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들은 오고 가지만 개구리는 변함없네” 인간과 원숭이와 RNA (6) 2010년 03월 26일(금)

미르(miR) 이야기 “인간의 특징을 유전학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업을 잠시 멈추고, 산의 중턱쯤에서 잠시 쉬어가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분자생물학적 설명들은 독자들의 뇌를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슬프게 한다는 것을 필자는 잘 알고 있다. 분자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우리의 일상에서 어떤 비유를 찾기도 어려운 그런 무미건조한 대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숭이는 조금 다르다. 과학의 대상이 분자에서 원숭이로 옮겨가기 시작하면, 독자들의 관심도 따라서 증가한다. 인간의 두뇌는 일상생활에 관계되는 것에 더 주의를 기울이도록 진화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성향을 가진 조상들이 더욱 많은 자손을 퍼뜨렸을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는 것보다 텔레비젼을 보는 게 쉽듯이, 염색체니 RNA니 하는 골치 아픈 존재들보다는 원숭이나 인간에 대한 과학이 우리의 흥미를 끄는 것도 당연하다.

권위와 사랑

심리학의 실험들 중엔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이 많다. 스탠포드에서 행해진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의 ‘권위에의 복종 실험’, 영화로도 만들어진 필립 짐바르도(Philip Zimbardo)의 ‘스탠포드 감옥 실험’은 아마 가장 널리 알려진 종류일 것이다.

밀그램과 짐바르도는 일련의 실험들을 통해 우리의 행동이 환경에 의해 얼마나 쉽게 영향을 받는지를 보여주었다1. 마치 성악설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스탠포드의 두 심리학 실험은 나치의 악몽과 겹치면서 가끔 우리의 희망을 짓밟곤 한다. 하지만 하나의 실험으로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잔인성을 보여주는 위의 두 실험들과는 반대로, ‘사랑’을 주제로 한 유명한 실험도 있다. 붉은털원숭이를 대상으로 수행된 ‘엄마기계’라는 실험은 태어나자마자 어미에게서 고립된 새끼 원숭이가 철사로 만들어진 우유병을 가진 엄마보다, 천으로 만들어진 엄마에게 더욱 집착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2.

이 실험을 수행한 해리 할로우(Harry Harlow)는 원숭이의 학습실험을 연구하는 도중에 우연히 발견한 아이디어로 스타가 되었다. 그는 원숭이들이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태어나자마자 어미에게서 분리시켜 키웠는데, 이 원숭이들이 수건에 집착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조그만 천조각이 없으면 새끼원숭이들은 대부분 살아남지 못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엄마기계’가 새끼원숭이들에게 주어졌다.

새끼원숭이들은 모두 털로 뒤덮인 엄마기계를 선택했다. ‘사랑의 본성’을 우리에게 알려주던 할로우 박사가 실은 자상한 아버지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논외로 하자3. 어린 원숭이들에게 우유보다 중요한 것은 수건이었다.

▲ 서열화는 서구의 나쁜 지적전통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원초적인 본능이기도 하다. 이 그림을 보면 인간의 두뇌에 대한 조금은 비서열화된 이미지를 얻을 수 있을 듯 하다. 인간의 두뇌는 크기로도, 주름의 정도로도 절대 최고가 아니다. 


이론과 실험

프로이트에게서 유래한 ‘3대 혁명론’이 있다.

물리학에서의 코페르니쿠스와

생물학에서의 다윈, 그리고

심리학에서의 프로이트가 과학사에서의 3대 혁명이라는 이론이다.

자기자신의 업적을 혁명이라고 칭한 것도 재미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프로이트가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도 재미있다.

과학의 혁명론은 참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쳤는데, 심지어는 스티븐 제이 굴드도 고생물학의 ‘깊은 시간’의 발견을 제4의 혁명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로이트 이후 혁명에 도취된 학자들은 ‘제 4의 혁명’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에른스트 피셔의 말처럼 “과학에서 혁명들은 큰 소리를 내지 않4”는다. 시간이 흐른 뒤에 역사가들이 그 결과들을 혁명이라고 요란하게 포장할 뿐이다.

프로이트의 무의식 연구는 과학자들에게는 비과학적인 이론으로, 인문학자들에게는 일종의 성배로 추앙 받는 묘한 위치에 놓여 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전통을 물려받은 라깡의 이론은 이제 사회를 분석하는 만능칼처럼 사용되기도 한다5.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인간의 성욕과 폭력성을 설명하는 도구로, 우리를 조용히 지배하는 본능의 충동으로 대중의 마음 속에 각인되어 있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참으로 많은 것들을 설명하는데, 물리학에서조차 통일장 이론이 여전히 요원한 꿈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참 대단한 일이다.

인간의 본성을 설명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젠 사회의 정신병리학까지를 아우르고 있는 정신분석학을 바라보면, 실증적 과학의 경계를 넘어선 학문들은 참으로 쉽고 편하게 세상을 설명하는 것 같아 부러운 마음이 들 지경이다.

필자가 오랜 시간 동안 거닐던 포항공대 생명과학과의 한쪽 귀퉁이에는 “이론들은 오고 가지만 개구리는 변함없네(Theories come and theories go. The frog remains)”라는 문구가 새겨진 개구리상이 놓여 있었다6. 실험실의 과학자들은 프로이트처럼 용맹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몇 가지 실험으로 세상을 발칵 뒤집고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심리학과 동물행동학의 실험들은 오히려 사정이 나은 것인지 모른다.

같은 실험이라도 전문적이고 난해한 연구들, 대중과 언론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연구들은 곧 잊혀지게 마련이다. 실증주의란 참 중요하지만 답답한 연구방법이다. 토마스 쿤과 같은 과학사학자는 한 걸음씩 확실한 지식을 쌓아나가는 과학자들을 그저 퍼즐을 푸는 답답한 일개미들로 묘사해버렸다. 혁명은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이 만드는 것이며, 그 외의 모든 과학자는 조연일 뿐이다.

일반화의 유혹이야 과학자라면 누구나 겪는 딜레마일진데, 오늘도 개구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개구리를 설명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프로이트처럼 멋진 이론은 개구리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것이 아니다. 막스 베버가 인종차별주의자였던 것과 하이데거의 나치 전력은 관용될 수 있는 것이고, 우생학자들은 처벌되어야 하는 것이다.

삼중뇌(Triune brain)의 진실

이론은 오고 간다.

따라서 이론에 편중된 과학의 전통엔 언제나 일반화의 오류가 존재한다. 일반화의 오류야 설명이 되지 않는 현상을 예외로 치부하면 그 뿐이지만, 해당 이론이 제대로 된 실증적 연구에 기반하고 있지 않다면 그건 큰 문제가 된다.

인간의 두뇌가 세 개의 층으로 구성되며, 각각은 인류의 진화과정을 보여준다고 말하는 ‘삼중뇌 이론’도 그 중 하나다.

당장 구글이나 네이버의 검색창에 ‘파충류 뇌’라는 검색어를 입력해보자. 아마 대중에게 뇌과학을 쉽게 소개하는 웹페이지들이 검색될 것이다. 그리고 그 웹페이지들에는 영어 표기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폴 맥클린(Paul D. MacLean)’이라는 학자의 이름이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설명이 등장한다(마크린이 바로 맥클린이다. 원어 발음에 충실하자는 영어 표기법을 따르자면 그렇다)

이번 시간은 다소 지루할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폴 D. 마크린이라는 대뇌생리학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는 '인간의 뇌는 신의 실패작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의 뇌가 인간다운 것은 대뇌신피질이 발달한 결과인데 인간의 뇌에는 파충류의 뇌와 하등 포유류의 뇌가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성과 본능의 상극 때문에 괴로워 한다.' 다음 그림이 마크린의 3층 뇌 모델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그는 인간의 뇌를 다음과 같이 분류합니다.

1. 파충류의 뇌: 수면, 먹는 것, 성(性) 등의 기본적인 생명활동을 담당한다. 일명 '악어뇌'라고도 한다.
2. 고대 포유류의 뇌: (주로 외적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서) 시각, 청각, 취각에 의해서 받아들인 정보를 처리한다. 일명 '말 뇌'라고도 한다.
3. 신 포유류 뇌: 이성, 지성, 논리적인 사고를 담당한다. 일명 '사람 뇌'라고도 한다7..

맥클린이 제시한 삼중뇌의 정확한 명칭은 위에서 소개된 것보다 조금 더 복잡한데, 각각 전파충류뇌(Protoreptilian brain), 원시포유류뇌(Paleomammalian brain), 그리고 신포유류뇌(Neomammalian brain)이다8.

맥클린의 이론은 간단 명료하고 이해하기 쉽다.

우리의 뇌는 진화과정에서 한 겹씩 쌓아 올려진 것이고, 따라서

가장 오래된 파충류의 뇌는 본능과 같은 원시적인 기능을 담당하고,

가장 최근에 더해진 신 포유류의 뇌는 이성이나 지성과 같은 현대적인 기능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마치 독일의 발생학자 헤켈에 의해 만들어진 ‘계통발생설’을 연상시키는 맥클린의 이론은, 뇌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가지게 된 이들이라면 반드시 거치게 되는 일종의 상식처럼 통용되고 있다.

그런데 신피질이 논리적 사고를 담당하는 인간의 뇌라면,

좌뇌는 논리적인 사고를, 우뇌는 감성적인 사고를 담당한다는 또 다른 상식은 어떻게 통합되어야 할까? 좌뇌와 우뇌를 신피질에 국한시킨다 하더라도, 맥클린이 감정중추라고 단정지었던 포유류뇌가 신피질에 존재해야 한다는 아이러니가 남는다.

하지만 영재교육을 홍보하는 이들에 의해서 확고한 정설처럼 굳어진 좌뇌와 우뇌의 구분9도 실은 그다지 신빙성 있는 이론은 아니니 따지는 것은 그만두도록 하자10.

단순하게 세상을 설명하는 이론일 수록 대중과 언론의 사랑을 받는다. 두뇌의 기능을 파충류, 말, 인간으로 명쾌하게 잘라버리는 건 얼마나 유쾌한 일이며, 두뇌를 반으로 갈라 논리와 감정을 영역별로 나누어 버리는 건 또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다면 과학자들은 별로 할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복잡하고, 인간의 두뇌도 인류의 진화과정도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다.

과대광고의 해악

칼 세이건(Carl Sagan)이라는 천문학자를 모르는 이가 있을까. <코스모스>라는 불후의 저서로, <콘택트>라는 영화로, 칼 세이건은 우리 곁에 우뚝 서 있다. 딱딱한 과학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데 있어 세이건이 기여한 바는 잊혀질 수 없다. 아마도 칼 세이건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의 교양과학도서 시장도 성장하지 않았을까?

칼 세이건은 <에덴의 용: 인간 지성의 기원을 찾아서>11라는 작품도 썼다. 바로 이 책에 맥클린의 삼중뇌 이론이 소개된다. 그 뿐만이 아니다. 과학이 우리나라에서 대중적 관심을 받게 되는 1970~80년대에 신과학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전개된 조류가 있었다. 프리초프 카프라(Fritjof Capra)의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과 함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에릭 얀치(Erich Jantsch)의 <자기조직하는 우주>12라는 책에도 맥클린의 이론은 버젓이 정설인 것처럼 소개되고 있다.

참 재미있는 일이다.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 나타나는 타분야에 대한 몰이해13가 정확히 똑같이 반복되어 있으니 말이다. 각각 천문학자와 화학자가 인간의 지성에 대해 야심 차게 저술한 책들엔 당시에도 비판이 끊이지 않았던 맥클린의 삼중뇌 이론이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기적인 유전자>를 읽고 "유전자란 이기적이기 때문에 나는 유전자가 싫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을 나무랄 일도 아니다. 대중서를 통해 공개되는 학자들의 이론엔 언제나 공허함이 존재하는 법이다. 조직화된 다른 학문에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과대광고가 위험한 것처럼 유명한 학자들에 의해 잘 포장된 책들이 대중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문제다. 맥클린의 삼중뇌가 상식처럼 퍼지게 된 기저에는 세이건이나 얀치히 같은 학자들의 과오가 있다.

▲ 폴 맥클린의 '삼중뇌'이론은 유혹적이다. 우리의 뇌는 진화과정에 따라 세개의 층으로 구성되며 가장 원시적인 것에서부터 현대적인 것으로, 가장 하등한 것에서부터 고등한 것으로 구획되어 있다. 게다가 프로이트의 예지력은 대단해서 이드, 에고, 수퍼에고의 분류법과도 딱 맞아 떨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단순함에는 함정이 있다. 


삼중뇌 이론의 오류

맥클린의 삼중뇌에 아무런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실은 맥클린의 이론은 아주 오래된 뿌리를 가지고 있다. 감정을 다루는 두뇌의 영역이 어디인가를 두고 벌어진 오래된 논쟁이 삼중뇌 이론의 출발점이 된다.

1937년, 제임스 파페즈(James Papez)라는 미국의 신경해부학자는 고양이의 뇌에 래비스 바이러스(rabies virus)를 주사해서 ‘파페즈 회로(Papez circuit)’라는 감정의 중추 회로를 밝혔다고 주장한다. 두뇌의 각 영역이 하나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당시의 과학자들을 사로잡고 있었다.

언어중추를 발견한 폴 브로카(Pierre Paul Broca)에 이르러 만개한 이러한 사고방식은 프란츠 조셉 갈(Franz Joseph Gall)이라는 18세기 말의 인물이 창시한 골상학(Phrenology)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전통을 가진다. 갈의 이론도 단순하다. 갈은 "인간의 심리적인 특성은 독립된 여러 개의 기능으로 나눌 수 있으며 각 기능은 대뇌 표면의 각 부위에 일정하게 배위(配位)되며 각 부위의 크기는 그 곳에 자리한 심적 기능의 발달 정도를 나타내므로 대뇌를 둘러싼 두개골의 형상에서 그 밑에 있는 대뇌 부위의 요철을 알 수 있으며 인간의 심리적 특징을 짐작할 수 있다"14고 주장했다.

파페즈의 감정중추를 둘러싼 뿌리 외에도, 맥클린의 이론은 러시아의 유명한 발생학자 폰 베어(Karl Ernst von Baer)에게도 빚지고 있다15. 폰 베어가 비슷한 생각을 제안한 것은 1828년의 일이다.

맥클린의 이론은 단순히 신경해부학만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이론은 진화과정 속에서 인간의 두뇌가 새로운 기능을 획득한다는 비교해부학까지를 아우른다. 따라서 그의 이론이 지지되려면, 정말 우리의 두뇌가 진화과정 속에서 한 층씩 두뇌를 쌓아 올렸는지가 실증적 연구로 지지되어야 한다. 그리고 각 단계마다 새로운 구조가 탄생해야만 한다.

진화의 대부분이 자동차의 땜질을 수리하듯이 진행된다는 것은 논외로 치더라도, 맥클린의 이론은 원시포유류뇌에만 존재해야 할 해마(hippocampus)가 조류에서도 발견된다는 것만으로도 기각될 수 있다. 맥클린의 이론에 따르면 포유류의 조상에서 새로 나타난 편도체(amygdala)는 파충류에는 존재할 수 없지만, 많은 학자들은 편도체에 해당하는 두뇌 부위가 파충류에 존재한다고 말한다16.

요약하자면 맥클린이 포유류에게서만 나타난다고 주장했던 부위들이 실제로는 파충류와 조류 모두에서 나타난다는 뜻이다. 게다가 맥클린이 포유류와 비포유류로 나누어 지나치게 단순화한 행동양식들조차 실제로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사회생활을 하는 두뇌는 포유류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조류, 파충류, 양서류뿐만 아니라 심지어 어류에게도 존재한다.

존재의 대사슬과 프로이트

맥클린의 이론은 이미 폐기처분된 헤켈의 ‘계통발생설’을 연상시킬 뿐 아니라, 고대 그리스로까지 소급되는 ‘존재의 대사슬(Great chain of being, scala naturae)’의 재탕이기도 하다. 굴드가 서양의 나쁜 지적 전통 중 하나로 꼽았던 ‘서열화’의 화신인 ‘존재의 대사슬’은 미생물, 식물, 동물, 인간, 천사와 신을 수직선상에 배열한다. 존재의 대사슬에 시간 개념을 더하면 진화를 진보로 오해하는 이론이 탄생한다.

가장 단순한 것에서부터 가장 복잡한 것으로의 선형적 진보를 진화라고 착각하게 된다는 뜻이다. 맥클린에게 있어 신포유류의 뇌는 가장 진보된 것이고, 파충류의 뇌는 가장 하찮은 것이다. 그래서 무뇌아라는 말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감정은 하찮은 것이고, 이성은 고귀한 것이다. 그래서 맥클린에 따르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하고 유일한 것은 이성이 된다.

맥클린의 삼중뇌 이론을 보고 즉시 프로이트를 떠올린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프로이트의 ‘원초아(Id), 자아(Ego), 초자아(Superego)’는 맥클린의 '파충류 뇌, 고대 포유류 뇌, 신 포유류 뇌'와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진다. 프로이트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기뻐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17. 프로이트의 이론이 물질적 기반을 갖추게 되었으니 기쁨이 더할 나위 없이 컸을 것이다.

▲ 김우재 UCSF 박사후연구원 

맥클린의 이론이 틀렸다면 생물학적 기반을 갈구하던 프로이트 연구자들의 바람도 바람처럼 사라질 테지만 -그리고 이미 언급했듯이 맥클린의 이론은 사태를 지나치게 단순화했다. 맥클린의 이론을 수정한다면 프로이트의 이론도 수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프로이트 연구자들이 경전에 손을 댈 것 같지는 않다- 진정 놀라운 것은 적어도 맥클린을 있게 해준 수 많은 선대 신경해부학자들의 노력을 뛰어넘는 프로이트의 예지력이다.

만약 프로이트를 과학자라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그래서 프로이트처럼 위대한 과학자가 되고 싶다면 실험은 필요 없다. 사색하고 독서하고 또 사색하도록 하자. 그래서 몇 개의 이론을 체계화시켜 후대에 어떤 성실한 과학자들이 그 이론에 실증적 토대를 갖추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미 수 천년 전에 데모크리토스가 원자론을 예견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우리는 데모크리토스를 위대한 과학자의 반열에 올려야 하는 것 아닌가.

개구리는 오늘도 실험실에서 조용히 알을 낳는다.


1. 스탠포드라는 공간에서 행해진 저 유명한 실험들을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독자들은 번역되 저자들의 책을 통해 이를 접할 수 있다.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에의 복종>과 필립 짐바로드의 <루시퍼 이펙트>는 모두 번역되어 있다.

2. 이 실험결과를 담은 논문은 처음에는 The Nature of Love (1958) - Harry Harlow, American Psychologist, 13, 573-685 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고, 이듬해 사이언스지에 다시 실렸다. Affectional responses in the infant monkey; orphaned baby monkeys develop a strong and persistent attachment to inanimate surrogate mothers. HARLOW HF, ZIMMERMANN RR. Science. 1959 Aug 21;130(3373):421-32.

3. <매드 사이언스 북: 엉뚱하고 기발한 과학실험>, 레토 슈나이더, 2008.

4. <과학을 배반하는 과학>, 에른스트 피셔, 2007, p59

5. 굳이 예를 들지 않겠다. 라깡을 모르면 바보가 될 정도로, 대한민국의 인문학은 라깡의 이론을 과학으로 포장하고 있다.

6. 사이언스온, [수첩] “이론은 변하지만 개구리는 변함없네”, 오철우, 2010.01.22

7. http://www.amusementkorea.co.kr/class/gamecol/1-8.htm 폭넓고 깊게 진화하는 게임 디자인: 맥클린의 이론을 아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웹사이트도 많다. 예를 들어http://kr.blog.yahoo.com/mossben2002/1161 뇌의진화. 인공지능 연구자들에게는 꽤나 유명한 다음 웹사이트에도 맥클린의 이론이 실려 있다. http://www.aistudy.co.kr/physiology/brain/brain_definition.htm 뇌란 무엇인가?

8. MacLean, Paul D. (1990). The triune brain in evolution: role in paleocerebral functions. New York: Plenum Press.

9. 예를 들어 조선일보의 다음 기사를 보자. [안진훈의 교육비타민] 좌뇌 '쓰는' 교육해야 창의성이 커진다. 조선일보, 연세대 책임교수 '아이머리 바꿔야 성적이 오른다'저자. 2008.09.01

10. 예를 들어 다음 웹페이지를 참고할 것. http://blog.daum.net/glnara/15851252

11. 오랫동안 절판상태였던 이 책은 최근 재출간되었다. 에덴의 용: 인간 지성의 기원을 찾아서, 원제 The Dragons of Eden: Speculations on the Evolution of Human Intelligence (1977, 2006), 칼 세이건, 사이언스북스, 2006

12. 자기 조직하는 우주:새로운 진화 패러다임의 과학적 근거와 인간적 함축, 에리히 얀치, 범양사, 1989; 다음 논문을 참고해도 좋다. Erich Jantsch, Sociobiological and sociocultural process: a non-reductionist view, Journal of Social and Biological Systems, Volume 2, Issue 1, January 1979, Pages 87-92.

13. 이에 관해선 필자의 다른 글을 참고. 사이언스 온, [연재] 파리방의 분투: ‘첫 유전자 배열’의 전설을 이루다, 김우재, 2010.02.26

14. 한글 위키피디아 '골상학' 페이지

15. Carl Ernst von Baer on the study of man and nature, Arno Press (New York), 1981, Edited by William Coleman.

16. Butler AB, Hodos W (2005). Comparative Vertebrate Neuroanatomy. Evolution and Adaptation. 2a. Edição. Hoboken: John Wiley & Sons.

17. Sci Am. 2004 May;290(5):82-8. Freud returns. Solms M; 당연히 반박이 뒤따랐다. 과학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Sci Am. 2004 May;290(5):89. Freud returns? Like a bad dream. Hobson JA.

김우재 UCSF 박사후연구원 | korean93@postech.ac.kr

저작권자 2010.03.2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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