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일들을 우리는 어떻게 자각하고 의식할까? 자신이 누구인지, 주변 환경은 어떤지 어떻게 알까? 이 같은 의식에 대한 물음은 수십세기에 걸쳐 철학자들의 주요 관심거리였다. 그러나 최근 신경과학자들에게도 점점 중요한, 그리고 해결 가능한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말은 신경과학적 입장에서 “나는 뇌가 있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로 바꿀 수 있다. 자신에 대한 의식, 즉 정체감은 정신기능을 관장하는 뇌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아직 의식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 정의조차 확실하지 않지만, 과학자들은 다양한 측면에서 의식의 문제를 풀어나가고 있다. 마음과 뇌의 관계를 연구하는 인지신경과학자, 신경심리학자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뇌의 의식과정을 이해해보도록 하자.
보는 것과 의식하는 것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온 수많은 정보들 중 우리가 의식하는 것과 의식하지 못하는 것은 각각 뇌에서 어떻게 처리, 저장, 사용될까? 인지신경과학자들은 뇌를 복잡한 정보처리기관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눈, 귀, 피부 같은 감각기관을 통해 매순간 수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이들은 대부분 뇌로 전달된다. 뇌는 입력된 정보들을 변형, 압축, 선택하고(주의), 저장하고(기억), 사용한다. 우리가 의식하는 최종 경험들은 뇌에서 복잡한 정보처리 단계를 거쳐 일어난 결과다. 이 중 대부분은 일상생활에서 순간적으로 쉽게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뇌가 하는 복잡한 정보처리의 중요성을 잘 느끼지 못한다. 뇌가 손상돼 정신과 행동에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면 그때서야 우리는 뇌의 정보처리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가령 우리가 가장 쉽게 하는 사물에 대한 인식을 생각해보자. 탁자 위에 놓인 컵을 볼 때, 우리는 거의 순간적으로 그 대상이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지를 안다. 즉 우리는 보는 것을 통해 순간적으로 대상의 정체와 위치를 인식하는데, 이것도 실제로 뇌에서는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만 가능하다. 빛의 다양한 스펙트럼 배열이 망막에 들어오면 신경정보로 전환된다. 이 정보는 색, 형태, 거리, 위치 등 정보의 각 유형을 담당하는 시각경로를 통해 따로따로 처리된다. 그런 다음 다시 통합돼야 우리가 인식하는 것과 같은 경험이 가능해진다.
형태를 인식하는 과정만 보더라도 뇌에서 매우 복잡한 계산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신경세포들이 작은 시각 영역의 빛 강도에 따라 흥분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뉜다. 이들로부터 정보를 받은 다음 단계의 신경세포들은 좀더 넓은 영역의 선과 면 등을 탐지할 수 있는 정보처리 과정을 수행해야 한다. 즉 정보를 다시 통합해 각 형태의 특징들 간 구조적 관계를 파악하고, 3차원 입체 정보도 포함시켜 대상을 인식한다. 실제로 뇌의 시각경로에 있는 신경세포들은 정보처리의 초기 단계에서는 좁은 시각 영역에서 수평선이나 수직선 같이 단순한 선분의 방향에 대해서만 반응하다가 처리 단계가 진행될수록 더 넓은 시각 영역에서 점점 더 복잡한 모양에 반응한다.
뇌에서의 시각 정보처리 과정은 크게
- 시각피질이 있는 후두엽에서 측두엽, 전두엽으로 이어지는 복측경로와
- 후두엽에서 두정엽을 거쳐 전두엽으로 이어지는 배측경로로 나뉘어 이뤄진다.
- 복측경로는 보고 있는 대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보를 처리하므로 ‘무엇’경로라고도 부르며, (언어)
- 배측경로는 사물의 위치나 공간적인 배열 정보를 주로 처리해 ‘어디’경로라고도 부른다. (공간)
무엇경로에 해당하는 후두-측두엽 경계부분에 손상이 생기면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그 사물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어디에 있는지는 알기 때문에 보이는 사물을 손으로 잡을 수 있고, 만지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후두-두정엽 영역에 손상을 입으면 ‘어디’ 정보가 손상된다. 그러면 한번에 하나의 사물만을 보게 되고, 그 사물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으나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런 증상은 뇌의 시각피질이나 눈이 손상된 경우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다음의 예에서 그 차이를 생각해보자.
의식에서 사라진 공간 한 환자가 병실에 앉아 있다. 식사시간이 돼 환자 앞에 밥과 국, 여러 반찬이 있는 쟁반이 놓여있고, 환자는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이 환자는 오른쪽에 놓인 반찬들만 먹을 뿐 왼쪽에 놓인 반찬들은 그대로 뒀다. 이런 현상은 식사 때마다 일어났다. 때로는 쟁반 왼쪽에 밥이 놓여 있는데도 병원에서 밥을 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기도 하고, 왼쪽에 있는 반찬을 먹지 않으면서 반찬이 너무 적다는 불평을 했다. 그렇다고 이 환자가 왼쪽에 놓인 반찬들을 싫어하기 때문에 먹지 않는 것은 아닌 듯 했다. 간병인이 왼쪽에 있던 반찬을 오른쪽에 옮겨 놓으면 맛있게 먹었기 때문이다.
환자의 왼쪽과 오른쪽 눈 모두 시력은 정상이었고, 식사를 하는 오른손 역시 쟁반의 왼쪽 끝까지 뻗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데도 이런 일들이 계속됐다. 이 환자는 마치 자신의 왼쪽에는 어떤 사물도 없는 것처럼 행동했는데, 아마도 이 환자의 의식 속에는 왼쪽 시야에 들어오는 시각적 장면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이런 증상은 오른쪽 두정엽이 손상된 환자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것으로, ‘시각적 무시증’이라고 부른다. 뇌는 좌·우반구로 나뉘어 있다. 좌반구는 몸 오른쪽의 감각이나 운동을, 우반구는 몸 왼쪽의 감각이나 운동을 담당한다. 시각의 경우도 눈의 초점을 중심으로 오른쪽 시야는 왼쪽 뇌로, 왼쪽 시야는 오른쪽 뇌로 들어간다. 때문에 오른쪽 두정엽이 손상된 환자는 왼쪽 시야나 왼쪽 신체에 이상이 생기는 것이다. 한쪽 눈이나 한쪽 시각피질에 손상을 입은 경우는 본인이 스스로 보이지 않는 것을 의식해 눈이나 고개를 돌려 보이지 않는 시야를 보려고 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한쪽 두정엽이 손상된 경우는 손상된 쪽의 반대 시야를 의식하지 못해 그쪽에는 마치 사물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한다. 즉 후두-두정엽 영역은 우리가 특정한 위치에 주의를 기울여 정보를 선택하고 의식하게 하는 것이다.
두정엽과 달리 측두엽에 해당하는 무엇경로에 손상을 입은 환자는 우산이나 열쇠처럼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하는 그림을 보여주고 따라 그리게 하면 잘 그린다. 하지만 그 사물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이 환자가 그 사물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니다. 손으로 만져보게 하면 그 사물이 무엇인지 금방 대답한다. 즉 입력된 시각정보와 이미 뇌에 저장된 그 사물의 시각정보가 대응되지 못해서 생기는 증상일 수 있다. 시각적 무시증을 포함해 이처럼 다양한 증상들은 눈을 통해 들어오는 시각정보를 우리가 지각하고 의식하는 과정에서 어떤 정보처리 단계가 필요한지, 각 단계들이 뇌의 어떤 부위에서 일어나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잊어버려도 뇌엔 들어있는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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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에서 시각정보가 전달되는 2개 경로 망막에 맺힌 시각 정보는 시신경을 통해 뇌의 후두엽에 있는 일차시각피질(V1)로 들어온다. 그런 다음 보고 있는 대상이 ‘무엇’(What)인지에 대한 정보는 선조외피질의 이차(V2), 삼차(V3), 사차시각피질(V4)을 거쳐 측두엽으로 전달된다. 대상이 ‘어디’(Where) 있는지에 대한 정보는 선조외피질의 이차(V2), 삼차(V3), 오차시각피질(V5)과 중측두영역(MT)을 거쳐 두정엽으로 전달된다. |
의식과 관련된 문제는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들을 지각하고 인식하는 과정에도 관여하지만, 정보를 저장하고 사용하는 기억과 의사결정에도 깊이 관여한다. 해마를 비롯한 내측두엽 영역은 새로운 정보를 부호화하고, 이미 저장된 정보를 인출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마와 그 주변 영역이 손상되면 그 이후에 경험한 사건이나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상실증이 나타난다. 영화 ‘메멘토’나 ‘첫키스만 50번째’의 주인공처럼 뇌 손상 이후 일어난 일들은 불과 몇 분에서 몇 시간이 지나면 의식에서 사라진다. 조금 전에 만났던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고 하루 전에 들었던 뉴스도 기억하지 못한다. 뇌 손상 후 몇십년이 지나 거울에 비친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기도 한다. 물론 그 충격 역시 금방 의식에서 사라지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무시된 공간에 제시된 정보나 기억하지 못하는 정보, 즉 의식에서 사라진 정보는 과연 뇌에서도 사라진 걸까? 많은 연구들은 의식에서 사라진 정보가 행동에 여전히 영향을 주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즉 의식에서 사라졌다고 뇌에서도 사라진 것은 아니란 얘기다. 가령 내측두엽 손상으로 기억상실증을 보이는 환자에게 단어 목록을 보여주면서 외우라고 한 후 한 시간 뒤에 목록에 있던 단어들을 기억해 보라고 하면 의식적으로 하나도 기억해내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목록에 있던 단어들의 글자 일부를 보여주면서 나머지 글자를 아무 것이나 생각나는 대로 채워넣게 하면(예를 들어 ‘우○’를 보여주면서 ‘우’로 시작하는 두 글자 단어 중 아무 단어나 말하도록 한다) 목록에서 봤던 단어를 채워넣는 확률이 높아지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즉 이전에 봤던 단어들이 의식적으로 접근 가능하지 않은 상태로 저장돼 있다가 이 같은 특수한 기억검사를 통해 나타나는 것이다.
인지심리학자와 인지신경과학자들은 의식적으로 접근 가능한 기억을 ‘외현기억’, 그렇지 못한 기억을 ‘암묵기억’이라고 구분해왔다. 최근의 뇌 영상 연구들은 외현기억과 암묵기억을 담당하는 뇌 시스템이 구분될 뿐 아니라 각 시스템의 활성화 양상도 다른 방식으로 나타남을 밝히고 있다. 무시증의 경우에도 무시된 시야에 제시된 정보들이 행동에 영향을 준다. 가령 무시증 환자에게 무시되는 시야 쪽에 화재가 일어나고 있는 주택 그림을 보여주고 그림에 이상이 있는지를 물어보면 이상이 없다고 대답한다. 화재가 나고 있는 장면을 의식적으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그림과 불이 나지 않은 똑같은 주택 그림 중 어느 집에서 살고 싶은지를 물으면 불이 나지 않은 그림을 선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의식적으로 접근 가능한 정보와 그렇지 못한 정보의 구분은 비단 뇌손상 환자에게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정상인의 경우에도 의식적으로 자각하지 못하는 정보들이 행동에 영향을 주거나 뇌 영상에서 활성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과거에 우연히 접했지만 지금은 의식에서 사라져 그런 경험이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대상이나 사건들이 암묵적 기억검사나 뇌 활성화 연구를 통해 나타나는 것이다.
인간 뇌의 진화는 어쩌면 의식과 관련된 뇌 영역을 위한 진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정보를 의식화하는 일은 빠르고 효율적인 정보처리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무엇을 의식화하고 무엇을 의식화하지 않을 것인가? 어쩌면 우리 뇌는 한정된 물리적 공간에서 의식과 효율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놓고 고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재 의식에 대한 많은 연구들은 뇌의 정보처리 과정 중 의식적으로 접근 가능한 정보와 그렇지 못한 정보의 신경학적 기전, 지각·주의·기억·의사결정에서의 의식과 무의식 현상을 밝히는데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마음의 이해에 중심이 되는 의식의 문제는 뇌를 연구하는 우리의 뇌가 밝혀야 할 중요한 과제로 여전히 남아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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