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의 진화발생생물학 미르의 실용적 측면 2009년 09월 25일(금)

미르(miR) 이야기 생물학은 하나가 아니다. 생명현상의 역사적 기원을 다루는 진화생물학의 전통과, 생명현상의 기능적 기원을 다루는 생리학의 전통은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고 때로는 갈등하며 발전해 왔다. 얼마 전 타계한 진화생물학자 에른스트 마이어는 생물학의 두 전통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생물학의 어떤 문제도 근접인과 궁극인의 동시 해결 없이는 해결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나아가 궁극인에 대한 연구는 물리-화학적인 근접인에 대한 연구만큼이나 정당한 것이다. -에른스트 마이어(Ernst Mayr, The Growth of Biological Thought 1982)

암의 생리의학적 탐구 역사

▲ 미르에 관한 연구자들 중 상당수가 암 연구자이다. 암에 관한 진화의학적 사고를 살펴보는 것은 현대생물학자들에게 있어 암 연구가 도대체 왜 중요하며 왜 미르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암 연구에 집중하고 있는지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암은 인류의 숙명이며, 실용적 목적을 도외시 할 수 없는 현대 거대과학에 있어서도 숙명이다. 진화적 사고와 전통적 서구 의학의 갈등, 미르 연구와 암 연구가 중첩되는 이유를 분석하는 것은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과학이 진행되고 있는 현실을 살펴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진화생물학자로서 분자생물학에 의해 생물학이 점령당하는 시기를 경험한 마이어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암에 관한 연구는 분자생물학자들과 분자생물학과 마찬가지로 근접인에 대한 연구에 집중했던 의학자들에 의해 주도되다시피 했다. 분자생물학자들은 바이러스와 세포의 분열을 연구하던 도중 종양억제인자를 발견했고, 암의 발생과정에 관한 분자적 기제를 철저히 분석하고 파고들었다. 예를 들어, 담배의 타르에 만성으로 노출될 경우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유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세포의 증식에 관여하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길 경우 암세포가 발생할 확률은 높아진다.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암세포 발생의 분자적 기제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의학자들은 이를 진단 및 치료에 응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모든 생물학적 문제의 두 원인을 고려해보았을 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과연 담배와 같은 환경적 요인과 이로 인한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암의 발생에 관한 단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그 하나다. 예를 들어 담배와 같은 돌연변이 유발물질에 노출되지 않는다면 사람은 일생 동안 암에 걸리지 않는가? 산업사회로 진입하면서 심각해진 공해가 현대인에게 암 발생이 빈번해진 이유라고 일반화될 수 있는가?

두 번째로, 비록 암 발생의 분자생물학적, 생화학적 기제가 완전히 밝혀진다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는 왜 인간이라는 종이 암에 특히 취약한가라는 의문에 답할 수 없다. 어떻게 암과 같이 치명적인 생명현상이 이처럼 흔하게 발생할 수 있는가? 왜 전세계 여성의 십 분의 일이 유방암에 걸릴 위험을 안고 살아야 하는가? 왜 어떤 사람은 암에 걸릴 확률이 더 높은 것일까?

일생 동안 임상적으로 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을 위험은 세 명중 한 명 꼴로, 암은 인간이라는 종에게 매우 흔한 질병이다. 매해 천만 명이 암이라는 진단을 선고 받는다. 발병하는 암의 종류에는 차이가 있지만, 이러한 암 발생 빈도는 선진국과 후진국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다. 예를 들어 후진국에는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으로 발생하는 암이 더욱 빈번하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고생물학적 증거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인류는 2000년 전 혹은 그 훨씬 전부터 암에 시달려왔던 것으로 추측된다. 암 진단학은 상당히 발전했지만 우리는 암의 생물학적 발생이 지나치게 빈번하다는 점을 간과해왔다. 인류는 언제나 암이라는 질병에 노출되어 있다.

정상조직을 염색해서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조직검사에서 진단되지 않더라도, 발달한 분자생물학적 진단 기술은 언제나 우리 몸 속에 종양과 관련된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긴 세포군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비록 임상적으로 그러한 세포 하나하나가 암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암세포는 언제나 세포의 증식이 활발한 생체 조직 속에 우발적으로 생겨난다. 매일 수천 개의 돌연변이 세포가 생겨나고 사라져 간다. 우리 몸의 신비로움은 이처럼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세포분열 시스템을 수십 년 동안 잘 관리한다는 데에 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의 몸에서 암세포가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과정을 막을 도리는 없다.

인간에게 있어 암이라는 숙명

대부분의 척추동물에서 암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쥐라기의 공룡 화석에서도 종양이 발견되었다. 몇몇 무척추동물에서도 종양이 발견되곤 한다. 초파리와 예쁜꼬마선충의 어떤 유전자들은 세포의 무분별한 증식을 억제한다. 다세포생물에게 있어, 세포들이 이룬 사회에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 즉 잘 조절된 세포분열을 벗어나는 배신자를 색출해내는 작업은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암이란 다세포 생물의 세포들이 단세포 생물이었던 시절의 무차별적이고 이기적인 복제의 본능으로 회귀하는 과정일지 모른다.

영장류를 대상으로 한 실험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공통조상을 공유하는 일족에게는 기껏해야 1~2% 정도의 빈도로 암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하지만 영장류 및 야생동물 그리고 가축을 대상으로 한 실험 모두에서 암의 발생은 나이를 먹을 수록 증가한다는 사실은 동일하다. 흥미로운 사실은 인간에 의해 길들여져 근친교배를 거듭한 몇몇 가축들은 인간과 같은 높은 암 발생 빈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영장류와 가축화된 동물의 예는 첫째, 암의 발생이 다세포 생물의 내부 생리적 오류 기제에 녹아 있고 둘째, 늙을 수록 암 발생 비율은 증가하며 셋째,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인간의 활동과 관련된 어떤 것이 우리를 더욱 암에 잘 걸리도록 만든다는 점을 보여준다.

진화 의학의 탄생

1991년 조지 윌리암스(George C. Williams)와 랜돌프 네세(Randolph M. Nesse)에 의해 체계적으로 종합된 '다윈의학(Darwinian medicine)'은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라는 제목의 책으로 번역되었다. 진화적 사고가 다윈 한 개인에게 귀속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윌리암스와 네세의 '다윈의학'이라는 명명은 '진화의학(Eviolutionary medicine)'이라는 이름으로 대체되었다. 이 글은 진화의학이 다루는 모든 측면을 개괄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진화의학의 핵심은 인류가 지닌 몸의 기능적 장애 혹은 질병의 기저에는 부분적으로 진화적 유산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밝히는 일이다.

▲ 1991년 진화생물학자 조지 윌리암스(우)와 의사 랜돌프 네세(좌)는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라는 저작을 통해 진화의학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다윈 이후 진화론의 적용이 전방위적 학문에 걸쳐 영향을 끼쳤음에도 유독 의학에서만큼은 진화적 사고가 사용되지 않는 것에 의문을 품었던 윌리암스와 네세는 다양한 질병의 예들을 통해 인류의 신체에 각인된 진화의 역사를 살핀다. 

윌리암스와 네세의 창조적인 작업은 분명 혁명적인 것이었지만, 진화적 사고를 의학에 적용하는 일이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진화론적 사고에서 다루는 궁극인에 익숙하지 않은 의사들에게, 특히 현장에서 직접 환자를 치료하고 돌봐야 하는 의사들에게 실험적이고 통계적인 확실성을 가지지 못하는 진화의학은 그저 작은 목소리로 머물고 있었다. 부분적으로 이러한 의사들의 무관심은 의학의 패러다임이 진화생물학과는 다른 전통인 생리학의 전통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서양 의학은 생리학적 문제들에 천착해 왔으며, 생리학적 토양에서 성장한 분자생물학과 생화학의 세례를 받으며 급성장했다. 항생제의 발견, 백신의 발명 등과 같은 성공적 사례들은 근접인을 밝히고 이를 치료하는 서구의학의 분석적 사고가 충분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윌리암스와 네세의 선구적 업적 이후, 그들의 이론을 지지하는 수 많은 증거들이 쌓여갔다. 선진국에서 갈수록 심각해지는 비만을 비롯해서 심장병, 당뇨병, 여성의 폐경기 및 노화 그리고 암에 대한 연구에 진화적 사고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대인의 질병에 우리의 진화적 유산이 녹아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진화의학과 전통적 서구의학의 갈등관계

하지만 현장에서 환자를 돌보는 의사들의 목적은 질병의 궁극인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의사들의 일차적인 관심은 원인이 무엇이던 간에 일단 발생한 질병을 치료하는 데 있다. 궁극인에 대한 이해가 치료에 도움이 될 수는 있다. 예를 들어 우리 조상들은 현대인들처럼 풍부한 식단을 가질 수 없었고, 주로 과일을 먹었으며 가끔 고기를 먹었을 것이라는 고고학/인류학적 증거들을 가지고 우리의 식단을 홍적세 식단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현대인의 식단 변화에 진화의학적 분석이 타당하다 해도, 그것이 당장 비만에 걸려 의사 앞에 앉아 있는 청소년들의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진화의학적 분석은 임상치료의 영역이 아니라 오히려 예방의학에 가까운 영역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진화의학이 적용될 수 있는 범위도 질병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숙주와 기생생물의 군비경쟁을 다루는 전염병학에서 진화의학은 강력한 예측력과 힘을 보여줄 수 있다. 그것이 폴 이왈드(Paul Ewald)와 같은 전염병 학자가 윌리암스나 네세와 비슷한 시기에 진화론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다. 또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에 관한 의사들의 실수는 만약 의사들이 진화의학에 조금만 관심이 있었더라면 방지할 수 있었을 사건이기도 하다. 암의 화학치료에 따른 암세포의 내성도 박테리아의 항생제 내성과 같은 기제로 작동한다. 항생제와 암 치료제는 박테리아와 암세포에게 일종의 선택압으로 작용한다. 그 영역에서는 다윈의 자연선택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종이 특히 취약한 암이라는 질병에 대한 진화의학적 시각을 살펴보는 이유는, 수십 년 간 암 치료에 천문학적인 액수의 투자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부분의 인류가 암으로부터 고통을 받고 있다는 현실적 문제 때문이다. 2004년 미국 <포츈 Fortune>지는 "우리는 암과의 전쟁에서 졌다"는 제목으로 그 동안의 현대의학에 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현대의학이 패배했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이러한 시각은 대부분의 의사들이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쉽사리 환자들에게 내뱉지 못하는 것이다.

나아가 인류를 지독하게 괴롭히고 있는 암이라는 질병은 환자 본인 뿐 아니라 가족들에게까지 지독한 고통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많은 환자들이 대체요법을 선택하게 되며, 의사들의 입장에서도 이러한 환자의 선택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암은 숙명처럼 우리 곁에 항상 도사리고 있다.

▲ 김우재 UCSF 박사후 연구원 
진화의학적 사고가 암의 발생에 관한 더욱 풍부한 이해를 제공해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암의 진화발생학에 대한 궁극적인 탐구가 암이라는 질병을 숙명처럼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현대인에게 하나의 희망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다. 문제는 진화의학적 사고가 어떻게 치료에 응용될 수 있느냐는 것이겠지만, 암과 같이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비극적인 질병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는 하나의 전략으로서 진화의학은 탐구할만한 가치가 있다.

암에 관한 진화의학적 시각을 이곳에서 보여주는 이유는, 현대의 분자생물학자들에게 있어 암 연구라는 분야가 필수불가결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국가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아야만 하는 거대과학은 어떻게든 파스퇴르의 사분면으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미르라는 꼬마RNA에 대한 연구가 도대체 왜 암이라는 질병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미르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대부분이 동시에 암 연구자들이기 때문이다.

우선 진화의학에 대해 조금 더 알아 본 후에, 암의 발생과 진화의학의 관계를 타진하고, 미르와 암의 발생에 관한 현재의 연구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김우재 UCSF 박사후 연구원 | korean93@postech.ac.kr

저작권자 2009.09.25 ⓒ ScienceTimes

암의 진화발생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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