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동물 진화설 VS 초식동물 진화설 왜 우리는 온혈동물로 진화한 걸까? (2) 2009년 03월 05일(목)

21세기 과학난제 왜 우리는 필요한 때와 장소에만 열을 소비하는 에너지 절약형의 냉혈동물을 선택하지 않고 24시간 쉬지 않고 열을 펑펑 써대는 에너지 과소비형의 온혈동물로 진화한 것일까? 지난 이야기에서 온혈동물인 우리가 얼마나 에너지 소비가 심한지를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오늘은 이 질문에 대해 얘기할 시간을 가져보자.

왜 우리가 온혈동물로 진화했는가. 이 문제는 현대 과학이 아직 풀지 못한 난제이다. 그러니 이 문제에 대해서 과학자들은 나름의 근거를 들이대며 내놓은 가설들이 있다. 현재 이에 관한 대표적인 가설에는 정면으로 대치되는 두 가지 이론이 있다.

하나는 육식동물 진화설이고 다른 하나는 이와는 정반대로 대치하는 초식동물 진화설이다. 즉 온혈동물인 우리가 육식동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주장과 초식동물로부터 진화했다는 주장인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상반된 주장이 나올 수 있을까? 각각 주장의 논리를 들어보자.

30년 전 등장한 육식동물 진화설

▲ 사자는 악어와 비교했을 때 활동량이 훨씬 많다. 순간적으로 발휘하는 힘은 별 차이가 없다고 해도 지구력 면에서는 온혈동물인 사자가 냉혈동물인 악어보다 훨씬 강하다. 그렇다면 육식동물이 강한 지구력을 갖기 위해서 온혈동물로 진화한 것일까? 
먼저 등장한 쪽은 육식동물 진화설이다. 지금으로부터 딱 30년 전인 1979년 미국의 두 동물학자가 사이언스지에 이 이론을 처음으로 펼쳤다(Science, Vol 206, p649). 그 주인공은 미 어바인에 위치한 캘리포니아 대학의 앨버트 버넷 교수와 오리건주립대학의 존 루벤 교수였다.

그들은 온혈동물의 진화가 전적으로 강한 지구력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즉 육식동물이 먹잇감을 사냥하고 경쟁자와 싸워 이기려면 강한 지구력이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서 그들은 온혈동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TV에서 보았던 악어의 움직임을 상기시켜보자. 악어는 한낮의 뜨거운 햇빛으로부터 받은 열을 식히기 위해 대체로 물속에 가만히 있거나 느릿느릿 움직인다. 그러면서 먹잇감이 가까이 오기를 주시하고 있다. 그러다 먹잇감이 나타나면 그때에만 몸을 잽싸게 움직여 먹이를 잡아먹는다.

반면 온혈동물인 사자는 어떤가? 사자는 먹잇감을 물색하러 돌아다니고 희생양을 선택했으면 꽤나 달리기를 열심히 해가며 먹이를 사냥한다. 사자가 악어보다 훨씬 더 활동적이고 달리기도 더 오래 더 잘한다. 사자가 악어보다 지구력이 훨씬 강한 것이다.

강한 지구력이 온혈동물 진화 가져왔다?

사자와 악어처럼 실제로 온혈동물과 냉혈동물의 지구력 차이를 알아보기 위해 베넷 교수와 루벤 교수는 작은 척추동물들을 대상으로 유산소운동 최대 능력치를 시험해보았다. 그들은 몸무게 1그램당 소비되는 산소의 최대량인 유산소 파워(aerobic power)를 따졌는데 온혈동물인 조류와 포유류가 냉혈동물인 파충류· 양서류· 어류보다 유산소운동 능력이 훨씬 높았다. 10배 내지 150배나 더 높았다.

▲ 온혈동물이 냉혈동물보다 유산소 파워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홍연어(sockeye salmon, 위)가 유산소 파워 수치가 3.9이라면 이브닝 그로스빅(evening grosbeak, 아래)은 190이나 된다. 

유산소운동 능력이 높다는 건 그만큼 근육에 산소를 더 많이 더 오랫동안 공급할 수 있어 지구력이 강하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온혈동물인 조류와 포유류가 지구력이 강한 이유에 대해 베넷 교수와 루벤 교수는 파격적인 주장을 했다.

높은 유산소운동 능력을 가지려면 불가피하게 신진대사율이 항상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육식동물이 강한 지구력을 선택하면서 그 결과 항상 열을 생산하는 온혈동물로 진화하게 되었다는 얘기이다.

강한 지구력은 곧 온혈동물이어야 한다는 베넷 교수와 루벤 교수의 간단한 결론에 대해 모든 과학자들이 동의하는 건 아니다. 지구력과 온혈동물 간의 관계가 그들의 논리처럼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산소운동 능력은 심혈관과 근육에 달려 있지만 기초 신진대사율은 뇌와 내장에 의해 달라진다. 게다가 왕도마뱀과 같은 일부 파충류는 유산소운동능력이 높지만 기초대사율은 낮은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베넷 교수와 루벤 교수의 지구력과 온혈동물 간의 가설은 그동안 과학자들이 증명해보려고 했지만 아직 맞다 혹은 틀리다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초식동물 진화설 : 과잉 탄소 섭취의 해결책

▲ 잎을 먹고 사는 초식동물에겐 영양 불균형 문제가 있다. 충분한 질소를 섭취하면 탄소를 너무 많이 먹게 된다는 것이다. 이같은 과잉 탄소를 소비하기 위해 초식동물은 24시간 열을 생산하는 온혈동물로 진화한 것일까? 
그렇다고 해도 베넷 교수와 루벤 교수의 육식동물 진화설은 온혈동물의 진화에서 가장 강력한 가설로 오랫동안 군림해오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4월 육식동물 진화설과는 정면으로 대치되는 초식공룡 진화설이 등장하면서 판도가 변하기 시작했다(Ecology Letters, Vol 11 Issue 8, Pages 785).

네덜란드 생태학 연구소(Netherlands Institute of Ecology)의 마셀 클라센 교수와 바트 놀렛은 화합물이 서로 어떤 비율로 반응하는지를 수적으로 표현하는 화학량론(stoichiometry)을 연구했다. 즉 동물이 자신에게 필요한 다양한 영양소를 어떻게 충분히 얻는지를 따지는 것이다.

초식동물은 영양섭취 면에서 잘 알려진 문제가 있다. 그들이 DNA, RNA, 단백질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질소를 어떻게 충분히 섭취하느냐 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초식동물처럼 잎만 먹고 산다면 우리는 너무 많은 탄소를 섭취하지만 질소 부족에 시달린다.

클라센 교수와 놀렛은 초식동물이 가진 이런 질소 문제가 조류와 포유류가 온혈동물로 진화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는 가설을 내놓았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질소를 충분히 섭취하기 위해 과다하게 탄소를 먹게 되는 초식동물은 남아도는 탄소를 소비해야 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 방법이 바로 온혈동물이라는 것. 신진대사율을 높여 남아도는 탄소를 소비한다는 얘기인 것이다.

화석에서 증거 찾아야

그런데 이 초식동물 진화설에도 결점이 있다. 신진대사율이 높을수록 단백질 소비도 더 늘어나 결국 절대적인 질소 요구량도 높아진다는 자기오류에 빠지는 것이다. 클라센 교수와 놀렛의 계산에 따르면, 오늘날 조류와 포유류는 비슷한 크기의 파충류보다 하루에 질소를 약 4배 더 많이 소비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온혈의 초식동물이 질소를 부족하게 섭취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계산을 보여주었다.

클라센 교수와 놀렛이 내놓은 이 가설은 생태학 전문가들로부터 매우 독창적인 아이디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 템피에 위치한 애리조나 주립대학의 생태학자 짐 엘서 교수는 “질소 균형 문제는 종종 간과되곤 하지만 오늘날 동물의 행동에서도 주요 추진력이 된다”면서 “클라센 교수의 아이디어는 과거에도 질소 문제가 얼마나 중요했을지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대세는 이제 초식동물 진화설로 기우는 것일까? 그러나 아무리 타당한 주장이라고 해도 뒷받침해줄 증거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 그 증거는 바로 화석에서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온혈동물의 진화 비밀을 풀어줄 화석연구는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고 있을까? 그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된다.

박미용 기자 | pmiyong@gmail.com

저작권자 2009.03.05 ⓒ ScienceTimes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