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부정, 고정관념을 깨다 도요타의 조직문화 속에 녹아 있는 창의성 (상)

2009년 01월 12일(월)

창의성이 왜 필요한가? 아마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와 달리 이제 모방과 베끼기 만으로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또한 창의성이야말로 중요한 국제경쟁력이라는 것에 대부분 동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창의성은 비단 우수한 과학인재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창의성은 또한 영재나 수재에게만 타고난 능력도 아니다. 창의적인 능력은 내면 깊숙이 감춰진 인간의 본성이다. 과학문화와 창의성 제고에 앞장서온 <사이언스타임즈>는 신년기획으로 ‘창의성의 현장을 가다’ 시리즈를 마련했다. [편집자 註]

창의성의 현장을 가다 올해 3월 말로 예정된 2008년 회계 결산에서 도요타는 세계적 경제 위기에 따른 급격한 판매 부진과 엔화 강세에 따라 1천500억 엔이라는 첫 영업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7년 GE를 제치고 세계 1위로 등극한 도요타의 아성은 여전히 견고하며, 전 세계는 그동안 위기를 기회를 바꾸어온 도요타의 이번 위기 대처법에 대해 주시하고 있다.

사실 창의성이라고 하면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과 같은 IT 업종이나 디자인 회사가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정통적인 제조 산업의 부류에 속하는 도요타의 경우 업종의 차이를 구분하지 않고 추구할 수 있는 그들의 경영철학에서 어떤 기업보다 훌륭한 창의성의 환경을 찾아볼 수 있다.

▲ 도요타 그룹의 창시자인 도요다 사키치 
먼저 도요타의 창의성을 이끌고 있는 기본은 현실부정 철학이다. 생산현장에 가보면 작업자 앞에 작업지침이 담겨져 있는 표준작업서가 있다. 그런데 도요타는 표준작업서의 작성일자가 2개월 이상 경과되었을 경우 무조건 바꾸게끔 한다. 사원들이 현실에 안주하는 것을 막고, 현실 부정에 익숙해지기 위한 노력의 한 예이다.

보통 어느 직종에서건 과거부터 쭉 해왔던 현재의 작업방식에 안주하는 습관이 있기 마련이다. 필요 없는 서류와 작업공정일 경우에도 줄곧 그 방식을 유지하는 이유를 캐보면, 전임자부터 쭉 그대로 해왔기 때문에 한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창의성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소 중의 하나가 바로 오랜 관습으로부터 비롯된 고정관념이다. 오랜 관습이 비록 잘못된 것임을 알고도 개선하지 않는 것은 예전부터 해왔어도 특별히 문제가 없으므로 굳이 고생해 가며 고칠 필요가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독일 고전주의의 대표 작가이자 과학자이기도 했던 괴테는 “낡은 오류만큼 새로운 진리에 해로운 일이 없다”는 말을 남겼다.

도요타는 이런 고정관념과 오랜 관습에서 벗어나기 위해 직원들에게 항상 오늘을 최악의 상황으로 인식시키려는 자극을 준다. ‘잘못이 있을 때 주저하지 말고 고치자’는 것이 도요타 현장 행동원칙의 기본이다.

비전문가의 문제 지적

따라서 도요타 사원들은 외부인의 지적을 진지하게 경청하여 자기 것으로 삼으려는 자세를 지니고 있다. 도요타 생산방식의 완성자로 알려진 오노 다이이치는 1960년대 중반 도요타 협력사의 핵심 멤버들이 혁신활동의 일환으로 도요타 공장을 방문했을 때 한 사람당 서너 개씩의 현장 문제점을 반드시 지적해 달라고 요청했다.

사실 그들은 도요타에 대해 배우러 온 입장이었는데, 뜻밖의 부탁을 받은 셈이다. 그런데 하도 간곡한 부탁이라 거절할 수 없어서, 그냥 본 대로 느낀 대로 비전문가의 입장에서 문제점을 지적해 제출했다.

오노 다이이치는 그 지적 사항을 곧바로 현장 책임자들에게 건네주며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개선하라”고 지시했다. 외부의 비전문가가 단 한번 현장을 방문하여 짚어낸 문제점은 사실 황당하거나 현장 상황에 맞지 않는 뜬구름 식의 내용일 가능성이 많다.

오노 다이이치는 바로 그런 점을 노린 역발상을 했다. 현장 상황을 잘 알고 익숙해지면, 지적하는 이도 그 상황에 동화되어 오히려 객관적인 시각이 차츰 흐려지게 된다. 또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가진 내부인의 입장에서는 전혀 결함이 없어 보이는 문제도 외부인들이 보는 객관적 시각에서는 결함이 많을 수도 있다.

때문에 외부의 비전문가가 짧은 시간에 현장에서 느낀 문제점 속에 현장에서 일하는 사원들이 미처 생각지 못하거나 발견하지 못한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오노 다이이치는 바로 그런 점을 개선하기 위해 그들의 모든 지적을 받아들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일에 숙달한 전문가와 그 현장에서 오래 일해 온 경험이 오히려 창의성을 가로막는 고정 관념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오노 다이이치는 알고 있었다.

기계가 결함을 발견하는 방직기 개발

도요타의 이런 현실부정 철학은 창업 정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도요타 그룹의 창시자인 도요타 사키치는 무려 100년 전에 방직기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종축 실이 끊긴 채로 계속 기계가 움직이는 불량 현상을 보고 어떻게 하면 이런 상황을 없앨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잠겼다.

▲ 도요타 최초의 자동차용 엔진을 탑재한 A1 승용차 
그 결과 그는 종축 실이 끊어지는 것을 작업자가 바로 옆에서 지켜보지 않아도 기계가 자동적으로 발견하고 알려주는 자동화 장치를 최초로 개발했다. 그 후 재벌 2세였던 도요타 기이치로는 1929년 G형 자동방직기의 특허권을 영국에 판 돈 10만 파운드를 밑천으로 삼아 부친의 방직기 제작소 구석에다 연구실을 차렸다.

미국와 유럽의 자동차가 일본을 누비는 것을 보고 자기 손으로 국산 차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꾼 것이다. 그때만 해도 일본의 자동차 산업은 백지 상태나 다름없던 때였다. 그러나 미제보다 더 좋은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꿈을 기이치로는 차곡차곡 실행에 옮겨갔다.

1934년 도요타 최초의 자동차용 엔진 시제품을 완성하고 그 다음해 그 엔진을 탑재한 승용차의 시제품을 완성했다. 그로부터 50여 년이 지난 1989년에 탄생한 도요타의 렉서스 브랜드는 정말 그의 꿈대로 현재 미국 고급차 시장에서 판매 1위를 기록하는 차가 되었다.

문제점 발견이 창의성의 원천

현실을 부정하는 도요타의 행동철학 중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 바로 ‘5WHY 추구법’이다. 5WHY 추구법이란 문제의 원인을 '다섯 번의 왜'라는 연속된 의문을 쫓아가며 해결하는 방법이다.

▲ 미국 고급차 시장에서 판매 1위를 기록한 도요타의 렉서스 브랜드. 
보통 조직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문제점을 파고들어가 보면 본인 혹은 소속 부서의 영역 밖에 그 문제점의 원인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때 대개는 자신의 능력 밖이라고 생각하며 문제 해결을 포기하거나 문제점을 그냥 덮어 버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도요타는 다섯 번의 왜라는 과정을 통해 그 문제점의 근본원인을 철저히 규명해 낸다. 이러한 끈질긴 원인 추구로 도요타는 모든 오류의 원인을 발굴해 낸다.

흔히 조직원이 자신의 영역에서 문제점을 도출해 내는 것은 쉽지 않다. 대부분은 문제점을 드러내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그 문제점을 감추고 피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보다 문제가 많다는 사고방식 자체가 새로운 창의성을 발휘할 기회를 훨씬 많이 얻을 수 있다. 문제가 있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지만, 직면한 문제를 정확히 짚어내지 않고 방치하는 행동은 오히려 더 큰 문제이다.

현실을 부정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문제점을 짚어내는 도요타의 행동철학이야말로 창의성을 발휘할 가장 좋은 환경인 셈이다.

이성규 기자 | 2noel@paran.com

저작권자 2009.01.1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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