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보는 세상]⑦컴퓨터 전기와 생체 전기의 차이  2009년 04월 21일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 가까이서 번개가 번쩍인다. 기괴한 파이프오르간의 푸가 선율이 들려올 법한 석조건물 한군데 불빛이 새어 나오는 방이 있다. 덜컹이는 창문 너머로 몸통의 반이 잘려나간 개구리 다리를 촛대에 꼽아두고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보인다. 갑자기 꽈르릉.
건물을 내리친 번개가 피뢰침에 연결된 구리선을 타고 개구리 다리를 강타한다. 동시에 갑자기 오그라드는 개구리 다리. 이미 머리와 몸통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번개의 정기를 받은 양 분명히 다리는 움직였다. 이를 쳐다보고 묘하게 웃음 짓는 사람. 그는 루이지 갈바니였다.

1780년대 후반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갈바니는 전기가 생체에 미치는 효과를 처음으로 관찰했다. 다행히도 주술사가 아니라 과학자였던 갈바니는 우리 몸에 미세한 전기가 흐르며, 이 때문에 근육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밝히게 됐다. 그 뒤 근육뿐 아니라 신경도 전기에 반응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생체 전기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 신경세포에서 전기는 우리가 듣고 보고 말하고 생각하는 모든 고등 신경활동을 유도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우리 몸의 신경은 세포막 안팎으로 약 80mV(밀리볼트)의 전압이 걸려있다.

하지만 생체의 전기는 컴퓨터 회로의 전기와 많이 다르다. 어릴 적 건전지와 꼬마전구를 이용한 과학실험에서 이미 경험했겠지만, 우리 몸은 전자가 흐를 수 없는 부도체에 가깝다. 컴퓨터 회로에서는 전자에 의해 전압과 전류가 생기는데 반해 신경세포에서는 세포막 안팎으로 다르게 분포하는 이온 때문에 전압이 생긴다. 예를 들면 양이온인 나트륨이온이 세포 밖에만 있고 세포 안에는 별로 없다고 하면 세포 내부에 음전기가 많이 쌓여 있는 셈인 것이다.

평소에는 여러 가지 이온들이 서로 다른 막 투과도를 갖고 평형을 이룬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트륨이온이 세포막을 마음대로 가로지르게 통로가 열리면 곧바로 전압의 변화로 이어진다. 신경이 외부에서 자극을 받으면 이온통로들이 열려 80mV를 유지하던 전압차가 0으로 바뀌는데, 이때가 바로 신경세포의 스위치가 켜져 활동하는 상태다. 이렇게 생긴 전기신호가 다른 곳으로 전달되는 데는 신경망으로 연결된 신경세포 간의 교류가 매우 중요하다.

잠잠하던 한 신경세포가 전기신호를 갖고 활동하게 되면 이와 망을 이루는 다른 신경세포에 화학물질을 뿜어준다. 그 화학물질은 두 번째 세포의 이온통로를 열어 전압을 변화시키고 전기신호를 전달받는다. 이런 릴레이를 이용해 서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전기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결국 신경다발을 타고 전자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신경망을 따라 이어진 세포의 전기적 상태가 움직이는 셈이다.

따라서 뇌기능이 잘 이뤄지려면 신경의 전기신호가 잘 관리돼야 한다. 컴퓨터 메모리의 막대한 능력도 결국 전자를 담아두는 간단한 회로의 능력 때문인 것처럼 신경세포 역시 전기신호가 적절히 만들어지고 다른 신경세포로 잘 전달되는 신경망의 능력이 중요하다. 또 하드디스크에 자유롭게 정보를 저장하고 지우는 것처럼 신경망 간의 전기신호고 외부 조절에 따라 쉽게 변해야 한다. 딱딱하지 않고 말랑말랑해야 한다는 말이다.

만약 전기신호 관리가 잘 이뤄지지 않으면 뇌기능 장애로 이어진다. 예를 들면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뇌질환 실험동물의 대부분은 대뇌피질이나 해마에서 신경세포의 전기적 특성이나 전기신호의 전달과정에 문제가 나타난다. 신경을 연구하는 과학자 중에는 신경세포의 이 같은 전기적 특성에 관심을 갖는 학자들이 있다. 무엇이 신경세포의 전기를 미세하게 조절하는지, 신경세포 간의 전기신호 전달 효율은 어떻게 제어되는지, 어떻게 하면 가능한 많은 신경의 전기적 특성을 측정할 수 있는지 등을 연구한다. 망가진 신경세포의 전기적 특성을 회복시키는 약물을 뇌질환 치료제로 개발하거나 뇌 안에 칩을 꽂고 자극해 뇌기능을 회복시키는 기법도 연구되고 있다.

만약 신경이 전기에 대해 반응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한국의 뛰어난 정보기술과 신경생물학이 융합해 어떤 꽃을 피울지 기대된다.
최세영 서울대 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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