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아니라 '뇌'가 본다

그냥 종이 위에 그려 놓은 원이 빙빙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을까? 아마 불가능하다고들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옆 그림 중 방사형 줄무늬 위에 파란색 동심원들이 있는 것의 한 가운데를 가만히 응시해 보라.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파란 원들이 갑자기 방향을 바꿔 가며 제각기 여러 방향으로 빠르게 회전하는 것이 보일 것이다. 눈을 깜빡이거나 비비고 봐도 마찬가지다.

 
이 그림을 볼 때 눈의 망막에는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가만히 있는 원의 영상이 맺힌다. 그런데도 돌아간다고 느끼는 것은 감각기관과 뇌의 작용 때문이다.

실제로 이 그림을 볼 때 두뇌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양성자단층촬영(PET)을 해보면, 뇌의 신경세포들이 진짜 움직이는 것을 봤을 때처럼 반응하는 것이 나타난다.

그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어쨌든 이 그림 때문에 '뭔가 움직인다'는 것을 지각하는 뇌의 신경세포가 활성화되고, 그 결과로 가만히 있는 원이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눈'이 아니라 '뇌'로 세상을 본다. 눈은 단지 뇌가 세상을 보는 창과 같은 간단한 역할만을 하는 것뿐이다.

시각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색.형태.위치.깊이.운동을 뇌의 여러 부위가 따로 나눠 맡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만일 사고나 병으로 특정 부위가 손상되면 그 부위가 맡고 있는 시각기능을 잃게 된다. 색이나 형태는 알아도 움직이는 것은 전혀 깨닫지 못하거나, 빨간색이기는 한데 어떤 모양으로 생긴 것인지는 모르는 등 정상인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증세가 나타난다.

특히 얼굴을 지각하는 뇌 부위가 따로 있는데, 그 곳이 망가져서 다른 것은 다 알아 봐도 얼굴만은 못 알아보는 사람도 있다.

색.형태.깊이 등을 맡는 두뇌의 부분이 각각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간단한 실험이 있다(왼쪽 아래).

탑 그림을 보자. 하나는 짙고 옅은, 그러니까 명도가 다른 파란색만을 이용해 그린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와 반대로, 명도는 같은데 색은 다른 물감으로 그렸다. 똑같은 그림인데도 우리는 이 한 쌍의 그림 중에 명도가 다른 그림에서만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이것이 나타내 주는 것은 색과 깊이를 맡는 뇌 부위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색상 정보만으로는 깊이를 느낄 수 없다. 대신 깊이를 아는 것은 명암에 따른 것이어서, 명도가 다른 색으로 그리면 깊이를 확연히 느끼게 된다.

그러나 보통 생활 속에서는 예에서 든 그림과 같이 색과 명암이 분리된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뇌 기능의 분화에 따른 이러한 차이를 거의 경험하지 못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뇌의 50% 가량이 직.간접적으로 시각에 관여한다. 이는 시각과 두뇌의 연구를 통해 뇌의 절반 가량의 구조와 기능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뇌가 부위별로 분리된 전담기능을 맡고 있다는 것이 언어나 기억 등 다른 두뇌 활동에서도 발견되기 때문에, 뇌과학자와 심리학자들은 시각연구에서 얻은 발견들이 뇌의 다른 기능을 파악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찬섭 <연세대 교수.심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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