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질문에 숨어 있는 아이의 속마음

 

  아이들과의 대화는 마치 예술 같아서, 그 의미하는 바와 법칙이 특이하다.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그저 천진난만하다고만 생각하면 큰 잘못이다. 아이들의 말을 이해하려면, 마치 암호를 해독할 때처럼, 기술이 필요하다.

  열 살 난 앤디는 아버지에게 “할렘(뉴욕의 빈민촌)에는 고아들이 몇 명이나 있어요?”라고 물었다. 매우 지적인 약사였던 아버지는 아들이 어린 나이에 벌써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진 것이 기뻐서 그에 관해서 길게 이야기를 한 뒤, 자세한 통계 수치를 일러주었다. 그러나 앤디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같은 문제에 대해서 질문을 던졌다.

  “뉴욕에는 고아가 몇 명이나 있어요?

  “미국에는?

  “유럽에는?

  “전세계에는?

  아버지는 비로소 아들의 염려가 사회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에서 기인하며, 아들의 본래 걱정이 고아들에 대한 동정심이 아니라, 자기도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아들은 통계 수치를 알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자기는 버림받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얻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앤디의 걱정거리를 대신 이야기해 주며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 아빠가 어떤 부모들처럼 널 버릴까 봐 걱정하는구나. 내가 장담하는데, 우린 절대 널 버리지 않아. 다시 그런 걱정이 들거든 내게 이야기해. 내가 널 안심시켜 줄 테니까.

  엄마의 손을 잡고 처음 유치원에 온 다섯 살 난 낸시가 큰소리로 말했다.

  “누가 그림을 이렇게 밉게 그렸어, 엄마!”

  얼굴이 화끈거린 낸시의 어머니는 못마땅한 얼굴로 딸아이를 쳐다보면서 나무랐다.

  “예쁜 그림들을 밉다고 말하면 안 돼!”

  옆에서 듣고 있던 선생님이 아이가 한 말의 뜻을 이해하고 싱긋이 웃으며 말했다.

  “여기서는 그림을 꼭 예쁘게 그리지 않아도 괜찮아. 자기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면 돼

  낸시는 그때서야 자기가 알고 싶었던 물음의 속뜻, 그림을 잘못 그리면 무슨 벌을 받을까?’ 하는 것에 대한 만족스런 대답을 얻고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낸시가 다시 깨진 장난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당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머니는 대답했다.

  "누구라고 말하면 네가 알겠니?"

  낸시는 그 아이 이름이 궁금한 것이 아니었다. 낸시는 장난감을 망가뜨리면 어떤 벌을 받는지가 궁금했던 것이다. 물음의 참뜻을 이해한 선생님이 다시 대답해 주었다.

  "장난감은 가지고 노는 것이긴 하지만, 어쩌다 깨지는 수도 있어."

  그러자 낸시는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낸시는 우회적인 질문을 던지는 방법으로 자기가 궁금하게 여겼던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아. 어른들은 그림을 못 그리거나 장난감을 깨뜨려도 쉽게 화를 내지 않는구나. 그렇다면 여기 와서 겁낼 필요가 없겠네.

  낸시는 유치원을 떠나는 어머니에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선생님에게 달려가 재미있게 유치원에서의 첫날을 보냈다.

 

  열두 살 난 외동딸 캐럴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촌 언니가 여름 방학 동안 자기 집에서 지내다 떠나게 되자 슬퍼서 어쩔 줄 모르며 눈물을 흘렸다.

 

  : (눈물을 글썽거리며) 언니가 가면, 난 또 외톨이가 될거야.

어머니 : 다른 친구를 사귀면 되잖아?

  : 외로워질 것 같아요.

어머니 : 곧 괜찮아질 거야. 걱정하지마.

  : , 엄마는 몰라. (훌쩍훌쩍 운다.)

어머니 : 열두 살이나 먹은 아이가 아직도 어린애처럼 훌쩍거리다니!

 

  캐럴은 절망적인 눈초리로 어머니를 흘겨보고는 제 방으로 뛰어들어가 문을 쾅 닫아버렸다.

  어머니가 조금만 캐럴을 이해했더라면, 이 대화는 얼마든지 즐겁게 끝맺을 수가 있었다. 사건 자체가 심각하지는 않더라도, 부모는 아이가 느끼는 감정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어머니가 보기에는 분명히, 방학을 같이 보내고 나서 헤어지는 것이야 눈물을 흘릴 정도로 큰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이를 안쓰러워하는 마음마저 아낄 필요는 없다.

  어머니는 ‘캐럴이 지금 섭섭해하고 있구나. 그런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어서 아쉬워하는 아이의 마음을 달래주어야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캐럴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언니가 가버리면 퍽 섭섭할 거야.

  “늘 같이 지내다가 헤어지는 건, 참 어려운 일이야.

  “언니가 가버리면 네게는 집이 온통 텅 빈 것 같을 거야. 그렇지?

  이렇게 부모가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반응하면, 부모와 아이의 관계는 한층 더 친밀해질 것이다. 부모가 자기 감정을 이해해 주고 있다고 느낄 때, 아이의 외로움과 상처는 모두 사라지게 된다. 아이는 이렇게 이해심 있는 어머니를 더 사랑하게 될 것이다. 어머니의 깊은 동정심은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는 정서적인 치료제 구실을 한다.

  진정으로 아이가 처한 어려움을 부모가 인정하고, 그 실망감을 말로 표현해 줄 때, 아이는 현실과 맞설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일곱 살 된 앨리스는 친구 리어와 오후를 함께 지낼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갑자기 그날 오후에 걸스카우트 모임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앨리스는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니 : 실망이 크겠구나. 리어와 함께 놀려고 오늘 오후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앨리스 : . 왜 걸스카우트는 다른 날 만나면 안 될까요?

  앨리스는 눈물을 그쳤다. 친구 리어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 약속을 정했다. 그런 다음 옷을 바꿔 입고, 걸스카우트 모임에 갈 준비를 했다.

  어머니는 딸의 실망감을 이해하고 공감을 표현해 주었고, 이는 앨리스가 어쩔 수 없이 느끼는 갈등과 실망감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어머니는 앨리스의 기분을 확인하고, 그 마음을 대신 표현해 주었다. 상황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야단법석을 떠는 거니? 다른 날 리어하고 놀면 되잖아. 뭐가 문제야?

  어머니가 “그래, 동시에 두 군데에 다 갈 수는 없어.”라는 상투적인 표현을 하지 않았던 것은 현명한 처사였다. 또 다음과 같이 꾸짖거나 비난하지도 않았다.

  “수요일에 걸스카우트 모임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친구와 함께 놀 계획을 세우다니, 어떻게 된 일이니?

 

  다음에 나오는 짤막한 대화를 보면, 아버지는 아들의 기분과 불만을 인정해 준다. 그 결과 아들의 분노가 가라앉는다.

  야간에 직장에 출근하고, 아내가 낮에 직장에 나가 있을 때 가사를 돌보는 아버지가 장을 보고 집에 돌아와 보니, 여덟 살 된 아들 데이비드가 화가 나 있었다.

 

아버지 : 아니, 이게 누구야. 화가 났구나. 정말 화가 무척 많이 났어.

데이비드 : 나 화났어요. 정말 많이 화났어.

아버지 : , 그래?

데이비드 : (아주 작은 소리로) 아빠가 보고 싶었어요. 학교에서 집에 왔는데, 아빠가 없잖아요.

아버지 : 네 말을 듣고 보니 기분 좋은데? 알았어. 학교에서 돌아올 때, 내가 집에 있으면 좋겠다는 말이지?

 

데이비드는 아버지를 포옹하고 나서, 밖으로 나가 놀았다. 데이비드의 아버지는 아들의 기분을 풀어주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장을 보러 가야 했어. 장을 보지 않으면, 먹을 게 없잖아.” 하며 집에 없었던 이유를 변명하지도 않았다. 왜 그렇게 화를 내냐고 묻지도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아들의 기분과 불만을 인정했다.

  아이들에게 그들의 불만과 생각이 터무니없고 사실과 다른 것이라고 설득하려고 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부모들은 의식하지 못한다. 그런 태도는 말다툼만 일으키고, 기분만 상하게 할 뿐이다.

 

  어느 날, 열두 살 된 헬렌이 학교에서 몹시 기분이 상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 엄마도 실망할 거야. 시험에서 B밖에 받지 못했어요.

         내가 A를 받는 것을 엄마가 얼마나 바라는지 나도 알아.

어머니 : 엄만 정말 상관 없어. 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니?

         네 성적 때문에 실망하지 않아. B도 좋은 점수라고 생각해.

  : 그런데 엄마는 왜 내가 A를 받지 못할 때마다 소리를 질러요?

어머니 : 내가 언제 네게 소리를 질렀니?

         네가 실망해 놓고는, 나를 비난하는구나.

헬렌은 울음을 터뜨리며 방에서 뛰쳐나갔다.

헬렌의 어머니는 딸이 자신의 실망감을 인정하지 않고, 엄마인 자기에게 그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이 점을 지적하여 다툼을 벌였기 때문에 딸의 기분은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딸의 기분을 인정했더라면 좀더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네 성적에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지? 성적에 관해서는 모든 것을 네게 맡겨주었으면 한다는 거 나도 알아.

 

  우리가 상대방의 어려움을 알아주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아이들뿐만 아니라 모르는 사람들도 그 노력을 평가해 준다.

  그래프턴 부인은 은행에 가기가 싫었다고 말했다.

  “늘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지점장은 마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 내게 은혜를 베풀고 있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어요. 그 사람에게 갈 일이 있을 때면, 긴장이 돼요.

  어느 금요일, 그녀는 수표에 지점장 서명을 받아야 했다. 그가 고객에게 하는 소리를 들으니 화가 나고,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의 기분을 대신 표현해 주고, 인정하면서, 그를 이해한다고 말했다.

  “힘든 금요일이에요! 모두가 당신에게 손을 벌리고 있군요. 아직 정오도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루를 헤쳐 나가시는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점장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가 웃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예, 그래요. 여기는 늘 바빠요. 모두가 다 자기 일부터 해결하고 싶어하니까요. 그런데 뭘 도와드릴까요?

  지점장은 수표에 서명을 해주고, 그래프턴 부인과 함께 창구 직원에게 가서 일을 신속하게 처리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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