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부모와 아이를 이어주는 대화 :

아이의 행동이 아니라 감정에 대응한다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새로운 방법의 바탕이 되는 것은 ‘존중’과 ‘기술’이다.

  첫째, 어른이 자존심을 가지고 있듯이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자존심도 존중해 주어야 한다.

  둘째, 충고나 지시를 할 때, 부모는 미리 그 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아홉 살 난 에릭은 잔뜩 화가 나서 집에 돌아왔다.

학교에서 소풍을 가기로 했는데, 그만 비가 왔기 때문이다. 벌써 여러 번 이런 일을 경험한 아버지는 새로운 방법으로 아이의 마음을 달래보기로 했다. 전에 번번히 실패했던 다음과 같은 상투어는 피하기로 했다.

“비가 와서 못 간 걸 울면 뭐 하니, 다른 날 가면 되잖아?

“내가 비 오라고 했니? 나한테 화를 내게…….

그 대신 에릭의 아버지는 이렇게 생각했다.

‘소풍을 가지 못한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해 있어. 실망한 거야.
내게 화를 낸 것은 실망한 자기 마음을 내가 알아주었으면 해서야.
화를 낼 만도 하겠지.
녀석의 기분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것을 보여주면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야.

그래서 에릭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 무척 실망한 표정이구나.

 

  : , 기분이 나빠서 그래요.

아버지 : 소풍날을 그렇게 기다렸는데.

  : 정말 그랬어요.

아버지 : 소풍 준비를 다 해 놓았는데, 그만 몹쓸 비가 와 버렸어.

  : 맞아요. 정말 그랬어요.

 

  잠깐 침묵이 흐른 뒤, 에릭이 말했다.

  “뭐, 꼭 오늘만 날인가?

  어느덧 에릭의 화가 풀어지고, 그날은 비교적 평화롭게 보낼 수 있었다. 보통 에릭이 화가 나서 학교에서 돌아오는 날이면, 온 집안이 소란스러웠다. 좀더 심한 경우에는, 식구들 모두에게 화풀이를 해대는 바람에 에릭이 잠들 때까지 집이 시끄러울 정도였다. 그럴 때 에릭의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방법, 도움이 될 방법은 무엇일까?

l  어떤 격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을 때, 아이들은 어느 누구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달래거나 야단치거나 충고를 해도 통하지 않는다.

l  아이들은 그 특정한 순간에 자기 마음속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자기 기분이 어떤지를 부모가 이해해 주길 바란다.

l  한발 더 나아가 자기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해 주되, 자기가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지는 드러나지 않게 해주길 바란다.

l  마치 승부를 가르는 장난처럼, 그들이 느끼는 바를 조금만 내어 보이고, 나머지는 어른들이 추측하도록 남겨 두려는 것이다.

아이가 선생님에게 야단맞았다고 말할 때, 자세한 내용을 물을 필요가 없다. “무슨 짓을 했기에 야단을 맞았니?

야단맞을 짓을 했으니까 선생님께서 소리를 질렀겠지.

말썽을 피운 게 틀림없어. 무슨 말썽을 부렸니?” 하고 물어볼 필요가 없다. 우리는 다만 아이가 겪었을 아픔과 부끄러움, 그리고 복수심 같은 것에 대해서 이해하는 마음을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어느 날 여덟 살 된 애니타가 점심을 먹으러 집에 왔는데, 무척 화가 나 있었다.

애니타 : 나 학교에 안 갈래.

어머니 : 화가 무척 많이 난 것 같구나.

         무슨 일인지 엄마한테 이야기해 볼래?

애니타 : 선생님이 내 숙제를 찢었어. 얼마나 노력해서 한 숙제인데, 한 번 들여다보고는 찢어버렸어.

어머니 : 네 말은 들어보지도 않으시고? 그렇게 화를 낼 만도 하겠구나!

 

 애니타의 어머니는 무슨 다른 언급을 하거나 질문을 하지 않았다. 딸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화를 나누면서 기분을 이해해 주고 함께 나누었다. 그 결과 애니타가 분노를 가라앉히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었다.

 

다른 예가 있다. 아홉 살 된 제프리가 무척 기분 나쁜 표정으로 집에 돌아와 불평을 털어놓았다.

 

제프리 : 선생님 때문에 오늘 너무 힘들었어.

어머니 : 힘들어 보이는구나.

제프리 : 도서관에서 아이 둘이서 떠들었거든, 근데 선생님은 떠든 아이들이 누구였는지를 몰랐어. 그래서 단체로 벌을 주었어. 모든 아이들이 거의 하루 종일 복도에 서 있었어.

어머니 : 반 아이들 전체가 공부 대신, 하루 종일 아무 소리 없이 복도에 서 있었구나! 그러니 얼마나 힘이 들었겠니?

제프리 : 그래서 내가 선생님에게 말씀을 드렸어. “선생님! 선생님은 떠든 사람을 찾아낼 수 있잖아요. 그러면 우리 모두가 다 기합을 받지 않아도 되고요.

어머니 : 세상에, 아홉 살 박에 안 먹은 우리 아이가 선생님께 훌륭한 말을 했구나! 그래 한두 명이 잘못한 것을 가지고 단체 기합을 주는 것은 옳지 않다는 말을 하다니!

제프리 : 그래 봐야 소용이 없었어요. 하지만 그 소리를 듣더니 선생님은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어요.

어머니 : 그래. 네가 선생님의 마음을 돌려놓지는 못했어도, 기분을 바꿔 주었구나.

 

  어머니가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감정을 존중하고, 견해를 인정하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 태도를 평가해 주자, 제프리는 기분이 좋아지고, 화도 가라앉았다.

우리는 어떻게 아이들의 기분을 알게 되는가?

l  아이들을 바라보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된다.

l  우리 자신의 감정적 경험에 기댈 수도 있다.

l  또래들이 있는 데서 공공연하게 창피를 당할 때, 아이들의 기분이 어떨지 우리는 안다.

l  말로 표현해 주면, 아이들은 우리가 자기들이 겪은 일을 이해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음과 같은 말들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l  “엄청나게 당황했겠구나.

l  “그 때문에 무척 화가 났겠구나.

l  “그때는 선생님이 미웠겠구나.

l  “무척 기분이 상했겠구나.

l  “네겐 기분 나쁜 하루였구나.

 

아이들이 부모 앞에서 버릇없이 굴 때가 있다.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대개 기분이 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부모들은 그런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행동을 바로잡기 전에 감정부터 다스려야 한다.

  열두 살 된 벤의 어머니는 이런 말을 했다.

  “어제, 일을 마치고 집에 왔는데, 외투를 벗기도 전에, 아들 벤이 자기 방에서 달려나오더니, 선생님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하더군요.

  ‘선생님이 숙제를 너무 많이 내줘요. 1년 동안 해도 다 하지 못할 거야. 내일 아침까지 어떻게 이 시를 쓸 수가 있겠어요? 게다가 지난 주에 내준 짧은 이야기 숙제도 다 못 했는데. 오늘 선생님이 날 야단쳤어. 날 미워하나 봐요!

  난 냉정을 잃고 아들에게 소리를 질렀어요.

  ‘내게도 높은 사람이 있어. 네 선생님만큼이나 골치 아픈 사람이야. 하지만 넌 내가 불평하는 소리를 들어주지 않잖아. 선생님이 널 야단치는 것은 당연해. 생전 숙제를 해본 적이 없으니까. 너처럼 게으른 아이가 있을까? 불평일랑 그만하고, 공부나 해. 그렇지 않으면 낙제할 거야.’“

  “화를 낸 뒤에 무슨 일이 벌어졌나요?

  내가 물었다.

  “아들 녀석이 제 방으로 달려 들어가더니 문을 걸어 잠그고는, 저녁 먹으러 내려오지도 않더군요.

  “그때 기분이 어땠어요?

  내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끔찍했어요. 그날 밤 내내 기분이 엉망이었어요. 모두가 다 마음이 상해 있었어요. 분위기가 침울했고요. 자책감을 느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아들 기분이 어땠으리라고 생각하세요?

  다시 내가 물었다.

  “십중팔구 내게 화가 나고, 선생님은 무서웠을 거예요.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고, 낭패감에 젖어 마음을 가다듬을 수가 없었을 거예요. 난 아이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했어요. 그런데 아이가 불평을 하면서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참을 수가 없어요.

  벤이 불평을 하지 말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었더라면, 이와 같은 사단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엄마, 나 내일 학교 가기가 무서워. 시 한 편과 짧은 이야기 한 편을 써야 하는데, 너무 당황해서 그런지 집중이 되지 않아.

  벤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더라면, 어머니도 아들의 어려움을 인정하고, 공감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감정부터 말했더라면, 어머니도 다른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래, 내일 아침까지 시 한 편과 짧은 이야기 한 편을 쓰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구나. 그러니 당황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야.

  부모도 그렇지만, 아이들도 감정을 함께 나누는 법을 배우면서 자라지 못했다. 심지어는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조차 모를 때도 자주 있다. 불행한 일이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은 극복하기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화를 내며 다른 사람을 비난한다. 그럴 때, 부모들은 보통 화를 내며 아이들을 나무라고, 나중에 가서 후회할 소리를 퍼붓는다. 물론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감정을 함께 나누는 데 서툴다.

l  그러므로 그들의 분노의 분출을 숨기기 위해 드러내는 두려움과 절망, 무력감의 소리를 듣는 법을 부모들이 알아두면 유익할 수 있다.

l  부모들은 아이의 행동에 대해 반응을 보이는 대신에, 당황한 기분에 반응하여, 그것을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다.

l  제대로 느낄 때에만, 아이들은 명확하게 생각하고 제대로 행동할 수 있다.

l  다시 말하면 제대로 느낄 때에만 집중하고, 주의를 기울이고, 귀담아들을 수 있다.

l  그런 식으로 느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거나,

l  그런 식으로 느낄 이유가 없다고 부모들이 설득하려고 해도,

l  아이들의 상한 기분은 가라앉지 않는다.

l  상한 기분은 떨쳐버려야 사라지는 법이다.

l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공감하고 이해하면서 그 기분을 받아들여 주면, 그 강도가 약해지고, 모난 정도가 수그러든다.

l  이런 사실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해당된다.

 

부모들과 벌인 토론 가운데 몇 가지 실례를 찾아보자.

 

사회자 : 가령 우리가 보통 말하는, 실수를 연발하는 아침이라고 합시다. 전화벨이 울리고, 아이는 울고,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는데, 토스트는 타고 있어요. 이때 남편이 토스트를 보면서 “맙소사, 언제 토스트를 만드는 법을 배울 생각이야?“ 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반응을 할까요?

l  A 부인 : 토스트를 남편의 얼굴에 던졌을 거예요.

l  B 부인 : “그렇다면 당신이 해요!”라고 했을 거예요.

l  C 부인 : 너무 속상해서 울었을 거예요.

사회자 : 그런 남편의 말을 듣고, 남편에게 어떤 감정을 갖게 되었을까요?

l  부인들 : (다같이) 분노와 미움과 무안이요.

사회자 : 다시 토스트를 만들어줄 생각이 났을까요?

l  A 부인 : 토스트에다 독약이라도 탈 수 있다면요!

사회자 : 남편이 출근한 뒤, 제대로 집안일을 할 수 있었겠어요?

l  A 부인 : 천만에요.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을 거예요.

사회자 : 가령 똑같은 경우에, 토스트 타는 것을 보고, 남편이 “여보, 이거 안됐구려. 아이는 울고, 전화는 자꾸만 걸려오는데, 게다가 토스트까지 타니.”라고 말했다고 생각해 봐요.

l  B 부인 : 기분이 근사할 것 같은데요.

l  C 부인 : 참으로 기분이 좋아 남편을 껴안고 입맞춤이라도 해주고 싶어지겠죠.

사회자 : 아이는 계속 울고 있고, 토스트는 다 타고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l  부인들 : (다같이) 그런 건 문제도 안 돼요.

사회자 : 무엇이 여러분의 마음을 그렇게 다르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나요?

l  A 부인 : 비난을 받지 않아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을 거예요.

사회자 : 하루를 어떻게 보냈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l  C 부인 : 유쾌하고 행복한 하루가 되었을 거예요.

사회자 : 그럼 세 번째 종류의 남편을 말해 보기로 해요. 이 양반은 토스트타는 것을 지켜보더니 가까이 와서 조용히 말했어요. “내가 토스트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줘야겠네.

l  B 부인 : 이런 남편은 첫 번째 남편보다 더 나빠요. 그 사람은 자기 아내를 바보로 만들고 있거든요.

사회자 : 그러면 토스트가 탈 경우에 서로 다른 방법으로 대응한 세 가지 상황이, 우리가 아이들을 다룰 때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아보도록 해요.

l  A 부인 : 사회자께서 무슨 말씀을 하려는지 잘 알겠어요. 저는 항상 우리 아이들에게 “너는 그 나이에 이것도 모르니? 저것도 모르니?”라고 말했어요. 그때마다 아이들이 얼마나 화가 났겠어요.

l  B 부인 : 나는 그런 경우 우리 아이들에게 “이거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줄게. 이것은 또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줄게.“라고 말했어요.

l  C 부인 : 내겐 아이들을 나무라는 버릇이 있는데, 이젠 그것이 예사로운 일 처럼 되어버렸어요. 어렸을 때 우리 어머니가 늘 내게 하시던 것처럼 아이들을 나무라는 거예요. 그런데 나는 그런 어머니가 싫었어요. 내가 한 일은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고, 내가 해놓은 일은 언제나 다시 해야만 했거든요.

사회자 : 그런데 부인은 지금 똑같은 말을 딸에게 하고 있다는 거지요?

l  C 부인 : 그래요. 나는 그런 말이 싫어요. 그런 말을 할 때는 나 자신이 싫어져요.

사회자 : , 그러면 토스트 타는 이야기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었는지 살펴보도록 하죠. 불쾌한 기분을 사랑스런 감정으로 바꾸는 데 무엇이 도움을 주었는지 알아보도록 해요.

l  B 부인 : 누가 나를 이해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요.

l  C 부인 : 비난은 하지 말아야겠어요.

l  A 부인 :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다는 식의 말도 하지 말아야겠어요.

 

  예로 든 위의 대화(하임 G. 기너트의 『어린이 집단 심리 치료』에서 인용함)에서 우리는 한 마디 말이 기쁨과 불행을 얼마나 좌우하는 지 알 수 있다. 이 대화는 (말과 감정에 대한) 반응에 따라 우리 가정의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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