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어와 의태어, 한국인의 뇌에 그림을 그리다.

 

 

 

冬至(동지)ㅅ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내여

春風(춘풍)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황진이

 

 

이름도 유명한 송도 기생 황진이가 깊은 밤 붓을 들었다. 오지 않는 님을 그리며 써 내려간 그녀의 시조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린다.

기나긴 밤을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단다. ‘서리서리’라 함은 뱀이 감은 똬리 모양, 그만큼 복잡하게 얽혀 있는 감정을 일컬으니 님 없는 밤을 지새는 여인네의 외로움이 이보다 절실할 수 없다. 이어 여인은 그렇게 서리서리 넣었던 밤을 님이 오시거든 ‘굽이굽이’ 펼치겠다고 마음먹는다. ‘서리서리’와 마찬가지로 여러 굽이로 구부러지는 모양새를 뜻하는 ‘의태어’의 하나다.

 

우리말로는 꼴시늉말, 꼴흉내말이라고 하는 의태어는 ‘사람이나 사물의 모양이나 움직임을 흉내 낸 말’을 일컫는다. 이를테면 아기가 기어 다니는 모양은 ‘아장아장’, 사늘한 바람이 가볍고 보드랍게 자꾸 부는 모양은 ‘산들산들’로 표현하는 식이다.

 

한국어는 유독 의태어가 발달한 언어로, 한국어 사전에 수록된 의태어는 무려 4000 여 개에 달한다. 그 중 모양새를 흉내낸 형용 의태어가 1,000 단어, 움직이는 상태를 흉내낸 동작 의태어가 3,000 단어이다. (아예 ‘의태어’라는 개념조차 없는 나라가 상당히 많다.)

한편 ‘소리’를 흉내낸 의성어의 발달 역시 우리말의 특징이다. 한 실험에서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각기 다른 국적을 가진 사람들에게 받아 적게 했다. 들려준 소리는 분명 같았지만 그 반응은 상이했다. 한국인은 망설임없이 “끽끽끽 으르르르르”라고 말하고 적은 반면, 미국인은 난감한 듯 두 어 번 흉내냈지만 분명한 표현은 하지 못했다. 고개를 갸우뚱하던 중국인은 ‘지지지 지지지’라고 흉내를 내곤, 그 표현을 찾으려 전자사전을 들추기까지 했다.

 

이러한 특징은 문학 작품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삐이 뱃쫑! 뱃쫑 하는 놈도 있고

호을 호로롯 하고 우는 놈도 있고

찌이잇 잴잴잴! 하는 놈도 있고 온통 산새들이 야단이었습니다.

 

박두진, 「사슴」중

 

문학 작품 뿐 아니다. 의성어와 의태어의 발달을 활용한 재미난 시도 중 하나인 연극 ‘사랑- 소리나다’(연출 정세혁)나 카툰 뮤지컬 ‘두근두근’, ‘버라이어티’ 등은 우리말이기에 가능했던 시도일 것이다.

 

 

[그림1] 의성어 연극 버라이어티의 한 장면

 

다른 말과 달리 의성어와 의태어는 보이고 들리는 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만들어졌다. 다시 말하면 ‘시계’(時計)는 때 시(時)에 셈할 계(計)를 붙여 만들어졌지만, ‘시계를 휙 하고 던졌지만 여전히 재깍재깍하고 움직였다.’에서 쓰인 의태어 ‘휙’, 의성어 ‘재깍재깍’은 그 동작이나 소리를 흉내내어 만들어진 말이다. 어린이 교육용 책에 의성어와 의태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아이들이 소리와 형태를 인식하고 상황을 상상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를 뇌과학의 관점에서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다양하게 있어 왔다. 일본 전수대(專修大) 심리학과 나오유키(Naoyuki) 교수팀은 2003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의성어의 시각화를 실험했다. 감정에 따른 얼굴 표정을 묘사하는 단어들을 피실험자들에게 제시하였다. 이 때 반응한 뇌의 영역 중에는 아래뒤통수이랑(inferior occipital gyrus) 부근의 선조외 시각피질(extrastriate visual cortex)이 있었다. 아래에서 보다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브로드만 18, 19번을 포함하는 이 영역이 활성화되었다는 것은 뇌에서 ‘시각적 이미지’가 그려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말’로 범위를 한정지은 연구를 살펴보자.

고려대 행동과학연구소 한종혜 박사 연구팀은 의성어와 의태어를 보고 있는 사람의 뇌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기능성자기공명영상장치(fMRI)를 통해 촬영했다.

30개의 의성어와 의성어가 아닌 60개의 단어가 피실험자의 화면에 차례로 나타난다. 의성어가 아닌 60개의 단어 중 36개는 진짜 단어이고 24개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인데, 피실험자는 30초 동안 노출되는 각 단어에 'True'와 ‘False'로 답하게 된다. 즉 진짜 단어와 가짜 단어를 구분하는 과정을 통해 피실험자가 화면상의 단어를 적극적으로 인식하게끔 유도한 것이다. 이 과정이 fMRI로 촬영되었음은 물론이다.

결과적으로 의성어에 노출되었을 때만 활성화된 영역은 대뇌피질에서 좌우 방추회와 좌측 측두회, 그리고 브로드만 영역 19번(BA19), 의태어 단어에서만 활성화된 영역은 브로드만 영역 6번(BA6)와 우측열, 의성어이면서 의태어인 단어(예를 들면 ‘토닥토닥’은 잘 울리지 아니하는 물체를 잇따라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나 모양 모두 의미한다.)를 봤을 땐 좌우양측 소뇌, 베르니케 영역, 브로드만 영역 47번(BA47), 그리고 브로드만 영역 19번(BA19)이 공통으로 활성화되었다.

 

 

[그림2] 의성어와 의태어를 보았을 때 활성화된 뇌의 영역

 

여기서 ‘브로드만 영역’은 대뇌 피질을 기능에 따라 구분해놓은 ‘뇌의 지도’라고 할 수 있는데, 브로드만 18, 19번은 ‘마음의 눈’(Mind's eve)이라고 불리는 영역으로, 우리가 상상을 할 때 바로 이 영역에 이미지가 그려진다고 밝혀진 바 있다. (그 중에서도 브로드만 영역 19번에 위치한 방추회는 ‘얼굴’을 인식하는 역할을 하는 영역으로 알려져 있다.) 이 부분이 활성화된 것은 소리나 움직임을 흉내낸 단어만 보아도 뇌가 이미지를 그렸기 때문이다. 프랑스 카엔 대학에서 음악을 감상하는 사람의 뇌를 관찰했을 때 활성화된 영역도 바로 이 부분이다. 즉, 비발디의 곡을 들으며 산들산들한 봄의 풍경을 머릿속에 그리는 것처럼 ‘사르르 바람이 와서 어머님 모시 치맛자락을 산들산들 흔들어 주었습니다.’(주요섭, 사랑손님과 어머니 中)란 구절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즉, 의성어(의태어) *.txt가 뇌 속에서 *.jpg, *.wav 파일로 전환되는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하나. 왜 우리말에서 의성어와 의태어가 도드라지게 발달했을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 민족의 인류학적 뿌리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한서대 얼굴연구소 조용진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은 30%의 남방계. 70%의 북방계로 구성되어 있다. 이 분류에 따라 뇌를 분석해보면 남방계는 순차, 논리, 수리를 담당하는 좌뇌가 우세하며 북방계는 시각, 청각의 직관적 정보 처리를 맡는 우뇌가 더 발달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우리말 의성어, 의태어가 잘 발달한 이유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조용진 교수의 설명이다.

 

 

 

     

[그림3] 최채선 명창의 판소리 춘향가 완창

 

 

태산같은 욋덩이/ 뱃전능 움죽/ 풍랑은 우루루루루

물결은 워리렁/ 출렁 뒤척/ 백전을 탕탕 와르르

심청이 거동봐라/ 바람맞은 사람처럼/ 이리비틀 저리비틀/ 뱃머리로 우루루루

아이고 하나님/ 명천이 감동하사/ 애비의 허물일랑/ 심청 몸으로 대신하고

아비의 어두운 눈을/ 밝게 점지 하옵소서

기러기 낙수 격으로/ 떴다 물에가 풍덩

향화는 풍랑을 쫓고/ 명월은 해문에 잠겼구나

 

<판소리 심청가 중 ‘선창가’의 일부>

 

의성어와 의태어의 사용이 빈번한 장르 중 하나가 판소리이다. 북장단을 짚어주는 고수 하나와 소리꾼 하나가 등장해 기껏해야 부채 하나 들고 벌이는 것이 판소리. 화려한 춤사위도 다채로운 악기의 풍악도 없이 ‘소리’로만 승부해야 하는 무대다. 게다가 배우는 하난데 인물은 수십인 상황에서 관객에게 재미를 주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혹 의성어와 의태어가 빈번하게 사용되는 것이 바로 판소리의 흡인요소가 아닐까. ‘풍랑이 몰아치고 물결이 흔들린다‘보단 ‘풍랑은 우루루루루, 물결은 워리렁’을 들었을 때가 훨씬 역동적일 테니 말이다.

 

흔히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고 하지만, ‘언어가 사고를 주형화한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인 듯하다. ‘자장자장’하며 재워주는 엄마의 품에서 말을 깨쳤고 굴러가는 개똥을 보며 ‘까르르’, ‘데굴데굴’ 웃으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남자친구와 헤어지곤 ‘주르륵’ 눈물로 며칠 밤을 ‘꼴딱’ 세워보기도 했다. 핸드폰 부여잡고 헤어진 그의 연락을 기다리던 밤이면 ‘서리서리’ 넣었던 황진이의 마음이 이랬을까 싶어 ‘꺼이꺼이’ 그녀 흉내를 내보기도 했다. 수업 시간에 ‘꾸벅꾸벅’ 졸다가 두 손 ‘번쩍’ 들고 벌섰던 적은 또 몇 번이던가.

생각해 볼 일이다. 지금 여러분의 머릿속에 떠오른 기억, 그리고 이미지에 의성어, 의태어의 흔적이 묻어나고 있진 않은지 말이다.

 

 

 

 

참고문헌

- Jong-Hye Han , Wonil Choi, Yongmin Chang, Ok-Ran Jeong and Kichun Nam, “Neuroanatomical Analysis for onomatopoeia and Phainomime Words fMRI Study“, Springer Berlin / Heidelberg, Volume Volume 3610 (2005) pp. 850-854

- Naoyuki O., Mariko O., Hirohito K., Masanao M., Hidenao F. and Hiroshi S “An emotion-based facial expression word activates laughter module in the human brain:a 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 study”, Neuroscience Letters Vol. 340, Issue 2 ,(2003) 127-130.

- MBC 한글날 특집 다큐멘터리 “한글, 소리를 보이다”

- KAIST 뇌과학연구센터 <Dr.Han의 뇌과학이야기>

- 채완, “시조와 판소리 사설의 의성어 연구”, 한민족문화학회, 한민족문화연구, 7권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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