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에서 과학기술로 발전한 천문학 [과학창의 칼럼]우리나라 천문학의 현재와 앞으로의 방향 2009년 03월 05일(목)
우리 선조들은 뛰어난 천문학적인 업적을 남긴 데 반해 현대 천문학은 서양의 연구에 의존해온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 우리나라 천문학이 세계 천문학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천문학 및 기초과학에 대한 연구 개발이 크게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2009 세계 천문의 해’를 맞으며 우리 천문학을 되돌아보고, 우리의 위상을 생각하게 된다. 다른 과학도 비슷한 점이 있지만, 천문학은 더욱 뚜렷하게 ‘정치의 산물’로 시작된 학문임을 알 수가 있다. 원래 하늘의 현상이란 조물주의 뜻이 드러나는 현장이라 여겨진 것이 옛날의 생각이었다, 이런 생각은 양(洋)의 동서와 관계없이 공통된 믿음이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원래 천명(天命)의 학문인 것이다. 그런 생각이 서양보다 동양에서 더 강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던 천문학이 16세기로 들어서면서 과학이 되었다. 하늘의 뜻을 읽으려던 노력은 이제 바뀌어 하늘 그 자체를 알아보려는 노력으로 바뀐 셈이다. 말하자면 종교의 대상이던 하늘이 이제 과학의 대상으로 바뀌었음을 뜻한다. 1543년 코페르니쿠스가 세상에 내놓은 <천구의 회전에 대하여>란 책은 그런 대표적 업적이었다. 더구나 이 책은 흔히 ‘과학 혁명(Scientific Revolution)’의 시작이라 불릴 만큼 인류 역사상 가장 대단한 일로 인정받고 있다. 과학으로서의 천문학은 이후 해가 다르게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고, 인간은 그 후 5세기 동안 하늘에 대해 무한히 많은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그리고 1957년 소련이 첫 인공위성 스푸트닉 1호를 발사함으로써 인간의 우주 저쪽으로 진출하는 기술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천문학은 ‘천명의 종교’에서 시작하여 ‘하늘의 과학’을 거쳐 이제 ‘우주의 과학기술’로 3단계를 거쳐 진화해왔다고 할 수 있는 셈이다. 보다 단순화한다면 하늘에 대한 인간의 관계는 종교-과학-기술의 세 단계를 거치며 진전되어 온 것이다. 뛰어난 천문학적 업적 남긴 선조 그러면 이 3단계 가운데 우리 한국인은 어떤 수준에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제1단계에서 우리 선조들은 세계에 자랑해도 좋을 만한 업적을 남겼다 할 것이다. 우리 한국인은 그동안 많은 천문학 유물과 전통을 민족적 자랑으로 삼아 왔다. 그 대표적인 것들로는 우선 경주에 있는 첨성대를 꼽을 수 있다. 또 우리의 화폐 1만원권에는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와 옛 천문 기구 혼천의(渾天儀)가 그려져 있기도 하다. 또한 우리가 역시 크게 자랑 삼아온 측우기도 옛날에는 일종의 천문 기구였던 셈이다. 옛날에는 지금처럼 천문과 기상이 구별되지 않은 채, 하늘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일종의의 ‘천문’ 현상으로 여겼던 것이니 말이다. 어디 그뿐인가? 1442년(세종 24년)에 완성된 <칠정산(七政算)>이란 역법은 6세기 전의 우리 천문학이 세계 최첨단 수준에 있었음을 웅변해주기도 한다. 이 역법의 이름에 나오는 ‘칠정’이란 ‘칠요’(七曜)를 뜻한다.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요일을 나타내는 일곱 개의 천체가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칠정산’이란 표현은 해와 달과 5행성의 위치를 계산하는 것을 의미한다. 세종 때 <칠정산> 내편(內篇)과 외편(外篇)을 내놓은 것은 바로 이들 천체의 위치를 미리 정확하게 계산해내는 것이 가능했음을 보여준다. 세종 때에 이르러서야 우리 선조들은 처음으로 중국의 발달된 천문학을 소화하여 그 방식으로 서울 기준의 천체 운동을 계산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을 <칠정산> ‘내편’에 묶어 편찬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전에 이미 중국에 수입되었던 아라비아식 천문학을 소화한 것을 ‘외편’이라 불러 출판했다. 당시의 동양과 서양 천문학 수준을 아울러 소화해낸 업적이 바로 <칠정산>이라 함직하다. 이때에 이르러서 우리 선조들은 처음으로 완벽하게 서울 기준의 천체 운동을 예측하고 그 데이터를 활용해 일식과 월식을 예보함은 물론이고, 정확한 달력도 계산해낼 수 있게된 것이다. 칠정산의 완성으로 독립적인 역법 이뤄 삼국시대부터 고려 초까지 우리 조상들은 정확한 천문 계산을 하지 못했다. 삼국시대에는 가끔 중국에 사신을 보내 그들의 달력을 얻어다가 날짜 가는 것을 확인했고, 고려 초까지도 그런 관행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11세기부터 고려는 독립적인 역법을 만들어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중국에서 얻어온 자료를 조금 가공하여 고려의 반(半)독립적 역법을 만들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단계를 뛰어넘어 완벽한 독립을 이룬 것은 바로 조선시대로 들어와 세종 24년(1442)년 <칠정산>의 완성으로 가능해진 것이다. 이렇게 우리 선조들이 독립적인 역법을 향해 천문학 지식을 발전시키게 된 것은 바로 천명을 정확하게 읽어내겠다는 의지 때문이었다. 동아시아의 공동체에서는 지도자는 하늘에서 점지해주어야만 그 지도력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여겼다. 말하자면 천명을 받은 자만이 임금이 될 수 있다는 사상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던 것이다.
일식이나 혜성을 비롯한 많은 천문 현상은 다른 자연의 이상 현상과 마찬가지로 이런 하늘의 꾸지람이고 경고였다. 이를 당시 표현으로는 재이(災異) 또는 재변(災變) 등으로 불렀다. 우리 역사책에는 수많은 자연 재이가 기록으로 남아 있다. 예를 들면 <삼국사기>에는 약 1천 개의 기록이, 그리고 고려시대를 기록해 남긴 <고려사>에는 6천500개 정도의 자연재해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다. 1392년 이성계가 개창한 조선왕조에서는 이런 문제가 더 큰 관심의 대상이 되어 있었고, 당연히 자연의 재이 기록 역시 500년 역사 동안에 수만 개 기록되어 남아 있다. 이런 자연 기록의 대부분은 천문 기록이라 할 만한데, 그 천문학적 관심이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과학적’ 관심과는 좀 거리가 있음을 알아둘 일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런 기록 역시 우리의 위대한 문화유산인 것이 사실이고, 전통 천문학의 열매임을 인정할 수 있다. 첨성대에서 시작하여 천상열차분야지도를 거쳐 측우기와 <칠정산>까지, 그리고 그 밖의 수많은 천문 관계 역사 자료가 모두 우리 천문학 전통의 놀라운 성과임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의 천문학은 서양 중심의 연구 성과에 의존 그렇다면 이런 천문학 전통은 오늘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과학적 천문학에 어느 정도 기여할까?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대단한 천문학 전통이 세계의 과학적 천문학의 발달과는 거리가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우리 전통 천문학은 지금 우리가 추구하는 과학으로서의 천문학에는 그다지 이바지한 바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천문과학은 1609년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하늘로 향하고 천체를 관측할 때 시작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유네스코는 올해를 ‘세계 천문의 해’로 선언한 것이다. 물론 여기 단서를 하나 붙이자면 근대 천문학은 그보다 거의 1세기 전에 코페르니쿠스가 지구중심설을 내놓았을 때(1543년) 이미 그 싹이 텄다고 덧붙일 수는 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의 새로운 우주관은 과학적 관찰과 논리적 사고의 결과로 나온 근대과학의 모범적 예라고 단정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 그런 뜻에서도 갈릴레이의 경우를 들어 세계가 올해를 ‘세계 천문의 해’라 기념하는 데 대해서는 크게 이론을 달기는 어렵다. 실제로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처음 태양과 달, 그리고 많은 별을 관찰한 결과 세상을 보는 지식인의 눈은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고, 그에 이어 새로운 발견을 설명하는 과학적 이론이 여러 과학자에 의해 쏟아져 나왔다. 갈릴레이는 원래 네덜란드의 안경점 주인 한스 리퍼셰이란 사람이 망원경을 만들었다는 말을 전해 듣고 그것을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망원경을 처음 발명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발명품을 처음으로 하늘로 향해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태양에는 흑점이 나타났다 사라지며 또 그것이 표면을 돌아 여기저기 이동한다는 사실을 밝힐 수 있었다. 또 달 표면은 완전하게 매끄럽기는커녕 지구 표면 비슷하게 울퉁불퉁한 모양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또 토성은 고리가 있고, 목성에는 한둘이 아니라 자그마치 4개나 되는 달이 그 주위를 돌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런 새로운 발견들은 그때까지 달과 그 저쪽의 천체들의 모양은 완전무결할 것이라고 생각하던 믿음을 송두리째 뒤집어버렸다. 그리스시대 이래 서양 천문학은 지구가 우주 중심에 고정되어 있고, 그 둘레를 달이 돌고, 그 밖을 태양을 비롯한 행성(行星)이 회전하고, 그 밖에 항성(恒星)의 하늘이 있다고 믿어왔다. 그리고 온갖 변화는 지구와 그 둘레에서나 일어나지, 달 저쪽의 하늘 세계란 완벽하여 아무 변화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고대인의 믿음이었다. 이제 갈릴레이의 발견으로 그런 구별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지구가 다른 천체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생각조차 그대로 유지하기 어려워진 셈이다. 새로운 답을 내놓은 케플러와 뉴턴 그렇다면 그런 천체들은 어떤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며, 그 운동이 일어나는 이치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에 대한 답을 내놓은 천문학자가 케플러와 뉴턴이라고 할 수 있다. 갈릴레이가 처음으로 망원경을 천문 관측에 사용한 1609년, 독일에서는 케플러가 <새 천문학>이란 책을 내 행성 운동의 두 가지 법칙을 공표했다. 행성은 태양 둘레를 원을 그리며 도는 것이 아니라 ‘타원 궤도’를 그린다는 것과 그들 천체는 ‘면적 속도’의 법칙을 따른다는 것이었다.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천체는 자연스러운 원운동을 영원히 거듭하는 것이라 지레 판단하여 믿고 있었다. 그 믿음을 송두리째 뒤집어버린 생각이 타원 궤도설이었다. 심지어 이 학설을 주장한 케플러조차 왜 천체가 타원운동을 하는지 설명할 도리가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78년 뒤인 1687년 영국의 뉴턴은 이렇게 천체가 움직이는 까닭은 모든 천체는 서로 질량에 비례하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인력이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학설을 내놓아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소위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은 케플러가 발견했지만 설명할 수 없었던 타원 궤도를 설명하는 길을 열었다. 또 갈릴레이가 이미 시작했던 물체 운동의 수학적 설명을 뉴턴은 3법칙 등을 제시하며 그 길을 활짝 열었다.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인간 이성의 철학적 연구에 몰두한 것도 당연한 추세였다. 그리고 그 자신 천문학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서 1755년 우주 생성에 관해 성운설을 제시한 것은 유명한 일이다. 하지만 우주와 천체를 있는 그대로 설명하던 천문학은 그의 성운설을 시작으로 우주론으로 방향을 바꾸게 된 점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방향에서 19세기의 지성은 혼란을 겪게 된다. 도대체 우주란 어떻게 생성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며, 그 끝은 또 무엇인가? 우주의 본질에 관한 이런 관심은 1910년대에는 이미 아인슈타인 등의 새로운 우주관으로 큰 변화를 겪게 되었고, 그보다 조금 뒤인 1929년에는 에드윈 허셸의 우주팽창설로 다시 새로운 비전을 경험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새로운 우주와 천체에 대한 과학적 설명에는 끝이 없어 보인다. 천문학 및 기초과학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 개발 필요해 천문학의 제2단계라 할 수 있는 과학으로서의 천문학은 이렇게 놀라운 발전을 거듭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제1단계에서 놀라운 발전을 이룩한 우리 선조들의 업적은 꼭 제2단계의 현대과학으로서의 천문학과 연속되지 못했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천문학은 ‘천명의 종교’(제1단계)에서 시작하여 ‘하늘의 과학’(제2단계)을 거쳐 이제 ‘우주의 과학 기술’(제3단계)을 거치며 진화해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겨우 최근 반세기 동안의 눈부신 발전을 통하여 처음으로 과학으로서의 천문학을 건설할 수 있었고, 최근 몇 년 동안에서야 처음으로 외국 기술에 기대어 첫 우주인을 낳으며 우주 로켓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미국, 러시아, 유럽의 몇 나라는 물론이고, 중국은 이미 인간의 우주 비행까지 성공했고, 일본도 곧 그 단계로 들어가게 된다. 2단계와 3단계의 천문학에서 우리는 아직 선진국에 한참 뒤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우리나라 천문학이 세계 천문학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천문학 및 기초과학에 대한 연구 개발을 크게 활성화하여 세계 과학사에 빛나는 인물들을 배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런 목표를 위해서도 우리는 세계에 앞섰던 선조들의 천문학 전통도 연구 개발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세계를 앞서 갔던 제1단계의 천문학은 오늘의 과학기술과는 직접 연관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 전통을 드높이는 노력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 후손들의 천문학에 대한, 그리고 과학에 대한 자긍심을 높일 수 있고, 그런 자랑스러운 마음은 곧 자신감으로 이어져 우리 과학기술자들이 그들의 꿈을 활짝 펴는 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저작권자 2009.03.05 ⓒ ScienceTim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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