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나의 마음을 만든다

-뇌의 신비에 대한 철학적 발견-

 

 

 

 

이 책은 세계 최고의 뇌 과학자 중 한 명인 라마찬드란 박사가 BBC의 ‘리스 강연’에서 행한 내용을 담고 있다. 라마찬드란 박사는 환상사지나 공감각 같은 희귀한 신경이상 사례들을 통해 우리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흥미롭게 설명한다. 더 나아가 ‘예술이란 무엇인가’ ‘자유의지란 무엇인가’ ‘자아란 무엇인가’ 같이 이제까지 철학의 영역에 속한다고 여겨졌던 질문들에 뇌 과학자로서 새로운 해답을 제시하며, 과학과 인문학이라는 두 문화의 연결을 시도한다.

 

 

‘마음’의 영역까지도 지배하는 뇌의 전지전능함

 

과학은 증명의 학문이라고 한다. 한 과학자가 무언가를 발견하여 논문을 발표했을 때, 우리는 절대자의 법칙을 완벽히 해부한 100퍼센트의 그것이라고 믿기보다는, ‘또 하나의 가능성 있는 현상’으로 이를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이토록 완벽할 수 없는, 혹은 증명해나가는 과정의 학문인 과학의 특징을 ‘뇌 과학’만큼 절실하게 드러내는 분야가 또 있을까.

인간의 뇌를 파헤치는 작업은 과학의 영역에만도, 의학의 영역에만도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을 수많은 뇌 관련 학자들로부터 들어온 바다. 두뇌 구조라는 물리학적 구조는 어느덧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의지’ ‘사고’ ‘정신’이라는 철학적 영역으로까지 침범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두뇌에서 생산되는 감각과 이성적 동작은, 흔히 말하듯 가슴에서 생산되는 ‘감성’과 ‘양심’ 따위와는 철저히 구별되는 것일까 고민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눈앞에 일어나는 똑같은 광경을 목격하고도 A라는 인물은 버럭 화를 내기도 하지만, B라는 인물은 웃으면서 넘어가기도 한다. 흔히 이런 차이를 보며, A는 한참 스트레스를 가득 받은 사람일 것이라거나, B는 인격수양이 잘 된 사람이라거나, 하는 식으로 결론 내는 것이 다반사다. 인간의 행동을 오로지 ‘마음’의 영역 안에서만 결론 내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라마찬드란 박사는 우주에서 가장 복잡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뇌의 어마어마한 수치, 가령 천억 개의 신경세포, 1만 개에 이르는 시냅스, 이런 수치를 토대로 가능한 뇌 활동의 순열과 조합을 통해 상상 이상의 현상들을 도출해낼 수 있다고 한다. 즉, 우리가 정신적 범주라 일컬어 왔던 모든 마음의 움직임도 우리 뇌 속에 들어있는 소량의 젤리에 의한 활동이라는 사실이다. 철학의 영역을 과학적 현상으로 설명해줄 수 있다는 얘기다. 한편으론 경이롭고, 한편으론 고차원의 정신 영역마저도 우리 신체의 특성 안에 좌지우지 된다고 생각하면 조금 서글프기조차 하다.

두뇌의 고유한 특정 부위가 활성화 되었느냐 그렇지 못하냐에 따라, 흔히 일반 사람들이 말하듯 ‘정상인이다 비정상인이다’의 확연한 행동 차이가 보인다는 점을, 저자는 이 책 전반을 통해 풍부한 환자들의 예를 들어 설명해주고 있다. 라마찬드란 박사가 애초에 뇌 신경과학에 빠져들게끔 만든 계기가 되었던 뇌중풍 환자의 경우, 그는 뇌중풍의 일종인 가성연수마비 증상의 일환으로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거의 몇 초에 한 번씩 웃고 울기를 반복했다. 가성연수마비가 순간적으로 반복되기 때문이라 가정하게 되었다. 그는 단축된 시간 주기로 조울증이 나타나듯이 실제로 그는 행복감과 슬픔을 수시로 반복하며 느꼈던 것이다. 박사는 그를 보며, 단지 즐거움이 제외된 기쁨과 거짓 눈물만 존재했던 것인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까진 완벽한 해답을 도출하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신의 영역이라 여겨져 오는 뇌의 상세 구조를 하나하나 해독해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 과정 속에서 상상할 수 없이 다양한 정신 이상의 사례를 접하며, 그 원인이 최근에야 발견된 뇌의 특정부분의 이상에 의한 것임도 속속들이 발견해가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특별한 정신이상 증세를 넘어, 특정성격 인물군, 혹은 인품의 다양함마저도 뇌 구조의 차이로 인한 것임을 발견할 날이 머지않다. 바야흐로 뇌와 마음, 즉 과학과 인문학의 교차로가 보이는 것이다. 라마찬드란 박사는 이 책의 맨 말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신경과학자는 ……(중략)…… 최근까지도 철학의 영역이었던 질문 가운데 일부에 답하기 시작하고 있다……(중략)……정치학, 식민주의, 제국주의, 전쟁 또한 인간의 뇌에서 나온 것임을 명심하라.’

 

 

주요 내용

 

■ 신경과학이 분석한 마음의 세계

신경학과 정신의학의 경계는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다. 곧 정신의학은 신경학의 한 분야로 흡수될 것이다. 미래에는 꾀병을 부리는 사람이나 보험금을 타내려는 사기범과 실제 환자를 구분하는 데, 피고인이 계획적 살인자인지 아니면 단순 과실치사범인지 판단하는 데 뇌 스캔을 실시할 것이다(‘신경법률학’ ‘신경범죄학’ 같은 새로운 학문 분야가 생겨날 것이다).

심신의 관계는 자고로 철학의 주요 물음이었다. 마음과 몸을 분리된 실체로, 또는 어느 한쪽이 주된 것으로 설명하는 수많은 주장이 있었다. 일체유심조나 영혼불멸, 자아는 환상이라거나 모든 것은 꿈이라는 등등 온갖 이론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과학은 심적 과정은 신체적 활동의 부산물일 뿐으로, 별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부수현상설(epiphenomenalism)로 기우는 듯싶다.

결국 다윈이 옳았던 것일까. “우리는 천사가 아니고 단지 지적인 유인원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우리는 영원히 초월적인 것을 갈망하면서 우리의 날개를 펴고 날아가기를 시도하는, 괴물 몸속에 갇힌 천사처럼 느낀다.”

라마찬드란은 마음의 문제에 대한 성급한 예단을 삼가면서 다각도로 접근하고 있다. 여기서는 자유의지, 자아와 퀄리아(qualia), 타인의 자아 문제만 간략히 살펴본다.

 

1. 자유의지

수십 년 전 미국의 신경외과의 벤저민 리벳(Benjamin Libet)과 독일의 동물생리학자 한스 코른후버(Hans Kornhuber)는 피험자들에게 10분 안에 아무 때나 손가락을 움직여보라고 지시했다. 피험자들이 손가락을 움직이려는 의지를 느낀 순간과 실제로 손가락을 움직인 순간은 거의 일치했지만, 연구자들은 손가락이 움직이기 0.75초 전에 준비전위라는 뇌전도(EEG) 전위를 측정할 수 있었다.

손가락을 움직이도록 한 것은 각자의 자유의지라고 주관적 느낌은 주장하지만, 뇌전도 측정 결과는 손가락을 움직이도록 한 의지를 느끼기 거의 1초 앞서 뇌 활동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뇌의 명령이 1초 먼저 시작된다면 어떻게 우리의 의지가 원인일 수 있겠는가? 명령을 내리는 주체는 뇌이며, 우리의 자유의지는 사후의 합리화 대상일 뿐이거나 단순히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라마찬드란은 이것이 인공위성을 통한 인터뷰 때 발생하는 소리지연 현상처럼, 뇌 속의 어느 한 부분에서 발생한 신호가 손가락을 움직이라는 메시지로 뇌 속의 다른 부분으로 전달되는 데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신경지연(neural delay) 현상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자연선택은 (어떤 진화론적 목적에서) 주관적인 자유의지를 느끼는 순간을 뇌의 명령 순간이 아니라 실질적인 손가락의 움직임과 일치시키기 위해 계획적으로 지연 현상을 보장해온 듯하다.

 

2. 자아와 퀄리아

라마찬드란은 마음의 문제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주관적 감각, 곧 퀄리아이고, 다른 하나는 자아이다. 퀄리아의 문제는 다음과 같다.

“우리 뇌의 수많은 젤리 같은 뉴런들에서 일어나는 이온의 흐름만으로 어떻게 붉은색으로부터 붉음, 각종 향신료나 와인의 향을 인지하는 것일까?”

라마찬드란은 퀄리아가 특정한 생물학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진화한 것으로, 신경 활동의 부산물, 즉 단순한 부수현상일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빛이 파동이면서 동시에 입자이듯이, 물질과 정신, 뇌 속에서 일어나는 정신적인 활동이나 육체적인 활동도 어느 하나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아와 퀄리아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자유롭게 느끼는 감각이나 퀄리아를 가질 수는 없으며, 감각적 경험이나 기억, 감정이 완전히 결여된 자아를 가질 수는 없다.” 즉, 퀄리아를 경험하는 자의식이 없으면 자유롭게 유동하는 퀄리아를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며, 모든 감각이 결여된 고립된 자아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라마찬드란은 자아의 5가지 속성(연속성, 일체성, 구체성, 자유의지, 반성성)을 분석하면서, 생물학자가 더 이상 ‘생명’이 무엇인지 묻지 않듯이(생명이란 DNA 복제와 전사, 크렙스 회로, 젖산 회로 등의 일련의 과정들에 느슨하게 적용되는 단어에 불과함을 이제 모두 알고 있으므로), 자아의 각각의 특성과 뇌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연관지어 설명한다면 ‘자아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도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한다.

퀄리아와 자아는 인간에게만 고유한 것으로 유인원과 구별되는 인간의 특징, 언어와 추상적 사고를 가능케 했다. 라마찬드란은 이러한 능력을 담당하는 부위로 우리 뇌 속의 편도와 왼쪽 TPO(측두-두정-후두) 연결점 주위에 위치하고 있는 방추회 및 베르니케영역, 그리고 ‘의도'와 관련 있는 앞띠고랑에 주목한다.

 

3. 타인의 자아

엄마가 혀를 내밀면, 이를 보고 신생아도 따라서 혀를 내민다. 이는 대단히 놀라운 일이다. 이때 신생아는 자아와 타인의 자아 사이에 쳐진 장벽을 허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을 흉내내기 위해서는 타인의 행동에 대한 내부 모델을 만든 다음 자신의 뇌에서 그것을 재현해야만 한다. 이러한 가상현실 시뮬레이션은 전두엽에 존재하는 ‘거울뉴런’이라는 특정 그룹의 신경세포가 담당한다.

라마찬드란은 이 거울뉴런을 특히 강조하는데, 이것이 우리 정신의 또 다른 중요 능력인 모방을 통한 학습 능력과 문화 전파 능력의 발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이 거울뉴런에 힘입은 바 크다.

따라서 라마찬드란은 인간의 정신적 기능이라는 맥락에서 본성/양육 논쟁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이는 물의 습도가 물을 구성하고 있는 산소에서 나오는지 수소에서 나오는지 질문하는 것과 같다. 우리의 뇌는 그것이 몸담고 있는 문화적 환경과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깊이 얽혀 있다.”

 

 

■ 카프그라 망상과 신경미학

교통사고를 당하고 머리에 충격을 받아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환자가 있다. 얼마 후 혼수상태에서 벗어난 그 환자의 신경계는 완전히 정상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어머니를 보고는 “이 여자는 우리 엄마와 똑같이 생겼지만 우리 엄마가 아니라 사기꾼이다”라고 말한다. 왜 그는 그렇게 말했을까?

다소 생소한 이 카프그라 증후군(Capgras syndrome) 환자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본다’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보고 눈을 통해 받아들인 정보는 방추이랑이라는 뇌의 영역에서 해석되어 지금 바라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인식하게 된다. 따라서 이 영역이 손상된 환자들은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안면인식장애(prosopagnosia) 증세를 나타낸다. 일단 형상이 인식되면 그 정보는 편도에 전달되는데, 편도는 바로 감정중추로서, 지금 보고 있는 사물의 감정적인 중요성을 가늠한다.

카프그라 망상을 앓는 앞의 환자는 방추이랑과 다른 모든 시각영역이 정상이기 때문에 그의 뇌는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어머니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고로 시각중추와 편도, 감정중추를 연결하는 전선이 끊어졌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어머니를 보고 있으면서도 ‘어머니와 똑같이 생겼지만 그녀가 정말 내 어머니라면 왜 내가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것일까? 아니, 어머니일 리가 없어. 그녀는 단지 어머니 흉내를 내는 사기꾼일 뿐이야’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뇌의 시각중추와 감정중추 사이에 이러한 연결고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예술의 정체성에 관한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시각 이미지에 대한 미적 감정의 반응이 바로 예술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신경미학(neuroaesthetics)이라는 이 새로운 학문 분야는 전통적인 철학자들을 불쾌하게 만들며 논쟁을 낳고 있다.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아름다움 혹은 예술이란 우리 뇌가 진화의 과정에서 우연히 얻게 된 뉴런의 과다 활성화 상태에 불과하다. 수많은 사회과학자들은 아름다움, 자선, 경건, 사랑이 뇌 속의 신경세포의 활동 산물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분개한다. 그러나 그들의 분노는 환원주의라는 그들의 잘못된 가정에서 기인한다.

 

 

환상사지를 통해 본 뇌의 재배치 가설

악성 종양이나 불의의 사고로 팔을 잃은 환자가 절단된 팔의 존재를 계속 느끼는 현상을 가리키는 환상사지(phantom limbs)는 익히 알려져 있다. 어느 날 라마찬드란은 왼쪽 팔을 잃은 한 환자를 진찰하다가 그의 오른쪽 뺨을 만지자 그 환자는 “제기랄! 당신은 지금 나의 왼쪽 엄지손가락을 만지고 있소”라고 외쳤다. 이어진 실험에서 라마찬드란은 환자의 얼굴 표면에 잃어버린 환상 손이 완벽히 표현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까?

해답은 바로 뇌 속에 있다. 신체의 왼쪽 피부 표면에서 발생하는 촉각 신호는 오른쪽 대뇌반구의 겉질(피질)에 지도처럼 표현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손과 입을 가진 난쟁이처럼 보이는데, 펜필드 호문쿨루스(Penfield homunculus)라 불리는 이 지도는 대부분 연속적이다. 그러나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얼굴을 대표하는 곳이 목 근처가 아니라 손을 대표하는 곳 바로 다음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위 환자의 경우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팔이 절단되면, 손에 상응하는 뇌겉질의 일부는 아무런 신호를 받지 못한다. 이렇게 되면 뇌겉질은 감각이 입력되기를 바라며, 얼굴 피부에서 나오는 감각은 인접한, 잃어버린 손에 상응하는 빈 영역을 침투한다. 그런 다음 얼굴에서 나오는 신호는 잃어버린 손으로부터 나오는 것처럼 뇌의 상위 중추에 의해 잘못 해석되는 것이다. 라마찬드란은 이러한 뇌의 재배치(remapping)/혼선(crosswiring) 가설을 MEG라는 뇌 영상 기술을 사용해 증명했다.

이러한 발견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흔히 뇌 속의 모든 조직은 태아기나 유아기 초기에 형성되며, 일단 한번 형성되고 나면 성인이 되어도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뇌놀중처럼 신경계가 한번 손상을 입으면 거의 그 기능이 회복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라마찬드란은 성인의 뇌에도 엄청난 유연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팔을 잃기 전 마비를 경험했던 환자 중에는 팔을 잃은 후에도 마비를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있지도 않은 환상 팔의 마비(그러나 실제로 고통을 느낀다)를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까? 만일 팔이 뇌의 명령대로 움직인다는 시각적 피드백을 줄 수 있다면 이 의사 마비는 사라질 것이다. 라마찬드란은 거울을 이용해 성한 오른쪽 팔의 움직이는 이미지를 환상 팔과 중첩시킴으로써 그 치료에 성공했다.

 

 

이 책에 대한 찬사

 

모든 학부모가 자신의 아이들이 그의 발밑에 앉아서 강의를 들을 수 있는 행운을 갖기를 바랄 정도로 카리스마 넘치는 라마찬드란 교수의 뛰어난 업적. 뇌의 복잡한 진화 발달에 대한 그의 최근 연구는 너무나 강력하고 격정적이어서 여러분은 그의 손가락 끝에서 발산되는 빛을 감히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옵서버〉

 

마음 설레게 하는 책. 라마찬드란 교수는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는 신경과학자이다. 그의 학식은 명쾌하고, 유익하며, 재기 넘치는 자신의 능력과 결합되어 뇌의 기능에 대한 그의 연구결과는 일종의 혁명을 초래하고 있다.

〈가디언〉

 

라마찬드란은 기이하고 황홀한 마음의 제국으로 과학의 실크로드를 여행하는 당대의 마르코 폴로다. 그는 우리가 저녁만찬에 초대해 듣고 싶을 여행자의 기이한 이야기, 현상학적 보물들을 잔뜩 가지고 돌아왔다. 그의 세밀하고 전문적인 이야기 솜씨는 우리의 과학적 이해를 풍요롭게 해줄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라마찬드란은 우리 시대 가장 재능 있는 의사이자 해설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환상사지란 무엇인가, 뇌는 어떻게 환영과 망상을 만들어내는가, 공감각은 무엇이고 은유, 창조성, 예술과 어떤 관계인가, 뇌는 마음과 어떻게 관련되는가 등과 같은 질문에 그가 손대기만 해도 해답이 밝혀진다. 보기 드문 과학서로서, 깊이가 있으면서도 이해하기 쉽다.

올리버 색스(Oliver Sacks)

 

뇌의 다양한 위치 간의 기능적 관계를 관찰할 수 있게 하는 새로운 방법론은 신경학과 신경정신학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례를 비범한 신경과학자가 설명할 수 있도록 만들며, 이제 뇌 과학으로 철학자의 오래된 골칫거리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결론을 유도하고 있다. 시사하는 바가 많은 훌륭한 책.

로제 귀유맹(Roger Guillemin), 노벨상 수상자

 

이 책은 대담하고 불경하며 또한 독창적이고 재치 있는 아이디어로 가득한 라마찬드란의 걸작이다. 뇌에 대해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물론 나와 같이 뇌에 관한 연구로 일생을 살아온 이들에게도 흥미를 안겨줄 것이다. 이 책은 가뭄에 내리는 소나기와도 같다.

데이비드 허블(David Hubel), 노벨상 수상자

 

흥미를 유발하며, 매우 혁신적이고, 매우 이해하기 쉬운 책

래리 와이스크란츠(Larry Weiskrantz), 옥스퍼드 대학 교수, 왕립협회 회원

 

과학은 정보를 제공하며, 교육시키고, 영감을 불어넣어주며 우리를 즐겁게 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작품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과학자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라마찬드란은 이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거장 가운데 한 사람이다.

앨런 코웨이(Alan Cowey), 옥스퍼드 대학 교수, 왕립협회 회원

 

 

 

■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 Vilayanur S. Ramachandran

〈뉴스위크〉가 센추리클럽(21세기 주목할 가장 뛰어난 인물) 100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정한 세계적인 신경과학자 라마찬드란 박사는 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처음에는 내과의로서 시각적 지각 분야를 연구했으나 점차 신경학 분야에서 명성을 얻었다. 현재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 대학(UCSD)의 심리학 및 신경과학 교수, 뇌인지연구소 소장, 솔크연구소 생물학 부교수로 있다. 또한 라호야의 신경과학연구소, 스탠퍼드의 첨단행동과학연구소, 조국인 인도의 과학아카데미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옥스퍼드 대학의 올 소울 칼리지 펠로우십, 코네티컷 대학 명예박사, 신경과학에 대한 역사적 공헌을 기념하는 네덜란드 왕립과학협회의 아리엔스 카퍼스 금메달, 호주국립대학 금메달, 미국신경학회 학회장 강연상 등을 받았다.

1995년 25회 신경과학회 연두 모임에서 ‘뇌 연구 10년’ 강의, 미국 국립정신보건원이 국회도서관에서 개최한 ‘뇌 연구 10년’ 컨퍼런스에서 개회 기조강의, 하버드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레이먼드 애덤스 강의, 솔크연구소에서 조나스 솔크 기념 강의 등을 했다.

각종 과학저널에 120여 편의 논문을 게재했으며, 1998년 〈이코노미스트〉가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그의 저서 《뇌 속의 환상Phantoms in the Brain》은 영국의 채널4와 미국의 PBS에서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방영되기도 했다.

라마찬드란 박사는 환상사지, 질병인식불능증, 카프그라 증후군, 공감각 등 이미 학계에 널리 알려졌으나 과학적 연구 대상이 되지 못한다고 여겨졌던 신경이상들을 집중 연구해, 이들 환자들의 사례연구로부터 우리 뇌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일련의 발견들을 이뤄냈다고 평가받는다.

2003년 그는 영국 BBC가 매년 한 차례 명사를 초청해 대중강연을 방송하는 ‘리스 강의(Reith lecture)’에 의사이자 실험심리학자로는 최초로 초대되었다. 이 책은 그 강의를 기초로 내용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뇌가 나의 마음을 만든다”를 읽고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 2003(2006역)

뇌가 나의 마음을 만든다. 어떻게 만들까? 뇌가 마음을 만든다면 그 과정의 신경생리학적 기초는 무엇일까? 이런 의문을 가지고 이 책을 읽어 보았다.

1. 뇌과학에서 정신질환의 활용

뇌에서 일어나는 정신작용을 이해하는데 정신질환의 연구는 매우 유용한 정보를 준다. 이것은 마치 유전자의 기능을 연구하는데 있어 돌연변이의 유용성과도 유사한 것 같다. 유전학에서 어떤 유전자의 기능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일반적인 접근방법은 그 유전자가 손상된 돌연변이를 만들거나 찾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돌연변이체에서 이상이 생긴 대사과정이나 행동은 손상된 유전자의 기능과 연관되어 있다고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사하게 뇌과학에서도 정신질환자의 손상된 뇌부위를 찾고 환자가 보이는 이상 행위와 연관시켜 특정 뇌부위가 담당하고 있는 기능을 유추해낸다. 그리고 이와 같은 연구 결과들이 축적되어 현재 뇌의 특정 부위들의 세세한 기능에 대하여 적당히 많은 것이 알려져 있다. 심지어 특정한 뇌작용은 그 과정이 일어나기 위해 거쳐야 하는 뇌부위들의 상세한 경로뿐 아니라 각 단계에 소요되는 시간까지도 측정되어 있다.

2. 시각경험(시각적 지각)

“... 지각을 이해하기 위한 첫 단계는 뇌 속의 이미지(뇌 속의 스크린)라는 개념은 잊어버리고, 대신에 외부세계의 대상과 사건에 대한 어떤 변형 혹은 상징적 재현을 생각하는 것이다. 글쓰기라고 불리는 짧고 불규칙한 잉크 곡선들이 물리적으로 유사성이 없는 어떤 대상을 상징하거나 재현할 수 있는 것처럼, 뇌 속 신경세포의 행동, 그 발화의 패턴이 외부세계의 대상과 사건을 재현하는 것이다. 신경과학자들은 낯선 언어를 해석하기 위해 노력하는 암호해독자와 비슷하다. 외부세계를 재현하기 위해 신경계가 사용하는 바로 그 언어를 말이다.”

우리의 뇌가 사용하는 언어는 어떤 것일까? 우주의 또 다른 지적생명체는 우리 뇌가 사용하는 언어와 다른 언어를 사용할 수도 있을까? 우리가 ‘장미꽃’이라 하는 것을 미국이라는 곳에 사는 사람들은 ‘rose'라 하고 중국이라는 곳에 사는 사람들은 ‘玫瑰花’라고 표현한다.
내 눈 앞에 장미꽃 한송이가 있다. 나는 장미꽃의 빨간색과 그 특유의 아름다운 모양을 지각한다. 그런데 저 먼 우주에서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이 장미꽃을 본다면 나와 같은 모습으로 인식할까? 외계인을 만난 적이 없으니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들은 전혀 다르게 인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더 나아가 외계인은 장미꽃만은 인식하지 못하고 장미꽃과 그것이 담긴 꽃병을 합쳐서 ‘쿠이’라고 인식할지도 모른다. -참고로 ‘쿠이’는 아직 말을 못하는 둘째 아이가 자주 쓰는 단어이다.

이번에는 내 눈 앞에 호랑이 한 마리가 있다(물론 그런 상황이 실현되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나의 뇌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물론 호랑이의 누런색과 검은 줄무늬는 시각피질 V4영역에 있는 뉴런들을 자극할 것이고 보는 이를 압도하는 그 무시무시한 형태는 IT영역의 뉴런들을 활성화시킬 것이다. 그리고 호랑이가 내 앞으로 다가오기라도 하면 MT영역의 뉴런들도 난리가 날 것이다. 한편 이 세가지 영역의 뉴런들이 모두 자극받았을 때 비로써 자극을 받는 뉴런들도 있을 것이다. 이 뉴런들과 직, 간접적으로 연결된 입, 혀, 성대 등의 근육이 신호를 받아 내는 소리가 바로 언어의 시발점이 아닐까?

라마찬드란은 앞서 내가 예로 든 호랑이로부터 오는 다양한 신호자극들을 하나로 묶어 ‘호랑이’로서 인식되도록 하기 위해 진화된 것이 우리의 ‘의식’이라고 말한다. 분명 이와 같은 묶음의 지각을 지닌 생명체는 진화적으로 유리한 점이 있을 것이다. 누런색만 보고 달아나는 Homo 조상보다는 누런색과 검은 줄무늬 그리고 무시무시한 형태 등을 하나의 묶음으로 지각한 후 달아나는 Homo 조상이 에너지를 덜 낭비했을 것이고 이런 점에서 생존에 유리했을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 에델만이 말한 ‘범주화’라는 개념이 바로 이러한 묶음의 지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3. 인간의 예술 창조

원숭이처럼 사람 뇌의 전두엽에도 ‘거울 뉴런’이라는 세포들이 있다. 이들은 내가 어떤 행위를 할 때에 발화하지만 다른 사람이 동일한 행위를 할 때에도 똑같이 발화한다. 라마찬드란은 거울 뉴런의 존재로부터 나아가 우리 뇌에는 ‘가상현실 시뮬레이션 시스템’이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이 시스템을 통해 우리는 타인의 행동을 판단하고 예측한다. 우리 뇌의 가상형실 시뮬레이션 시스템이 진화하는 데에는 인간의 사회성이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어쨌든 ‘가상현실 시뮬레이션 시스템’은 인간의 모방 능력을 낳았고 이것은 정보의 문화적 전달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인류의 찬란한 문화와 문명을 탄생케 했다. 그런데 ‘가상현실 시뮬레이션 시스템’은 불완전한 면이 있어서 초기에 인류는 자식을 교육시키는 소도구로서 이미지 창조 행위을 발전시켰고 이 행위가 후에 예술로 승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라마찬드란이 인류의 예술 창조와 관련한 관점인 것 같다. 즉 정보 전달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 변형되어 예술이라고 하는 문화적 장르가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라마찬드란은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예술작품들에게는 그 아름다움을 부여하는 보편원리가 있다고 주장하며 10가지 원리를 제시한다.

4. 자유의지는 뇌가 만들어낸 환상

우리는 우리의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손가락을 움직이려는 의지를 느끼는 순간과 실제로 손가락을 움직이는 순간은 정확히 일치한다. 그런데 신경생물학 연구에 의하면 손가락이 움직이기 1초전 즉 우리의 의지가 생기기 직전에 readiness potential이라고 하는 뇌전위가 탐지된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행위는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뇌의 어떤 명령에 의한 것이 되고 만다. 라마찬드란은 이에 대해 “명령을 내리는 주체는 뇌이며, 우리의 자유의지는 사후의 합리화 대상일 뿐이거나 단순히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느끼는 자유의지가 진화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에는 특별한 기능이 있는가? 이러한 의문들에 대해 라마찬드란은 이 책에서 명확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다만 양자역학에서 그랬듯이 인과관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급진적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라고만 언급하는 정도이다.

5. 자아

자아란 무엇인가?
우선 사전적 정의를 보자. “사고, 감정, 의지 등의 여러 작용의 주관자로서 이 여러 작용에 수반하고, 또한 이를 통일하는 주체이다. 따라서 그것은 그때그때의 사고 ·감정 ·의지의 각 작용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속성과 동일성을 지니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매순간 다른 느낌을 경험하고 생각을 하며 무엇인가를 하려 하고 또 무엇인가를 기억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매순간의 다름속에서도 우리 각자는 조금도 당황하거나 어렵지 않게 한 인간으로서, 통일체로서의 우리 자신을 경험한다. 자아와 관련하여 명확한 답을 주고 있지는 않지만(과학자로서 그는 그렇게 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음 글은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게 한다.
“...자아가 앞에서 살펴 본 구체성, 자유의지, 일체성, 연속성과 같은 일련의 특징으로 정의된다면 이런 각각의 특징을 뇌 속에서 일어나는 일과 관련지어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과학자가 ‘생기’에 관해서 논하지 않거나 ‘생명’이 무엇인지 묻지 않듯이, 자아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사라지거나 적어도 뒤로 물러날 것이다(우리는 생명이 DNA 복제나 전사, 크렙스 회로, 젖산 회로 등의 일련의 과정들에 느슨하게 적용되는 단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모든 정신작용의 기초는 통합, 연결 또는 묶기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여기 사과가 있다. 붉음에 반응하여 어떤 뉴런들이 활성화되고 사과의 형태와 관련하여 또 다른 뉴런들이 자극받는다. 이렇게 하여 사과를 보는 순간 동시에 활성화되거나 시차를 갖는다 하더라도 연관성있게 활성화되는 뉴런들의 발화패턴이 사과에 대한 시각적 지각의 본질이다. 또 지나가는 강아지를 본다고 하자. 색, 모양, 움직임, 저장된 강아지의 기억 등에 대응하는 뉴런들이 동시에 활성화되거나 적어도 연관되어 활성화된다. 그 뿐이다. 강아지에 대한 지각은 연관되어 즉 묶여져 반응하는 뉴런들의 발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자아도 마찬가지이다. 매순간 달라지는 외부 또는 내부 자극에 반응하여 시차는 있겠지만 사고, 감정, 의지, 기억 등에 관여하는 연관되어 활성화되는 거대한 뉴런들의 그물망이 형성된다. 물론 이러한 활성화된 뉴론 그물망은 매순간 변화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매순간 형성되는 거대한 발화 뉴런들의 그물망도 서로 완전히 독립적인 것은 아니다. 일정부분 이전 그물망과 중첩되어진다. 자아의 특성인 통일성은 뉴런 발화의 동시성과 연관성이 그 본질이 아닐까 생각한다.
개별적인 지각, 감정, 기억 등은 모두 연관된 뉴런들의 특정한 발화패턴이며 그 중 가장 거대한 패턴이 바로 자아와 연관된 것이 아닐까?
이러한 개념은 지작의 개별성(주관성) 즉 qualia의 본질도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사과를 보고 그것이 붉다고 느끼기는 하지만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이것은 뉴런들의 구조, 시냅스, networking 등에 있어서의 개인간 미세한 차이를 반영한다. 즉 연관되어 발화하는 뉴런들의 패턴이 약간씩 차이가 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주관적 감각의 본질이다.

6. 글을 마치며

‘뇌과학을 공부해보자.’하고 마음먹은 뒤 읽은 세 번째 책이다. 원래는 에델만의 “신경과학과 마음의 세계”를 읽을 예정이었는데 어려워 잠시 접어두기로 하고 이 책을 잡았다.
책은 다 읽었지만 아직 처음에 가졌던 의문 즉 뇌가 어떻게 마음을 만드는지에 대한 답은 명확하지 않다. 다만 책을 읽으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주로 철학적인 주제들이었다. 아름다움, qualia, 자유의지, 자아...
옛날 자연과학은 철학과 하나였다. 근세를 지나 현대에 이르면서 자연과학은 철학에서 분리되었다. 21세기에는 뇌과학을 매개로 자연과학과 철학이 다시 많은 부분에서 융합되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신경과학과 마음의 세계”를 읽기 전에 역시 에델만이 쓴 “뇌는 하늘보다 넓다”를 먼저 읽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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