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재주가 없지, 다만 창의력은 풍부해" 광고 기획가가 세운 미국 창의교육재단(CEF) ② 2009년 02월 04일(수)

창의성이 왜 필요한가? 아마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와 달리 이제 모방과 베끼기만으로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창의성이야말로 중요한 국제경쟁력이라는 것에 대부분 동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창의성은 비단 우수한 과학인재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창의성은 또한 영재나 수재에게만 타고난 능력도 아니다. 창의적인 능력은 내면 깊숙이 감춰진 인간의 본성이다. 과학문화와 창의성 제고에 앞장서온 사이언스타임즈는 신년기획으로 ‘창의성의 현장을 가다’라는 시리즈 기사를 마련했다. [편집자 註]

창의성의 현장을 가다 미국의 전설적인 광고 기획자 알렉스 오스본(Alex Osborn)은 수많은 광고를 성공시키면서 터득한 것이 바로 창의성이다. 그는 인간 내부에 잠재해 있는 창의성을 끄집어 내는 일이 바로 자기 계발의 중요한 수단이자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판단했다.

저널리스트는 적성 맞지 않아

▲ 오스본은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을 현실에 응용시키면 바로 훌륭한 창의성이 나온다고 믿는다. 그러한 내용을 저서로도 남겼다. 
그는 천성이 적극적이었다. 뉴욕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모리스고등학교(Morris High School)에서 풋볼 선수로 이름을 날렸다. 해밀턴 대학에서는 학보사 기자생활을 하면서 저널리즘 감각을 익혔다.

졸업 후 그는 버팔로(Buffalo)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버팔로타임즈와 버팔로익스프레스 등에서 일했지만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 저널리스트라는 직업에 대단히 기대를 걸었지만 언론인의 길을 포기했다. 적성이 별로 맞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후 그는 자동차 세일즈맨으로, 그리고 기업의 홍보담당으로 전전했지만 정착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평생직업으로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 당시 막 움트기 시작한 광고업계라는 판단을 내렸다.

자본주의 꽃인 광고가 막 싹을 틔우던 초창기 시절인 만큼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광고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자신의 창의성을 무한히 계발하고 또 그 창의성을 남들에게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었다.

광고 시장 초창기에 뛰어들어

세상에는 여러 가지 분야가 많다. 대부분 시작은 모방에서 시작된다. 다시 말해서 기술을 비롯해 각종 학문, 그리고 예술도 어떻게 보면 베끼기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광고는 특성상 베끼기가 거의 통하지 않는다.

광고세계에서 베끼기란 그야말로 훔치기(steal)이다. 차라리 광고를 만들지 않는 것이 낫지 만들었다가 망신 당하기 쉽다. 더구나 광고는 기업이 만들어 낸 제품의 얼굴이다. 베껴서 만든 광고라면 제품 역시 새로운 맛이 없는 진부한 이미지로 굳어져 버린다.

따라서 광고에서 모방이란 제품을 죽이는 일이 돼 버린다. 결국 광고는 창의성의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업과 같은 광고주들로부터 광고를 의뢰 받은 광고 대행사(advertising agency)들은 그야말로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창의성이 돋보이는 광고를 만드는 데 전력을 기울인다.

창의성은 획일적인 조직 시스템에서는 결코 나오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명령과 복종이라는 상하 관계가 엄격하게 구분돼 있는 조직 속에서는 나올 수가 없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창출된다.

“광고에서 모방과 베끼기는 곧 죽음을 뜻해”

지금도 그렇지만 20년 전만 해도 국내 대부분의 회사들은 유니폼을 강요했다. 심지어 남자의 경우 두발(頭髮)의 길이는 물론 수염까지 체크했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군대식 조직을 선호했다. 이러한 시스템을 효율적인 조직이라고 생각했다.

▲ 상상을 초월하는 광고는 부지기수다. 한 광고회사가 어린이 입에 커다란 구멍을 내 주유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 광고는 기아에 허덕이는 어린이들을 지원 해야 한다는 주장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스템에서 예외를 두고 있던 회사들이 있었다. 바로 광고 대행사들이었다. 대행사 직원들은 다른 회사원들보다 자유스러웠다. 자유 복장이 허용됐으며 사장도 주말에는 청바지 차림으로 출근해 사원들과 서슴없는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창의성이 극도로 필요한 사회, 그곳은 과학기술계가 아니라 바로 광고 대행사였다. 이곳에서 필수 덕목은 남들과 잘 어울리는 사교성이 아니다. 그렇다고 외국어를 잘 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톡톡 튀는 카피(copy, 광고에 나오는 문구나 멘트)를 쓸 수 있는 재주와 그 카피에 맞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끄집어내는 일이 바로 광고회사가 요구하는 창의성이다.

사실 광고 대행사가 새로 만든 광고로 기업 간의 경쟁을 반전시킨 경우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기업 간의 사활을 건 경쟁은 시장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시장에 앞서 이루어지는 곳이 있다. 바로 신문과 방송 등 매체에서 이루어지는 광고다.

기업 광고비, R&D 훨씬 앞질러

물론 제품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대부분 기업의 경우 기술개발 투자비용인 R&D보다 광고비가 훨씬 많다. 매출액의 7~15%를 광고비에 쓸 정도다. 이를 보면 광고가 얼마나 중요하며 또한 광고에 사활을 건 투쟁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알 수 있다. 또 그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결정적 해법은 바로 창의성이다.

국내에서 1위를 차지하던 맥주회사가 그 자리를 내주게 된 것은 다름 아닌 광고였다. 물론 수질오염으로 비난을 받았지만 그 시기를 이용해 다른 회사가 튀는 광고로 1위 자리를 뺏었다. 국내 맥주업계에 지각변동을 가져왔다.

이는 화장품 업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내 시장 점유율 60% 이상을 차지하던 회사가 그 위력을 잃고 다른 회사들과 서로 양분하게 된 것도 다 광고전략이 먹혀 들어갔기 때문이다.

광고에서의 성공은 거의 제품의 성공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그만큼 치열하다. 세상 사람들한테 자신의 실력을 인정 받으려는 예술가처럼 광고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광고업계에서 한창 유행하는 특정 경향이 나타나면 지체 없이 달려든다.

광고로 인해 기업의 제품 판매순위 오르내려

▲ 상상력은 창의력 개발의 기초가 된다. 상상력을 심어주는 일이 곧 창의성 계발이다. 
몇 년 전에 광고업계에서 동물들이 나오는 광고가 유행처럼 번졌다. 동물을 처음으로 등장시켰던 최초의 광고는 에너자이저 건전지 광고로 여기에는 토끼가 등장했다. 그 뒤 동물이 등장하는 광고가 연이어 나타났다. 코카콜라는 북극곰을 등장시켰고, 버드와이저는 개미, 개구리, 족제비, 비버를 등장시키더니 심지어 도마뱀까지 출연시켰다.

동물들이 광고에 등장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아니면 바람직하지 못한가? 마케팅과 관련된 모든 질문들이 그렇듯이 정답은 언제나 동일하다.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무엇을 광고하는가에 달려 있다.

물론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가 반드시 매출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 증가가 매출의 증가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제품에 목숨을 걸듯이 광고에 목숨을 거는 이유가 바로 그렇다.

어떻게 보면 창의성은 과학기술계가 가장 필요로 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정작 필요했던 곳은 광고계였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계가 강하게 부르짖으면서 창의성을 들고 나온 것은 불과 10여 년에 불과하다.

BBDO를 세계 최대 광고회사로 만든 장본인

그러한 창의성의 중요성을 이미 간파하고 미국 창의교육재단(CEF; Creative Education Foundation)를 설립한 장본인이 바로 ‘브레인스토밍의 아버지’ 알렉스 오스본이다.

그는 세계적인 광고회사 BBDO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2007년 말 집계에 따르면 비록 총 매출액에서 매켄에릭슨에 1위 자리를 내주었지만 단연 세계 최대 광고회사다.

오스본은 1919년 연간 매출 100만 달러에 불과한 BBDO를 미국 대공황기(Great Depression) 와중에서도 1939년 2천만 달러로, 또한 2차 세계대전의 불황을 잘 극복해 1957년에는 2억700만 달러의 세계 최대 광고회사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는 동료들에게 늘 이런 말은 했다고 한다. “난 기업에는 재주가 없는 사람일세. 그리고 잘 알겠지만 저널리스트로도 별 재주가 없었던 것 같네. 그러나 내 마음 속에 깊이 숨겨져 있는 창의력을 끄집어내는 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거야. 그 ‘내’가 바로 현재 나일 뿐이네.” (계속)

김형근 편집위원 | hgkim54@naver.com

저작권자 2009.02.0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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