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심은 유전자가 결정한다
도파민 수용체 만드는 D4DR 등 10여개 유전자가 새로움 추구 주관

(사진/일란성 쌍둥이에 대한 연구를 통해 성격과 행동이 상당부분 유전자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들 두 형제는 어렸을 적에 헤어졌다가 나중에 만났는데 둘 다 수염을 기르고 있었고, 소방관이 되어 있었다)

유전인가, 환경인가? 행동과 성격이 부모에게 받은 유전자로 결정되는지, 환경의 산물인지를 둘러싼 논쟁은 전문가뿐 아니라 문외한에게도 관심거리이다. 최근 과학자들이 모험을 좋아하는 성격과 관련이 있는 유전자를 찾아내 눈길을 끌고 있다.

심리학자들은 모험을 좋아하는 성격을 ‘새로움 추구’라는 용어로 정의한다. 스릴, 모험, 경험의 추구, 쉽게 지루해 하는 것이 이 성격의 네 가지 기본 특징이다. 이런 사람들의 뇌는 위험을 감수하고 성공했을 때 짜릿한 기분을 느낀다. 암벽 등반, 스카이다이빙, 도박, 주식 투자, 음주, 마약, 다양한 섹스 등을 즐기고 돈은 일단 쓰고 본다. 자동차 운전 속도도 이 성격과 직접적인 비례관계가 있다. 반면 새로움 추구 경향이 적은 사람들은 모험을 하면 불안해진다. 따라서 심리적인 소모를 줄이기 위해 위험한 모험은 피하게 된다. 대개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근면 검소하다. 또 친근한 것을 좋아하고, 보수적으로 생각한다.

최대의 쾌락 느끼는 자극 수준 사람마다 달라

(사진/새로움 추구의 경향이 강한 사람은 최대의 쾌락에 이르기 위해 각종 모험적 활동을 통해 강한 자극을 얻는다)

파일럿, 소방관, 주식거래인, 은행강도 가운데 새로움 추구형에 속하는 사람들이 많고, 회계사, 도서관 사서, 편집인, 기계공, 치과의사, 컴퓨터 프로그래머는 그 반대에 속하는 사람의 직업으로 적합하다. 전자가 설득을 하려는 경향이 강한 데 반해, 후자는 더 듣고 규율을 준수한다. 미군은 군인들의 성격과 직무를 분석해 특공대 대원으로는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을 선발하고, 모니터를 감시하는 레이더 부대에는 반대 경향의 사람을 배치하고 있다.

한때 사람들은 위험을 좋아하는 성격이 무의식적인 죄의식 즉 죽음에 대한 동경에서 온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심리학자들은 ‘최적 자극의 원칙’으로 이런 성격을 설명하고 있다. 이 이론은 우리의 뇌가 최대의 쾌락을 느끼는 자극의 수준이 정해져 있다고 본다. 이보다 자극이 적거나 많아도 불쾌하다. 새로움 추구의 경향이 강한 사람은 최대의 쾌락에 도달하기 위해 강한 자극이 필요하다. 반면 반대 성격의 사람은 자극이 이미 어느 정도 수준까지 와 있어, 외부에서 자극이 조금만 가해져도 최대의 쾌락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쾌락을 느끼게 하는 물질이 무엇인가 추적해 왔다. 그 결과 황홀한 섹스, 좋은 식사 뒤, 또는 코카인 같은 각성제를 먹었을 때 나오는 신호전달물질 가운데 하나인 도파민이란 분자가 그중 하나라는 것을 밝혀냈다. 도파민은 사람의 감정을 관장하는 뇌의 아주 깊숙한 곳에서 만들어진다. 흔히 이곳은 여성의 민감한 성기에 비유해 뇌의 ‘지-스팟’으로도 불린다. 여기에서 도파민이 분비되면 기분이 좋아진다.

지난 1995년 이스라엘 S. 헤르조그 메모리얼 병원의 리처드 엡스타인과 심리학자인 로버트 벨마커는 정신분열증과 관련된 유전자를 탐색하던 중 우연히 도파민 수용체를 만드는 D4DR이란 유전자가 새로움 추구 성격과 연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세포의 바깥에 마치 손처럼 붙어 있는 이 수용체는 신호전달물질인 도파민을 붙잡아 그 신호가 신경세포 안으로 전달돼 흥분되도록 한다. 매우 특이한 점은 이 유전자가 사람에 따라 각양각색이라는 것이었다.

D4DR 유전자의 중간에 보면 48쌍짜리 DNA 염기가 여러 개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것이 2개이고, 어떤 사람은 3, 4, 5, 6, 7, 8, 9, 10, 11개씩이었다. 즉 두개인 사람은 96쌍의 짧은 염기를 갖고 있고, 9개인 사람은 432쌍의 긴 염기를 갖고 있다. 이 길이가 길수록 단백질의 길이도 길다. 또 단백질이 길수록 도파민과의 결합력은 약해진다.

다양한 유전자의 길이가 혹시 다양한 성격을 설명해줄지도 모른다고 본 이스라엘 연구팀은 병원 의료진 등 124명의 혈액을 채취해 유전자를 조사하고, 인성 검사를 했다. 그 결과 이 유전자가 길수록 새로움 추구 경향이 강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는 사람의 성격이 어떤 특정 유전자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밝혀낸 첫 번째 사례였다. 그뒤 핀란드 연구팀이 이스라엘 연구팀의 조사 결과와 상반되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지만, 미 국립보건원 딘 해머 박사팀이 좀더 많은 인원(315명)과 여러 인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똑같은 결과를 얻었고, 이어 캐나다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해머 박사는 “하지만 D4DR 유전자는 새로움 추구와 관련된 성격의 약 10%밖에는 설명하지 못하므로, 이 성격과 관련된 유전자가 9개는 더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마치 오케스트라처럼 성격은 여러 개의 유전자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형성된다는 것이다. 또 마치 북채가 없으면 북소리가 나지 않듯이 10개의 유전자를 모두 갖고 있다 하더라도 환경이 주어지지 않으면 새로움을 추구하는 성격의 소유자가 될 수 없다고 설명한다.

남녀 관계에도 영향…성격 변화 힘들어

새로움 추구는 인간 관계 특히 남녀 관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부부는 사회적 태도, 종교, 정치적 견해 등이 같아야 결혼 생활이 만족스럽다. 이를 동류 교배라고 한다. 하지만 성격은 동류 교배가 적용되지 않는다. 실제로 성격이 다른 경우에도 잘 사는 부부가 많다. 그러나 새로움 추구만은 이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미국, 네덜란드, 독일 학자들의 조사 결과 새로움 추구만은 점수가 비슷해야 만족을 느끼고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조사됐다.

가끔 상반된 상대방의 새로움 추구 경향에 이끌려 친해지는 수가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수가 높은 사람은 상대의 열정 부족에 실망해 헤어지는 경우가 많다. 또 점수가 낮은 사람이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상대방의 예측할 수 없는 변화에 견디지 못하고 결국 헤어지게 되는 경우도 많다. 점수가 높은 남자가 점수가 낮은 여자와 살 경우에는 남자답게 행동한다고 느끼고 무리없이 사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점수가 낮은 남자가 점수가 높은 여자와 사는 경우에는 성적 욕구를 잃어버리거나 발기 불능 상태에 빠지기도 하는 등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딘 해머 박사는 “시간이 지나면서 성격이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대부분 환상”이라며 “배우자가 번지 점프를 좋아하면 말리기보다 점심을 싸주고 생명보험 액수를 두배 올리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충고한다. 유전자와 환경이 작용해 이미 성격이 형성되고 난 다음 성격을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케임브리지=신동호 기자/ 한겨레 편집국

한겨레21 2000년 01월 20일 제2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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