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서평]스티브 미슨, 마음의 역사, 영림카디널, 2001  

2010/04/24 13:41

스티브 미슨, 영림카디널, 2001, 326쪽

 

고고학자가 쓴 마음의 진화 역사

사람의 인지 발달에 대한 지칠줄 모르는 관심은 학제를 뛰어넘어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인지과학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소개했는데, 이 책은 독특하게도 고고학 분야에서 접근한 인지 발달 연구입니다. 인류에 대한 화석과 유적을 중심으로 언어학, 신경과학, 발달심리학, 철학, 동물학 등의 연구 성과를 하나의 정합된 모델로 설명하는 매우 뛰어난 책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인문학자여서 그런지 쉬운 언어와 적절한 예시 등이 친근감있고, 이해하기도 쉽습니다.

 

마음의 역사 모델링

이 책이 뛰어난 점, 하나를 굳이 꼽으라면 저는 마음에 대한 훌륭한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을 들고 싶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는데, 과학책들이 해당 분야에서는 해박하고 전문적일 수 있겠지만 이를 대중적인 시각과 접목시키는데 있어 비약이 있거나 친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이 책은 마음에 대한 하나의 모델을 제시합니다. 큰 틀을 먼저 제시해주니까 생각의 뼈대를 세우는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스티브 미슨이 제시하는 마음의 뼈대는 성당 건축 구조입니다. 성당 중앙부에는 돔 모양의 일반 지능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 지능을 둘러싸고 크게 세 가지 지능, 즉 자연 지능, 사회 지능, 기술 지능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나중에 언어 지능이 추가됩니다.

 

이들 지능들은 인류가 진화해 오면서 형성된 것으로서 일종의 모듈화된 지능입니다. 종종 인간의 지능은 컴퓨터 프로그램의 서브루틴과 비교되곤 합니다. 서브루틴이란 특정한 기능을 담당하는 프로그램으로, 컴퓨터가 특정 기능을 필요할 때 언제든지 호출해서 사용할 수 있게 모듈화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모듈화되어 있다는 것은 다른 기능과 논리적으로 섞이지 않고 독립화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류의 마음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자연 지능, 사회 지능, 기술 지능은 점차 분화되어 독립적으로 발전해 왔다고 합니다. 그러다 인류의 문명이 꽃을 피우는 6만년에서 3만년 사이에 인류 마음의 역사에서 중대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바로 이들 독립된 모듈들이 하나의 통합된 형태로 연결되는 일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마음에서 새로운 구조가 출현하게 된 겁니다.

 

600만년 인류와 침팬지의 공통 조상이 출현한 이래 마음의 모듈들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무엇이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는지, 3만년 전, 문화의 혁명이 일어난 마음의 통합은 무엇 때문에 일어나게 되었는지 등을 위의 마음 모델을 중심으로 서술해 나가는 것이 이 책의 기본 구성입니다.

 

4막으로 구성된 마음의 역사

책의 구성도 재미있습니다. 스티브 미슨은 마음의 역사를 크게 4막으로 구성된 공연에 비유합니다. 스티브 미슨이 설명하는 마음의 공연, 4막을 간략히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막 : 6백만년에서 450만년까지(배우는 인류와 유인원의 공통 조상)

2막 : 450만년에서 180만년까지(배우는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계열과 호모 하빌리스)

3막 : 180만년에서 10만년 전까지(배우는 호모에렉투스와 네안데르탈인)

4막 : 10만년 전에서 현재까지(배우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각각의 시기에 발견된 화석이나 유적을 토대로 또는 실험이나 연구 성과를 소개하면서 이 당시 초기 인류들의 마음 상태를 살펴봅니다. 예를 들어 1막의 경우 공통 조상에 해당하는 유적이나 화석이 발견된 것이 없습니다. 이때에는 이와 유사한 마음 상태에 있다고 추정되는 침팬지의 도구 이용 능력, 자연사 지능, 사회적 관계 등을 살핌으로서 당시 공통 조상의 내면 상태를 보여줍니다.

 

2막과 3막에서는 본격적으로 화석이나 유적을 다룹니다. 예를 들어 뇌용량의 크기, 뇌용량에 비례하는 사회집단의 크기 연구, 네안데르탈인의 르발루아기법(양면박편석기)이 갖는 고도의 도구 사용 능력 , 두개골 형상과 언어의 관계 등 고고학이 지금까지 이루어놓은 다양한 연구 성과들이 총동원되어 인류의 마음을 추론해 냅니다.

 

3개의 막을 서술하면서 스티브 미슨은 인류가 상대적으로 기술 지능, 자연사 지능에 비해 사회적 지능이 일찍부터 발전해 왔음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사회적 지능에 자극받아, 다시말해 의사소통의 필요성이 점증함에 따라 언어 지능 역시 발전해 왔다고 말합니다.

 

4막에 접어 들어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하게 됩니다. 이때 일반 지능을 중심으로 발달했던 4개의 지능 모듈이 서로 연결되기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스티브 미슨은 이것을 '인식의 유동성'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인식의 유동성과 은유의 출현

인식의 유동성, 다시 말해 각각의 독립적인 모듈들이 서로 교통하는 능력이 생기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이었는지, 스티브 미슨은 자문합니다.

 

스티브 미슨의 결론은 언어의 발전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초기 언어는 사회적 지능에 기반한 의사소통 수단으로 시작됩니다. 따라서 이 당시 언어는 사회적 언어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의미를 담는 개별적인 단어들이 도구나 자연을 표현할 수 있었겠지만 그것은 단편적이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사회적 지능에 기반한 언어는 점차 비사회적 지능에 기반한 언어에 감염되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언어는 다중적인 은유를 담기 시작합니다. 즉 사회적 관계를 표상하는 의미가 자연사적인 의미를 담는 표현으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초기 인류의 벽화나 유물, 도구의 발전들은 이러한 지능이 서로 혼합되면서 새로운 창조가 일어나게 된 결과물이라고 말합니다.

 

예를들어 라스코 동굴 벽화에는 여러 형태의 동물 모양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것은 자연사 지능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이 벽화에는 그 동물의 생태 정보가 그려져 있어 사회적 관계의 의사 소통에 사용될 수 있습니다. 아니 어린 인류에게 학습을 위한 도구로 활용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런 미술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발전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들 지능이 하나로 융합되지 않고서는 결코 창조될 수 없다는 것이 스티브 미슨의 설명입니다.

 

은유는 두 개의 지능 아니 그 이상의 지능이 서로 연결되어, 같지만 다른 의미를 창조할 때 생깁니다. 이 개념은 '인지과학 이야기'의 인지의미론 관련 서적들을 살펴보시면 아마 도움이 되실 겁니다. 인지의미론에서는 주로 언어의 문법적 구조를 설명하면서 이런 결론에 도달하지만, 스티브 미슨은 고고학적 유적을 연구하면서 이런 결론에 도달합니다.

 

진정한 창의성은 이런 지능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끝으로 저자는 인류의 마음이 나선형적인 발전을 해 왔음을 알려줍니다. 6500만년 전, 공통 조상들은 유전자의 본능에만 속박되어 있던 마음에서 일반 지능을 강화시켜 현실에 보다 적응된 개체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점차 대뇌의 크기와 구조를 성장시켜온 배경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환경에 보다 잘 적응하기 위한 기제로 특화된 지능 모듈을 발전시켜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회 지능, 자연사 지능, 기술 지능이었습니다.

 

사회 지능의 한 형태로서 의사소통 수단이었던 언어 지능의 등장은 또 다른 대뇌구조 발전의 새로운 동력이 되었습니다. 언어 지능을 매개로 다양한 지능들이 통합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은 복잡한 모듈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일반 지능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언어의 기원에 대한 부분입니다. '수학 유전자'에서 소개한 비거튼의 경우, 언어의 기원을 사물과 사회에 대한 범주화와 통사 구조의 결합으로 설명하는데 반해, 스티브 미슨은 철저히 의사소통 기원론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 옳은지는 앞으로 계속 살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결론을 대신하여

이 책의 강점은 일단 읽기 쉬운 문체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커다란 인식의 틀을 제공하고 그 인식의 틀을 검증하는 구성으로 되어 있어 매우 쉽게 요점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대해 공부하고자 하는 초심자들에게는 아주 안성맞춤인 책입니다.

 

그가 주장하는 마음 모델이라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너무 도식적이라 '정말 그럴까?'라는 의구심도 한편에서 생기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장회익 선생님이 '공부 도둑'에서 언급한 것처럼 어떤 것을 공부할 때는 '송아지'를 사육하듯이 하면 좋다는 조언처럼 일단 하나의 관점을 선택하고 다른 연구들을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도 같습니다.

 

인지의미론에서 만났던 은유의 개념을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가왔습니다. 여기서는 은유가 단지 언어의 현상이 아니라 지능의 본질이라는 점을 고고학의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게 해주어 무척 즐거웠습니다.

 

이제 저는 스티브 미슨의 또 다른 책 '노래하는 네안데르탈인'을 손에 들었습니다. 그의 해박한 지식과 이해하기 쉬운 설명이 저를 매료시켜 버렸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즐거운 감상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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