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우수성: 나랏말ㅆ.미 두뇌에 좋아 (1)  

- 단어 읽으면서 영상 떠올린다 -


요즘 TV를 보면 서투른 한국어로 한국 연예인의 이름을 외치는
외국인 ‘오빠 부대’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베트남이나 몽골에서도 한국어로 한국 가수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는 젊은이를 쉽게 볼 수 있다고 한다.
중국에는 한국어학과가 개설된 대학이 27개로 학생 수는 3942명이나 된다.
일본에는 한국어학과가 개설된 대학이 7개뿐이지만
일본 청소년들이 한국에 관심을 많이 가지면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고등학교가 247개로 늘었다.
그 어느 때보다 지금 한국어는 세대 공감을 넘어
‘세계 공감’을 얻고 있다. 이유가 뭘까.

- 나눗셈에 강한 한국어 -

1996년 프랑스에서 세계 언어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학술회의가 있었다.
그 회의에서 한국어를 세계 공용어로 쓰면 어떻겠냐는 토론이 있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학자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유명한 언어학자인 영국 리스대 제프리 샘슨 교수 역시
한국어를 극찬한 적이 있다.
그는 한글이 발음기관을 본 따 글자를 만들었다는 독특함을 높이 샀다.
한 예로 연구개음인 기역(ㄱ), 키읔(ㅋ), 쌍기역(ㄲ)의 경우
ㄱ과 같은 기본 글자에 획을 더해 ㅋ, ㄲ처럼
음성학적으로 동일계열의 글자를 만든 것은 대단히 체계적이고 과학적이라고 평가했다.
1997년 유네스코가 훈민정음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하고
매년 문맹퇴치에 큰 공을 세운 사람에게 주는 상을
‘세종대왕상’으로 명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언어연구에서 세계 최고인 영국 옥스퍼드대는
세계 모든 문자를 합리성, 과학성, 독창성 등의 기준으로 순위를 매긴 적이 있는데,
이 때 1위를 차지한 것이 한글이다.
미국의 과학 잡지 ‘디스커버’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뛰어난 문자를 한글이라고 발표했다.
한국어는 실제로 얼마나 ‘과학적’일까?
필자는 2000년 한국, 미국, 스위스, 일본, 크로아티아 아동을 대상으로
나눗셈의 개념 발달을 비교 연구한 적이 있다.
그 결과 한국 아동이 나눗셈 문제를 가장 잘 처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한국어 표현이 쉽기 때문이었다.
우리말은 물론 중국어에 어원을 둔 어휘와 순수 한국어 어휘가 있기는 하지만,
모든 사람이 개념을 쉽게 표현할 수 있도록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다.
예를 들어 1/4은 한국어로 ‘사분의 일’로 읽는다.
‘사분의 일’은 ‘넷으로 나눈 것 중 하나’라는 뜻이다.
읽으면서 동시에 나눗셈의 개념이 파악된다.
반면 영어에서는 1/4을 ‘원 포스’(one fourth)로 읽기 때문에
아동들이 나눗셈의 개념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다른 수 개념도 마찬가지다. 한국어로는 11, 12, 13을 각각 열하나, 열둘, 열셋으로 읽는다.
‘열하나’는 열에 하나를 더한 것,
‘열둘’은 열에 둘을 더한 것과 같기 때문에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영어에서는
11, 12, 13을 ‘일레븐’(eleven) ‘투웰브’(twelve) ‘설틴’(thirteen) 등으로 읽기 때문에
11을 10(텐, ten)에 1(원, one)을 더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기 어렵다.
수를 나타내는 언어의 표현 방법이
어린 아동의 수 개념의 형성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빈 의대가 세계 50개국 국민들의 평균 지능지수(IQ)를 비교한 결과
한국이 홍콩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고 발표한 적이 있는데,
이 때 상위권 국민은 계산 능력이 뛰어났다.
이런 결과 역시 한국어의 수 개념 표현 방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 개굴개굴이 겨울연가 인기 비결? -

베트남 국민은 한국문화가 세련되고 인간적이라 좋다고 하고,
중국 사람들은 한국 드라마의 풍부한 소재와 완성도를 높이 산다고 한다.
이는 한국인의 정서와 감수성에 공감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일면에는 한국어의 공이 있다.
자연에 존재하는 수많은 소리와 움직임을 나타내는 의성어와 의태어가 대표적인 예다.
지난해 필자와 공동연구팀은 사람이 의성어나 의태어 단어를 보는 동안
어떻게 대뇌 활성화가 이루어지는지 규명하기 위해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연구를 실시했다.
피험자에게 화면에 의성어, 의태어 단어를 보여주고 뇌영상을 찍은 후 분석을 실시했다.
의성어 단어에서만 활성화된 영역은
대뇌피질에서 좌우 방추회와 좌측 측두회, 그리고 브로드만 영역 19번(BA19)이었다.
의태어 단어에서만 활성화된 영역은 브로드만 영역 6번(BA6)과 우측열이었다.
의성어이면서 의태어인 단어를 봤을 때 공통적으로 활성화된 부분은
좌우양측 소뇌, 베르니케 영역, 브로드만 영역 47번(BA47)
그리고 브로드만 영역 19번(BA19)이었다.
그런데 이 실험에서 아주 흥미로운 결과를 하나 발견했다.
브로드만 영역 19번(BA19)에 위치한 방추회는
원래 얼굴 인식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분이다.
피험자가 의성어나 의태어를 문자로만 봤을 뿐인데도
이 영역이 활성화됐다는 것은
눈으로 단어만 봐도 뇌에서 영상을 떠올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텍스트 파일이 뇌에서 그림이나 동영상 파일로 전환되는 셈이다.
‘개굴개굴’이라는 단어를 보면
연못가에서 시끄럽게 울어대는 개구리가
머릿속에 하나의 장면처럼 떠오르고,
‘아장아장’이라는 단어를 보면 막 걷기 시작한 아기가
종종걸음으로 방 안을 돌아다니는 장면을 연상하는 것이다.  
똑딱똑딱, 멍멍, 까르르, 꼬끼오, 꼬르륵, 딸랑딸랑 등 한국어에서 의성어는 셀 수 없이 많다.
근질근질, 까슬까슬, 깡충깡충, 꾸벅꾸벅, 머뭇머뭇, 무럭무럭, 부들부들 등
의태어의 수는 무려 2196개에 달한다고 한다.
반면 영어나 불어는 의성어의 수도 적을뿐더러 심지어 의태어의 경우
‘의태어’라는 용어조차 없다.
그렇다면 한국어에만 있는 의성어와 의태어의 다양한 표현이
한국인의 감성을 풍부하게 만드는데 크게 기여하지는 않았을까.
모양과 움직임을 표현하는 수천 개의 어휘를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레 사용하면서
한국인은 한국인 특유의 독특한 감성과 스타일을 개발했을 수 있다.
‘가을동화’나 ‘겨울연가’ 등 한류 붐을 이끄는 드라마의
빼어난 대화 스타일이나 영상미의 근간에는
한국어의 다양한 표현으로 갈고 닦여진 풍부한 감성이 깔려 있는 것이다.  
세종대왕은 ‘천지간에 나는 모든 소리를 한글로 담을 수 있다’고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철자법이 변했고
일부 표기 가능한 소리들이 사라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한글은 다른 언어에 비해 소리와 모습을 표현하는 어휘의 수가
놀랍도록 많은 문자임엔 틀림없다.

<참고: 본 글은 2006년 1월 “과학동아” 특집기사에 게재된 글임>

요람에서 무덤까지 뇌 운동


한국인의 유연한 젓가락 사용법이
두뇌 발달에 좋은 영향을 주었다는 얘기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대하는 한국어와 한국문화 속에
한국인의 두뇌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단서들이 여기저기 숨어 있다.
한국의 부모는 자녀가 갓난아기 때부터
목을 가눌 수 있는 ‘도리도리’와 두 손바닥을 마주쳐 소리 내는 ‘짝짜꿍’을 시키면서
눈과 손의 협동능력을 키운다.
이런 동작은 모두 아동의 인지발달을 촉진시킨다.
오른손 검지를 뻗어 왼손 손바닥 중앙에 맞추는 세련된 동작인 ‘곤지곤지’나
두 손을 일시에 오므렸다 펴는 동작을 반복하는 ‘잼잼’은
붙잡아 쥐기, 글씨쓰기, 손으로 만들기, 그리기 등
몸의 소근육을 사용하는 정밀한 동작의 기초가 된다.
유명한 심리학자 피아제는
갓난아기의 감각이나 동작이 인지발달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 어린이는 젓가락질을 배우기 전부터
‘도리도리’, ‘짝짜꿍’, ‘곤지곤지’, ‘잼잼’을 하며 뇌를 ‘워밍업’ 시켜온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의 하워드 가드너 교수는
지능을 언어, 논리수학, 음악, 신체 운동 감각, 공간지각, 대인관계, 자성지능 등
7개 영역으로 나눴다.
지능검사의 창시자인 프랑스의 비네가 주로 언어와 수 개념에 초점을 둔 반면
가드너 교수는 기존의 단일 지능 개념으로는
인간의 다양한 지능을 설명하기 어렵다며
대뇌에서 독립된 체계로 작동하는 7개의 ‘다중지능’이론을 내놓았다.
200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41개국 만 15세 학생의 학업성취도를 비교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을 때
한국은 문제해결력 1위, 읽기 2위, 수학 3위, 과학 4위를 차지했다.
다중지능이론에 비춰보면 한국인은
언어지능, 논리수학지능, 공간지능에서 뛰어난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아시아 무대에서 활약하는 한국 가수들을 보며
그들의 음악지능이 상당히 뛰어나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지난해 11월 한국을 방문한 미국 줄리어드음대 예비학교 토마스 앤드류 교장도
“줄리어드 예비학교 학생의 35%가 한국 학생이며,
한국 학생은 성취욕이 강하고, 무엇보다 음악을 사랑한다”며
한국인의 음악지능을 높이 평가했다.  
예로부터 한국의 선조들은 칭얼거리는 아기의 등을 토닥이며
‘자장자장 워리자장, 우리애기 착한애기’하며
길고 길게 이어지는 4 ․ 4조 자장가를 불러줬다.
4 ․ 4조 자장가는 알아듣기 쉽도록 단순한 어휘를 리듬감 있게 반복하면서
청각적 변별력 훈련과
음악, 청각, 지각 간의 연관 능력을 키워주며
어휘능력도 증진시켜준다.
보아나 비의 음악지능 저변에는
우리나라 옛 선조들의 4 ․ 4조 노래 가락의 전통이 깔려 있는지도 모른다.
앞으로 한국인의 음악지능, 신체운동지능, 공간지능, 대인지능 등에 관한
뇌과학적인 연구가 계속됐으면 한다.
이런 과학적인 연구 결과가 뒷받침이 된다면
한국인의 스포츠, 패션, 드라마 등을 통한
한류 열풍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지 않을까.

<참고: 본 글은 2006년 1월 “과학동아” 특집기사에 게재된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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