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왜곡의 종류(Aaron Beck)

 

1. 이분법적 사고(흑백논리): 사물을 흑과 백의 두 가지 부류로만 보는 경향.

l  실례: 줄곧 A학점만 받던 학생이 단 한번 B학점을 받고 나서, "나는 이제 완전히 실패자야."라고 결론짓는 것.

이 같은 사고방식이 결과하는 곳은 완벽성 추구이며, 실수나 불완전 상태에 대한 공포를 유발함으로써, 어떤 일도 쉽게 착수하지 못하게 만든다. 또한 이 사고방식은 사람에게 부적절감과 무가치감을 느끼게 하고, 사소한 실패에도 자신을 완전한 패배자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2. 과잉 일반화: 단 한번의 부정적 사건을 마치 끝없이 반복되는 실패의 본보기처럼 생각하는 것. 

l  실례: 수줍음을 잘 타는 어느 남자가 힘껏 용기를 내어 여자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더니, 그 여자는 선약이 있다며 공손히 거절했다. 그는 "나 같은 사람은 평생 데이트도 한번 못해 보고 말거야. 이 세상에 나와 데이트하고 싶어하는 여자는 한 사람도 없으니, 나는 평생 고독하고 비참하게 살게 될거야."라고 생각하는 것.

그의 사고방식은, "그 여자가 이번에 거절한 것으로 보아 다음에도 계속 거절할 것이며, 이 세상 여자들은 모두 꼭 같은 취향을 가지고 있으므로, 다른 여자들도 모두 나를 계속 거부할 것이다." 라고 결론지음으로써, 왜곡된 사고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3. 판단력의 색안경: 한 가지 잘못된 일에만 계속 집착함으로써 나머지 모든 것도 부정적으로 보는 것.

l  실례: 학기말 시험에서 백 문제 중 일곱 문제를 못 맞춘 학생이, 그 일곱 문제에만 계속 집착하여 자신은 이번 학기에 낙제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결과는 '93문제나 맞추었으므로 A+'라는 답안지를 받은 경우. 혹은 자기와 가장 가까운 친구를 놀리는 사람들을 보고, "인간이란 근본이 이렇게 잔인하고 인정 없는 동물이야."라고 한탄하는 사람.

특히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은 긍정적인 것은 통과하지 못하고 부정적인 것만 통과하는 색안경을 낀 것과 같아서, 자기 자신에게서 부정적인 측면만 보게 되고 긍정적인 측면은 볼 줄 모르는 경향이 있다.

 

4. 긍정적 측면의 부정: 어떠한 이유라도 찾아서 자신의 긍정적 측면을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현상. 이렇게 함으로써 객관적(현실적) 사실과는 어긋나는 부정적 생각을 보지(保持)하려 함.

l  실례: 누가 얼굴이 예쁘다거나 일을 잘했다고 칭찬하면 "그건 괜히 인사치레로 하는 소리"라며, 상습적으로 칭찬을 인정하기 거부하는 것. 어떤 일이 잘못 되면 계속 그 일만 생각하면서 "그것은 내가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것을 입증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어떤 일이 잘되면 "그건 오직 요행일 뿐이야, 그 일은 나와는 상관없어"라고 자신에게 말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기에게 일어나는 좋은 일들을 좋아할 줄 모르며, 때로는 이로 인하여 심한 고통을 자초하기도 한다. 얼굴이 매우 예쁜 여자가, 사람들이 자기의 미모를 칭찬하면 "그건 나의 참모습을 모르기 때문"이라며, "나의 참모습은 아주 형편없이 못난 인간이어서 이 세상 아무도 나를 좋아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긍정적 측면을 인정하기 거부함으로써, 분명히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체험과도 맞지 않는 부정적 사고를 고집하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의 전통적 겸손과는 다르다. 그들은 마치 좋은 일을 나쁜 일로 만들어 버리는 연금술사와도 같은 것이다.

 

5. 성급한 결론: 자신의 결론(혹은 생각)을 뒷받침할 만한 확실한 증거도 없이 어떤 일을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것.

() 잘못된 심리추측: 그 진위를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거부적으로 반응한다고 결론짓는 것.

l  실례: 교수가 열띤 강의를 하고 있는데 한 학생이 앞줄에서 졸고 있었다. 그는 전날 밤에 친구들과 밤샘을 하느라 한잠도 자지 못했다. 그것도 모르고 교수는, "학생들이 내 강의를 매우 재미없어 하는군. 나는 교수가 될 자격이 부족해"라고 생각한다.

l  직장에서 너무나 기분이 상했던 남편이 집에 돌아와 부인이 건네는 인사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내는 금방 풀이 죽어 "남편이 또 나에게 화가 나 있어. 나는 왜 이리도 못난 아내일까!"라고 생각하며, 남편의 침묵을 자기 탓으로 돌린다.

 사람들은 흔히 이와 같이 잘못된 심리추측으로 인하여 자기도 말을 하지 않거나 혹은 반격을 가함으로써, 처음에는 없었던 거부적 관계를 새로이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 지레짐작의 과오: 일이 잘못될 것으로 지레짐작한 나머지, 자신의 예측적 생각을 마치 확실한 기정사실인 것처럼 착각하는 것.

l  실례: 여학생이 남학생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남학생은 "내가 전화하면 그 여학생은 틀림없이 귀찮아 할거야. 그녀는 원래 남자들로부터 인기가 많으니까, 나 같은 사람은 노력해 보아도 소용없어"라고 혼자 결론짓고, 전화도 걸지 않았다. 실은 여학생도 그 남학생을 좋아해서 그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전화가 없길래 싫어하는 줄로 알고 다른 남학생과 사귀게 되었다. 여기에서 여학생도 '잘못된 심리추측'의 과오를 범한 셈이다.

 

6. 과잉확대(큰 재앙으로 간주) 혹은 과잉축소: 어떤 일(자신의 실수나 불완전성, 불안감 혹은 다른 사람의 성공이나 재능)의 중요성을 과장하거나, 다른 일(자신의 장점이나, 다른 사람의 불완전성)들은 불공평하게 극단적으로 축소시키는 것. 이것을 '망원경 효과'라고도 함.

l  실례: 여학생과 데이트하면서, 자기는 수영선수 못지 않게 수영을 잘한다고 자랑했으나 나중에 그것이 거짓말임이 탄로 난 남학생이 "큰일 났어! 이젠 나는 끝장이야! 나의 거짓말이 산불처럼 여러 사람들에게 퍼져 나갈 거야! 나의 체면은 이제 완전히 땅바닥에 떨어졌어!"라고 생각하는 현상.

l  성격검사를 받아 보았더니 불안신경증적 요소가 좀 있다는 말을 들은 어떤 사람이 "이젠 큰일났다. 내가 불안하다면 우리 아이들도 불안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그들은 직장생활이나 결혼생활도 제대로 못하고, 평생 정신과 치료를 받지 않으면 안될 거야! 이건 내 인생의 종말이야!"라고 하면서 마치 당장 큰 재앙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생각하는 것.

 반면에 이런 사람들이 자기의 장점에 대해서는, 마치 망원경을 거꾸로 보는 것처럼 축소 왜곡시켜 보려 한다. 자신의 장점은 축소시키고, 단점은 확대시킬 때, 열등감에 빠지지 않을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되겠는가!

 

7. 감정적 판단: 자신의 (감정적) 느낌이 사실의 증거라고 주장하는 것. "내가 그렇게 느껴지는 걸 보니까 사실임에 틀림없다."

l  실례: "나는 쓸모 없는 인간이라고 느껴진다. 그러므로 나는 쓸모 없는 인간이다." 얼핏 보면 그럴듯한 논리같지만 사실은 잘못된 논리이다. 왜냐하면 감정이란 생각이나 소신을 반영하는 것에 불과하며 생각이 왜곡되어 있으면 그때 느껴지는 감정이란 타당성이 없기 때문이다. "죄책감이 드는 걸 보니까 내가 뭔가 잘못했음에 틀림없다." "희망이 없게 느껴지는 걸 보니까 내 문제는 영원히 해결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 "아무 일도 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므로 차라리 잠이나 자는 것이 좋겠다."

 이와 같은 감정적 판단은 대개의 우울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어서, 자신에게 모든 일이 부정적으로 느껴진다는 이유만으로 현실에서도 모든 일이 부정적이라고 결론짓게 된다. 그는 자신의 그와 같은 감정을 일으키는 지각(知覺)의 진위를 확인해 볼 필요성에 대해서는 도저히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의 지각 혹은 느낌이란 편파적(왜곡된) 생각에 근거하고 있는 경우가 매우 많음을 우리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고, 특히 우울증과 같은 상태에 빠져 있을 때 더욱 그렇다.

 

8. '하지 않으면 안돼'의 과용: 자기 자신에게 항상 '하지 않으면 안돼' 혹은 '해서는 안돼'와 같은 엄한 규율을 과용함으로써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것. 이 같은 태도를 자신에게 과잉 적용할 때는 불필요한 죄책감이나 수치심 그리고 자기혐오감을 불러일으키며 다른 사람들에게 적용할 때는 분노, 욕구좌절감 및 실망을 느끼게 된다. 이런 현상이 오래 지속되면 그 사람은 오히려 무감동해지고 의욕을 상실하며 심하면 허탈상태에 빠지게도 된다. 그는 하루도 인생을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날이 없으며 항상 불만과 분노와 실망의 연속 속에서 살 뿐이다.

l  실례: 데이트 약속시간에 상대방이 5분 가량 늦게 도착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이렇게 시간을 지키지 않는 사람과는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면서 돌아서서 나가버리는 사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엄격한 기준(혹은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때마다 기분이 상하고, 심지어는 인간에 대한 실망을 느끼게까지 된다. 그는 현실에 맞추어 자신의 기대를 수정하든가 아니면 항상 사람들의 불완전한 행동 때문에 기분이 상한 상태로 살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들은 '바람직하다' '하지 않으면 안돼'를 구별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서, 요구하는 기준이나 기대를 만족시키는 것이 바람직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당위성으로 강요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사실을 잘 모른다. 앞의 예에서, 데이트 시간을 잘 지킴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기다리지 않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엄격한 당위성으로 강요할 때는 오히려 무리한 요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9. 이름(잘못)붙이기: 이것은 극단적인 과잉 일반화의 한가지 형태로서, 자신의 과오를 그대로 말하지 않고 "나는 실패자이다"와 같은 부정적인 이름을 자신에게 달아 주는 것.

다른 사람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놈은 인간 쓰레기 같은 자식이야"라고 부정적인 이름을 붙여준다. 이 같은 이름 붙이기 뒤에 잠재해 있는 기본적인 철학은 "사람은 그 사람이 저지르는 잘못으로 평가된다"라는 것이다.

l  실례: 매학년마다 우등상을 받다가 한번 못 받은 학생이 "나는 실패자야"라고 자신을 이름 붙이는 것. 그보다는 오히려, "이번에 내가 한번 실수했어"라고 하는 편이 훨씬 더 논리적이다. 어떤 실수를 했을 때 "나는 ...이다"라고 말하면 대개는 이렇게 이름을 잘못 붙이는 경우가 되기 쉽다.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이름을 붙이는 것은 자기패배적일 뿐만 아니라, 매우 비합리적이다. 스탠포드 대학의 심리학자 밴두라(Albert Bandura), 사람은 자기가 선정한 기대에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맞추어 간다(self-fulfilling efficacy)는 이론을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사람이 자신에게 '실패자' 혹은 '변변치 못한 사람'과 같은 이름을 붙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거기에 맞추어 행동하게 되므로, 그것은 자기패배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사람의 인생이란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 그리고 행위들의 다양성 있고 계속 변하는 흐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한 순간의 행위로 인하여 그 전체에 어떤 낙인을 붙인다는 것은 비합리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부정적인 이름을 붙이면, 대개는 그 사람에 대하여 적대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며, 그것은 또 상대방으로부터 부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게 되므로, 결국은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게 될 뿐이다. 아버지가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한 아들에게, "너는 돌대가리야"라고 불러 대면, 그 아들은 또 아버지를 향하여, "아버지는 공부만 아는 폭군이야"라고 반격함으로써, 서로간에 불필요한 증오심만을 불러일으키고, 서로의 단점에만 초점을 맞추어 이름 붙이기를 정당화하려 한다. 행위와 그 주체가 되는 사람을 동일시하지 않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며 합리적인 사고방식이며, 문제를 건설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열쇠이다.

 

10. '모두 내 탓이오' 사고방식: 실제로는 그렇게 생각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 자기가 어떤 불행한 외부사건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것. 이와 같은 왜곡된 사고가 흔히 죄책감의 주된 원인이 된다.

l  실례: 학교성적이 불량한 학생의 어머니가 성적표에 쓰여 있는 담임교사의 특별관심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보고, "내가 몹쓸 엄마야. 이것이 내가 얼마나 무능력한 엄마인지를 입증하는 증거야"라고 생각하는 것. 혹은 숙제를 잘 해오지 않는 학생에 대하여, 선생님이 오히려 "내가 잘 지도하지 못한 탓으로 학생들이 숙제도 해오지 않아. 나는 교사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는 것.

 '모두 내 탓이오' 사고방식은 비현실적이며 병적인 죄책감을 일으키게 하는 것으로서, 온 세상 걱정을 모두 자기가 도맡아 하게 만든다. 이와 같은 사람은 실제로 다른 사람에 대한 영향과 책임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선생님, 상담자, 부모 혹은 사장의 위치에서 우리와 관계가 있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는 있어도, 우리가 그들의 행동을 책임질 수는 없다. 누구든 그런 기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자식이든 학생이든,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하는 행동의 책임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이며, 부모나 선생님에게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 그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나 선생님은,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를 잘못 설정한 것이며, 그것은 결과적으로 부당한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는 원인이 된다.

 

- 김중술 <사랑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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