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보는 세상]⑥뇌는 문화를 먹고 자란다 2009년 04월 16일

지난해 음악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영국인 전직 외판원 폴 포츠 씨가 국제적으로 유명한 오페라가수가 된 것. 한국까지 와서 이화여대와 KBS 부산홀에서 공연하고 수익금의 일부를 북한 어린이들에게 기부했다.

지난달에는 13살짜리 영국 소년 앤드루 존스턴이 투명한 ‘보이 소프라노’로 관객들을 감동시켜 ‘제2의 폴 포츠’로 불리기도 했다. 국내에선 수족관을 경영하는 한 시민이 TV의 한 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해 ‘한국의 폴 포츠’라는 별칭을 얻으며 공식 스포츠행사에서 애국가까지 불렀다.

이들 세 명은 모두 이른바 ‘쓰레테너(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이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중 파바로티와 그가 부른 아리아 ‘네순도르마(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나 음악 전공자들은 좀 다른 의견인 듯하다. 쓰리테너 중 도밍고는 악보에 있는 그대로를 표현해 작곡가 마음에 쏙 들게 노래를 부르며, 카레라스는 감성적으로 불러 가슴을 파고드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파바로티는 목소리가 크고 고음에 강하다는 의견이 많다.
도밍고식 창법은 음악지식으로 따져 들을 때 아무 흠이 없다는 얘기다. 뇌 연구자의 입장에서 볼 때 좌뇌를 자극하는 방식이다. 이에 비해 카레라스는 우뇌에 호소하는 창법을 구사한다. 파바로티의 방식은 각성 수준을 담당하는 뇌 부위인 뇌간(腦幹)을 자극하는 창법이다.

뇌의 각 영역들은 서로 연결돼 있지만 서로 다른 역할을 나눠 담당한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쓰리테너의 공연실황을 듣고 있으면 도밍고의 노래로 좌뇌가, 카레라스의 노레로 우뇌가, 파바로티의 노래로 뇌간이 활성화된다. 번갈아 들리는 개성이 다른 3가지 창법이 결과적으로 관객의 뇌 전역을 공고루 자극해 감동의 총량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대부분의 명곡이 그렇듯 ‘네순도르마’도 뇌 전역을 순차적으로 자극해 최고조의 각성 수준에 이르도록 작곡돼 있다. 곡 전체를 4부분으로 나누면 처음 4분의 1은 좌뇌를, 다음 4분의 1은 더 감정을 살려 우뇌를 자극한다. 세 번째 부분에 가선 다시 감정을 누그러뜨리며 여성합창이 등장한다. 여성의 음성은 주로 좌뇌에서 처리된다. 그러다 온힘을 다해 강한 고음으로 맺는다.

뇌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바로 이런 것이 좋은 문화다. 뇌 전체가 골고루 자극을 받는 과정이 습관적으로 이뤄져 뇌가 균형을 이루며 발달하게 되는 문화 말이다.
‘네순도르마’는 보통 사람들이 웬만큼 연습해선 나지 않는 높은 음으로 돼 있다. 도레미파솔라시도 중 ‘시’ 이상의 높은 음이 전체 160개 음 중 115개로 70%가 넘는다. ‘시’ 이상의 고음은 좌뇌가, ‘라’ 이하의 저음은 우뇌가 먼저 반응한다고도 알려져 있다.

고음을 큰 소리로 부르려면 에너지가 많이 든다. 이런 과정에서 뇌의 각성 수준이 높아진다. 처음엔 피곤하지만 연습으로 이를 이겨내기만 하면 뇌 발달에는 좋다. ‘폴 포츠 3인방’도 좋아하는 노래 ‘네순도르마’를 연습하면서 좌뇌와 우뇌, 뇌간을 골고루 자극했을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어떤 문화를 접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당신이 접하는 문화가 바로 당신의 뇌를 변화시킨다. 결국 뇌는 문화를 먹고 사는 세포덩어리인 셈이다.

조용진 한남대 얼굴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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