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자형, 체험, 그리고 모르쇠 도요타의 조직문화 속에 녹아 있는 창의성 (하)

2009년 01월 14일(수)

창의성이 왜 필요한가? 아마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와 달리 이제 모방과 베끼기 만으로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또한 창의성이야말로 중요한 국제경쟁력이라는 것에 대부분 동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창의성은 비단 우수한 과학인재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창의성은 또한 영재나 수재에게만 타고난 능력도 아니다. 창의적인 능력은 내면 깊숙이 감춰진 인간의 본성이다. 과학문화와 창의성 제고에 앞장서온 <사이언스타임즈>는 신년기획으로 ‘창의성의 현장을 가다’ 시리즈를 마련했다. [편집자 註]

창의성의 현장을 가다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등 여러 방면에 능통한 이를 팔방미인이라고 부른다. 옛날엔 ‘팔방미인’형의 인물이 인재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소품종 대량생산체제의 산업사회에서는 팔방미인형보다는 한 우물을 깊이 파는 전문가형인 I자형 인재가 떠올랐다.

한 가지 일에 정통하지 못하고 온갖 일에 조금씩 손을 대는 팔방미인형보다는 한 분야에 정통한 I자형 인재의 지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 도요타의 자동차전시관 
그런데 도요타에서는 'TOYOTA'의 ‘T’자를 따서 T자형 인재상을 내세웠다. 종적으로 한 분야를 깊이 아는 ‘ㅣ’에다 횡적으로 다른 분야까지 두루두루 기본적인 지식을 많이 가진 ‘ㅡ’를 합친 개념이 T자형 인재이다. 즉, 본연의 업무도 잘 하지만 타 부문의 업무에 대한 기본 이상의 지식을 갖추고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다품종 소량생산체제로 바뀐 현대 사회에서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상도 한 가지 기능만으로는 부족하며, 개성과 창의성이 중시되는 다기능이 요구되고 있다. T자형 인재는 환경의 변화에 따라 여러 방면으로 자신의 능력을 유연하게 확장할 수 있다.

특히 앞으로는 서로 다른 기술이나 산업이 결합된 융합 신산업이 유망할 것으로 보여 T자형 인재가 더욱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도요타는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된 후에 관련된 기능을 습득하는 다기능 전략을 추구하여 한 생산라인에서 여러 제품을 생산하는 등 경쟁력을 높였다.

T자형 인재는 전체를 꿰뚫어보는 종합적인 사고능력을 가졌기에 어떤 임무가 주어져도 수행해낼 수 있다. 조직창의성 분야 전문가인 앤 커밍스가 말하는 ‘창의적 인간’도 결국 T자형 인재와 일맥상통한다.

T자형 인재의 창의성

도요타자동차 창업자인 도요타 기이치로는 사원들에게 기존의 지식과 경험에만 의존하지 말고 새로운 체험을 할 것을 독려했다. 여기서 ‘체험’이란 단어가 갖는 의미는 ‘경험’과 조금 다르다.

경험이란 자신이 실제로 해보거나 겪어봄으로써 그 상황을 이해하는 정도에 그칠 뿐이다. 그러나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되살려 대응할 수 있는 행동력을 갖출 때 이를 ‘체험’이라 부른다.

따라서 도요타는 특정 부문에 몇 년 근무했는가 하는 근무경력보다는 얼마나 다양하고 치열한 체험을 했는가 하는 근무내용에 평가의 중점을 둔다.

도요타의 이 같은 체험은 다양한 고객들의 다양한 요구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켰다. 고객의 요구에 도요타가 얼마나 철저히 대응하는지 알 수 있는 하나의 예로, 미국에서의 하이브리드 차량 판매 실적을 들 수 있다.

하이브리드 차량 분야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앞선 회사는 도요타와 혼다인데, 혼다는 기존의 차량보다 더 강한 추진력을 낼 수 있는 대형 하이브리드 차량을 선보였다. 이에 비해 도요타는 기존의 중형차에 하이브리드 엔진을 도입하여 매우 경제적인 연비를 실현했다.

그 결과 두 차량의 경쟁에서 도요타는 혼다보다 10배 이상의 판매 실적을 올렸다. 유가가 치솟는 상황에서 고객이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도요타 직원들은 정확하게 짚어낸 것이다.

▲ 도요타 본사 빌딩 
도요타는 기계설비들의 품종교체 준비시간을 10분 이내, 한 자릿수 내에서 교체하도록 하는 ‘싱글준비교체’를 추진했다. 이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스피드로 품종교체를 하는 회사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고객의 다양한 요구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경쟁력의 핵심이다.

소비자가 자동차를 사기 위해 대리점을 방문해 약간 특이한 사양이나 컬러를 선택하면 영업사원들이 곤란을 표정을 짓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 컬러나 사양은 출고 시간이 오래 걸리니 다른 것을 고르도록 은근히 종용한다.

창고에 쌓여 있는 재고 차량을 우선 팔기 위함이고, 다양한 고객의 요구에 즉시 대응할 수 있는 생산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요타는 싱글준비교체 시스템으로 고객의 요구에 바로바로 대응할 수 있어 이런 구속에서 자유롭다.

나는 그것을 모릅니다

도요타 직원들이 가진 또 하나의 경쟁력은 모르는 것이 많다는 점이다. 도요타가 위치한 곳은 동경과 한참 떨어진 중부 내륙 지방이다. 따라서 도요타 직원들은 명문대 출신보다 지방의 평범한 인재들이 많다.

그들은 머리가 좋다고 뽐내기보다는 스스로 머리가 그다지 좋지 않다고 자인하는 편이다. 여기에 바로 새로운 관찰의 기회와 창의성이 발현되는 열쇠가 숨어 있다.

부서를 이끄는 팀장이나 관리자들은 업무에 있어서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아는 양 행동하기 일쑤다. 부서원들에게 자신의 무지를 내보이기 싫기 때문이다. 특히 엔지니어들에게 그런 성향이 더욱 강하게 나타나는데,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이 남보다 우월하다는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모든 것을 안다고 여기고, 자신의 것만이 최고라고 행동하면 현재의 나 자신 속에 계속 갇혀 있을 수밖에 없다. 모른다고 인정하며 스펀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일 때 새로운 지혜와 관찰의 기회가 생길 수 있다.

새로운 것을 굳이 알려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잘 안다고 착각할 경우, 그는 점점 뒤처질 수밖에 없다. 투입이 없으면 산출도 없다는 것은 진리다.

자, 이제 새로운 나를 만나기 위해서는 마음을 열어 보자. 그리고 솔직히 말해 보자. ‘나는 그것을 모릅니다’라고….

이성규 기자 | 2noel@paran.com

저작권자 2009.01.1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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