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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30 00:00:00 |
1850년도 미국인의 평균 신장은 전세계에서 가장 큰 1백65cm였다. 그로부터 약 1백50년이 지난 오늘날 미국인의 평균신장은 1백70cm로 커졌지만 세계 3위에 불과하다. 1위는 미국인이 아닌 네덜란드인이 차지하고 있다.
1850년 당시 네덜란드인의 키는 유럽에서도 가장 작은 1백60cm였지만 지금은 세계 최장신인 1백75cm가 됐다.
그렇다면 그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키 작은 네덜란드인들이 몽땅 미국으로 이주했을까. 아니면 유럽에 남아 있는 네덜란드인들이 ‘키 크는 유전자’라도 주입한 것일까. 물론 둘 다 아니다.
평균신장은 사회의 건강척도
국과 네덜란드 모두 생활수준이 향상됐지만 네덜란드쪽이 더 많은 향상을 이뤘고, 그 결과 국민들의 평균신장이 미국보다 더 커진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신장이 어떻게 결정되는지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이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신장은 우리의 유년기와 우리 어머니들의 유년시절 적응성의 결과물이다.
영양 결핍으로 건강이 좋지 않은 어린시절을 보낸 여성은 출산기관 등 신체의 성장도 저조할 수밖에 없다. 영양소가 부족해 큰 몸집을 가질 수 없고 부족한 영양소마저도 세포와 생체조직을 질병으로부터 보호하는데 투입해야 한다. 따라서 성인이 돼서도 작은 키는 이 여성의 성장과정에서 나타난 ‘절충의 결과물’인 것이다.
이러한 여성이 낳은 자녀 역시 키가 작을 가능성이 크지만 이는 유전자와는 무관한 결과다. 이 여성이 임신을 할 경우 변변찮은 출산능력으로 인해 태아에 정상적 수준의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태아의 성장속도도 건강한 임신부에 비해 떨어지고 결국 몸집이 작은 아기가 태어날 것이다. 몸무게 2.5kg 미만의 저체중 신생아는 유년기의 성장속도가 떨어지고 10대가 돼서도 정상체중으로 태어난 동년배에 비해 키가 훨씬 작다.
동일한 유전자를 지닌 일란성 쌍둥이에 대한 연구에서 이와 관련된 몇가지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일란성 쌍둥이라 할지라도 고르지 못한 태반(胎盤)으로 인해 태아에 대한 영양 공급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작은 쪽 태반에서 자란 태아는 다른 쪽 태아에 비해 저체중아로 태어날 가능성이 높고, 출산 때의 이런 차이는 평생 유지된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특정 그룹의 평균 신장을 통해 그들이 처한 사회의 건강 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음을 암시한다.
20세기 초 미국과 네덜란드 두 나라는 시민건강 보호를 위해 생활용수 정수, 하수구 설비, 식품안전규제 등을 도입하고 어린이들의 건강관리 및 급식도 시작했다.
어린이들은 나아진 환경 덕에 키가 쑥쑥 컸다. 그러나 미국과 네덜란드의 차이가 오늘날 양국의 신장 차이를 낳았다. 네덜란드가 극빈자를 비롯한 모든 시민에게 건강관리 혜택을 제공한 데 비해 미국에서는 돈 있는 사람만이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두 나라의 차이는 신생아들의 체중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90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신생아의 4%가 저체중이었으나 미국은 7%나 됐다. 미국의 백인 신생아의 저체중 비율은 5.7%인 데 반해 흑인은 13.3%나 됐다.
유전적 요인 못지않게 환경 영항 커
부에 따른 미국인들의 이같은 격차는 성인이 돼서도 나타난다. 빈민층은 부유층에 비해 키가 평균 2.5cm 가량 작다. 이것이 미국이 엄청난 부자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평균신장은 세계 3번째에 불과한 이유다. 사람들은 네덜란드인이 세계 최장신이라는 말을 듣고 의아해 한곤 한다. 네덜란드인도 키가 크기로 유명한 중앙아프리카의 투치시족과 비교하면 난쟁이가 아닐까. 사실 투치시족의 다소 과장된 키 얘기는 유럽인들의 아프리카 탐험시대부터 줄기차게 이어져 오는 신화의 하나다.
연구결과 오늘날 투치시족의 평균 신장은 1백67.5cm로, 이들은 지난 1백여년간 이 정도의 키를 유지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1800년대만 해도 키 작은 유럽인이 투치시족을 우러러 보아야 했음을 의미한다. 평균 5~7cm의 키 차는 유럽 탐험가와 문필가에게 ‘아프리카의 거인’에 대한 환상적인 얘깃거리를 제공해 줬던 것이다.
투치시족이 살고 있는 르완다나 부룬디에 네덜란드 수준의 보건환경과 급식이 제공됐더라면 오늘날 투치시족의 키는 네덜란드인들보다 더 크거나 최소한 비슷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프리카인들은 전쟁과 빈곤에 시달려 어린이들의 성장조건이 열악하기 그지없다. 이는 어린 나이에 북미나 유럽으로 이민한 투치시족과 다른 아프리카 종족들은 아프리카 현지인보다 키가 훨씬 크다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키와 관련 앞의 예와 반대되는 측면이 있지만 피그미족도 유사한 사례를 보여 준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키가 가장 작은 종족은 므부티족·에페족·피그미족 등이다. 이들의 평균신장은 남성이 1백42.5cm, 여성이 1백35cm 정도에 불과하다.
피그미족이 작은 것은 유전자적 요인임에 틀림없다. 그들 중 일부는 성장촉진 호르몬 생산을 담당하는 유전자가 확실히 결핍돼 있고, 나머지도 이 호르몬의 작동을 담당하는 기능을 유전적으로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환경적 요인도 중요하다. 중앙아프리카 산림지역에서 사냥과 채집생활을 하는 피그미족들은 영양실조로 인해 성장에 더욱 제약을 받고 있다. 그러나 산림지대 외곽의 농장이나 목장에 거주하는 피그미족들은 숲속의 동족보다 식생활 조건이 훨씬 나아 키도 크다. 유전자와 영양상태 두가지 모두가 피그미족의 키를 결정지은 것이다.
동남아의 몇몇 종족이나 과테말라의 마야족 등도 난쟁이 종족에 속한다. 일부 탐험가나 과학자들은 종종 이들이 유전적으로 작다고 주장해 왔지만 이를 반박할 만한 근거는 충분히 있다. 요오드 및 필수 영양소가 결핍된 식생활을 하는 뉴기니의 한 난쟁이 부족에게 미네랄과 비타민을 공급해 주자 그들 자손은 정상인 이상으로 키가 자란 것이었다.
필자는 두 부류의 마야족 어린이의 성장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하나는 고향인 과테말라에서 살고 있는 그룹이고, 다른 부류는 미국에 피난와 살고 있는 그룹이다.
과테말라 마야족은 위생적 식수원이 없는 ‘산 페드로’라는 마을에서 거주하고 있다. 이들이 사용하는 물은 대부분 인근 농장에서 사용한 비료와 농약에 오염돼 있다. 성인들 대부분은 섬유공장 노동자로 3~4달러의 일당을 받는다.
필자는 지난 79년부터 이 지역 학생들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는데, 당시 대부분 어린이들은 건강한 신체발육에 필요한 영양소의 80%만을 섭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자 어린이의 30%, 남자 어린이의 20%가 요오드 결핍을 보였으며 대부분 기생충에 감염돼 있었다. 만성적인 귓병이나 눈병을 앓는 어린이도 많았다. 이처럼 열악한 건강상태는 그들의 키에 반영되고 있었다. 이들의 평균신장은 과테말라 중산층 어린이보다 7cm 이상이 작았다.
필자가 연구하고 있는 미국 내 마야족 피난민들은 로스앤젤레스와 플로리다주 중부의 인디안타운에 살고 있다. 비록 부모들이 급료가 적은 일에 종사하고 있지만 이 지역 어린이들은 과테말라의 비교대상 집단에 비해선 훨씬 나은 생활을 하고 있다.
이곳에 사는 대부분의 마야족은 내전과 정치적 박해를 피해 80년대에 미국으로 망명해 왔다. 미국에서 그들은 안정을 되찾고 새로운 생을 살게 됐으며 오래지 않아 어린이들도 키와 몸집이 쑥쑥 크기 시작했다. 필자의 조사에 따르면 이들 이민 1세대의 평균신장 성장치는 5.5cm나 됐다. 이는 이제까지 목격된 다른 어떤 경우보다 빠른 한 세대간의 신장 성장치였다.
1차대전 직후 미국으로 이주해 온 동유럽인들의 신장 성장은 다음 세대에 이르러서도 2.5cm 정도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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