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달우편 비용 절감한 한 여사원의 제안 도요타의 조직문화 속에 녹아 있는 창의성 (중) 2009년 01월 13일(화)

창의성이 왜 필요한가? 아마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와 달리 이제 모방과 베끼기 만으로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또한 창의성이야말로 중요한 국제경쟁력이라는 것에 대부분 동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창의성은 비단 우수한 과학인재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창의성은 또한 영재나 수재에게만 타고난 능력도 아니다. 창의적인 능력은 내면 깊숙이 감춰진 인간의 본성이다. 과학문화와 창의성 제고에 앞장서온 <사이언스타임즈>는 신년기획으로 ‘창의성의 현장을 가다’ 시리즈를 마련했다. [편집자 註]

창의성의 현장을 가다 도요타의 자동차 생산공장 조립라인에 가보면 컨베이어벨트 위로 지나는 차체에 문짝이 달려 있지 않은 광경을 볼 수 있다. 문짝은 차량의 내부 조립을 모두 마친 다음에 장착된다. 이를 두고 도요타는 ‘도어리스(doorless)’ 공법이라 한다. 차체에 문짝을 미리 달면 내부 조립작업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문에 흠집을 낼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런 공법을 도입한 것이다.

또 ‘왜건(wagon)’이라고 하는 부품 수레가 조립라인을 따라 움직이는 모습도 특이하다. 부품을 실은 왜건이 그처럼 움직이는 까닭은 작업자의 보행거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더불어 각종 부품과 볼트ㆍ너트ㆍ나사 등이 담겨 있는 개인별 부품상자 옆에는 다른 자동차 생산공장에서는 볼 수 없는 파란색 의자가 놓여 있다. 이는 차량 내부에 부품을 장착할 때 작업자가 앉아서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의자이다.

도어리스 공법이나 왜건, 파란색 의자 등은 모두 도요타의 가이젠 활동의 결과로 얻어진 소산물들이다. 가이젠(改善) 활동이란 ‘지속적인 개선’을 뜻하는 용어로서, 대표적인 일본식 경영기법으로 평가받고 있는 제도다.

대표적인 일본식 경영기법, 가이젠

시대의 변화를 예측하지 못한 채 현실에 안주한 경영 탓으로 도산 위기까지 내몰렸던 1950년, 도요타 에이지는 미국 디트로이트에 있는 포드자동차 공장을 방문했다. 그는 도요타자동차 창업자인 도요타 기이치로의 사촌동생으로서, 당시 자동차 생산을 담당하고 있었다.

▲ 도요타 자동차의 창업자인 도요타 기이치로 동상 
그 무렵 세계 산업계를 지배하던 포드사의 생산방식을 직접 보고 배우기 위해 그곳까지 간 에이지는 견학을 마친 다음 ‘여기서는 배울 게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다음해인 1951년 도요타는 현장 작업자 개인의 창의성과 적극성을 중시하는 독자적 경영방식을 추구하면서 ‘창의연구 제안제도’를 마련했다. 이로부터 비롯된 것이 바로 ‘가이젠’이다.

도요타 직원 한 사람당 1년에 제출하는 개선안은 약 10건. 즉, 한 달에 하나 정도의 개선안을 내놓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7만명에 달하는 직원 전체의 개선안을 모으면 1년에 약 70만 건이나 된다. 이 70만건의 아이디어가 매년 도요타를 새롭게 진화시키고 있다.

제안된 아이디어가 실제 적용될 경우 500엔~20만엔의 포상금이 지급된다. 그러나 20만엔을 받는 경우는 극소수이고, 적용된 아이디어에 지급되는 포상금은 대부분 500엔 정도이다. 그런데도 도요타 직원들은 왜 그처럼 지속적으로 개선안을 내놓는 것일까.

도요타 총무과의 한 여직원은 어느 날 두 개의 우편물을 받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 개 모두 동일한 발송지에서 같은 날 보낸 우편물이었는데, 하나는 속달우편으로 보냈고 다른 하나는 보통우편이었기 때문이다.

여직원은 그 사실을 즉시 상사에게 보고했다. 가까운 지역에서 보낼 경우 속달우편과 보통우편의 배달시간에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그 후 총무과는 가까운 지역에 보내는 우편물을 모두 보통우편으로 보냄으로써 속달우편 발송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이처럼 사소해 보이는 제안도 놓치지 않고 개선안으로 내놓게 하는 힘이 바로 가이센의 저력이다. 아무리 사소한 개선안이라 할지라도 상사가 가볍게 여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받아주고, 또 그 개선안이 업무에 적용되는 것을 보며 직원들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그 만족감은 작은 포상금에 연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개선안을 내놓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개선은 업무와 별개가 아니다

흔히들 업무에 대한 개선안을 내놓으라고 하면 바쁜 업무 때문에 개선안을 낼 시간이 없다고 투덜거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도요타의 사례를 볼 경우 그것은 변명에 불과하게 된다. 왜냐하면 도요타 직원들이 내놓는 개선안은 모두 개인의 업무와 관련된 사소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즉, 개선은 본인 업무와 별개의 사안이 아니라 업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노하우와 아이디어인 셈이다. 이는 도요타의 개선 아이디어가 창출되고 윗선으로 전달되는 과정을 추적해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어떤 현장 작업자가 작업을 하다가 낭비 요소라고 생각되는 점이 눈에 띄면 그 사안을 머리에 새겨놓는다. 하루 일과가 끝난 후 그 작업자는 마련된 쪽지에 자기가 체크한 낭비 요소와 그에 대한 개선 아이디어를 간단하게 적은 다음 개선시트 보관소에 넣고 퇴근한다.

이처럼 작업자가 퇴근하면서 내놓은 개선안은 현장감독자가 검토하여 자기가 해결해줄 수 있는 사항과 타 부서에 넘길 사항으로 분류한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출근한 작업자는 자기가 어제 퇴근하면서 제출한 개선안대로 작업장 한켠에 마련된 보조용 도구를 발견한다.

▲ 도요타의 가이젠 활동은 현장에서 얻는 사소한 아이디어로부터 비롯된다 
전날 현장감독자가 직접 만든 그 보조용 도구는 작업자가 내놓은 낭비 요소를 줄일 수 있는 도구이다. 그 후 현장감독자는 작업자가 제출했던 개선안을 제안위원회에 올린다. 이렇게 볼 때 작업자가 개선안 제출을 위해 소비한 시간은 개선 쪽지를 적는 5분 정도에 불과하다.

도요타의 가이젠은 신형 엔진의 제조원가를 대폭 낮추는 획기적인 비용 절감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본사에서 개발한 새로운 알루미늄 주조기술을 활용해 가벼우면서 강도가 센 엔진을 만들자는 개선안을 미국 자회사에 제안했다.

알루미늄 엔진용 블록 등의 부품을 만드는 미국 자회사에서는 처음엔 그 안에 대해 진심으로 제안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도요타는 본사 연구 인력 300명을 활용해 미국 자회사를 지원, 결국 기존 엔진에 비해 50%나 저렴한 신엔진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도요타의 가이젠 활동은 창의력에서 실천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준다. 대개 창의성이라고 하면 반짝 떠오르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아이디어만 하루에도 몇 개씩 쏟아내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실천에 옮기지 않으면 반짝하며 스치고 지나가 버리는 무용지물이 되기 싶다.

생각해내고 끄집어낸 사안을 즉시 실천에 옮기는 것만이 창의성을 가장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도요타의 가이젠을 보며 알 수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속담처럼 '창의성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석'인 것이다.

이성규 기자 | 2noel@paran.com

저작권자 2009.01.1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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