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전 트라우마 꿰뚫는 검은 얼룩의 정체 잉크 반점 테스트, 로샤 검사

 

2009년 03월 12일(목)

▲ 무엇이 보이는가? 
“자네를 정신병원으로 보내줄 수 있어. 여기에는 자네가 집어넣은 사람들이 넘쳐나잖아.”
“이 그림은 무엇으로 보이나?”
“...구름”
“...”

최근 개봉한 영화 <왓치맨>의 한 장면. 범죄자를 정신병자로 만들어 감옥에 가지 않게 만드려는 의사와 범죄자로 몰린 히어로 로어쉐크의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의사는 로어쉐크를 정신이상자로 몰기 위해 대칭형의 잉크 얼룩으로 이뤄진 흑백카드를 보여주고 “무엇이 보이는가”고 묻지만, 로어쉐크는 “감옥이나 정신병원이나 똑같다”며 의사의 친절한 제안을 거부한다. 그의 대답은 '아름다운 꽃, 구름' 등이었고 바람대로 로어쉐크는 감옥에 갇히게 된다. 아마도 의사가 원한 대답은 시체나 악마 같은 단어였을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로샤 검사(Rorschach Test), 잉크 반점 검사(inkblot)는 1921년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인 허먼 로샤(H. Rorschach)가 만든 것으로 가장 대표적인 투사 검사 중 하나이다. 투사 검사(projective test)는 특정한 자극을 주고, 그 반응으로서 사람의 심리를 파악하는 테스트를 말한다.

잉크반점에 대한 정신분열증 환자의 반응에서 시작

1921년 로샤 박사의 논문 Psychodiagnostik에서 최초로 소개된 로샤 검사는 일련의 모호하고 불규칙한 잉크반점에 의해 한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지각 반응을 분석, 개인의 인격 성향을 추론하는 정신상태 진단검사이다. 특히 성격의 여러 차원들(인지, 정서, 자기상, 대인관계, 현실지각 능력, 적응능력 등)에 대한 종합적이고 다각적인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에 현재 임상 실제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대표적인 투사적 검사라 할 수 있다.

특히 1940~50년대에는 로샤 검사가 임상심리학과 거의 동의어로 여겨질 정도였으며, 1960~70년대에 임상가의 역할이 확대됨에 따라 그 역할과 범위가 확대됐다.

그렇다면 이 신기한 검사법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예전부터 미국과 유럽의 여러 학자들은 상상력이나 창의력을 연구하는 데 잉크반점 자극들을 사용했다. 특히 이 검사법이 진단의 도구뿐 아니라 개인의 기질, 습관, 반응 양식 등을 알려주는 도구로서도 쓰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시작은 로샤 박사로부터 시작됐다. 우연히 잉크반점에 대한 정신분열증 환자의 반응이 정상인의 반응과 차이가 있다는 점을 알아차린 로샤 박사는 거듭된 연구를 통해 심리분석에 탁월한 성능을 보이는 검사법을 개발해냈다.

로샤 검사의 초기연구에서 그가 채점했던 주요항목은 지금까지 로샤 검사 채점의 주된 기준이며 그 주요항목은 다음과 같다. 로샤 박사는 어떤 위치를 보고 반응했는지, 잉크반점의 어떤 형태를 보았는지, 마지막으로는 어떤 내용을 반응했는지를 분류하는 채점기준을 사용했다.

로샤 검사는 이후 Beck, Hertz, Piatrowski 등 많은 학자들에 의해 발전했으며 특히 J.Exner가 이들에 대한 통합작업을 실시, 1974년 로샤 종합체계를 내놓게 됐다.

엄격한 해석과정이 중요

▲ 영화 <왓치맨>의 영웅 로어쉐크가 쓰는 마스크는 그 자체로 로샤 검사를 연상시킨다. 
로샤검사에서 사용하는 것은 데칼코마니 양식에 의한 대칭형의 잉크 얼룩으로 이루어진 무채색 카드(흑백카드) 5장, 부분적인 유채색 카드 2장, 전체적인 유채색 카드 3장 등 총 10장의 카드이다.

10장의 카드는 한 번에 하나씩 정해진 순서로 제시되며, 피검사자는 그림이 무엇처럼 보이는지를 설명한다.

검사자는 피검사자가 말하거나 표현한 것을 모두 기록해야 하며, 검사진행이 일정한 속도가 유지되도록 유의한다.

로샤 검사의 핵심은 그 해석에 있다. 해석과정에서 임상가의 주관이나 편향이 개입돼 결과가 오도되거나 해석자 간 의견일치가 안될 가능성이 상존하기 때문에 엄격한 교육과 훈련을 받은 임상가에 의해서만 실시, 해석돼야 한다. 결과는 통계적인 연구자료를 바탕으로 반응의 특성과 검사 중에 피험자가 보인 행동, 카드를 다루는 방법 등 여러 가지 자료에 근거해 종합적으로 해석된다.

국내에 실시된 가장 유명한 로사 검사 사례는 연세대 의대 행동과학연구소가 2004년 위안부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테스트이다. 일반인에게 꽃이나 나비로 보이는 무늬들이 할머니들에게는 ‘일본군이 처녀를 마구 끌고 가는 것’ ‘여자 자궁을 잡아당기고 있는 짐승 같은 남자’등으로 보인 것이다.

연구소 측은 “이는 병적이고 왜곡된 성에 대한 경험 탓으로, 내재된 분노와 공격성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수십 년 전의 트라우마가 그대로 테스트에 반영된다는 것이다.
 
최근 인륜을 저버린 각종 범죄와 유명인들의 자살로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살고 있다. 개인의 이익 외에는 무심하고, 성공에만 집착하는 현대인은 모두가 조금씩은 사이코패스 성향이 있다는 분석도 나오는 세상이다.

과연 우리들이 로샤 검사를 받는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상상도 재미있겠지만, 더 중요한 건 각자의 심성을 다듬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조금 더 신경쓰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인간성의 회복이 절실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김청한 기자 | chkim@kofac.or.kr

저작권자 2009.03.1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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