 ‘요리’를 들었다. 요리를 인류 진화에 방향을 제시한 핵심적 적응 형태로 보는 그는 “요리는 불을 피우는 능력에서 시작되었으며 이는 인지 능력의 수많은 결과를 나타낸다”고 확신한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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