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무한 경쟁을 좋아해 브레인 Vol. 28

뇌와 마음

2011년 06월 11일 (토) 10:44 


왜 사람들은 서바이벌 경쟁 프로그램에 열광할까?
우리 뇌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최근 서바이벌 경쟁 프로그램이 대세다. 한 케이블 프로그램에서 환풍기 수리공이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일약 스타로 떠오른 것을 시작으로 이제는 가수뿐 아니라 탤런트, 디자이너, 아나운서를 뽑는 일까지 오디션 포맷을 적용하고 있다.

심지어 내로라하는 기성가수들조차 ‘경쟁’ 구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공중파의 주말 예능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 코너는 가창력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베테랑 가수들을 경쟁시켜 한 명의 탈락자를 가린다. 막상막하의 실력을 갖춘 쟁쟁한 실력자들 중에서 과연 누가 탈락할지가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승부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순위를 매기는 프로그램이 새로울 것은 없지만, 요즘의 서바이벌 경쟁 프로그램이 화제가 되는 것은 그 경쟁방식이 매우 살벌하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참가자들은 매번 제시되는 까다로운 ‘미션’을 통과해야 겨우 살아남을 수 있는데, 그러려면 가창력은 물론이고 대중을 울릴 수 있는 선곡과 편곡, 무대 위에서의 퍼포먼스까지 섬세하게 고려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일부에서는 예능 프로그램까지 무한경쟁 코드에 맞춰지는 현실에 대해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기도 한다. 실제로 참가자들은 합격을 위한 혹독한 연습은 물론 매회 적나라하게 공개되는 순위와 심사위원의 독설, 순위 탈락의 아픔까지 고스란히 감수해야 한다.

웃고 즐기는 예능, 느끼고 감상하는 것으로 충분한 음악까지 평가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이들 프로그램은 무한경쟁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고단한 삶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지켜보는 우리라고 해서 마냥 경쟁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스포츠, 입시, 취업, 비즈니스 등 우리 또한 인생의 여러 대목에서 자신의 전부를 걸고 승부수를 던져야 할 때가 있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서 실패와 좌절에 대한 부담감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뇌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창조성을 발현한다
재미있는 것은 뇌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경쟁구도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실 뇌과학에서는 우리 뇌가 잘될지 안 될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윌리엄 슐츠 교수는 “뇌는 실제로 기분이 좋을 때뿐만 아니라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쾌감 호르몬을 분비한다”고 밝혔다.

인간의 뇌는 새로운 것, 신기한 것, 창조적인 것을 좋아한다. 무엇보다 모험에 목말라 있다. 승부를 알 수 없는 스포츠에 열광하거나 범인이 누구인지 모르고 읽는 추리소설을 재미있어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일에서도 마찬가지다. 뇌는 잘하는 일을 계속해봤자 기뻐하지 않는다. 오히려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불확실한 상황에서 고생 끝에 목표를 달성했을 때 다량의 도파민을 분비한다. 의외성이 강한 일일수록 더더욱 그렇다. 힘들면 힘들수록 그 뒤에 오는 성취감과 기쁨도 커지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의 뇌의학자 하야시 나리유키 교수는 어린이들에게 승부를 가리는 교육을 지양해야 한다는 일부 교육학자들의 주장에 대해 “우리 뇌는 본래 승패의 아쉬움과 억울함을 겪으며 성장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고 반론을 제시한다.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은 오히려 승부에 대한 마음가짐, 승자와 패자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태도라는 것이다. 그는 또 인생에서 마주치는 온갖 승부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독창적인 전략을 짜내 승리를 거둘 줄 아는 능력, 즉 ‘승부 뇌’를 단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승부를 가리는 독창적인 전략, 즉 창조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일본의 뇌 과학자 모기 겐이치로는 우리 뇌가 창조성을 발휘하는 순간은 “불확실한 것에 대처하기 위해 고군분투할 때”라고 했다. 뇌는 불확실한 질문 앞에 섰을 때 비로소 평소의 사고 습관 너머에 있는 창조적인 사고를 발동시킨다는 말이다.

이처럼 뇌가 불확실성을 좋아하는 이유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 지금까지와 다른 길을 가면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수도 있지만, 생각지도 못한 보상을 얻을 수도 있다는 삶에 대한 무한 긍정.

어쩌면 인류가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생태계 속에서 이만큼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뇌가 불확실성을 사랑할 줄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 경쟁과 승부의 연속인 ‘서바이벌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주눅들거나 위축되지도 말라. 우리 뇌는 불확실한 상황의 정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번뜩이는 창조성을 드러낼 테니 말이다.

글·전채연 ccyy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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